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추천합니다|김상환 헌법재판소장| 4
|문형배 카이스트 초빙석학교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6 책머리에| 8 착한 판사, 나쁜 판사?| 15 냉정한 선처| 27 함께 읽으면 달라진다| 37 판사님, 그냥 지웠습니다| 51 소년부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65 꼰대의 뒤늦은 후회| 79 걷기학교| 87 이제는 집으로 간다| 107 부활절 칸타타| 117 창원 소년부, 전국 1위| 131 그 눈빛이 너를 살렸다| 143 매일 저녁 엄마와 통화하기| 153 뜻밖의 기부| 163 여섯 번의 멈춤| 179 슬기로운 남편 생활| 195 판결 이후의 아이들| 209 결심이 힘들 때 보는 편지들| 221 같은 집, 두 개의 사건번호| 237 쉬어도 된다는 허락| 249 |
|
그래서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착한 판사가 되는 것도, 나쁜 판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매번 재판 기록을 다시 펼치는 것은 비행의 무게를 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이가 어디서 어긋났는지를 찾기 위해서다. 어긋난 자리를 알아야 바로잡을 수 있고,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어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어긋났든, 우리 사회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소년재판을 맡은 지 5년이 지났어도, 오늘의 처분이 옳았는지는 여전히 쉽게 말할 수 없다. 내가 내린 처분이 아이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법정에서 알 수 없다. 몇 달 뒤, 몇 년 뒤, 아이가 다시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아야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p.25 「착한 판사, 나쁜 판사?」 중에서 그러나 소년법이 추구하는 근본 목적은 다르다. 아무리 무거운 보호처분도 그저 화풀이하듯 내리는 맹목적인 응징이 아니다. 당사자에게는 차갑고 엄격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만, 오늘 벌어진 비행이 내일 더 큰 비행으로 자라나지 않게 막아보려는 마지막 시도에 가깝다. 다른 사람의 삶에 상처를 입힌 비행의 대가로 내려진 교정의 시간이 조금도 힘들지 않고 버겁지도 않다면, 도리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때로는 그 힘든 시간이,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다른 생활을 연습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매번 소년법정에서 듣게 되는 “선처를 바랍니다”라는 눈물 섞인 호소 앞에서, 소년부 판사로서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소년법정에서 내려지는 처분은,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가볍든 무겁든, 그 처분 안에는 아이를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pp.34~35 「냉정한 선처」 중에서 편지 끝부분에서 내 눈이 멈췄다. 볼펜으로 한 줄이 그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지운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이 진하지 않아 글자가 그대로 보였다. 판사님, 저 여기서 나가면 꼭 빵집 차릴게요. 그 아래에 민수는 다시 이렇게 적어두었다. “판사님, 쓰고 보니까 또 판사님 속이는 것 같아서 그냥 지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 요즘 여기서 빵 만드는 거 배우고 있습니다. 오븐에서 빵이 구워질 때 냄새가 나면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만든 반죽이 부풀고, 색이 나고, 빵 모양이 되는 걸 보면 저도 뭔가 할 수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도 저보고 손재주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큰소리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가면 바로 빵집을 차리겠다는 말부터 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제대로 배우고, 나가면 집 근처 빵집에서 알바부터 해보겠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나가고, 일 배우고, 월급 받으면서 천천히 해보겠습니다.” 나는 그 지워진 문장을 오래 보았다. 민수는 예전 같으면 “꼭 빵집 차리겠다”라고 큰소리를 먼저 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말을 스스로 지웠다. 대신 빵집 사장이 아니라 빵집 아르바이트부터 하겠다고 썼다. 그 작은 수정이 크게 보였다. ---pp.62~63 「판사님, 그냥 지웠습니다」 중에서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소년부에서는 그 말이 절반만 맞다. 법정에서 처분을 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간 아이가 누구를 만나느냐, 시설에 간 아이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 보호관찰을 받는 아이가 어떤 어른과 다시 연결되느냐에 따라 처분의 결과는 달라진다. 판결문에는 “보호관찰”, “시설 위탁”, “상담 명령”이라고 적히지만, 그 말이 아이의 생활 속에서 실제 도움이 되려면 법정 밖의 어른들이 필요하다. 걷기학교는 그 빈칸을 조금 채워보려는 시도였다. 아이가 처분을 받은 뒤에도, 법원 밖에 자기 이름을 기억하고 함께 걸어줄 어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판결문 한 줄이 아이의 생활을 곧바로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판결 뒤에 누군가 함께 걷고, 온전히 자기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밥을 먹고, 다시 만나자고 말해준다면, 아이는 적어도 혼자 버려진 것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 ---pp.100~101 「걷기학교」 중에서 어머니의 결정은 피해 학생에게도 이어졌다. 피해 학생은 자신이 모아두었던 용돈 200만 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어른이 시킨 일이 아니라, 아이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유는 짧았다. “저보다 더 힘든 친구들이 조금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열다섯 살 아이가 자기 상처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아이는 괴롭힘을 당했고, 억울했고, 학교생활이 힘들었다. 그런데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또래들을 떠올렸다. 부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이들, 명절에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아이들, 자기 편이 되어줄 어른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한 것이다. ---pp.174~175 「뜻밖의 기부」 중에서 소년원은 아이를 잠시 멈춰 세울 수는 있다. 제때 먹이고 재우고, 수업과 훈련을 받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이가 돌아갈 집의 빈 식탁을 바꿀 수는 없다. 동네 골목에서 다시 손짓하는 친구들을 없앨 수도 없다. 부모가 아이를 돌볼 힘이 없다는 사실을 판결문 한 장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그날 복도를 걸어 나오며 그 한계를 새삼 또렷하게 느꼈다. 법정에서 내가 내린 10호 처분은 아이를 위험한 생활에서 잠시 떼어놓을 수는 있었지만, 아이가 다시 돌아갈 세상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안정된 얼굴을 보고도, 마음 한쪽이 쉽게 놓이지 않았다. ---p.217 「판결 이후의 아이들」 중에서 |
|
김상환 헌법재판소장·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추천!
‘엄벌이냐 선처냐’는 질문 너머, 한 아이의 미래를 위한 선택 소년범죄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킬 때마다 논쟁은 두 방향으로 갈린다. 소년법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분노와, 아직 성장 중인 아이에게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5년째 소년법정에 앉아 있는 류기인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먼저 묻는 것은 처벌이 센가 약한가가 아니다. “이 아이를 지금 어디에 두어야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2026년 8월 20일 출간되는 『착한 판사, 나쁜 판사』는 2022년부터 소년부 업무를 전담해온 류기인 판사가 기록한 소년재판의 실제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에게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집으로 돌려보내도 되는지, 생활환경에서 떼어놓아야 하는지, 처분 뒤에는 누가 아이의 곁을 지켜야 하는지를 고민해온 5년의 시간이 담겼다. 아이들에게 ‘착한 판사’는 소년원에 보내지 않는 판사다. 반대로 피해자와 시민에게는 엄한 처분을 내리는 판사가 ‘착한 판사’일 수 있다. 같은 결정을 두고 누군가는 선처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한다. 류기인 판사는 어느 한쪽의 박수를 정답으로 삼지 않는다. 과거의 잘못만큼이나 앞으로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살핀다.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지, 학교와의 연결이 남아 있는지, 곁을 지킬 어른이 있는지, 이전에 주어진 기회를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함께 본다. 소년보호처분은 단순히 벌의 무게를 고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처가 아이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때로는 가장 단호한 처분이 ‘냉정한 선처’가 된다 류기인 판사도 처음부터 엄한 처분을 자주 내린 것은 아니다. 소년부 업무를 처음 맡았을 때는 웬만하면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소년원에 보내는 10호 처분은 가능한 한 아끼고 싶었다. 그러나 몇 차례 기회를 얻고도 더 큰 사건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만났다. 법정에서 울고 사과하면 다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된 아이도 있었다. 그때 그는 이해와 방임이 같은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큰 비행으로 나아가기 전에 단호하게 멈춰 세우는 것.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다른 생활을 연습할 시간을 갖게 하는 것. 류기인 판사는 이것을 ‘냉정한 선처’라고 부른다. 엄한 처분이라고 해서 반드시 아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가벼운 처분이라고 해서 언제나 아이를 위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처분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처분이 재비행의 고리를 끊고 아이를 다시 사회로 돌려보낼 가능성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가이다. 이 책은 소년범죄를 가볍게 보아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상처를 지운 채 가해 아이의 사정만 이해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아이의 환경과 사정을 살피는 일과 피해자의 고통에 책임을 묻는 일은 서로 반대편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아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되, 잘못을 가볍게 넘기지도 않는 것. 그 어려운 균형이 류기인 판사의 재판 원칙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소년사건이 모이는 법정, 5년째 같은 자리를 지킨 판사의 기록 창원지방법원 소년부는 양산시를 제외한 경상남도 17개 시·군의 소년사건을 한 재판부가 맡는다. 2024년 4월 1일부터 2025년 3월 31일까지 접수된 사건은 2,768건으로, 단일 소년부 재판부 기준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판사 1명과 참여관, 소년조사관, 주무관이 매달 200건 안팎의 사건을 감당한다. 사건이 많아질수록 한 아이의 기록을 충분히 읽고 부모와 학교의 말을 들으며 가장 적합한 처분을 고민할 시간은 줄어든다. 류기인 판사가 ‘전국 1위’라는 숫자를 자랑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경남에는 가정법원이 없어 무거운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부산과 대구는 물론 안양·청주·서울 등 먼 지역의 소년원으로 흩어진다. 가족의 면회가 어려워지고, 판사가 처분 이후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류기인 판사는 5년째 같은 소년부에 남아 아이들의 변화를 이어서 지켜보았다. 법정에서 내린 판단이 옳았는지는 결정문을 쓰는 순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달 뒤, 몇 년 뒤 아이가 다시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아야 겨우 짐작할 수 있다. 판결문 한 장으로 아이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법복을 벗고 아이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 판사 법정에서는 아이에게 학교에 가라고 말할 수 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고 부모의 말을 들으라고 훈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아이를 깨워 학교에 보내거나, 저녁마다 빈 식탁을 채우거나, 골목에서 다시 손짓하는 친구들 대신 곁에 서줄 수는 없다. 판결문 한 장의 한계를 절감한 류기인 판사는 법정 밖으로 나섰다. 법원 직원과 국선보조인, 상담 전문가, 보호시설 관계자들과 함께 아이 한 명과 어른 한 명이 짝을 이루어 걷는 ‘걷기학교’를 시작했다. 어른은 충고·조언·평가·판단을 멈추고 아이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는다. 법정에서 “죄송합니다”만 되풀이하던 아이들은 길을 걸으며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이유와 학교에서 버티기 어려웠던 사정을 조금씩 꺼내놓았다. 보호시설 청소년들이 쓴 시를 모아 『이제는 집으로 간다』를 펴내는 일도 도왔다. 처분 이후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기 위해 먼 소년원을 찾아갔고, 판단이 흔들릴 때에는 아이들이 보내온 편지를 다시 펼쳐보았다. 소년원에서 제빵을 배우던 한 아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판사님, 저 여기서 나가면 꼭 빵집 차릴게요.” 그러나 그 문장 위에는 가느다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아이는 그 아래에 다시 적었다. 또 큰소리부터 치는 것 같아 지웠다고. 나가자마자 빵집을 차리겠다고 말하지 않고, 동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부터 하며 천천히 배우겠다고. 류기인 판사는 그 지워진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거창한 약속보다 작은 계획부터 지키겠다고 말한 변화가 크게 보였기 때문이다. 단호한 판사이자, 자주 실수하고 뒤늦게 배우는 평범한 사람 책에는 법정 밖 류기인 판사의 모습도 함께 담겼다. 길거리에서 술을 대신 사 달라는 중학생들에게 장황한 훈계를 늘어놓고 돌아서서 곧바로 후회하는 어른, 지독한 음치이면서 부활절 칸타타 무대에 오르는 교인, 아내의 분갈이 지시에 군말 없이 흙을 나르는 30년 차 남편이다. 매일 저녁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걸지만 다정한 말 한마디는 여전히 서툰 경상도 아들이기도 하다. 법정에서 다른 사람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는 판사도 일상에서는 실수하고 뒤늦게 배운다. 이러한 솔직한 고백은 류기인 판사를 아이들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자기 판단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책임지려는 한 사람으로 보여준다. 『착한 판사, 나쁜 판사』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책이 아니다. 소년범죄를 더 세게 처벌하자는 책도, 무조건 용서하자는 책도 아니다. 처벌과 선처라는 두 구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소년재판의 현장에서, 한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잘못에 책임을 묻기 위해 고민해온 판사의 기록이다. 착한 판사로 불리고 싶은 것이 아니라,오늘의 판단이 아이의 더 큰 잘못을 막을 수 있기를 바라는 판사. 류기인 판사의 『착한 판사, 나쁜 판사』가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잘못한 아이에게 책임을 물은 뒤, 그 아이가 다시 돌아올 자리까지 마련하고 있는가. |
|
소년재판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대개 두 갈래로 나뉩니다. 너무 관대하다고 비판하거나, 너무 엄하다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류기인 판사의 『착한 판사, 나쁜 판사』는 그러한 익숙한 관점을 넘어, 한 아이의 삶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법정 안팎에서 어떤 고민이 이어지는지를 진솔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단순한 사건 기록 속의 ‘소년범’이 아닙니다. 상처받고, 방황하고, 때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자신과 타인 모두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힐 환경이 주어진다면, 자부심을 품고 훌륭하게 성장할 우리 사회의 아이들입니다. 저자는 판사로서의 객관적인 관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시선을 한순간도 놓지 않습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단호한 처분이 진정한 선처가 될 수 있고, 때로는 관심과 기다림이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됩니다. 소년 법정의 판단은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미래를 위한 어려운 선택의 과정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습니다. “아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되, 잘못을 가볍게 넘기지도 않는 것.” 그 어려운 균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한 판사의 진심이 이 책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조금 더 따뜻하고 책임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람을 향한 이해와 희망의 마음을 선물해 주기를 바랍니다. 오래전 저자와 같은 재판부에서 함께 고민을 나누었던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정중한 인품과 재판에 대한 깊은 소명의식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년재판에 기울여 온 헌신과 노고에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 김상환 (헌법재판소장) |
|
류기인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착한 판사, 나쁜 판사』라는 책을 냈습니다. 5년째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판사로 근무하면서 겪은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소년부 판사로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탰습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착한 판사, 나쁜 판사’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소년보호사건 재판을 받는 아이들은 웬만하면 소년원에 보내지 않는 판사를 ‘착한 판사’로, 소년원에 바로 보내는 판사를 ‘나쁜 판사’로 부른다고 합니다. 피해자나 일반 시민의 눈으로 보면 정반대가 됩니다. 소년법정의 가벼운 처벌이 비행을 부추긴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엄한 처분을 내리는 판사가 ‘착한 판사’가 되고,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판사는 ‘나쁜 판사’가 되는 셈입니다.
저자는 소년보호처분이 비행의 무게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소년보호 사건에서는 아이가 저지른 행동뿐만 아니라,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일이 반복될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 집과 학교로 돌아갔을 때 아이를 붙잡아 줄 사람이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아이를 지금 어디에 두어야 다시 같은 일을 막을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좋은 재판을 하기 위해 어른과 아이가 1대1로 짝을 이룬 걷기학교를 열었습니다. 화해권고기일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지하게 사과를 하였고, 피해자의 어머니는 가해자로부터 받은 합의금을 사법형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하는 일도 경험했습니다. 저자는 제가 부산가정법원장, 부산고등법원 원외재판부 부장판사로 근무할 때 같은 법원에 근무한 동료였고, 저랑 평소 교류하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그는 주변 판사들로부터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소신은 분명하나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많은 일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그의 문제의식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할 것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 문형배 (카이스트 초빙석학교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