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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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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당선 소감_07
배치기_13
작가의 말_83
작가 인터뷰_87

저자 소개 1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예술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23년 제3회 넥서스 작가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벌룬업』, 청소년 장편소설 『젠젠다, 시간이 빨라지는 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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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7월 3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08*180*20mm
ISBN13
9791199386655

책 속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몸이 붕 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황청심환을 과다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일까. 내 셔츠 앞섬에 보이지 않는 고리가 달려 있고, 천장 조명 뒤에 숨은 누군가가 끌어당기고 있었다.
--- p.20

오직 시합, 즉 잘 뛰고, 부딪혔다가, 착지해 중심 잡는 일에만 집중하면 돼요.
--- p.27

나는 누리꾼 소년이 별것도 아닌 것에 화를 낸다고 생각했다. 컴활 2급 필기시험에 떨어진 것도 아니면서, 밥을 제때 먹지 못한 것도 아니면서. 너는 떨어져 봤거나, 가난해 본 적 있냐고 발음을 곱씹어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나 또한 별것도 아닌 것에 화내려는 게 우스웠으므로.
--- p.41

흰 수건이 내 앞에 떨어졌다. 기자 양반의 짓일 것이다. 심판은 내 패배를 받아들였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내 역할을 해낸 것 같아 기뻤다. 주인공 명현지 씨의 항해에 걸리적거렸지만 끝내 패배한 악당.
--- p.48

아이돌 지망생과 원피스 여자는 심판의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링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손을 맞잡았다. 그들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심판은 판결을 내야 한다고 뒤에서 소리쳤다.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문을 열자 빛이 가득한 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햇빛이 너울거렸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이 걸어간 세계는 지긋지긋한 이곳과는 다른 세계 같았다. 꿈과 희망이 가득한 곳. 나도 따라가면 닿을 수 있는 곳.
--- p.56

“데니스 봉 씨.”
“네.”
“부활시켜 드리겠습니다.”
“네?”
“당신은 사강에 진출했습니다.”
난 어이가 없어서 실소하고야 말았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하는 건지. 어쩌면 이 씬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황당무계한 생각도 들었다.
--- p.59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포기할까. 또 포기해?
“영우야.”
그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김치도 아니고 포기하지 마.”
--- p.64

“너 아직도 백수라며. 이번에 넣은 회사 십팔 군데에서 서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며. 자격증을 따거나 기술 같은 걸 배울 의지도 없다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때려치웠다며. 네 엄마가 우리 엄마한테 말했는데, 속이 다 터진다더라. 근데 네 눈치 보여서 네 앞에서는 말도 못 한대. 나 때문이라면 제발 잊고 정신 차려.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 그게 뭐야. 어쩌려고 그래. 응? 영우야. 알아들었니?”
“응?”
“살아 달라고. 봉영우!”
--- p.68

“데니스 봉 씨는 이번 경기도 이기고 우승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응원이 필요하겠죠. 여러분, 우리 저 한심하고 보잘것없는 청년을 위해 응원하는 건 어때요?”
--- p.70

구닥다리 컨테이너는 봉영우를 외치는 소리로 가득 찼다. 게임을 빨리 끝내야만 했다. 배가 아픈 건 둘째 치고 쪽팔렸다. 나는 나의 상대를 쳐다봤다. 누리꾼 소년인 a.k.a. 이스트 스프링은 스프링이 너덜너덜해진 것처럼 우울해 보였다. 소년이 슬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난 관객들에게 진정해 달라고 외쳤다.
“왜.”
기자 양반이 물었다.
“저 친구도 응원해 줘요. 나만 받는 건 너무 불리하잖아요. 쟤도 소중한 사람이라고요.”
--- p.71

나는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고무 발판에서 뛰어올랐다. 달나라의 토끼라도 만날 것처럼. 우리는 향했다. 댓글을 마음껏 달 수 있는 곳으로. 누구나 적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모두가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곳으로.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한동안 유영할 것이다. 아마도.
--- p.72

주최 측에서 수여한 금색 플라스틱 트로피에는 내 이름조차 각인되어 있지 않았다. ‘귀하의 우승을 축하합니다’, 라고만 적혀 있었다. 나는 점점 비루해졌다.

--- p.79

출판사 리뷰

이동현의 소설 〈배치기〉의 중심에는 '배치기 대회'가 있다. 참가자들이 서로 배를 부딪쳐 승패를 가리는 대회다. 참가자들은 사뭇 진지해 보이지만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경기장은 남루한 컨테이너며, 게임의 규칙은 허술하기만 하다. 우승의 대가도 보잘것없다. 어딘가 미심쩍은 이 ‘배치기 대회’를 접한 독자는 처음에는 어이없는 난센스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점차 깨닫게 된다. 소설 속 세계가 오늘날 우리가 참여하는 수많은 경쟁의 지극히 황당하고도 구체적인 상징과 은유라는 것을.

취업, 승진, 주식투자, 자격증과 스펙의 축적. 현대인들이 끊임없이 매달리는 경쟁은 모두 ‘노력과 그에 따르는 성취’라는 합리성에 기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연, 타인의 선택, 시대의 흐름에 의해 그 결과가 매우 쉽게 좌우되기도 한다. 〈배치기〉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희극적 장치와 판타지적 상상력으로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펼쳐낸다. 주인공은 경기에서 계속 승리해 결국 우승까지 하지만, 자신의 실력으로 제대로 이긴 경기는 단 한 번밖에 없다. 상대의 기권과 어이없는 어부지리가 이어졌을 뿐이다. 서사는 의도적으로 인과를 무력화한다. 능력은 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반복은 현대사회가 끊임없이 주입하는 능력주의 서사를 희극적으로 풍자한다.

소설의 결말에서 우승한 주인공은 이름도 새겨지지 않은 플라스틱 트로피만을 얻는다. 허망한 이 순간 주인공은 머릿속으로 장황하고 거창한 우승 소감을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단 한 문장만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다음은 당신 차례입니다." 이 문장은 승자의 선언이라기보다는, 마치 계주에서 바통을 넘기는 사람의 말에 가깝다. 삶이라는 경쟁은 끝나지 않고, 어쩌면 우리는 끊임 없이 이어지는 장면을 통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우승이 아니라 서로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일이다.

〈배치기〉는 승리의 소설이 아니다. 실패의 극복과 성공보다는 실패를 함께 견디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서로를 이겨야만 하는 경쟁의 세계 안에서조차 타인을 응원할 수 있다는 믿음, 승리보다 오래 지속되는 공동체에 대해 상상한다. 오늘날 우리가 궁금한 건 오로지 하나다. 어떻게 혼자 살아남을 것인가? 하지만 〈배치기〉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패배할 것인가? 이 기묘한 소설이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지 모른다. 경쟁 속에 있을지라도 서로를 향한 애정과 연민이 있다면 적어도 오래 기억에 남을 응원과 위로를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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