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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갈라진 틈
2장 강의 흐름 3장 심해 4장 주둥이코 5장 꽃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가 6장 필트다운인의 진실 7장 미로 8장 꿈의 동물 9장 미래의 인간 10장 작은 인간과 비행접시 11장 새들의 재판 12장 새와 기계 13장 생명의 비밀 옮긴이의 말 |
Loren Eiseley
趙恩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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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을 발휘해 두개골 주위의 암석을 깎아내리며 이처럼 화석이 된 생생한 기분으로 지층을 파낼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도 언젠가 화석이 될 몸이 아닌가. 그리고 지금도 이 몸 안에 우리보다 먼저 왔던 존재들의 조악함을 품고 있다. 수많은 지질시대를 거치며 하늘의 구름만큼 일관성 없이 뒤바뀐 세계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말이다.
---p.16 인간이 지닌 지식의 한계에서 보았을 때, 저 뼈 안에 생명의 여정 말고 다른 의미는 또 없다. 그 여정은 생명이 품은 기회를 바꾸었고, 우연의 연속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름 괜찮은 여행이었다. 좀 길긴 했어도 상냥한 태양과 함께한 더없이 좋은 여행이었다. 굳이 목적을 찾으려 하지 말라. 그리고 지나온 길에 일말의 자부심을 느낄 것. 이 손을 바라보며 최초로 물에서 올라와 조약돌이 깔린 해변으로 모험을 떠났을 때의 뼈아픈 고통을 떠올려보라. ---p.18 만약 이 행성에 마법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필시 물속에 있다. 그리하여 오늘처럼 사무실 맞은편 건물의 평평한 지붕에 고인 빗물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기만 해도 슬며시 창가로 가서 살펴보게 된다. 바람이 일으킨 잔물결에 물이 마법처럼 어느 생명체로 바뀌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p.31 “수조.” 그것(메기)이 말했다. 이것은 월든의 강꼬치고기가 아니었다. 홍수와 가뭄과 태풍속에서도 용케 진흙을 파헤치며 먹이를 찾는 성깔 있는 연둣빛 거주자였다. 높은 대륙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물이 선택한 이 생산물은 소들을 선 채로 얼려버린 초원의 눈보라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제가 수조를 가져오겠습니다.” 내가 예의를 갖춰 말했다. ---pp.41-42 개구리의 눈을 볼 때마다 이런 으스스한 생각에 사로잡히지만 우울해지지는 않는다. 그저 꼼짝하지 않고 서서 괜히 손을 움직이거나 팔을 들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개구리를 겁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그 상태로 마침내 깨닫는다. 이것이 생명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득한 시력의 확장임을. 자신을 다른 생명체에 투영하는 것이야말로 인류만이 지닌 외롭고도 숭고한 능력이지 않을까. 그 어떤 공간의 모험보다 멀리 떠나는, 발을 뻗어 제 영역을 확장하는 최고의 본보기가 아닐는지. ---p.72 우리는 과거를 가르친다. 또 앞서 왔던 어떤 종족보다 더 먼 과거를 본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에서 멈춘다. 또는 기껏해야 자신에 대한 이상화된 버전의 미래까지만 예측할 수 있다. 우리 뒤에 있는 저 모든 길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눈을 통해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을 정점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령 자신의 종말을 떠올리더라도 그때는 태양도 우리와 함께 사라지고 지구는 온통 어둠에 뒤덮일 것으로 상상한다. ---p.89 다음날 밖으로 나가 종자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죽 늘어놓았다. 날개 달린 종자, 갈고리 달린 종자, 가시 달린 종자, 모두 생명의 작은 캡슐이며, 진정한 꽃식물의 산물인 씨방 속 씨앗이다. 저 작은 용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은 1억 년 전 백악기에 폭발해 지구의 얼굴을 바꾼 사건의 비밀이다. 나는 어느 들풀의 유난히 단단한 씨앗 껍질을 진지하게 찔러보면서 떠올렸다. 그 씨앗 속 어디에 인간도 있었다고. ---p.105 이제 우리는 인간이 처한 곤경의 경이와 두려움을 확인하는 위치에 있다. 인간은 전적으로 사회에 의존한다. 꿈의 창조물로서 인간은 자신을 지원하고 하등 생물의 정확한 본능을 대신할 개념, 신념, 습관, 관습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창조해왔다. 이 보이지 않는 우주에서 인간은 피난처를 취한다. 그러나 동물의 본능도 환경이 달라지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듯이, 인간의 문화적 신념도 새로운 상황을 충족하지 못할 때가 있다. 혹은 개인적 수준에서 혼란에 빠진 어느 정신이 어떤 끔찍한 연금술을 사용해 사랑을 잔인함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p.133 인류 진화의 이야기를 계속해나가려면 반드시 다른 화석들이 더 발견되어야 한다. 이런 추가적인 발견이 축적되기까지 학자들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기질을 연구에 투영할 수밖에 없다. 휘르첼러처럼 일부 학자는 짧은 얼굴, 수직의 앞니, 약간 둥근 턱을 강조한다. 그들은 시간의 숲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빈터에서 우리를 조롱하는 요정 같은 인간의 형상을 찾는다. 반면 다른 영민한 이들은 이처럼 찾기 힘든 난쟁이 요정은 우리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조상을 열망하는 위장된 인간적 갈망이 엮어낸 꿈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현재 살아 있는 영장류 세계에도 짧은 얼굴과 수직의 이빨을 지닌 여우원숭이가 있고, 요정의 진짜 얼굴과 작은 인간의 넉넉한 두개골을 가진 원숭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p.153 인간은 세계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꿈의 동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 중 적어도 일부는 자신이 창조한 비밀의 우주에서 살며, 같은 뇌를 가진 다른 이들과 그 머릿속 비밀을 공유했다. 인간은 영원할 것만 같던 동물의 세계라는 현재에서 탈출해 과거와 미래의 지식으로 들어갔다. 보이지 않는 신, 현상적 외관의 세계 뒤에 서 있는 힘이 그의 꿈속을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p.173 핵심은 태어나기 전의 뇌 크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앞에서 보았듯이, 인간의 다른 친척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높고 넓은 사회적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게 될 생애 첫해의 저 남다른 증폭에 있다. 출생 이후에 진행되는 뇌의 확장이 앞으로 다가올 먼 미래에 더 심화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고 어찌보면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사회적 뇌를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자연은 인간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지구의 다른 생물을 집어삼켜왔던 함정을 피했다. 자연은 현존하는 뇌의 합리적인 한계 안에 문명이 축적한 기억의 긴 연속체를 채워놓았다. 세계의 대형 도서관에 지식을 꽉꽉 채우는 것과 같달까. 필요한 것은 더 커진 뇌가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얼음과 호랑이와 곰을 이겨낸 사람들이 아니라 다정하고 관대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pp.199-200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막한 우주, 그 밤의 공간에서 티끌처럼 떠다니는 지구에 머물며 인간은 상상할 수 없이 외롭게 살아왔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징조와 흔적을 찾기 위해 시간의 척도와 생명의 메커니즘을 살핀다. 지구에서, 아니 아마도 전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각하는 동물로서 우리는 의식의 짐을 무겁게 지고 왔다. 우리는 별을 관측하지만 흔적은 확실치 않다. 또한 우리는 과거의 뼈를 발굴해 자신의 기원을 찾으려 한다. 길은 있지만 그 길은 굽이굽이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길에도 의미는 있으리라. 그것이 우리를 고문한다. ---pp.227-228 그날의 나는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을 기이하게 뒤집어진 시선으로 보았다. 그건 전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저 새들이 계속해서 주위를 맴돌던 모습과 손가락에 아주 약간의 힘을 주고 공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지붕 위로 영원히 떠날 수 있었던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혼자서만 간직하는 편이 나은 지식이다. 가끔은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새들이 정신의 깊은 어둠에서부터 솟구치고 마침내 온정신에 불이 켜질 때까지 소용돌이처럼 비행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사물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마치 새들의 날개가 장애물 위에서 가볍게 방향을 틀 듯이. ---p.236 인간은 개념만 손에 넣으면 어떻게든 자연을 개량한다. 이렇듯 인간은 아주 잘하고 있고 그래서 지금 내가 눈으로는 신문을 훑어보면서 머릿속으로는 그 새 두 마리와 푸르던 산의 햇살을 떠올리는 것이다. 책상 위에 ‘기계는 매일 점점 똑똑해진다’라는 제목의 잡지 기사가 펼쳐져 있다.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나는 새들을 고집한다. 그들은 기계가 아니라 생명이니까. ---p.257 지금까지 45년을 살아오는 동안 나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와 분자가 자기 자리를 바꿔왔고, 또 어떤 것들은 춤을 추며 떨어져나가 다른 존재의 일부가 되었다. 반면에 풀과 동물의 몸에서 온 새로운 분자들이 한동안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가 떠나갔다. 그러나 한줄기 햇살 속 각다귀떼처럼 가볍고 덧없는 순환 속에서 나의 기억들은 굳건히 버텨왔고, 20년 전 사랑했던 얼굴은 여전히 내 앞에 있다. ---p.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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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과학 에세이의 고전 *
* 이동진 평론가 · 정혜윤 PD 추천 도서 * “이 책은 울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_정혜윤(PD, 작가) 사막과 빙하, 강과 심해, 지구와 우주, 그리고 과거와 미래…… 광활한 시공간을 통과해온 모든 생명과 인류의 여행기 눈부신 사유와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은 과학 에세이의 선구자 로렌 아이즐리의 대표작! 20세기 최고의 과학 에세이스트 로렌 아이즐리의 『광대한 여정』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인류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로렌 아이즐리는 그가 사망한 1977년까지 에세이, 자서전, 전기 등 열한 권의 저서를 펴내며 작가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광대한 여정』은 1957년에 발간된 그의 첫번째 에세이집으로, 이 책에서 아이즐리는 생명의 기원과 인류의 진화에 관해 당대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충실하게 전하면서도 개인적인 일화와 성찰을 더해 소설처럼 생생하게 생명 진화의 과정을 그려낸다. 『광대한 여정』 출간 후 뉴욕 타임스는 아이즐리를 “시적 감수성, 삶과 자연의 신비에 대한 경외심과 경탄을 담아 글을 쓸 줄 아는 인물”로 높이 평가했고,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현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며 상찬했다. 이 책은 미국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광대한 여정』은 로렌 아이즐리의 대표작으로 과학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초기 인류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로서 현장 연구에 매진해온 경험, 한 고독한 인간의 깊은 사색으로 넘쳐난다. 아이즐리의 문학성은 글의 유려함을 넘어 광막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를 겸허하게 성찰하는 그의 태도에서 나온다. 그의 저작은 과학자는 물론 시인 W. H. 오든, 소설가 레이 브레드버리와 같은 문학가의 열띤 찬사를 받기도 했다. 부고를 통해서도 그가 작가로서 점했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데, 블룸즈버리 리뷰는 “그저 과학은 과학이고 문학은 문학이었던 시절에 이미 도약을 이루”며 “은유, 아이러니, 서사라는 시적인 언어로 과학을 전달한 독보적인 작가”로서 아이즐리를 기렸다. 독자들은 『광대한 여정』을 통해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도킨스, 칼 세이건 등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뛰어난 과학 도서의 원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며, 과학 지식과 자전적인 이야기가 결합된 오늘날의 과학 논픽션이 모두 아이즐리의 자장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날 독자에게 경고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여러분을 위한 안내서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세계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탐색하고, 이해하고, 즐기려고 애써온 한 인간이 세상을 누비며 작성한 다소 관습에서 벗어난 기록이다. (…) 여기에는 옛날에 그리스인들이 말한 네 개의 고대 원소가 모두 들어 있다. 진흙, 그 안에 깃든 생명이라 부르는 불, 방대한 물,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까지. 마지막은 공간과 공기, 그리고 과학으로 분석할 수 없지만 여태껏 인간의 꿈을 빚어낸 재료로, 바로 희망이라는 무형의 물질이다. (26쪽) “돌이켜보면 나름 괜찮은 여행이었다. 좀 길긴 했어도 상냥한 태양과 함께한 더없이 좋은 여행.” 치밀한 분석 너머 생명의 경이를 기록하는 한 과학자, 자연에 남겨진 흔적에서 길어올린 비범한 깨달음 『광대한 여정』에는 생명의 진화와 인류의 기원을 다룬 에세이 열세 편이 담겨 있다. 모든 글이 완결성과 주제 의식을 갖추고 있지만 책 전체를 꿰뚫는 메시지는 진화론적으로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특별히 더 우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진화는 각각의 종이 나름의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한 “우연적인 선택”의 결과이므로 모든 생명체는 제각기 독특한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이즐리는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룬다. 하나는 과학적 사실과 개인적인 체험을 엮어 흥미롭게 서술한 생명의 진화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적 논쟁으로 보는 인류의 기원에 관한 가설이다. 생명의 진화를 이야기하는 글부터 살펴보자. 아이즐리는 조금은 엉뚱한 방식으로 독자를 매혹한다. 「1장 갈라진 틈」에서 그는 인적이 드문 너른 초원을 말을 타고 달리다 땅을 가르는 좁은 틈을 발견하고 그 아래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두개골을 발굴하며 약 6600만 년 전 공룡 대멸종 이후 나타난 설치류의 한 시대를 떠올리며 언젠가 초원에서 나무로 쫓겨났던 우리의 먼 조상을 떠올린다. 그런가 하면 「2장 강의 흐름」에서는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플랫강 지류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가다가 물과 하나되는 듯한 경험을 하고, 어쩌면 인간도 물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물이 흐르게 하려는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인간이 단지 자연의 생존을 위한 도구일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어느 겨울 얼어붙은 강가를 거닐다 얼음 속에 갇힌 메기를 발견해 집에 들이고는 수조를 가져오라는 메기의 말을 듣고 “수조를 가져오겠습니다”라며 명을 받드는 장면은 그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이 에세이의 백미다. 인간으로 말하자면, 우리 각자는 서로 격리된 하나의 물웅덩이로 저마다 그 안에 떼 지어 다니는 극미동물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혹시 인간도 강의 물살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물이 흐르게 하려는 한 방식에 불과하지 않을까? 쏟아지는 개울, 그리고 내 안의 신비로운 창조물들이 갉아먹는 표류목(漂流木)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소우주가 곧 나라는 말씀이다. 나는 4분의 3이 물이고, 그 물은 혈관을 두드리는 힘에 따라 차올랐다 비워졌다 한다. 몸속의 미세한 박동은 히말라야산맥을 이영차 들어올릴 것처럼 드세다가도 이어지는 수축에 쓸려나가 잠잠해진다. (37-38쪽) 「3장 심해」 「4장 주둥이코」에서는 세포를 갖춘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조건을 논한다. 이 논쟁은 현재진행형으로, 오늘날엔 심해 바닥의 열수 분출 구멍에서 생명이 시작됐다는 가설이 과학계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이 책은 생명에 관해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여 있던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다루며, 심해의 표면을 카펫처럼 뒤덮은 진흙에서 생명이 탄생했을 거라는 가설부터 외계에서 왔을 거라는 추측까지,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한 당대 과학자들의 고투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아이즐리는 생명의 기원은 “바이러스나 결정, 단백질 입자를 아무리 해부해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진리”라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생명은 자신의 한계를 조심스럽게 조정하며 자신을 진화시켜왔고, 인간도 그중 하나의 종일 뿐이라는 것이다. 약 4억 년 전 척박한 늪지에 살던 주둥이코 물고기가 인간이 되기까지, 그 장구한 진화의 여정에는 그 어떤 영웅적인 모험이나 탁월함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생존을 위해 뭍으로 올라와야 했고, 또 뭍에서 살기 위해 뇌 속에 작은 방울 같은 소뇌를 만들어야했던 주둥이코의 은밀한 노력이 있을 뿐이다. 「5장 꽃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가」에서 꽃은 그야말로 인류의 생존 조건으로 다뤄진다. 지금으로부터 1억 년 전만 해도 지구에는 짙은 초록색 식물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최초의 꽃이 그저 제 꽃가루를 공중에 흩뿌렸다. 속씨식물은 매개체를 통해 이전에는 갈 수 없던 먼 거리를 이동했고, 씨방의 보호를 받아 온전히 자란 씨앗이 어디서든 싹을 틔웠다. 거대 파충류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자 이 작은 씨앗들이 지구를 뒤덮었고, 이들이 키워낸 실한 식량이 동물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생존 경쟁에서 그닥 별 볼일 없던 영장류 또한 이러한 꽃식물 덕분에 생존하고 진화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11장 새들의 재판」 「12장 새와 기계」 「13장 생명의 비밀」에서는 자연의 메시지를 전하는 고독한 특사로서 아이즐리 특유의 신비롭고 사색적인 매력이 한껏 발휘된다. 어스름한 새벽, 뉴욕 고층 호텔방 창문으로 비둘기떼의 비행을 내려다보고 자신도 인간이 된 꿈을 꾸는 비둘기가 아닐까 하며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픈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5000만 년 세월이 응축된 사막의 흙을 한 움큼 쥐고 광활한 하늘을 내달리는 새 무리와의 화학적 연결을 깨닫거나, 추운 겨울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집을 짓는 거미를 보면서 인생의 허무를 떨쳐낸다. 그리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중년의 아이즐리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인간들 사이에 세상의 경이가 너무나 쉽게 간과된다는 점이었다. 그는 권위 있는 과학자들이 가을날 말라비틀어진 메뚜기 다리와 나무 줄기를 줍고 살피는 자신을 비웃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현미경과 박절기에 붙어서 생명의 단위를 쪼개고 쪼개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세상의 진실을 알기 위해 과학의 눈으로 더 멀리, 더 깊이 시선을 뻗어나가는 것보다 오히려 개구리가 놀랄까봐 자신의 움직임을 돌아보는 것이 인간이 가장 멀리 가닿을 수 있는 시선의 확장 아니겠느냐고 말하면서. 주저하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경이로움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함의 감각, 우주와 큰 거래를 하고 있는 생명의 본질. 나는 야생에서 특사가 돌아오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경이의 의미를 정의하지 않고 그저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식으로 그 경이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메아리치고, 각자는 기적이 나타난 곳 너머의 영역을 붙잡으려 할 것이다. (250-251쪽) 유인원과 인간 사이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헤매던 20세기 초,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과학적 논쟁과 그 의미 「6장 필트다운인의 진실」 「7장 미로」 「8장 꿈의 동물」 「9장 미래의 인간」 「10장 작은 인간과 비행접시」에서는 인간 진화를 설명하기 위한 20세기 초의 과학적 대립을 상세히 논한다. 1912년, 유인원에서 인류가 진화했다는 진화론을 뒷받침할 결정적 증거로서 필트다운인 두개골이 발굴되었으나, 1953년에 이것이 영장류의 두개골과 인간의 턱뼈를 붙여 만든 조작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즐리는 『하퍼스 매거진』에 진화론의 역사에서 유명한 이 사건을 진지하게 다룬 글을 실었는데(이것이 「6장 필트다운인의 진실」이다), 각자 다른 경로로 진화론을 발전시킨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갈라지는 지점을 밝힌 이 글에서 월리스의 관점을 옹호했던 아이즐리는 일부 생물학자들로부터 “진화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훼손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 논쟁의 핵심은 인류가 과연 언제 시작되었는지, 인류 뇌의 진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와 관련된다. 다윈은 인류의 부상을 자연선택에 의한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의 결과로 설명하기 위해 “인간 대 인간, 부족 대 부족 사이의 긴 투쟁”을 가정했다. 이러한 가설은 당시 식민지 무역과 무자비한 경쟁을 정당화했고,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은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월리스는 인간의 공통 특징인 의사소통 능력과 예술 활동 등을 들어 “장비(뇌)는 소유자(인간)의 필요보다 먼저 발달했다”라며 ‘긴 투쟁’ 가설을 부정하고 단시간에 진화한 인간 뇌의 특수성을 주장했다. 다만 월리스가 그것을 어떤 신비로운 힘이 작용한 결과로 봤다면 아이즐리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그 원인이라고 본다. 다른 포유류와 비교해 현저하게 긴 유년기를 사회 속에서 거치며 뇌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필트다운인 논쟁’ 외에도 인간의 정자세포에 작은 인간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전성설’과 배아가 발생 과정을 통해서만 인간의 형질을 얻는다는 ‘후성설’ 논쟁, 외계에도 인간과 같은 지능적 존재가 있는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 등 당대를 뜨겁게 달궜던 인류에 관한 논쟁들이 흥미롭게 펼쳐져 과학사의 한 장면을 목격하는 듯하다. 비록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우리가 인간이 되어가는 데 작용한 선택의 힘에는 사회문화적 속성이 있는 것 같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새로운 환경의 “경계를 넘어간” 후로는 어디까지나 그 생존이 엄격하게 내부에서 선택되었다는 뜻이다. 마치 지느러미를 딛고 해안으로 기어올라왔던 최초의 물고기처럼. 방금 이 신세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나름 신중하게 선택한 표현이다. 그 새로운 세계란 인간이 살아가는 주변 환경보다는 인간의 뇌에, 즉 인간이 주변의 자연 세계와 자신의 작은 인간 집단 속에서 만들어내기 시작한 사회적 환경을 바라보는 방식에 존재했다. (133쪽) 아이즐리는 신학, 과학, 과학적 야망이 혼재된 인류 기원에 대한 논쟁에서 한발 떨어져 과학자의 태도로 냉철하게 분석하는 한편, 우주라는 넓은 시공간 속 하나의 생명으로서 인류를 바라본다. 이 책을 옮긴 조은영 번역가가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하듯 이 책이 쓰일 당시는 단백질이 아닌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이 확립된 직후였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서야 유전학을 적용해 진화적 가계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기에,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당대 과학 지식의 산물인 필트다운인 논쟁과 인류 기원에 대한 논의의 일부는 무지로 인한 소동으로 일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대에 인간 두뇌의 발달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글들의 가치가 작지 않다.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고갈되어버린 과학 만능의 시대 탐구의 가치를 되묻는 한 인류학자의 낮고 깊은 목소리 이 책이 나온 1957년은 소련이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하고,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직후로, 그런 만큼 과학에 대한 믿음이 점차 굳건해질 때였다. 하지만 인류학과 생물학은 아직 도약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적어도 학계에서는 자리잡았으나 그 외의 생명현상에 대해서는 오늘날에 비하면 이제 막 바닥을 다지는 수준이었다. 그때와 현재 사이의 70년의 시간과 그 사이에 이뤄진 과학의 비약적 발전만을 생각한다면 이 책의 한계가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덜 밝혀졌기에 가능했던 상상과 가정의 영역이 지적 즐거움을 더한다. 또한, 로렌 아이즐리가 과학을 보는 태도는 오늘날 AI기술 발전과 함께 팽배해진 과학지상주의의 맹점을 돌아보게 한다. 아이즐리는 우리 주변의 무수한 생명체를 보고 경험하는 방법, 자연계의 비밀에 비춰 우리 자신의 삶을 감상하는 법을 일러준다. 아이즐리를 따라 시작과 변화, 시간과 자연, 정답과 오답이 있는 과학적 탐구에 동행하다보면 생명의 신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풍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로렌 아이즐리는 평생 경이를 일깨우기 위해 글을 썼다. 이 책은 두개골, 메기, 말뚝망둥어, 노래참새, 비둘기, 까마귀, 새매 등, 사막과 빙하, 강과 심해, 지구와 우주,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고요하고도 환상적인 만남에 대한 묘사들로 가득차 있다. 정혜윤 피디가 “이 책은 울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책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수없이 많은 시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추천한 이유도 이 책의 곳곳에 스민 아이즐리의 겸손한 시선 덕분이 아닐까. 인간은 개념만 손에 넣으면 어떻게든 자연을 개량한다. 이렇듯 인간은 아주 잘하고 있고 그래서 지금 내가 눈으로는 신문을 훑어보면서 머릿속으로는 그 새 두 마리와 푸르던 산의 햇살을 떠올리는 것이다. 책상 위에 ‘기계는 매일 점점 똑똑해진다’라는 제목의 잡지 기사가 펼쳐져 있다.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나는 새들을 고집한다. 그들은 기계가 아니라 생명이니까. (257쪽) ※ 편집자의 말 로렌 아이즐리가 일흔의 문턱에서 쓴 자서전, 『그 모든 낯선 시간들』 또한 새로운 번역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이 책에서 아이즐리는 부모 사이의 불화와 가난, 병약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시작해, 과학이란 학문에서 늘 아웃사이더였던 자신의 발자취를 천천히 더듬어간다. 세계사의 격변 속에서 방황했던 한 지식인, 내향적인 성향으로 인해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 그리고 자연계에서 인류의 위치를 깊이 생각한, 한 인간의 매력적인 자화상이 담겨 있는 탁월한 자기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