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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제비의 날개
1부 도로 위의 암살자 1. 이제 악마의 마차가 우리 앞에! 2. 움직이는 울타리 3. 호텔 캘리포니아 4. 납작한 죽음들 2부 도로를 넘어서 5. 도로의 해체 6. 포석 위의 수다 7. 길가에서 피어나는 생명 8. 네크로바이옴 9. 잃어버린 변경 3부 미래의 도로 10. 창조의 심장에서 품위를 11. 감시하는 도로 12. 인프라 쓰나미 13. 배상 나가는 말: 인류 일시 정지 감사의 말 미주 찾아보기 |
Ben Goldfarb
趙恩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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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어느 오후, 하버드대학교 경관생태학자 리처드 포먼Richard Forman은 자신의 연구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숲의 위성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 숲에서 어느 방향으로 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왜 그 자리에 집을 지었으며, 동물이 어떤 길로 이동하는지 등을 설명하던 포먼이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문득 사진을 대각선으로 길게 가르는 선이 눈에 들어왔어요.” 당시를 회상하며 포먼이 내게 말했다. “숲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였습니다. 저는 소리쳤죠. ‘이럴 수가, 사진 속 다른 것들의 생태는 다 알겠는데, 저것의 생태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 도로에 대한 그간의 생태학적 무관심을 자각한 포먼은 곧바로 “도로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창안하고, “도로와 차량 이동이 주변 동식물의 삶에 미치는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대략의 정의를 내렸다.
-27쪽, 들어가는 말: 제비의 날개 사슴들은 여전히 갓길에서 배회했다. 그러나 흰꼬리사슴은 I-80이 개통한 이후로 교통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도로를 건너려는 시도를 중단해버렸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더 빠르고 더 시끄럽고 더 고압적인 차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자 도로 양편을 오가는 일을 아예 단념한 것이다. 고속도로가 더 안전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심장이 멈출 만큼 위험해지는 바람에 동물들이 아스팔트에 발을 들일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래서 로드킬이 줄었다. 벨리스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 자체가 사슴들이 차로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움직이는 울타리moving fence’가 되고 있다”라고 추정했다. -78쪽, 1. 이제 악마의 마차가 우리 앞에! “도로가 어떻게 동물의 삶을 방해하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의 답은 대단히 복잡하다. 2016년에 생물학자 샌드라 제이컵슨Sandra Jacobson과 동료들은 동물이 도로에 반응하는 방식을 네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스펙트럼의 한쪽에는 비반응형nonresponder이 있는데 이 동물들은 도로의 존재를 무시하고 위험에 개의치 않는다. 이를테면 황소개구리속의 표범개구리는 차가 있건 없건 거침없이 도로에 뛰어든다. 다음은 일시정지형pauser인데 호저와 스컹크가 대표적으로, 도로를 건너다가 한복판에서 돌연 주저앉는다. 스펙트럼의 반대편에는 회색곰으로 대표되는 경계심이 강하고 영리한 회피형avoider이 있다. 이런 동물은 시골의 한적한 도로에도 잘 접근하지 않는다. 비반응형은 치명적일 정도로 부주의하지만, 회피형 역시 타고난 경계심으로 자신을 감옥에 가둔다. -99쪽, 2. 움직이는 울타리 로드킬의 가장 잔혹한 측면은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도태되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도태되느냐에 있다. 야생의 생태계는 병들고 늙은 개체를 알아서 솎아낸다. 병든 새끼 사슴은 늑대가 먹어 치우고, 나이 든 말코손바닥사슴은 눈 폭풍에 쓰러진다. 반면에 로드킬은 모두에게 동일한 확률로 일어나는 기회균등의 포식 현상이다. 강한 개체도 약한 개체만큼이나 쉽게 제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서 차량에 목숨을 잃은 와피티사슴은 늑대나 쿠거에게 잡아먹힌 동물보다 더 건강했다. 같은 원리가 양서류에도 적용된다. 뉴욕에서 연구자들은 도로변에 있는 연못의 도롱뇽알 꾸러미가 유난히 적다는 점을 발견했는데, 아마도 어린 암컷들이 성숙한 개체가 되기 전에 차에 치여 죽기 때문일 것이다. 차들은 그냥 동물을 죽이는 게 아니라, 죽지 않았다면 개체군 회복에 보탬이 되었을 개체들을 짓밟는다. -178쪽, 4. 납작한 죽음들 소음은 서식지 소실을 일으킨다. 소음이 아니었다면 문제없이 살았을 환경에서 야생동물을 내쫓기 때문이다. 글레이셔 국립공원에서는 멀리서 차량 기어가 갈리는 소리가 산양을 깜짝 놀라게 한다. 이란의 한 야생동물 보호지역에서는 도로가 갑상선가젤 무리에게 40데시벨의 소음을 투척한다. 보호지역이 시끄러운 시장통처럼 변질되면서 원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된 지역이라는 목적을 위배한다. 미국 와이오밍주 데블스타워 국가기념물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로 인해 유명해졌는데, 이 초현실적 형태의 바위산은 매년 외계인보다 더 파괴적인 여행객 무리를 맞이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모터사이클 축제인 스터지스 모터사이클 랠리에 모인 사람들이다. 벅스턴은 할리 데이비슨이나 야마하의 천둥 같은 함대가 몇 주 동안 데블스타워 근처에 머물면서 프레리도그를 동굴 속으로 밀어 넣고, 사슴을 내쫓고, 박쥐가 끼니를 굶게 한다고 했다. 스필버그의 외계생명체들이 이 축제가 한창일 때 지구에 도착했다면 주인공 리처드 드레이퍼스Richard Dreyfuss는 그들이 보낸 5개짜리 음표로 된 인사를 놓쳤을 것이다. -241쪽, 6. 포석 위의 수다 하지만 작가 에마 매리스Emma Marris가 지적했듯이, 인류는 이 행성을 지배하면서 “야생”을 제거했다. 지구에서 도시와 오염물질, 도로가 없는 곳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 동물을 지배할 힘이 있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가하는 극한의 고통에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매리스는 그런 생각이 “일종의 지적 현기증”을 일으킨다고 인정했다. 우리 인간은 “지구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에게, 그러니까 이 땅의 모든 참새와 땅다람쥐와 생쥐와 흰꼬리사슴에게” 윤리적 의무를 져야 할까? 어떤 과학자들은 그 답이 “그렇다”라고, 적어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결론을 내렸다.야생동물 이니셔티브Wild Animal Initiative는 야생동물 복지 단체로, 비둘기 생식능력 조절에 대한 연구, 빛 공해가 올빼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등을 후원한다. 단지 개체 수를 관리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들이 좀 더 쾌적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368쪽, 10. 창조의 심장에서 품위를 도로의 한 가지 기이한 점은 피해자인 동물과 직접 접촉하게 된다는 점이다. 환경 보전 문제의 대부분은 문제의 원인과 그 결과가 공간과 시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다른 장소에 존재한다. 나는 내가 먹는 마가린을 생산하는 팜유 플랜테이션 때문에 열대 우림에서 쫓겨난 오랑우탄을 만날 일이 없고, 대서양을 건너는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녹아버린 해빙에 사는 북극곰도 본 적이 없다. 반면에 로드킬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야생의 물성을 드러낸다. 장담하건대 살아 있는 주머니쥐보다 차 바퀴에 깔려 팬케이크처럼 납작해진 주머니쥐를 본 미국인이 훨씬 많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죽은 호저에서 가시를 뽑아 꽃다발처럼 꽂아두었던 게 기억난다. I-90 고속도로 옆에 쓰러져 있던 큰뿔부엉이도 생각난다. 멀리서 실루엣으로만 본 적 있는 이 새는 언월도 같은 발톱, 단검 같은 부리, 망토 같은 날개가 특징이었다. 아이다호주 길가에서 배리 로페즈와 함께 쏙독새를 어루만지던 농부가 있었다. 로페즈가 쓰기를, 이 농부는 새의 생김새에 완전히 넋을 잃고 “손가락으로 배의 매끄러운 곡선을 따라 내려가면서 수염 난 작은 부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긴 날개깃을 너무 거칠지 않게 잡아당겼다. 그러더니 마치 그 새가 내 새라도 되는 것처럼, 새를 집에 가져가서 아내에게 보여줘도 되겠느냐며 양해를 구했다.” -395쪽, 11. 감시하는 도로 알도 레오폴드는 토지 윤리를 강조하며 이렇게 외친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것이 옳다는 것은, 그것이 생물 군집의 온전함, 안정성,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기준에서 도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잘못된 것이다. 도로는 침투하는 모든 곳에서 생물의 온전함을 파괴하는 혼돈의 동인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도로를 옳거나 그르게 만드는지를 함축하는 도로 윤리, 그 격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 있다. 도로는 설계자들이 그 도로가 지나가는 생물 군집과 인간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할 때만 옳다. 또는 도로는 그 주인처럼 땅을 정복하는 대신 그 땅에 속해 있을 때만 옳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북아메리카 최고의 도로생태학 프로젝트였던 US93을 두고 살리시-쿠트니 부족 연합이 남긴 격언을 뛰어넘기는 어렵다. “도로는 방문객이다.” -492쪽, 나가는 말: 인류 일시 정지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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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생태학이란 무엇인가: 아스팔트 위에 숨은 거대한 질문
도로생태학은 말 그대로 도로와 자동차의 이동이 주변 동식물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책에 소개된 일화가 이 학문의 탄생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하버드대학교 경관생태학자 리처드 포먼은 숲의 위성 사진을 살펴보다가 문득 깨닫는다. 사진 속 다른 모든 것(물의 흐름, 집이 들어선 이유, 동물의 이동 경로)의 생태는 설명할 수 있는데, 숲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 하나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이 순간의 자각을 계기로 포먼은 ‘도로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영어권에 널리 퍼뜨렸다(엄밀히는 1981년 독일 과학자 하인츠 엘렌베르크가 만든 “straßenökologie”라는 용어를 영어로 옮긴 것이라고 책은 밝히고 있다). 로드킬은 도로생태학이 다루는 문제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도로는 서식지를 두 조각, 세 조각으로 쪼개 동물들이 먹이와 짝을 찾아 이동하는 능력 자체를 빼앗는다. 제설을 위해 뿌리는 소금은 강과 호수를 오염시키고, 자동차의 굉음은 새들의 짝짓기 노래를 지워버려 명금류가 서식지를 등지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놀라운 반전도 놓치지 않는다. 바로 역설적으로 교통량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로드킬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도로 위를 빠르게 달리는 차량들이 ‘움직이는 울타리(moving fence)’가 되어 아예 동물의 이동 자체를 봉쇄해 버리기 때문이다. 즉 도로생태학은 사고를 줄이는 공학이 아니라, 도로가 지구의 ‘생명의 그물’을 어떻게 새로 짜고 있는지를 추적하는 작업이다. 파괴의 기록자, 회복의 목격자 도로가 바꾼 생명의 풍경을 따라 세계 곳곳을 횡단하다 『크로싱』은 “제비의 날개”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서문으로 문을 연다. 도로에 치여 죽는 삼색제비들이 하나같이 날개가 긴 개체(장거리 직선 비행에 적합한)였고, 그렇게 도로가 세대를 거듭해 개체를 솎아낸 끝에 이 새들이 아예 짧은 날개(급선회나 구르기 동작에 유리한)로 진화해 버렸다는 이야기로 저자는 책의 주제를 압축해 보여준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도 캘리포니아에서 실어 온 아보카도와 집 앞까지 배달된 피자를 먹고, 직접 차를 몰며 도로의 수혜를 누리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이 정직한 고백이 이 책 전체의 출발점이다. 이후 책은 세계 각지의 현장을 하나씩 밟아나간다. 미국 서부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I-80을 따라가며 저자는 앞서 언급했던 ‘움직이는 울타리’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다른 지역에 지어진 야생동물 생태통로(육교)가 어떻게 건설 비용을 회수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충돌을 예방했는지 보여준다. 도로가 짝짓기와 유전자 교류까지 가로막는다는 대목에서는 회색곰의 DNA만으로 어느 쪽에서 태어났는지 구분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등장하고, 로스앤젤레스 도심에 있는 그리피스 파크에 갇힌 쿠거 ‘P-22’ 이야기는 도시와 맹수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러나 씁쓸하게 그린다. 책은 로드킬 통계 이면의 모순 혹은 비극(가장 눈에 띄는 희생자는 멸종의 위기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종이라는 점, 늙고 병든 개체가 아니라 건강한 개체가 무작위로 제거된다는 사실 등)을 짚은 뒤, 도로의 소음이 동물들의 울음소리 주파수까지 바꿔놓는 현상, 도로가 서식지를 파괴하는 동시에 새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역설까지 폭넓게 다룬다. 후반부로 가면 시야는 한층 넓어진다. 사체를 먹는 청소동물들의 생태계 ‘네크로바이옴(necrobiome)’, 미국 고속도로가 흑인 공동체를 지우고 분리한 인종차별의 역사와 그에 대한 배상 논의, 브라질 아마존을 관통하는 ‘인프라 쓰나미(infrastructure tsunami)’,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만든 뜻밖의 ‘인류 일시 정지(Anthropause)’ 기간 동안 야생동물들이 되찾은 거리 풍경까지. 저자는 도로라는 하나의 주제로 생태, 인종, 경제, 팬데믹을 모두 꿰뚫어 본다. 이 모든 장을 관통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치유 가능성’이다. 캘리포니아의 쿠거 생태통로, 아이다호 클리어워터의 임도 해체, 태즈메이니아의 야생동물 재활사들 등등. 저자는 파괴의 기록자인 동시에 회복의 목격자다. ‘길’ 위에서, 더 나은 ‘길’을 위해 길이 만드는 미래를 바꿔야 한다 2050년까지 전 세계에 2,400만 킬로미터가 넘는 도로가 새로 깔릴 예정이다. 그중 상당수가 이 세계에 아직 온전하게 남아 있는 자연 서식지를 관통한다. 도로는 이제 산발적인 파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경관’이 되어 가고 있다. 지구 숲의 70퍼센트가 이미 도로에서 가까운 ‘가장자리’ 서식지로 변했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붕괴가 일상어가 된 지금, 정작 그 한복판에 있는 도로라는 인프라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논의에서 빠져 있는 듯 보인다. 『크로싱』은 바로 그 사각지대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이 책이 지금 우리에게 특히 시의적절한 이유는 한국의 현실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국토 전체가 산지와 도로망으로 촘촘히 얽힌 한국에서, 야생동물의 서식지 단절과 로드킬은 이미 오래된 환경 문제다. 실제로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이 2026년 4월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1998년 지리산 지방도에 국내 최초의 터널형 생태통로가 설치된 이후 현재 국립공원 내에는 터널형 9곳, 육교형 9곳 등 총 18곳의 생태통로가 운영되고 있다. 이 생태통로들을 분석한 결과 설치 초기(0~3년)보다 정착 단계(8년 이후)의 연평균 야생동물 이용 개체수가 약 30퍼센트 늘었고, 설치 후 5년이 지난 15곳에서는 동물 찻길 사고가 평균 18퍼센트 감소했다. 2013년 오대산 월정사 진입로에 설치된 터널형 생태통로는 무려 87.3퍼센트의 사고 감소율을 기록해 국내 최고 성과로 꼽힌다. 『크로싱』이 그려내는 미국, 캐나다, 유럽의 사례는 그러므로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한국의 산과 고속도로 밑에서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인 것이다. 『크로싱』은 단순히 “도로가 나쁘다”고 외치는 책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도로 없이 살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거대한 인프라를 다시 설계할 수도 있다. 도로가 “방문객”처럼 겸손하게 자연 속에 놓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기후위기 시대, 도로를 새로 낼 수밖에 없는 개발도상국의 딜레마부터 이미 지어진 도로를 되돌리는 선진국의 실험까지. 이 책은 ‘더 나은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실질적인 참고서가 되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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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낸 길은 언제나 파멸에 이른다.” 제가 오래전부터 부르짖은 경고입니다. 인류 역사 내내 도로는 힘의 과시이자 정복의 수단이었습니다. 자연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로는 인간에게 연결과 탈출이지만, 다른 생물에게는 죽음과 분할입니다. 로드킬은 댐, 밀렵, 산불보다 훨씬 많은 생명을 앗아갑니다.
우리나라에 생태통로가 처음 만들어질 때, 저는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1995년 김중위 초대 환경부 장관님이 강원도 구룡령에 건설될 국내 최초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시찰하며 저를 전문가로 부르셔서 동행했습니다. 그때 제가 위치 선정 과정에서 동물들의 기본적인 이동 경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을 만큼 이 사업의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 생태통로 사업은 어느덧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야생동물의 목숨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실을 바탕으로 국립생태원은 현재까지도 로드킬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본격적인 생태학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50년까지 전 세계에 2,400만 킬로미터가 넘는 도로가 새로 포장될 예정이며, 그중 다수가 아직 온전하게 남아 있는 자연 서식지를 관통할 계획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볼 때, 이번 세기 중반까지 완공될 기반 시설의 4분의 3은 아직 착공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히 ‘인프라 쓰나미’라 불릴 만한 콘크리트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외계의 생물학자들이 지구를 탐방하러 왔을 때, 그들은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라는 신종 동물을 보고 경악할 것입니다. 그들의 무절제한 행동으로 인해 죽임당하는 동물들의 현황을 조사하며 로드킬 피해 수치가 과소 집계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자동차에 부딪혀 즉사하는 경우 외에도 숨이 끊어지기까지 몇 분, 몇 시간, 심지어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는 사실에 숙연해질 겁니다. 미래의 도로가 생물 군집과 인간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도록, 우리는 이제 도로생태학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책이 희망적인 미래로 향하는 생태 길을 열어주리라 확신합니다.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명예교수·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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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환경 정책을 배우려고 들어간 대학원에서 가장 놀란 점은 그곳 사람들이 자연보다 인공 구조물을 들여다보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쓴다는 점이었다. 댐, 송전탑, 발전소, 하천보… 어쩌면 당연하다. 대형 인공 구조물만큼 환경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또 없다. 그중에서도 제일은 도로다. 도로는 이제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인간을 잇는 도로가 야생동물에게는 단절이다. 도로를 건너지 못해 서식지가 파편화하면 고립되어 죽고, 용감하게 도로를 건너려고 하면 차에 치여 죽는다. 누가 이 문제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정말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 도로가 어떻게 야생을 찢어놓는지 조사로 확인하고, 동물이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발명하여 설치하고, 나아가 더 생태적인 도로망의 필요성을 알리려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크로싱》은 그들의 이야기, 즉 도로생태학의 이야기다. 1920년대 한 생물학자 부부가 자동차 여행길에 본 동물 사체의 수와 종류를 세어 학술지에 보고한 것이 소박한 시초였던 도로생태학은 이제 곰을 위한 육교와 거북을 위한 터널을 짓고, 쓸모없는 도로를 해체하여 자연으로 되돌린다. 그 놀라운 사례들을 읽다 보면, 비 오는 밤마다 두꺼비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양동이에 퍼 담아 옮겨주는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이 그 어떤 최첨단 기술보다도 도로생태학의 핵심에 가까움을 알게 된다. 어쩌다 도로에 나와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흙으로 옮겨준 적 있는 사람, 도로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새를 본 적 있는 사람, 인간이 기어이 전 지구를 도로로 덮을 것이라면 생태통로라도 반드시 함께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왜 굳이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강하게 권한다. 저자의 성실한 취재, 뛰어난 글솜씨와 유머, 그리고 훌륭한 번역이 갖춰진 이 책이 후자의 독자마저도 설득하리라는 데 나는 무엇이든 걸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독자가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도로를 운전자의 눈이 아니라 그 앞에서 서성이는 동물의 눈으로 보게 되리라. - 김명남 (과학책 번역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