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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7
1부 이 그늘진 땅에 민중가요를 부르면서 엄지발가락부터 기를 모아요 13 최도은 구술 / 김솔이, 윤명주 기록 그냥 사는데 노래가 나오기도, 부르게 되기도 하듯 43 김원중 구술 / 노보경, 이영미 기록 ‘노래만큼 좋은 세상’ 그 너머의 이야기 73 민정연 구술 / 김미주, 김희연 기록 73 2부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세상의 모서리에서 105 박인 구술 / 김무진, 서혜림 기록 각자의 세상이, 각자의 우주가 서로 만나서 145 한열음 구술 / 변지은 기록 3부 움츠린 어깨들 다 펴겠네 여기를 거쳐 간 학생들이 족히 300명은 넘을 거야 171 정경애 구술 / 박열음 기록 나는 웨노웨이자 강선우입니다 203 웨노웨 흐닌 쏘(강선우) 구술 / 송유림, 윤상연 기록 안산 박씨 하비불 이야기 229 박지환(하비불) 구술 / 류정화 기록 우리 알럼 269 자한길 알럼 구술 / 김은하, 김정희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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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래할 때 발끝부터 기를 잡아 놓고 불러요. 몸이 북이라고 생각하죠. 발끝에 힘을 딱 줘요. 그 힘을 세게 주면 안 돼요. 아이 낳은 분들은 알 거예요. 아무리 힘을 줘도 아이가 안 나오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에 몸이 녹초가 되면서 힘이 쫙.(웃음) 마지막에는 힘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기운이 통하는 거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진흙처럼 그 기운을 받아서 위로 소리를 토해 낸다고 생각하면서 불러요. 저는 생각보다 큰 무대에 선 적이 별로 없어요. 그냥 길바닥 무대. 나의 작은 노동이 저분들에게 용기가 된다면 감사한 거죠. 대다수는 민중가요를 모르잖아요. 모르지만 투쟁을 하는 거고, 투쟁하면서 “흩어지면 죽는다”(〈파업가〉) 하나 배우고. 또 내가 〈불나비〉 부르면 더 힘이 난다는데, 내가 가진 재주가 쓰임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느냐고 묻는데,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분위기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 노래가 나를 끌고 가는 경우도 많아요. 나는 〈바위섬〉을 불렀기에 광주 얘기를 더 많이 해야 했고, 〈직녀에게〉를 불렀기에 통일 얘기를 더 많이 해야 했어요. 처음부터 그 노래 속에 담긴 생각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부른 건 아니에요. ‘이건 옳은 것 같다.’ 그냥 그런 마음이 들어서 불렀던 거죠. 그런데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생각이 더 정리되고 깊어져요. 그렇게 노래가 나를 이끌고 간 경우가 많았던 거예요.” --- 본문 중에서 “젊은 세대가 더는 민중가요를 부르지 않고, 우리도 사라지는 순간이 올지 몰라요. 그래서 언젠가는 기억이나 기록으로만 남는 순간이 오겠죠. 민중가요나 노동가요로 호명되지 않더라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소리를 담은 음악은 젊은이들이 할 거예요. 우리 세대가 경험한 방식의 운동이 아니고, 우리 세대가 세상을 보면서 만들었던 노래의 형태가 아닐 뿐, 젊은이들은 자기 시대에 대해 자기 식대로 책임질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 본문 중에서 “내가 샤먼이고 게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세상의 모서리에 웅크리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데서 살아가기 위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봐요. 누구를 위해 기도한다는 건 그런 거예요.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열심히 땅을 싹 갈아. 그다음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그리고 인테리어를 해. 이제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할 때 심취하다 보면 헛기도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 다시 의심해서 하고 또 하고. 믿는 거죠. 그 사람이 나를 믿고 선택했으니까, 나도 그 사람을 믿고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은 어떤 신을 떠나서 인간을 믿는 거죠.“ --- 본문 중에서 “한번은 주말에 나가서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마침 옆 팀 팀장님도 나왔는데 본인 법카로 점심 사 준다고 해서 같이 나갔어요. 회사에서는 제 사생활이 비밀에 부쳐 있었는데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열음아, 교회만 다니지 말고 이제 남자 좀 만나 봐.” 그때 저는 이미 동성 애인을 2, 3년 정도 만나고 있었어요. 퀴어 차별에 대해 지금은 이른바 ‘사회적 합의’가 안 됐잖아요. “퀴어를 혐오하면 안 돼요.”라는 말을 시민단체가 아닌 어떤 곳에서도 해 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국가정책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다양한 존재 자체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인식을 개선해 가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죠.” --- 본문 중에서 “눈 오는 날 서울역에 내려서 막내를 포대기로 싸 업고 가는데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거야. 순천은 눈이 와도 그렇게 많이 안 오잖아. 그렇게 많은 눈은 처음 봤지. 1987년에 하숙집을 시작해 여기를 거쳐 간 학생들이 족히 300명은 넘을 거야. 노량진역 건너편 대성학원 앞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는데 거기에 스티커를 붙였지, 명함처럼. 긴말 안 하고 ‘남학생 하숙’이라고만 쓰고 집 전화 적고, ‘전라도’ 딱 세 글자 써 놓으면 전화가 와. 다른 지역 엄마들이 더 좋아했어. 전라도 엄마들이 음식 잘한다고.” --- 본문 중에서 “저는 일어나자마자 미얀마 뉴스부터 보는데 갑자기 페이스북에 뉴스가 뜬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21세기에 쿠데타라니! 정말인가 싶었는데 다들 연락도 안 되고 미얀마 뉴스가 계속 나오고 난리가 났어요.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난생처음이잖아요. 그래도 미얀마 여성 세 명이랑 신촌에서 만나 기자회견 계획을 짰어요. 진짜 그냥 빨려 들어간 것 같아요. 그렇게 쭉쭉쭉 해 온 거예요. 쿠데타 이후에 활동을 끊어 본 적이 없어요. 그 시간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생각이 안 나요.” --- 본문 중에서 “한국에 온 지는 30년 정도 됐어요. 한국에서 외환 위기를 겪었어요. 처음 들어왔을 때가 서른세 살이었어요. 저는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해요. 용접하는 거랑 유압 기계 다루고, 로봇 프로그래밍하는 기계 고치는 일. 회사에 직원이 사무직 포함해서 135명 정도. 그중 이주 노동자는 17명 돼요. 저도 외국인이지만 서류상으로는 한국인이죠. 회사 정년이 2027년 12월이에요. 이제 100세, 120세 시대잖아요. 퇴직하고 나서 먹고살기 위해 나는 버스 운전면허 따 놓으려고 해요. 왜 하고 싶냐면 내가 경기도 안산은 어디든지 길 잘 알아요. 내비게이션도 잘되어 있고 5개 국어도 할 줄 아니까. 내가 버스 기사 하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본문 중에서 “갑자기 그 느낌이 들었어요. 회식에 내가 샤워하고 가든, 옷 바꿔 입고 가든 나는 여기서 외국인 노동자다. 공장에서 입던 거 대충 입고 샤워도 안 하고 가는 거예요. 같이 술 마시고 그 공장 사람들만의 사는 방식으로 그렇게 사는 거예요. 나는 한국에 돈 벌러 왔고, 공장에서 일하니까 (그러면 이제 공장에서) 욕도 먹어야 한다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냥 받아들이는 거 아니고, 엄청나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만약 그때 20대에 만난 친구들 없었으면 나는 대한민국 사람 자체가 다 이런가 보다 했을 거예요. 한국에 살면서 원래 내 모습은 많이 잃어버렸지만, 그 친구들 없었으면 옛날 나한테 욕한 공장 아저씨처럼 맨날 욕하고 술 마시고, 계속 그렇게 살았을 거예요. 문화 활동이나 이것저것도 다 포기했을 거고요.”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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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듣는 책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글을 모두 읽고 나면, 아니, 듣고 나면 서로 시작되는 곳은 달랐던 물줄기들이 저마다의 굽이굽이를 거쳐 어디선가 만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 상상 속에서 가수 최도은이 부른 〈불나비〉가 웨노웨 흐닌 쏘의 미얀마 민주화 활동에 힘을 북돋운다. 방글라데시를 떠나 정착한 한국에서 ‘안산 박씨’의 시조가 된 박지환(하비불)이 어쩌면 정년퇴직 이후 시내버스를 몰며 누빌 안산시 도로 끝에, ‘아시안 하이웨이’가 대륙까지 이어지길 바라며 노래하는 가수 김원중의 길이 이어진다. 무대 뒤에서 그 무대를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애쓰는 ‘꽃다지 기획자’ 민정연의 시간들과 세상의 모서리에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게이 무속인 박인의 인생이 마주한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걸음을 멈추지 않는 퀴어 여행자 한열음과 우리가 우리로 있을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 가는 ‘이주민 문화 행사 기획자’ 자한길 알럼의 꿈이 포개진다. 그리고 정경애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이 모두가 모여 따뜻한 한 끼 식사를 나누며 하루를 마친다. 그 어딘가에 나도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 낸 방식이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리의 노래’ 이 책의 주인공들은 민중가요로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최도은, 김원중, 민정연), 자기 이름과 삶의 방식을 지키며 살아온 성소수자들(박인, 한열음), 고향을 떠나 낯선 땅과 일터에서 삶을 일구어 온 사람들(정경애, 웨노웨 흐닌 쏘, 박지환, 자한길 알럼)이다. 이들의 삶은 저마다 다르지만, 하나하나의 생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시대의 상처와 개인의 고단함,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은 마음이 함께 놓여 있다. 백창우 작곡가의 노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에서 이 책의 제목과 아홉 편의 이야기를 묶은 각 부의 제목(1부 ‘이 그늘진 땅에’, 2부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3부 ‘움츠린 어깨들 다 펴겠네’)을 따왔다. 이 책에서 말하는 ‘노래’는 비단 무대 위의 노래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끝내 살아 낸 방식이자 누군가에게 닿고자 했던 절박함 모두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리의 노래’라는 의미를 전하고자 했다. 이제 민중가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2024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이어진 탄핵 촉구 집회에는 촛불 대신 응원봉이 등장했고, 오랫동안 거리를 수놓은 민중가요 대신 〈다시 만난 세계〉와 〈아파트〉 같은 대중가요가 널리 불렸다. 달라진 풍경, 변화된 세상 속에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만들어 왔던 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민중가요는 어떤 의미일까? “만발했던 꽃이 지고 모두 열매를 맺는 게 아니에요. 꽃들 중 일부만 열매를 맺어요. 그래도 결국 인류 역사를 놓고 보면 한 발 나아간 거예요. … 꽃은 피고 또 져요. 폈으니까 저렇게 지겠죠.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음 해엔 한 뼘 더 자라 있는 거예요. 그러니 꽃이 진다고 끝난 게 아니죠”(최도은). “나는 〈바위섬〉을 불렀기에 광주 얘기를 더 많이 해야 했고, 〈직녀에게〉를 불렀기에 통일 얘기를 더 많이 해야 했어요. 처음부터 그 노래 속에 담긴 생각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부른 건 아니에요. ‘이건 옳은 것 같다.’ 그냥 그런 마음이 들어서 불렀던 거죠. 그런데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생각이 더 정리되고 깊어져요”(김원중). “민중가요나 노동가요로 호명되지 않더라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소리를 담은 음악은 젊은이들이 할 거예요. 우리 세대가 경험한 방식의 운동이 아니고, 우리 세대가 세상을 보면서 만들었던 노래의 형태가 아닐 뿐, 젊은이들은 자기 시대에 대해 자기 식대로 책임질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민정연). 세상의 모서리에서 당당하게 살기 퀴어 직장인 한열음은 ‘바이’(바이섹슈얼, 양성애자)이다. “왜 여자를 만났다가 남자를 만나고 배신을 해?”라는 바이 혐오적인 말을 들을 만큼 성소수자 사이에서조차 차별당하는 그는, 오히려 그래서 모든 이가 자신을 숨기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을, 차별금지법이 있는 사회를, 동성 부부도 사규에 규정된 결혼 휴가를 누리는 회사를 꿈꾼다. 박인은 게이이자 무속인이다. 그 이중의 정체성은 그로 하여금 때때로 ‘세상의 모서리’에 있다고 여기게 하지만, 덕분에 그는 더 많은 이에게 공감하며 위로의 말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상한’ 것은 이들의 존재를 포용하지 않는 우리 사회라는 것, 그리고 ‘모서리’가 없으면 선과 선은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주하는 삶이 정주하는 삶에게 1990년대 중·후반 한국으로 와 3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이주 배경 주민 1세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방글라데시를 떠나 ‘하필’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 한국에서 일하기 시작한 박지환(하비불)은 어느새 2027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100세 시대’는 한국의 선주민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그는 거리 구석구석 손바닥 보듯 잘 아는 삶의 터전 안산시에서 시내버스를 몰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두 번째 인생을 꿈꾸고 있다. 자한길 알럼은 고향 방글라데시에서 10대 시절 연극, 독서 토론에 심취했고 마크 트웨인의 책을 즐겨 읽었다. 정치학과 교수를 꿈꾸던 대학원생은 가정 형편이 기울자 1997년 한국에 와 가구 공장에서 일했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과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체념하며 꿈을 잃어 가던 그는 한국인 문화 활동가들과 어울리며 새롭게 만난 꿈을 지금껏 일구어 왔다. 이 두 사람보다 늦게, 2009년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입국해 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에 진학한 웨노웨 흐닌 쏘(강선우)의 삶은 2021년 고국인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크게 달라졌다. 엄마이자 지식 노동자였고, 이제는 민주화 운동 활동가이기도 한 그의 고민을 들여다보며 이주 배경 주민의 다양한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이주의 삶’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면, 시간을 과거로 돌려 고향을 떠나 서울행 기차를 타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 보면 어떨까?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세 아이와 함께 전라남도 순천에서 서울 노량진으로 올라와, 1987년부터 하숙집을 운영하며 30년을 하루같이 열네 명의 삼시 세끼를 차린 정경애의 인생은 우리도 이주민임을, 그리고 이주민인 우리에게 찾아온 이주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그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 준다. 타인의 삶을 듣는 이유 『우리의 노래가』는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이 2025년에 펴낸 『우리들의 드라마』에 이은 두 번째 구술생애사 책이다. 『우리들의 드라마』가 가까이 있으면서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삶들을 다시 마주하는 기록이었다면, 이 책 『우리의 노래가』는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왔지만 충분히 듣지 못한 동시대인의 목소리들을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오래 울려 보내길 바라며 기획되었다. 구술생애사는 한 사람의 삶 앞에 오래 머물며, 그가 살아 낸 시간의 무게를 함께 더듬으면서 비로소 만들어진다. 가난과 차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시간, 부당함 앞에서 끝내 물러서지 않았던 마음,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었지만 다시 살아가기로 한 다짐을 듣는 일이다. 그렇게 조심스럽고 끈질긴 시간이 쌓일 때, 권력자와 승자의 기록 뒤에 가려져 있던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얼굴도 비로소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책을 노회찬 8주기에 헌정하며 출간한 이유이기도 하다. 화려한 무대의 중심이 아니라 그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 큰 목소리가 아니라 잘 들리지 않아서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목소리들. 이 책에 담긴 아홉 편의 각양각색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의 울림으로 번져 간다. 살았다는 것, 버텼다는 것, 사랑했다는 것, 잃고도 다시 걸었다는 것, 자기 몫의 고통을 넘어 누군가의 곁에 서려 했다는 것. 그 울림이 읽는 이의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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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서리에서 온몸으로 버텨 낸 아홉 편의 삶이 그 어떤 블록버스터보다 극적이고 눈물겹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햇볕이 되어 주는 이 기적 같은 노래들이, 보다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울려 퍼지길 꿈꾸며 응원합니다. - 장항준 (각본가, 감독,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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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의 작업들은 이제 믿고 읽는다. 단단하고 다채로우면서도 따듯하다. 주인공에만 치중하지 않고 기록자의 후기까지 꼼꼼하게 담아, 무릎과 무릎이 부딪치고 가슴과 가슴이 녹아드는 과정을 되짚게 한다. 주인공과 기록자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정도다.
노래꾼들, 성소수자들, 하숙집 주인, 이 땅에 사는 아시아인들의 생애가 차례차례 담겼다. 고통을 거칠게 파고들 때는 땀범벅에 숨이 막히다가, 해결할 조짐이 보일 때는 저절로 목부터 트인다. 얼쑤. 드디어 함께 발 구르며 노래할 순간이다. - 김탁환 (소설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