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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ji Maruyama,まるやま けんじ,丸山 健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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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이어서인지 그 곳은 확실히 조용한 환경이었다. 앞쪽으로는 전원이 펼쳐지고 뒤쪽에는 뽕밭이 있었다. 이웃 공영 주택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노부부가 쓸쓸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한참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는 그곳이 천국처럼 느껴졌다. 뜰의 잡초를 깎아 뱀을 쫓고, 기술자를 불러 벽지를 새로 발랐다.
너무나도 한적한 세계였다. 축사에서 빠져나온 소만큼 커다란 종돈의 뒤를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쫓아가고 있었다. 들판에 놓은 불이 잡목림으로 번져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혼자서 정한 코스를, 정해진 시간에 산보하는, 사람에게 알랑거리지 않는 멋진 개가 있었다. 깜깜한 밤이 되어 멀리 떨어진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집 부근에 자라난 나무를 비추는 것도 모르고, 그 희끄무레하게 움직이는 빛을 보고 놀란 아내는 영락없는 망령이라고 착각했다. 아내는 보자기를 들고 왕복 한 시간이나 걸리는 마을 중심부까지 장을 보러 다녔다. 도중의 길에서 길게 뻗어 햇볕을 쬐고 있는 뱀의 대부분이 살무사라는 사실도 까맣게 몰랐다. 그 무렵 우리는 자동차는 고사하고 자전거마저 없었다. 그리고 그 공영 주택에는 전화가 없어 필요할 때에는 근처의 고등학교까지 가서 빌려 썼다. 불편하다거나, 쓸쓸하다는 기분은 조금도 없었다. 시골에서 자라난 나는 그렇다 쳐도,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내 역시 시골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의 누구와도 사귀지 않았다. 소박한 사람들과의 마음의 교유를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노린 것은 은둔 생활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pp.150~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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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경멸했던 문학이, 막상 스스로 써보니 좀체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았다. 여기서 손을 빼다가는 이제는 문학 쪽이 나를 경멸할 차례였다. 어렵다는 사실이 도리어 나를 자극했다. 투지가 불타올랐다. 싸움하는 자세로 소설의 집필을 시작한 사람 따위는 모르긴 해도 나 정도에 지나지 않으리라. ....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 소설을 자기 자신이 도취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읽히기 위한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타입의 소설을 남에게 읽혀 감동을 주고 싶다는 자각이 당초부터 있었다. 직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었더라면 소설을 쓰려고는 마음먹지 않았으리라. 다른 일로 밥벌이를 하면서 창작활동을 벌인다는 생각은 전혀 품고 있지 않았다. --- p.105-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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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의 길』은 일본의 등뼈인 북알프스 산맥의 기슭으로 들어가 글쓰기라는 오직 한길을 걸음으로써, 글쓰는 자의 참된 전범을 제시한 마루야마 겐지의 자전적 문학에세이다.
마루야마 겐지가 국내에 알려진 것은 1994년『물의 가족』이 출간되면서부터이다. 그 이후『봐라 달이 뒤를 좇는다』『달에 울다』등이 연이어 소개되면서, 그의 감각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문체와 독특한 시간관은 많은 문학 마니아들을 사로잡았다. 데뷔작 <여름의 흐름>으로 신인상을 받음과 동시에 '아쿠타가와 상' 최연소 수상자가 된 마루야마 겐지는 일본의 문학평론가들조차도 전모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늘 새로운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왕성한 창작욕은 철저한 금욕적 생활과 이상적 소설을 쓰고자 하는 그 자신의 열망에서 비롯된다. 허먼 멜빌의『백경』을 읽고 일본문학에서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스케일에 압도당해 더 이상의 작품은 절대로 존재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역설적으로 문학을 멀리하고, 에이하브 선장의 파멸적이면서도 폭력적인 광기에 경도되어 무선통신사의 길을 가던 마루야마 겐지가 문학의 길로 전향한 것은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였다. 문청이라면 누구나 알 듯한 상식조차 몰랐으며,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구별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아쿠타가와 상'과 '나오키 상'이 어떻게 다른지도 몰랐던 작가가 막상 400매의 원고를 마무리하고 잡지사에 투고해 <문학계>의 신인상과 '아쿠타가와 상'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작가 자신에게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집단과 타협하는 것을 참된 자유를 완전히 말살하는 것이라며 극도로 거부해, '아쿠타가와 상' 이후에 그 어떤 상도 받지 않았고, 문학 단체를 비롯한 여타의 어떠한 집단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작가는 등단한 후에도 허위의식에 싸여 동업자끼리 교제하는 문단의 풍토에 환멸을 느껴 고향 오오마치로 내려가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영상문화가 활자문화를 압도하면서 대부분의 작가들이 위기의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은, '글로 쓰는 언어'와 '이야기로 하는 언어' 사이의 차이점도 자각하지 못하는 안이한 작가들이 산문의 편안함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문장 고유의 정취와 같은 예술성에 등을 돌리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마루야마 겐지는 비판한다. 카메라가 포착할 수 없는 걸 언어로 표현하는 것, 익숙해져버린 언어, 죽어버린 언어들을 새롭게 살려내는 것, 새로운 문체를 발굴하려는 그 치열한 정신으로 새로운 문학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작가 정신이다. 문화, 문학의 질이 떨어졌다는 것은 인간의 질이 떨어진 결과이므로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 인간의 질을 높이는 것만이 새로운 문학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마루야마 겐지는 역설한다.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않고 '참된 창작자의 길'이라는 오직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일관되게 나아가는 그의 삶 자체가 그의 어떠한 말보다도 더 웅변적이다. "문학은 바다이다. 그런데 모두들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다. 바다로 나아간 사람은 없다. 방정맞은 모래장난이다. 문학의 바다로 헤엄쳐 나가야 한다. 싸구려 연애소설로는 문학의 바다로 나아갈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