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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존재의 깊이에 닿는 대화를 꿈꾸며 05 1부 가위 24 계단 28 고궁 33 고글 38 교과서 42 구루프 45 귀도리 52 나무 펜스 60 노란 리본 63 다이어리 67 단추 70 드론 76 등산 스틱 80 라디오 83 마우스 87 만년필 88 2부 목욕탕의 탕 96 무대 조명 100 묵주 103 바둑알 106 박스 109 방제복 112 밴드 115 베개 118 벤치 121 비누 125 비자 128 빨대 134 사다리 139 센서 143 손톱깎이 146 숟가락 149 3부 스쿨버스 154 스툴 160 스피커 163 실타래 167 쓰레기통 170 아파트 173 액자 177 에어컨 180 에코백 183 열쇠고리 186 인형뽑기 기계 189 정수기 193 조리 199 좌변기 204 주유기 207 지갑 212 4부 참빗 216 책 219 철조망 223 칫솔 226 코인 230 콘센트 235 타일 243 텀블러 246 트렁크 252 티백 256 파티션 259 포스기 266 향 269 헤어드라이어 272 형광등 275 화분 278 확성기 281 Epilogue ‘시선’으로 바뀌는 삶과 책의 새로운 운명에 관하여 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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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낡은 사물에서 빛나는 비유를 창조하는 시인처럼 가장 익숙한 것으로부터 낯선 질문을 발명할 수 있다면, 이는 얼마나 흥미진진한 지적 여행이 될 것인가. 내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독자들도 이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주변의 사물들은 외양 그대로의 것이 아니라 실은 코끼리를 삼킨 (숨기고 있는) 어떤 것들임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면 참 좋겠다. 그때 당신은 이미 어린 왕자가 되어 있는 ‘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 「Prologue 존재의 깊이에 닿는 대화를 꿈꾸며」 중에서 사건은 우연이지만, 그와 달리 필연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은 그것이 결코 사고로 가두어질수 없음을 드러내는 증상이다. 사건은 현재 시각에 발생했지만 그 속에는 과거의 원인과 미래의 계기들이 모여 있다. 사건은 시간들이 응집된 큐브다. 사건은 그러므로 과거를 살피게 하고 미래를 기획하게도 한다. ‘지금 여기’에서 발생했으나, 사건은 그 자신을 역사의 화석으로 유물화하지 않는 불온한 에너지를 품고 있으므로 끝나지 않는 현재적 시간에 해당한다. --- 「노란 리본」 중에서 단추의 시간은 지퍼의 시간과 달리 손의 ‘머뭇거림’을 포함한다. 단추는 형상만큼이나 매뉴얼도, 그리고 매뉴얼에 따른 시간도 아날로그적이다. 손과 옷의 개별적 지점들이 머뭇거리며 만나는 일, 즉 여닫는 도구로서 가지는 목적의 즉각적 실현이 저지되는 유예 시간을 태생적으로 내포한 사물이 바로 단추다. 그러나 이러한 유예 시간,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겪으면서 비로소 인간의 시간이 생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인간의 시간은 ‘경험’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것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 「단추」 중에서 숨을 통해 낙하 법칙을 거스르는 운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빨대는 생명 현상의 메타포처럼 보인다. 아무리 크고 무거운 돌들이라도 흐르는 강물에 결국은 휩쓸려 ‘아래로’ 떠내려간다. 그런데 큰 강줄기와 격류를 거슬러오르는 것이 있으니, 표면으로는 미약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펄떡이는 물고기들이다. 한마디로 무생명의 특징은 주변 환경의 흐름에 내맡겨져 떠내려간다는 것이고, 생명의 특징은 그런 환경에서도 거슬러오른다는 것이다. --- 「빨대」 중에서 모든 죽음은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세계에 구멍을 낸다. ‘없음’은 ‘있음’을 드러내고, 존재는 부재(不在)를 통해 임재한다. (…) ‘향’은 땅과 하늘, 이승과 저승을 잇는 탁월한 제의적 나무다. 이 가느다란 녹색 나무는 이승의 현 시간에 다른 시간을 열고 이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구획한다. 나무는 작은 불씨와 더불어 머리를 태우고 있지만 타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연기로 화해 다른 세계로 올라가며, 고유의 냄새를 통해 여기 남은 이들의 몸에 배어 있다. --- 「향」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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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는 귀는 심장을 닮았다
존재했으나 망각된 기억, 어둠 속에 묻혀 떠오르지 않는 소리를 길어올리며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의 사물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차이’가 사라지는 시점을 ‘어둠’에 빗대어 말한다. 보이지 않는 어둠을 인공지능은 어떻게 해석할까. 인간의 특이성은 보이지 않는 어둠을 ‘무’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존재’의 원천으로 생각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존재의 핵심은 가려진 부분을 동반해야 나타난다고 말하며 그러한 인간 특성에서 나타난 진리, 예술, 신을 아주 생활적인 곳에서 탐색한다(276~277쪽). 예컨대, 저음 전용 스피커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저음역대의 소리를 잘 듣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낮은 소리, 지워진 소리, 잘 안 들리는 소리를 듣고 복원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가 좋은 스피커의 관건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흡사 문학에서 시인의 입-손에 의해 ‘시적인 말’이 나타나는 순간과도 비슷하다. 시적인 말은 의식의 표층에 떠 있는 명료한 소리, 큰 소리가 아니라 스스로도 분간하지 못하는 소리나 내면의 미묘한 파장, 억압되어 의식의 해저에 갇혀 있는 소리들을 시인이 길어올린 것이다. 이와 같은 사유를 통해 저자는 자기 내부의 말들에서 타자성을 찾는다. 잘 들어야 하는 것 중에는 때로 내 안 깊숙이 스민 말들도 있다. 내가 주체가 되어 통제할 수 있거나 자기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나의 타자에게 진실이 있다. 타자를 존중하는 것은 낮은 자리에서 나오는 나직한 소리에 귀기울이는 일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164~166쪽). 또한 저자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직접 감각하는 몸으로 옮겨간다. 그는 문득 질문한다. 우리 몸의 ‘중심’은 어디일까. 혹시 중심은 고정적인 특정 자리가 아니라 밴드라는 작은 사물을 붙여야 하는 그 상황에서 발생한 상처의 자리가 아닐까. 상처가 난 작은 자리에 몸 전체의 신경이 집중되며 육체와 정신도 꼼짝없이 그 자리에 구속된다. 그러므로 상처에 붙인 밴드란 몸의 ‘중심’을 긴급히 돌보는 사물이 된다. 그렇다면 개인을 넘어 사회라는 공동체에서도 중심을 찾을 수 있겠다. 저자는 지금 이 시각 아픔을 호소하는 곳이 있다면, 그런 존재가 있다면 거기가 바로 사회의 중심이요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자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자리를 돌보는 것은 곧 사회라는 신체 전체를 돌보는 일. 사회 속 아픔을 호소하는 작은 자리에 저자는 “어릴 적 가장 고마웠던” 사물인 밴드를 붙여주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함께하고자 한다(116~117쪽). 『시선의 철학』 표지에는 김수강 작가의 작품 〈Marble 3〉이 함께했다. 『순간의 철학』 표지 작품 〈Teabag 1〉, 『사물의 철학』 표지 작품 〈Bojagi 009〉에 이어지며 시리즈 세 권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 ‘검 바이크로메이트’라 불리는 19세기 프린트 기법을 사용한 사진으로, 손으로 유재를 만지고 덜어내고 또 쌓으며 색을 입혀나가는 ‘몸’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의 구슬 속 선연한 빛깔의 곡선은 마치 세상 깊숙한 곳에서 일렁이는 내면의 미묘한 파장, 경계 없이 무한히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물과 관계 맺고 사물의 깊이에 닿으며 삶의 연속성을 찾아나가는 이 책의 문으로 더없이 맞춤한 만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