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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05

제1부

폐타이어·13
양은 대야 속 시간·14
목도장·16
새끼발가락·18
놋그릇·20
사다리·22
설탕 한 스푼·24
빈 소주병·26
바오밥·28
달의 얼룩·30
하모니카·32
이태리타월·34
신발을 버리며·36
고인돌·38


제2부

소주의 성분·41
죽은 시계·42
별·44
흑백의 시간·46
울컥·48
구두 한 짝·49
국화의 방·50
연필, 깎으며·52
반창고·54
폐선·56
첫 경험·57
풍금 소리·58
떠도는 노래·59
골목·60
로드킬·62


제3부

짐·67
섞다·68
아내의 발·70
괘종시계·72
불 꺼진 도서관·74
리어카·76
안개·78
아스팔트꽃·80
느티나무·82
뿌리의 힘·84
슬픈 분모·86
거울은 깊다·88
작대기의 힘·90
가을 잎새·92


제4부

모나미 볼펜·97
복날 장례식·98
조용한 아파트·100
과묵한 밥상·102
동그랑땡·104
국민학교·106
가고 있다·108
이름·110
시간은 염색되지 않는다·112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다·114
여인숙의 시간·116
고목의 이력·118

시인의 산문·121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43쪽 | 224g | 127*206*20mm
ISBN13
9791124212141

책 속으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몸이 마모되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세상 끝까지 달려가곤 했다
눈길과 빗길에 미끄러지고
진흙탕에 빠지기도 했지만
온몸으로 견뎌내며 굴러왔다
왜 달려야 하는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기까지 굴러오다가 보니
어느새 길은 끝이 나 있었다
나 아니면 안 될 거라 여겼지만
다른 바퀴들로 갈아 끼우고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채
잘 굴러가고 있었다
역할이 끝났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일인가
희망요양원으로 가는 길목에
버려진 폐타이어 하나
홀로 비를 맞고 있다
양은 대야 속 시간
-「폐타이어」 전문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를 본다
길지 않은 시간 이 땅에 머물다
아득한 별나라로 다시 돌아간
외로운 이름 하나가 반짝 빛난다
낯설고 먼 곳에서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우면
새벽까지 돌아가지 못하고
창문 틈을 기웃대고 있을까
하고 싶은 말 끝없이 많지만
끝내 한마디도 못 하고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표정이 너무도 창백하구나
뜨거웠던 너의 체온은 어디로 가고
서늘한 눈빛으로만 반짝이느냐
오직 그리움으로만 닿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거리는 너무나 아득하구나
마침내 나도 별이 되고 나면
뜨겁게 서로 안아볼 수 있을까
오늘도 밤하늘에 돋아난 별빛 하나
눈시울 속으로 녹아든다
-「별」 전문

슬픔이 없는 세상은 없는 걸까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또 새로운 슬픔이 생겨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아픔들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아픔 하나와 다시 만난다
그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어왔지만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수만 배나 더 큰 슬픔 하나가 파도가 되어 우리를 휩쓸었다

이별, 이승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순간을 마주하고
아니다 아니다 미쳐 울부짖었지만 그 쓰라린 무게는 시간이 지나도 가벼워지지 않고
아내와 나 둘만의 가슴속에 무겁게 남아 있다

둘이서 함께 밥을 먹다가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안타까운 이름 누가 먼저 꺼내기라도 하면
바닥 깊은 곳에 고였던 슬픔이 간헐천이 되어 울컥 치솟아 오른다
아닌 척 서로 눈물을 숨기지만 결코 숨겨지지 않는
슬픈 분모 하나를 함께 갖고 있다
-「슬픈 분모」 전문

밤하늘을 올려다본 것은 실수였다
애써 외면하고 지냈던 오래전의 달이 다시 떠오르고 있는 거였다
아득한 시간 거스르며 다시 나를 비추는 달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아픔에
짐승이 되어 꺼이꺼이 울음을 쏟으며 손수건을 적시던 그 힘든 순간들을
달은 냉정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달이 있다
오늘 올려다본 달 속에는 지워버리고 싶도록 아픈
그러나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나만의 순간들이 얼룩이 되어 남아 있었다

나는 살아서 그 달을 다시 보는데
그리운 것들만 아득히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쓰라린 일인가
달의 얼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잊어버리자 외면하며 돌아오지만 잔인하게도 끝끝내 나를 따라오는 달
오늘 밤 쉽사리 잠 못 드는 달 하나가 어느새
검은 호수에 깊이 가라앉아 있다
-「달의 얼룩」 전문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문단에 발을 들인 지도 어언 삼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름대로는 열정도 가지고 참 부단히 시를 써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젊은 시절에는 시에 빠져서 허우적대기도 했었다. 요즘은 좀 덤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를 쓰는 것은 습관처럼 굳어져 있어서 오늘도 여전히 시를 쓴다.
오랜 동반자처럼 시는 언제나 곁에 있고 시가 없는 나를 상상하기 어렵다. 시는 내게 무엇인가 명확히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
그래서 또 시집을 낸다. 부질없는 몸짓일지라도 어쨌든 모두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읽으시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공감을 하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2026년 여름
김윤한

추천평

김윤한 시인의 시는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의 평화를 사랑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함께 호흡한다. 또한 인간과 사물의 지나온 길과 종말에 대해 존재론적 본질을 사유한다. 그의 시의 바탕에는 모든 존재자가 앓아야 하는 슬픔과 비애가 보이지 않게 솟아나는 샘처럼 고여 있다. 인간은 그 슬픔을 별빛처럼 간직하고 함께 앓으며 가고 있는 존재이다. 마침내 종점에 닿았을 때 우리의 육신은 ‘안개’ 속에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만, 고목의 나이테 속에는 “말로 다 기록할 수 없는/거룩한 생애”가 남아 있는 것이다. 김윤한 시인은 이처럼 우리 삶의 과정을, 나날의 생활 속에서 가까이 접하는 평범한 사물을 객관적 상관물로 삼아 경험적 진실로 증언하는 시로 독자를 감동시킨다. - 이혜선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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