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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사물에 대하여
Chapter 1 지금은 새로운 생각을 시작하기 좋은 시간 가로등 / 거울 / 검은 리본 / 경첩 / 계산기 / 고가도로 / 골대 / 과도 / 구둣주걱 / 내비게이션 / 냉장고 / 넥타이 / 달력 / 담배 / 대야 / 도로 표지판 / 도마 / 레고 / 리어카 / 립스틱 Chapter 2 평범한 물건은 어떻게 철학을 선물하는가 마스크 / 마이크 / 말하는 로봇 / 망원렌즈 / 맨홀 / 면도기 / 명함 / 문 / 물티슈 / 반지 / 배달통 / 백팩 / 버스 / 벨 / 벽 / 보자기 / 복권 / 부채 / 블랙박스 Chapter 3 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사물은 놀랍다 생수 / 선글라스 / 셀카봉 / 손수건 / 쇼핑 카트 / 스냅백 / 스마트폰 케이스 / 스카프 / 스케이트 / 스탠드 / 스펀지 / 시스루 / 신호등 / 야구공 / 양말 / 양산 / 연등 / 연필 / 우산 / 원탁 / 의자 / 이어폰 / 인터넷 Chapter 4 사事+물物 : 마음의 사건, 너머의 쓸모 자 / 자동문 / 자동차 전조등 / 자명종 / 자전거 / 장갑 / 장화 / 젓가락 / 주사위 / 지퍼 / 축구공 / 칠판 / 카드 / 카메라 / 크로노그래프 시계 / 크리스마스트리 / 타이어 / 테이크아웃 커피잔 / 텐트 / 트렌치코트 / 팝콘 / 포스트잇 / 포클레인 / 후추통 Epilogue 작은 것들에 관한 글쓰기─개정판에 부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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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식에서 교황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가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자가 되기 위해 그는 가장 ‘낮은 자리’로 임하여 그 자리를 섬기는 자가 되겠다고 했다. 예수의 세족식을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도 이 순간이다. 그는 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었을까. 발이 신체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 중 세족식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한 이라고 말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둠이 가득한 지상에 신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떤 방식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서 가로등을 본다. 언뜻 거기에서 신의 실루엣을 본 듯도 하다.
---「가로등」중에서 반지의 계약적 성격이 손가락을 두르고 있는 구속성에서 나온다고도 하지만 이건 계약의 의미에 대한 오해가 아닐까. 구속의 강제성으로는 진정한 약속의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두 존재가 진심으로 만나는 일이다. 그것은 강제도 구속도 어설픈 타협도 아니며, 서로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데서 나오는 힘이다. 반지의 고리 형상은 두 존재의 완강한 자기주장보다는 공동의 비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반지는 누구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건 커플링이다. 이미 고리 형상이 두 존재의 만남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넣지 않아도 이미 뜨겁다. 둥근 입처럼 생긴 원환은 비어 있는 공간을 통해 뜨거운 침묵으로 상호긍정의 만남을 말한다. 반드시 연인이 아니어도 반지는 만남과 약속의 의미를 그 형상 자체로 전달한다. 주장들이 첨예하게 부딪히며 서로를 상처내는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상호 긍정에 도달할 수 있을까. ---「반지」중에서 이 불빛의 특징은 이것이 어둠을 ‘제거’하는 빛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사정을 말하자면 거꾸로다. 스탠드의 불빛은 어둠에게 본래 형상을 돌려준다. 스탠드를 켜는 순간 주변은 더 어두워진다. 하지만 이것은 암흑이 아니다. 평균치로 방안에 퍼져 있던, 그래서 보이지 않던 어둠이 스탠드 주위로 모여 또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은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어둠이 여기 존재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식한다. 어둠은 부드럽고 은밀하며 깊게 체험된다. 어둠은 지각될 뿐만 아니라 우리를 휩싸면서 우리 몸을 만진다. 이 체험은 우주의 어둠이 일소해야 할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것은 선도 악도 아니며, 다만 그저 있을 뿐이다. 현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고 함(因是)이다. 스탠드에서 나오는 최소한의 적절한 빛은 밝음과 어둠, 만상에 대한 인간들의 선입견과 이분법을 은은하게 드러내고 가로지른다. ---「스탠드」중에서 종으로 보면 잡종이고 책으로 치자면 고유 저자의 죽음이다. 최초의 기원이 사후 다른 것의 개입에 의해 뒤섞였다는 점에서는 ‘오염된’ 기록이다. 개인이 아니라 다중적 세계를 암시하며, 정주가 아니라 유목하는 세계를 암시한다. 그렇다면 포스트잇을 현대의 극단, 현대 이후 세계의 특성을 반영하는 사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계몽주의자들의 백과사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집단 지성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출현을 포스트잇의 웹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고유한 권위나 집필자 개인의 지적 능력, 기록된 지식의 영구불변성에 기대지 않고 집단적이며 어디에서나 접속하여 가필할 수 있다. 지식의 유통은 훨씬 더 자유롭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퍼져나간다. ---「포스트잇」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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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짧은 소설 「알레프」는 아주 작고 신비한 구슬에 관한 이야기다. 그 구슬에는 세계의 모든 광경이 겹치지도 않고 축소되지도 않은 채 깃들어 있다. 하나이면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 구슬은 한 각도에서 세계의 모든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만화경이다. 신적인 눈의 비유일 수도, 한 떨기 꽃에서 우주를 본다는 불교의 화엄(華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비평적 글쓰기로서 ‘시적인 것’에 관해 늘 생각하며 사는 나에게 그 구슬은 어떤 시적 순간에 관한 이미지이기도 했다. 비평적 태도에는 논리가 결부될 수밖에 없지만, 지성의 논리로는 닿을 수 없는 사물의 신비와 조우할 수 없다면 비평은 메마른 합리주의에 국한되고 만다. 그것은 시뿐만 아니라 사물에서도 마찬가지다. 벤야민이 보여주었던 태도처럼 비평가에게 시의 신비와 사물의 신비는 구별되지 않는다.
_본문 중에서 사물의 ‘철학’이라 했으나 어렵고 딱딱한 철학 용어는 피하고 친숙한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는 데 주안을 두었다. 서문에서 “이 사물들과의 조우가 일상 속에서 다른 시간으로 통하는 ‘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밝힌 바대로, 저자에게 사물은 독자로 하여금 철학을 ‘주입’하는 일방향의 문이 아니라, 그로부터 촉발되고 자유롭게 횡단케 하는 ‘열린 문’인 까닭이다. 요컨대 ‘철학으로 풀어낸 사물’이 아니라 ‘사물을 철학하게 하는’ 글인 셈이다. 다양한 사물에서 출발해 동서양의 사상가들을 경유하고 폭넓은 교양을 가로지르는 그의 글쓰기에는 거침이 없다. 이를테면 문에 달린 조그만 경첩에서 시인 이상의 작품을 떠올리고, 장자가 진리라 여긴 ‘도의 지도리(道樞)’를 연상하는 식이다. 또 물티슈에서 독일 나치가 내세웠던 ‘오염’과 ‘순결’의 논리로 이어지며 현대 한국의 ‘백색 신화’를 겨냥하거나, 보자기에서 복(福)의 염원을 발견하고 리더가 갖추어야 할 진정한 카리스마의 의미를 되짚기도 한다. 추천사를 쓴 신형철 평론가의 표현대로, “고만고만한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리둥절한 자극을” 주는 글들이다. 이 과감한 도약은 그 뜀의 너비만큼 통찰의 여지를, 약동하는 질문의 운동장을 만들어낸다. 이번 책에서는 총 4부에 걸쳐 사물의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정렬했다. 순서대로 따라 읽어도 좋고 집히는 대로 발췌하여 읽어도 좋으리라는 믿음이다. 문득 내 곁의 사물이 낯설게 보이는 한순간, 혹은 특별함 한 조각 없이 관성으로 굴러가는 어느 날, 사전처럼 펼쳐 그 사물의 의미를 저자와 토론하듯 읽어보아도 좋겠다. 때로는 도발적이고 이따금 문제적인 이 발상에는 자유의 높이와 사고의 깊이가 한데 있으므로. 카프카에게 그러했듯, 이 책 『사물의 철학』 또한 일상을 향한 우리의 얼어붙은 인식을 단번에 깨고 열어내는 ‘도끼’가 되어줄 것이다. 『사물의 철학』 개정판의 표지에는 김수강 작가의 작품 〈Bojagi 009〉가 함께했다. 『순간의 철학』의 표지에 실린 작품 〈Teabag 1〉에 이어지며 그 기획대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검 바이크로메이트’라 불리는 19세기 프린트 기법을 사용한 사진이다. 손으로 유재를 만지고 덜어내고 또 쌓으며 색을 입혀나가는 ‘몸’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작품임에, ‘사물’로 들어가는 이 책의 문으로 더없이 맞춤한 만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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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등단해서 오랜 시간 함돈균 형의 글을 봐왔다. 나는 어떤 시에 대해 그가 먼저 쓴 글을 본 뒤 내 글을 포기한 적이 있다. 더는 보탤 말이 없을 만큼 내 생각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일이 잦지는 않다. 두 비평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둘이 언제나 같은 판단에 도달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나와 달리 판단할 때도 그 사실 자체가 내 판단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비평가 함돈균에게 깊은 우정을 느낀다. 한편 인간 함돈균에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거의 존경에 가깝다. 그가 말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경우를 본 적이 별로 없다. 그가 “이런 일이 필요해 보인다,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면, 곧 그 일을 하고 있는 그를 보게 된다. 그 일이라는 것은 대체로 옳고 어렵고 아름다운 일들이어서, 그가 먼저 저지르고 나면, 그 주위로 사람들이 모인다. 그만의 어떤 무뚝뚝한 열기는 따뜻해서 고맙기도 하고 데일까봐 두렵기도 한, 그런 것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펴내는 책은 뜻밖에도 『사물의 철학』이다. 김선우(2005), 박영택(2012), 장석주(2013), 권혁웅(2014), 로제 폴 드루아(2014) 등이 쓴 사물에 대한 책들과 나란히 꽂힐 만하다. 가끔 비평가는 자신이 ‘세계’라고 말할 때 그 어감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공허하다는 느낌에 짓눌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사물’들의 실감 속으로 하강하고 싶어진다. 이 책에서 그는 마치 처음인 듯 사물 하나하나를 다시 사용하면서 세계를 근원적으로 경험해보려 노력한다. 이런 책을 쓰는 데 응당 필요한 꼼꼼함과 기발함도 그는 갖고 있지만, 그보다 더 도드라지는 것은 과감함이며, 그것이 이 책의 개성을 이룬다. 이를테면 ‘배달통’의 무의식을 프로이트와, ‘백팩’의 효용을 니체와 궁리하는 대목, 혹은 물티슈에서 ‘나치즘’ 으로, ‘보자기’에서 ‘카리스마’로 휙 넘어가는 대목들이 그렇다. 이처럼 과감한 사유는 고만고만한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리둥절한 자극을 준다. 무뚝뚝하게 예리한, 그다운 책이다. - 신형철 (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