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추천사
PART 1. 완벽함이 아닌, 안전함으로 1. 나는 고개 숙인 워킹맘이다 2. 엄마라서 미안한 우리들 3. 퇴근 후 집으로 출근합니다 4. 경고음이 시작되면 돌봄은 멈춘다 5. 출근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매일 자란다 PART 2. 가정주부 대신 가정 돌봄 제공자 1. 콩콩팥팥의 저주 2. 미스터 가부장과 가부장 주니어 3. 쉬지 않고 울리는 사무실 알람 4. 어느 날, 지갑이 말했다 5. 자본주의 씨, 할 말이 있는데요 6. 제 직업은 가정 돌봄 제공자입니다 PART 3. 이만하면 충분한 선생님 1. 수업은 부업입니다만 2. 스물 다섯 개의 우주를 돌보는 지구인 한 명 3. 선생님도 워킹맘 4. 학교 가기 싫은 선생님 5. 회복의 시간 PART 4. 지속 가능한 홀로서기 1. 첫째 아이는 엄마 대신이야 2. 그만 불러! 3. 책임과 선택은 어디까지일까? 4. 굴레를 벗어던진 돌봄 5. 당신도 할 수 있어요 PART 5. 돌봄은 오가는 일이었다 1. 잠깐, 제가 엄마의 보호자라고요? 2. 외로움도 결제가 되나요? 3. 분노와 책임의 경계 그 어딘가 4. 미안함이 쌓아 만든 죄책감 5. 돌고 도는 돌봄 6. 세상을 돌보러 나간 엄마 PART 6. 엄마를 돌보다 1. 합쳐진 살림, 멀어진 마음 2. 놔줘요, 파킨슨씨 3. 엄마의 사냥 4. 고장난 전화기 5. 제발 시키는 대로 해, 엄마 6. 안녕하세요, 선생님 7. 에필로그 작가의 말 |
신은영의 다른 상품
주상희의 다른 상품
정현숙의 다른 상품
|
“우리야 당연히 계속 같이 일하고 싶지.”
육아휴직을 앞둔 면담 자리에서 머리 희끗한 대표가 말했다. 언뜻 나의 출산과 복직을 응원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그의 입에서 줄줄이 흘러나오는 경영상의 어려움은 그렇지 못했 다. 결국 대표 역시 슬그머니 자진 퇴사를 권하고 있었다. --- 18p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었을 때, 당황해하던 아이가 귀여워 계속 물어본 적 있다. 엄마를 선택하면 뿌듯했고, 아빠를 택하면 서운했다. 그런 아이가 자라 내게 물었다. “엄마는 일하는 게 좋아, 우리랑 있는 게 좋아?” 일하는 엄마로 살아간다는 게 자녀 돌봄을 포기한 것이 아님에도, 아이의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 24p 9cm의 작은 사각형은 내가 있는 세계를 대변했다. 더 이상 “명함 하나 주시겠어요?”라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주부’였고, 내 이름으로 획득한 재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 69p 우스갯소리로 이제는 오히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보다 스미스 씨의 저녁을 차려준 어머니의 노동 가치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한다. 경제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그의 방을 청소하고, 빨래하고, 셀 수 없는 노동을 한 그의 어머니야말로 이 시대의 노동자였다. --- 81p “선생님,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선생님, 다음 시간은 뭐해요?” “선생님, 연필 깎아도 돼요?” “선생님, 원피스 리본 좀 묶어주세요.” 이것은 호의다. 아이들은 분명 나를 좋아한다. 그런데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 --- 93p 첫 아이의 나이와 내가 엄마가 된 나이는 같다. 아이가 세상에 첫울음을 터뜨린 그 순간, 나 역시 ‘엄마’라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출산과 동시에 내 삶의 중심추는 나에게서 아이에게로 급격히 이동했다. 일상의 모든 궤도가 변하자 나를 둘러싼 환경도,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도 송두리째 바뀌었다. --- 143p 엄마가 집으로 온 첫날, 문제가 해결됐다고 믿었다. 혼자 살지 않으니 갑자기 아프거나 쓰러져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딱히 해결된 건 없었다.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곧바로 마주하게 된 것은 엄마와 가족 간의 서로 다른 속도와 온도였다. --- 174p 합가 이후 엄마의 회복에 나의 지분이 크다고 믿었다. 엄마의 야식을 차단하고 식단을 관리해 당뇨약을 서서히 끊게 된 것도 내 ‘공’이라고 여겼다.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안락한 거주지를 마련해주었고 건강까지 챙기는 완벽한 딸이라는 생각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엄마가 회복되었다고 믿고 싶었던 착각이었을 뿐이다. 엄마의 우울은 조용히 일상 속에 숨어 있다가 문득문득 고개를 들고 있었다. --- 194p “내 집 놔두고 왜 너희 집에 와서 이 꼴을 당하는지 모르겠다.” 시장통에서 엄마 손을 놓치고 영영 엄마를 못 찾을까 봐 우는 서너 살의 꼬맹이처럼 서럽게 울어대는 엄마를 보며, 뭐가 엄마를 저렇게 서럽게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함께 살기 시작 한 지 고작 일주일째였다. 난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나도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 217p 그곳엔 함께 입소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혼자 거동이 가능했지만, 아내가 요양원에 들어가고 나면 자신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함께 입소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세기의 사랑’인 줄 알았는데, 돌봄의 현실은 그런 것이었다. 삶을 바쳐 돌봐야 하는 것, 나를 포기해야 가능한 것, 그것이 돌봄이었다. --- 225p |
|
“돌봄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돌보기로 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왜 이토록 버거운가. 아이를 키우고, 학생을 가르치고, 늙어가는 부모를 부양하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지쳐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지침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죄책감이 밀려온다. 더 아픈 사람이, 더 약한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죄책감의 정체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나에게 다정해도 괜찮아』는 여섯 명의 저자가 각자의 생애주기에서 겪은 돌봄의 현장을 정직하게 펼쳐 놓은 에세이다. 워킹맘과 전업주부, 초등학교 교사,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낀 40대, 사별 후 홀로 된 노모를 부양하는 딸,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는 사회복지사. 영유아에서 노년까지, 돌봄이 놓이는 모든 자리에 저자들이 서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특정 시기의 육아서도, 노인 돌봄 안내서도 아니다. 돌봄의 연속성 그 자체를 정면에서 다룬 책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깨닫게 된다. 돌봄은 어느 한 시기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모습만 바꾸어 되돌아오는 삶의 조건이라는 것을. 이 책이 여느 돌봄서와 다른 지점은 분명하다. 대개의 책들이 감정적 위로에 머물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서에 갇혀 있을 때, 이 책은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운다. 저자들은 개인의 경험을 날것으로 꺼내 보이는 동시에, 그 고통이 왜 발생하는지를 집요하게 되짚는다. “집에서 논다”는 한마디에 존재가 흩어지는 전업주부의 하루, 에너지 1퍼센트를 남겨 집으로 '출근'하는 교사, 부모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하는 자식의 밑바닥. 이 생생한 장면들 뒤에서 저자들은 가부장제와 재생산 노동, 얇아진 사회 안전망이라는 구조를 드러낸다. 돌봄 제공자의 소진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책임을 홀로 떠안긴 구조의 문제라는 것. 이 인식의 전환이야말로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단단한 위로다.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을 용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돌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희생이 아니다. 요양원에서 어르신을 돌보다 오히려 존재의 쓸모를 되찾는 어머니, 딸을 돌보다 딸에게 돌봄을 받게 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들 속에서, 저자들은 “누가 돌봄 제공자이고 누가 대상자인지 그 경계는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돌봄은 주고받으며 돌고 도는 순환이며, 그 순환이 멈추지 않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는 일이다. 빈 그릇으로는 아무것도 대접할 수 없듯, 소진된 사람은 누구도 지속적으로 돌볼 수 없다.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라, 돌봄을 지속하기 위한 책임 있는 태도인 것이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곁을 지키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여섯 통의 편지와 같다. 화려한 해결책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돌봄의 최전선에서 소진되어 가는 당신에게, 죄책감 없이 나를 돌볼 권리가 있다고 같이 보듬어준다. 책장을 덮을 때 독자가 받아 드는 것은 명쾌한 답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다. 우리는 이미 스스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