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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살아 있는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 2부 놓아야 하는 것, 놓칠 수 없는 것 3부 선택받을 자격, 선택할 자격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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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들린다.
누굴까. 지금 이렇게, 나를 부르고 있는 너는. 이토록 애타게 눈을 뜨라고 외치고 있는 당신은. 더는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목소리의 주인이 아니라 어지럽게 부서진 빛의 무리였다. --- p.7 나무병. 사람들은 그 현상에 그런 직관적인 이름을 붙였다. 놀랍게도 감염된 사람을 나무 같은 형태로 변형시키는 바이러스가 돌고 있다 했다. 감염되면 온몸이 각질로 뒤덮여 굳어 가며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고. 심지어 이파리도 생긴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해 댔다. 댓글 칸은 과장된 비웃음과 과장된 목격담들로 한없이 길어졌다. --- p.23 잠들었다 일어났더니 수십 년이 흘러 있고 세상은 이미 망했다는데, 그 원인이 사람을 나무처럼 만들어 버리는 바이러스 때문이래. --- p.40 다음 순간 이세가 소리 없이 웃었다. 좀 난처한 듯이.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는 것 말고는 다른 걸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사람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드는 미소였다. “……어쩔 수 없네요. 혼자선 안 돼요. 날 데려가요.” 그러다 뭔가 떠오른 모양으로 눈을 굴리더니 덧붙였다. “아니지. 내가 데려가 줄게요. 당신을.” 뭔가를 결심한 듯한, 단호한 목소리였다. --- p.97 가슴이 턱 막혀 왔다. 나는 흙바닥에서 손을 뽑아 가슴께를 꽉 눌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솟아올랐다. 나는,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이곳에 있는 이유에는, 당신도 있는데. 나는 오늘 당신을 도울 수 있어 기뻤는데. 당신이 이렇게 말해 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지? --- p.158~159 토끼가 말해 준 적이 있다. ‘세종’이 어떤 곳인지. ‘하지만 진명시가 무너졌을 때 탈출한 사람들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인 건 세종의 사람들뿐이었어. 그들은 버려진다는 것의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었어. 거주용 셸터로 만들어진 다른 대형 셸터들은 오히려 진명시 출신들을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지. 많은 사람이 셸터의 방벽이 열리길 기다리다가 밖에서 변이되거나 변이체들에 의해 사망했어. 육 년 전의 이야기야. 서지헌과 박상아가 그때 세종이 받아들인 아이들이고. 결국 세종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한마디. ‘버려진 사람들이 버린 사람들을 거둔 곳이지.’ 그것이 세종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자존심의 근원이었다. --- p.172~173 “지헌아. 그래도 믿어라. 이런 세상이잖냐. 세상이…… 너무 변해 버렸잖냐. 그러니 우리라도 변하지 말아야지. 변하지 않는 것 하나는 지키고 살아야지.” “그게 뭔데요.” “선의, 사랑, 믿음 같은 것들. 세상이 이 꼴이 나기 전부터 인간이 가치 있다고 여겼던 것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미덕들 말이다.” --- p.194 “이쪽으로 올래요?” “……네?” “너무…… 추워서요.” 너무 추워하잖아, 당신이. 통증과 열과 약 기운에 녹아 버린 머리로 지헌은 생각했다. 열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좀 덜 추울 것이다. --- p.208~209 겨우 말을 이어 붙이며, 질퍽이는 늪 속으로 가라앉는 의식 속에서 지헌은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는 왜 이렇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걸까. 이런 세상에선 살아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라고. 그렇게. --- p.210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이대로 가면 아가씨도 곧 끝장일 텐데.” “음, 이 시간은 이미 끝난 이야기에 여분으로 얻은 뒷장이라서요. 내 마음대로 엉망진창으로 채워 보기로 했거든요. 괜찮아요. 지금 꽤 만족하고 있어요.” “그 이야기 장르가 뭔데? 로맨스?” “아뇨. 코미디일 거예요.” --- p.311 “저기, 있잖아요.” 이 작별에는 무슨 인사가 필요할까. “고마웠어요. 나를…… 동정해 줘서.” 당신이 가엾게 여겨 줘서, 버리지 않아 줘서, 깨워 줘서 나는 내 이야기의 뒷장을 이어 쓸 수 있었어. “당신도 언젠가 원하는 결말을 맺을 수 있기를 바라요.” --- p.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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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세’는 차가운 저수지 물속에서 누군가의 구조를 받아 깨어난다. 이세는 자신이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잠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6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세를 구해 준 ‘지헌’은 이세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세상에 ‘나무병’이라는 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이 나무로 변하거나 나무 괴물 ‘변이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세는 지헌과 함께 생존자 거주지인 셸터 ‘세종’으로 향한다. 한편 지헌은 자신이 나무가 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치료제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 ‘세화’로 위험한 여정을 떠나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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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사람들이 나무로 변했고 세상은 망해 버렸다 주인공 ‘이세’는 차가운 저수지에서 익사 직전에 누군가의 구조를 받아 깨어난다. 그녀를 구한 것은 어느 낯선 남자인 ‘지헌’. 이세는 자신이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잠들었다가 60년 만에 깨어났으며, 자신이 잠든 사이 사람이 나무 또는 나무 괴물이 되어 버리는 바이러스 ‘나무병’이 퍼져 세상이 멸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충격적인 사실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나무 괴물들이 이세가 있는 곳을 습격하고, 이세는 지헌의 도움을 받아 피난처인 셸터 ‘세종’으로 향한다. 이세는 셀터 세종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관계를 쌓으며 점차 낯선 세계에 적응해 간다. 그러던 와중 수많은 나무 괴물 무리가 몰려와 셸터 세종으로 들어오려 하고, 빛을 무서워하는 변이체를 막기 위해 방벽에 세워 둔 라이트가 고장 난다. 다른 라이트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지헌이 힘을 쓰지만 꿈쩍도 하지 않자, 이세가 나서 알 수 없는 초인적인 힘으로 라이트를 돌려세운다. 어떻게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던 이세는 곧 자신의 충격적인 정체를 알게 되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무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숲으로 향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목소리가 들린다』는 작가의 전작 『허밍』의 세계관을 잇는 작품이지만, 새로운 등장인물이 이끌어 가는 서사이기 때문에 전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 세계에 몰입해 즐길 수 있다. 도입부부터 주인공의 정체에 관한 놀라운 반전이 드러나 순식간에 독자를 빠져들게 하며, 전작과 마찬가지로 흡인력 있는 문체로 드러나는 정교한 세계관은 마치 소설 속 세상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허밍』이 낳은 수많은 ‘찐팬’ 독자를 만족시킬 뿐 아니라 또 다른 독자 팬덤을 만들어 낼 작품이다. 자기 자신을 망쳐 가면서까지 단 한 사람을 지키려는 마음 멸망한 세계에서 피어나는 처절한 로맨스 서사 다음 순간 이세가 소리 없이 웃었다. 좀 난처한 듯이.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는 것 말고는 다른 걸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사람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드는 미소였다. “……어쩔 수 없네요. 혼자선 안 돼요. 날 데려가요.” 그러다 뭔가 떠오른 모양으로 눈을 굴리더니 덧붙였다. “아니지. 내가 데려가 줄게요. 당신을.” 뭔가를 결심한 듯한, 단호한 목소리였다. (97면) 한편 이세와 마찬가지로 나무 괴물이 들끓는 숲으로 향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세를 구해 준, 셸터 세종의 든든한 버팀목 지헌이다. 지헌은 셸터 세종에 들어온 뒤로 사람들과 함께 삶을 꾸리며 애정을 느끼게 되었지만, 곧 자신이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 이유는 지헌이 ‘나무병’에 걸려 사람들을 해치는 괴물이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기고 조용히 셸터를 떠나려는 지헌의 앞에 예상치 못한 사람, 이세가 나타나 같이 떠나자고 말한다. 그렇게 둘은 위험하고도 운명적인 여정을 함께 떠나게 된다. 지헌과 이세는 온갖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숲에서 서로를 지키며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인간의 로맨스로 주목받은 『허밍』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망한 세상에서 펼쳐지는 애절한 로맨스 서사가 돋보인다. 독특하고 발랄한 성격의 이세와 무심한 듯 다정한 마음을 지닌 지헌의 케미스트리는 두 사람의 여정을 함께하는 독자들에게 달뜬 설렘과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생존이 위협받고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도 끝내 서로에게서 존재 이유를 찾는 두 사람의 모습은 깊은 잔상을 남긴다. “이 이야기는 인물뿐 아니라 지켜보는 독자들도 구한다”는 청예 작가의 추천사처럼, 서로를 구원하는 두 인물의 서사는 우리의 마음에 환한 희망을 안길 것이다. 무너질 모래성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쌓아 가는 마음 세상을 지탱하는 믿음의 힘에 대하여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두 지켜 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영원히 수행해야 하는, 끝없이 실패만을 반복하고 있는 지독한 피로를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다만 파도가 닿을 때마다 쓰러지는 모래성을 제자리에서 한없이 쌓고 다시 쌓고 또다시 쌓는 그 일에 언젠가는 끝이 있기를 바랐다.그것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젠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저 차림은 분명히 상복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 기계의 애도 기간은 영원이었다. “괜찮습니다. 무너질 모래성을 계속 쌓아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 (322~323면) 『목소리가 들린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다양한 선택을 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도 있고,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도 있다. 나아가 자신을 해치려는 적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지키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을 수행하는 인공지능도 있다.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는 선택을 하는 존재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는 선한 마음이 마침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모래성이 파도에 무너지는 것처럼 선한 마음은 자주 실패하고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들린다』의 인물들이 보여 주는 것처럼, 선한 마음은 결국 우리 이야기의 ‘뒷장’을 이어 쓸 수 있게 한다. 혐오가 일상화되며 선한 마음이 희귀해진 시대에 『목소리가 들린다』가 전하는 울림은 사회를 지탱하는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할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선하게 사는 데는 품이 든다. 손해가 따른다. 그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성인(聖人)일 리는 없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진심 100퍼센트는 될 수 없고, 한결같이 선하기만 하기도 힘들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두고 위선자라 부르고, 어딘가에서는 가식적인 선보다는 진실한 무지나 솔직한 악이 낫다는 말을 부끄러움도 모르고 토해 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이고 후회하면서도 열심히 위선적으로 살기를 ‘선택’하고 싶다. 숨 쉬며 살고 있으니까. 겁쟁이 위선자로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을 서로의 존재를 바로 곁에서 확인하고 서로를 응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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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야 ‘하기’ 때문에 구하는 이야기가 아닌, 구하고 ‘싶기’ 때문에 구하는 이야기다.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빛을 머금은 예감과 낙관이 보상받으리라는 믿음. 이 이야기는 인물뿐 아니라 지켜보는 독자들도 구한다. 자기 자신을 망쳐 가면서까지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상황. 그 과정에서 엉망진창이 됨에도 불구하고 ‘함께’를 쥐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탄생시킨다. 구하고 지키는 목소리란 때로는 눈빛보다 더욱 애틋하다. 겨울을 버텨 내 봄을 맞이하는 나무들처럼 감정은 아래가 아닌 위로 성장한다. 그 가지의 끝에 어떤 형태의 꽃이 피어날지를 지켜보자. 연약한 존재가 비로소 강인해지는, 귀한 여정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허밍』을 읽어 본 독자라면 이 소설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 청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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