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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고리
양장
김연우
이스트엔드 202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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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당선 소감_07
K의 고리_11
작가의 말_75
작가 인터뷰_83

저자 소개 1

철학을 전공했다. 장르와 영역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지향한다. 경향신문 퀴어백일장, 십분발휘 짧은소설 공모전에 당선되었으며, 소설집 『지키고 싶은 마음의 단편』, 에세이 『내 몸이 기억하는 것』을 공저했다. 파도시집선 『020낭만』, 『021청춘』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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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29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08*180*20mm
ISBN13
9791199386648

책 속으로

K에게 높은 곳은 죽음을 리허설하는 장소였다. 두 발을 지면에 안전하게 디딘 채로 뛰어내리는 연습을 하는 곳. 눈을 감고 온몸의 뼈마디와 두개골이 산산이 조각나기 바로 직전까지 추락하는 순간의 감각을 간접 체험하는 곳. 눈을 뜨자마자 밀려드는 빛에 생의 찬란함과 죽음의 비가역성을 기어이 실감해 내는 곳.
--- p.15

K는 조금씩 깨달아 나갔다. 계산 실수로 더 받은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체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황색 신호에서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거나 취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아도 누군가를 쳐 죽이는 비극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K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면 세상 역시 아무렇지 않게 그대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어느새 K는 세상의 선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p.26

억겁 동안 어둠에 짓눌려 있다가 날카로운 곡괭이가 파고든 틈 사이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그 순간부터 현재까지, K는 줄곧 자신으로서 존재해 왔다. 오직 자신을 평가하는 인간의 기준만이 일기 예보와 매번 어긋나는 장마철 날씨처럼 변덕스러웠다. K에게 인간의 가치 기준이란 찰나 속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욕망의 고리에 불과했다.
--- p.32

유구한 세월 동안 K는 두 가지 불변의 진리를 깨달았다. 하나는 자신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욕망의 대상이라는 사실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표정은 몇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영혼의 일부가 일시적으로 빠져나간 듯한 표정이었는데, 목전 두 남자의 얼굴 역시 그랬다.
--- p.33

비록 추락을 전제로 하는 자유였지만, 자력으로는 단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는 세계에서 허공으로의 상승은 강렬하고도 압도적인 찰나였다.
--- p.34

K는 점막을 통과해서 모세 혈관으로 스며드는 순간이 가장 좋았다. 혈류를 타고 뇌까지 도달하면 그곳에는 K가 영원히 머물고 싶은 안락하고도 짜릿한 극장이 있었다. 대마초보다는 몽환적이고 코카인보다는 신사적이며 엑스터시보다는 매정하지만 펜타닐보다는 자비로운 약물. K는 자신을 그렇게 정의했다.
--- p.42

내리막길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케타민을 끊을 수가 없었다. 약을 할 때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 p.54

K는 알았다. 상승은 영원할 수 없다는 진리를.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K-hole 속에서 인간이 현실을 잊을 때 K는 현실을 되찾았고, 인간이 현실 속에서 비현실을 마주할 때 K는 비현실 속에서 현실을 체험했다. 자신에게 중독된 의식에 자신마저 중독된, 상생의 중독 구조였다. 그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뒤엉켜 구별이 불가능했다.
--- p.56

이번에도 세상은 자신을 내버려 둘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그것이야말로 자신만이 깨우친 세상의 은밀한 방정식이니까.
--- p.72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대출금과 할부금, 공과금과 카드 대금, 직업과 직장, 그리고 코인까지-지긋지긋한 현실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졌다. 가벼워지고 흘러가고 아득해지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로 잠겨 들었다.

--- p.74

출판사 리뷰

〈K의 고리〉는 동시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욕망의 메커니즘을 범죄스릴러 장르의 형식 안에 밀도 높게 압축한 작품이다. 코인 투자, 사채, 마약 같은 소재만 놓고 보면 이 소설은 얼핏 장르적 쾌감에 기댄 범죄 서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품이 끝내 도달하는 지점은 사건의 해결이나 인물의 몰락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어떻게 욕망에 종속되어 가는지를 추적하는, 존재론적 성격의 우화에 가깝다.

제목의 ‘K’는 소설 속 인간(김철수, Kim)이자 24K의 금이며 케타민(Ketamine)이다. 이 셋은 얼핏 서로 상관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욕망의 주체와 객체, 매개라는 점에서 연결된다. 김철수는 코인을 통해 계급 상승을 욕망하고, 금은 시대를 초월해 영원한 욕망의 대상으로 군림한다. 그리고 케타민은 인간의 비루한 현실을 지우고 비틀린 욕망을 환각으로 펼쳐낸다. 소설은 이 세 개의 ‘K’를 하나의 이야기 구조 안에 유기적으로 배치해 자본, 쾌락, 중독에 의해 작동되는 현대 사회의 욕망 체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있어 인상적인 점은 바로 비인간 시점의 도입이다. 2장 「24K」에서 금괴가, 3장 「KETAMINE」에서 케타민이 직접 화자가 되는 순간 소설의 시선은 급격히 전환된다. 인간 중심적 리얼리즘의 프레임이 해체되며 인간은 더이상 세계의 주체가 아니라 욕망의 흐름 속에서 반응하는 유기체로 축소된다. 2장 「24K」에서 금은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욕망의 패턴을 기억하며, 인간의 얼굴에서 ‘영혼의 일부가 일시적으로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읽어내기까지 한다. 이러한 금의 의인화는 인간이 금을 소유한다는 착각을 전복시키고 금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라는 냉소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K의 고리〉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추락과 상승의 반복적인 변주이다. 높은 곳은 김철수에게 ‘죽음을 리허설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 높은 곳은 황홀경의 장소로 변모한다. 추락의 감각은 상승의 감각으로 뒤집히고, 환각으로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곧 중독의 순간이 된다. 이는 케타민의 ‘K-hole’ 개념과도 맞물린다.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은 결국 현실 감각 자체를 붕괴시키며 인간을 공허한 상승 상태에 가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기 욕망(상승 상태)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이다. 김철수는 끝내 자신만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번에도 세상은 자신을 내버려 둘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기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적이면서도 위험한 논리이기도 하다. 실패는 타인의 것이고 자신은 예외일 것이라는 믿음. 〈K의 고리〉는 바로 그 믿음이 만들어내는 추락과 상승의 구조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금과 약물, 환각과 중독, 추락과 상승이 서로를 반사하며 끝없이 순환하는 구조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저 욕망이라는 거대한 고리 속을 끝없이 공전할 뿐이다. 〈K의 고리〉가 범죄스릴러 장르의 문법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씁쓸하고도 차가운 실상이다.

[모노스토리]
모노스토리는 이스트엔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단편소설 시리즈입니다. ‘단 하나의 이야기, 단 하나의 울림’이라는 컨셉으로 한 편의 단편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소개해 짧지만 깊이 있고, 가볍지만 밀도 있는 단편소설의 매력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모노스토리의 작지만 선명한 목소리에 독자들의 세계가 진동하고 확장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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