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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제1부 소와 서양 문명1 도살업자를 위한 제물2 소로 그려진 신과 여신들3 신석기 시대의 카우보이4 신이 내려준 선물과 자본5 소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인도6 소를 ‘남성’의 상징으로 여긴 스페인7 소 사육장이 된 아메리카8 영국인과 육식9 감자를 먹게 하라10 살찐 소와 비대한 영국인제2부 미국 서부 정복기11 철도 연결과 소 떼의 이동12 육우로 대체된 버펄로13 카우보이와 인디언14 목초가 곧 금이다15 ‘옥수수로 사육하는’ 육우 정책16 철조망을 두른 목장과 토지 사기제3부 소고기의 산업화17 소고기 트러스트18 소고기 해체 공정19 현대의 소고기20 자동화된 정육 공장21 전 세계적인 ‘육우 기지화’제4부 배부른 소 떼와 굶주린 사람들22 소 떼의 천국23 맬서스와 육식24 지방의 사회학25 육식의 대가26 인간을 집어삼키는 소제5부 지구환경을 위협하는 소 떼27 생태적 식민지 정책28 열대지방에 자리 잡은 목초지29 발굽 달린 메뚜기 떼30 사막으로 변해 가는 아프리카31 물을 빼앗긴 사람들32 더워져만 가는 지구제6부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의식구조33 소고기 심리학34 육류에서 비롯된 남녀 차별주의35 소고기가 낳은 계급주의·국수주의36 소 떼와 개척 정신37 햄버거와 고속도로 문화38 현대 육식 문화 비평39 소고기, 그 차가운 악40 육식의 종말주석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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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Rif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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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를 상징했던 신에서 공장의 포장 고기로 전락하기까지소와 인간의 관계로 들여다보는 육식의 문화사소는 인류의 여정에서 초기부터 함께해 온 동물이었다. 소는 숭배를 받는 신적인 존재이자, 고기와 가죽을 제공하는 유용한 동물로서 신성함과 실용성을 고루 갖춘 동물이었다. 육식은 필연적으로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 인간은 이를 다양한 제의로 위로했다.과거의 육식은 소 신의 희생으로 나온 고기를 먹어 그 힘을 몸으로 합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육식이 상징하는 권위와 소의 경제적 생산성이 중요해지자 소는 점점 신성함을 잃고 자본을 낳는 재산으로 받아들여졌다. 소고기가 상징하는 부와 열망은 특히 유럽권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영국인들은 더 많은 소를 키우기 위해 드넓은 목초지가 필요해지자, 아일랜드부터 바다 건너 아메리카의 들판까지 모두 육우용 들판으로 바꿔버렸다.사람들은 더 많은 소고기를 원했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작업하기 위해 소들은 비육장에서 키워졌으며, 일정 무게가 되면 공장식 도축장으로 들어섰다. 정육 공장에선 컨베이어 벨트 속도가 생명이었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마리 소가 그렇게 조각나며 하나의 고기가 됐다. 이제 우리는 잘 진공포장된 고기에서 소를 연결시켜 생각할 수 없다. 소와 인간의 관계는 자연과 인간의 위상이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지도와 같다. 인간은 효율화 과정에서 자연과의 연결 관계, 생명의 관계를 버렸다.지구를 먹어치우는 소 떼와 굶주리는 전 세계고기 한 점을 씹을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소고기를 먹는 게 왜 문제가 될까? 언뜻 생각하면 소고기와 전 세계의 불균형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저자는 소수가 만족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소고기 한 덩이가 전 세계에 어떤 역효과를 미치고 있는지 보여 준다.소고기는 사람들이 살아갈 땅을 빼앗은 결과물이다. 소를 방목할 넓은 목초지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농사짓던 땅에서 쫓겨나 빈민으로 전락했다. 또 미국에서는 소를 살찌우기에 목초만으로 부족해지자 잉여 곡물을 사료로 먹여 몸집을 키웠는데, 이런 관례가 다른 나라에까지 여파를 미쳤다. 곡물을 재배해도 그 나라에 유통되지 못하고 소를 먹일 사료로 수출된다. 그 땅이 내는 곡물을 먹고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은 그만큼 기아에 허덕인다. 고기 한 덩이를 얻기 위해 투여된 곡물은 그 고기의 수 배나 된다.이뿐만이 아니다. 소 떼가 지나간 땅은 몇 년만 지나면 불구가 된다. 목초지로 바꾸기 위해 열대우림은 불태워지고, 남은 풀들은 소 떼가 모조리 뜯어먹어 땅이 드러나고 토양이 유실된다. 회복하지 못한 땅은 사막화되어 버려진다. 이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소고기를 먹는 행위 자체에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소고기 생산 구조에서 발생하는 비극적인 흐름에 가담하고 있다. 육식이란 행위가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 우리는 짐작만 할 뿐이다.풍요로운 식탁 이면의 ‘차가운 악’을 바라보라!육식의 종말을 지나 맞이할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소고기를 판매하는 슈퍼마켓 주인은 사료 재배로 땅을 빼앗긴 수백만 가족들의 슬픔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햄버거를 먹는 십 대들은 패티를 만들기 위해 광활한 열대우림이 불태워진 사실을 모를 것이다. 포장된 스테이크를 사는 소비자들은 최신식 도축장에서 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놓쳤기에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버린 것일까?자본주의와 실용주의라는 틀에 깊이 매몰된 현대 문명에서는 이성적, 시장 효율적, 실용적이라는 그럴듯한 단어 아래 악이 자행된다. 이런 계산은 구호 활동을 물질적 이익으로, 번식을 생산량으로, 존재의 풍요를 순익 창출을 위한 기준으로 바꿨다. 이런 개념이 바로 소의 천부적인 가치를 박탈한 주범이자 현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가운 악’이다.교묘하게 움직이는 이런 악은 환경과 동물은 물론이고 인류의 존속까지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구조적인 문제 뒤에 숨어 세상을 좀먹는 차가운 악과 마주해야 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선택은 그런 시장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육식의 종말’은 세상이 끝나는 일이 아니다. 자연이 되살아나고, 세상의 균형이 맞춰지며, 다시 한번 자연의 속에 인간이 제 자리를 찾는 일이다. 육식을 그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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