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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 외로운 구석에 볕이 들었다
· 우린 언제나 속으로만 _ 고운 · 어른인 척했던 것 같아 _ 지혜 · 거대한 질문 앞에서_ 고운 · 귀신이 꿈속에서 타고 다닐 마음 _ 지혜 · 배움을 경험하는 배움 _ 지혜 · 깨면서 자유로워지는 것 _ 고운 · 슬픔의 항아리가 찰방찰방 차 있지만 _ 고운 · 아이들에게는 슬픔의 자리가 필요할 거야 _ 지혜 · 절망 속으로 뛰어들어도 _ 고 운 · 내 삶에 어떤 무늬를 만들겠구나 _ 지혜 · 여행지에서 우리는 더 _ 고운 · 넓게, 길게 희망하자 _ 지혜 · 용기와 무관하게 아침은 또 오는 것 _ 지혜 · 자주 꿈꾸었던 어떤 미래들 _ 고운 에필로그 편지의 효능을 믿기: 지혜가 고운에게 편지는 계속될 거야: 고운이 지혜에게 편지에 담긴 책과 영화 인용 문장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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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과 내가 메일을 주고받으며 책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건 2022년 2월, 내가 출산한 시점이다. 육아라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고립되고 말 것이라는 불안 속에 있던 내게 친구가 보내온 편지는 무엇이든 뜰 수 있는 포근한 털실 뭉치 같았다. 답장을 하면서 내가 머무는 삶과 책, 고민을 엮어볼 수 있었다.
우리는 늘 서로의 책장이 궁금했다. “요즘 뭐 읽어?” 하고 물으면 대화가 길게 이어지곤 했다. 무엇을 읽고 있는지 가 지금의 나를 형성했으므로, 친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각에 열려 있는지도 어떤 책을 읽고 있냐는 물음으로 알 수 있었다. 편지를 통해 고운이 주로 소설, 논픽션, 에세이 같은 산문을 띄워 오면, 나는 시로 응답했다. 편지는 공간이 되었다. 서로의 마음을 열어낼 수 있는 공간이자 공중에 흩어지는 마음을 언어로 다독다독 담아낼 수 있는 공간. 편지를 쓰는 동안 그리고 받은 편지를 읽는 동안 외로운 구석에는 볕이 들었다. 대화와는 또 다른 결이 일렁이는 마음의 방. 책의 힘을 믿는 이들, 책으로 사랑을 지키는 이들의 방. 이제 용기 내어, 친구와 함께 만든 이 방에 누군가를 초대하려고 한다. --- p.6 삶을 바꾼 만남이 자책이나 죄책감 속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 그렇지만 그 자각이 오히려 삶을 열어주는 문이 되기도 한다는 것.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목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삶을 조금씩 바꾸어나가고 싶어. --- p.24 수업 시간엔 아이들과 대화다운 대화는 거의 하지 못했고 교과서 진도 나가기에 바빴어. ‘종 치면 자리에 앉아라.’ ‘수업 중에 종이비행기 날리지 마라.’ ‘칼로 책상 파지 마라.’ ‘친구 부모님 욕하지 마라.’ 같은 잔소리를 하다 보면 하루가 갔지. 나는 내 태도에 대해서 줄곧 합리화를 했어. 젊은 여교사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시선이나 무례한 아이들의 태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편이었다고. 그런데 돌아보면 사실 아이들을 대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인 것 같아. 교무실에 찾아온 아이들 앞에서 데면데면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수업 시간에 잔소리 외에는 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던 것도 다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였던 것 같아. 무슨 말부터 시작하지? 그게 늘 고민이었어. 나는 교사가 ‘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던 걸까. --- p.29 이 책에 수록된 〈스위치〉라는 소설에는 새해 첫날 막냇삼촌을 면회하러 교도소에 갔다가 허탕 치고, 맞은 편 두부 집에서 두부를 먹는 조카의 이야기가 나와. 조카는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모두부와 막걸리를 먹어. 그러면서 ‘그래도 막냇삼촌은…’이라고 시작되는 문장을 계속 생각해. 그래도 막냇삼촌은 조카에게 엄청나게 큰 눈사람을 만들어주던 사람, 그래도 막냇삼촌은 밤에 화장실에 가는 걸 무서워하는 조카 옆에서 별자리 이름을 읊어주던 사람, 그래도 막냇삼촌은 조카를 위해 마가린을 사다 간장계란밥을 만들어주던 사람이었지. 그런데 웃긴 건 내가 소설을 읽으며 ‘그래도 막냇삼촌은’의 자리에 그 사람의 이름을 넣어보고 있는 거야. 이제 그 사람을 내 인생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썩은 부위 도려내듯 되질 않는 거야. 그 모든 순간들이 다 거짓말이었을까? 그럴 수는 없지 않을까? ‘그래도’라는 부사어가 계속 내 안에 남아 있더라고. 그래도, 그래도…. --- p.49 힘들었던 마음을 이제 놓아주었으면 해서. 슬픔과 분노와 애정과 연민이 뭉쳐져 만들었을 그 마음이 감자의 싹처럼 자꾸 자라나지 않게, 너를 더 고개 숙이지 않게 했으면 해서. 심인성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반 아이들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다. 내가 맡은 담임 반 아이 중에도 매일 3교시가 끝나면 복통을 호소하면서 조퇴하고 싶다는 아이가 있었거든. 상담을 하면서 친구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아이는 급식실에서 혼자 점심시간을 보내는 게 곤욕이었던 거야. 어쩌다 조퇴를 하지 않은 날에도 점심을 거르고 교실에 엎드려 있곤 했으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정한 눈빛을 보내주는 것뿐이었지만, 진심으로 그 애가 불안과 자신감 부족으로부터 조금씩 놓여나기를 바랐어. 어느 순간 자신을 가두는 감정들이 돌멩이처럼 도르르 굴러 나왔으면. --- p.64 조해진 작가는 프리모 레비를 알게 된 후 그의 자장 아래 소설을 썼고, ‘증언 문학’이라는 단어가 자기 삶의 화두가 되었다고 고백했어. 증언 문학. 그날 이후로 증언 문학이라는 단어가 줄곧 나를 사로잡았어. 증언 문학이 무엇이라고 딱히 정의 내리기는 어려워. 어떻게 보면 모든 문학은 증언의 성격을 갖기도 하잖아. 그렇지만 증언 문학은 그냥 문학과는 왠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 나는 왜 그 단어에 매료되었을까? 증언 문학은 슬픔을 아주 소중히 대하는 단어 같아. 깨끗한 항아리에 슬픔이 가득 차 있어. 그러나 흘러넘치지는 않게, 찰방찰방. 조금만 흔들리면 새어 나오거나 확 쏟아져버릴 수 있는 그 슬픔을 항아리에 조심조심 담아두는 거야. 조심하지만 꼿꼿한 태도로. 증언 문학이라고 하니 그런 슬픔의 항아리가 떠올랐어. --- p.97 우리 더 많이 읽자. 마음으로 읽고, 소리 내어서도 읽기. 낭독이란 타자의 글(목소리)을 내 목소리로 대신 발화하는 행위잖아. 낭독이라는 행위는 “나는 나다”라는 자기 동일성의 원리에서 벗어나 타자가 될 수 있는 쉽고도 뜻깊은 행위이기에, 더 자주 좋은 시를 함께 나누고 소리 내 읽어보려고 해. “시인은 자기 자신으로 타자가 되면서 ‘충분’해질 뿐만 아니라 ‘무한’해진다”(『시는 언제나, 르네 샤르』)라는 문장에도 밑줄. 시를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를, 특히 시를 소리 내 읽어보는 것의 가치를 느껴.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슬픔의 자리가 필요하겠다. 슬픔을 통해서야말로 타자의 위치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그렇기에 슬픔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아이들이 아직은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더라도 말이야. 그 나눔과 마주함으로써 이미 어떤 힘을 불어넣고 있다고 믿어. 서로의 목소리를 통해서 점점 열린다고 믿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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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고 배우는 일, 좌절하고 일어서는 일, 슬퍼하고 슬픔을 바라보는 일
시와 글의 힘을 믿는 동갑내기 국어교사가 책의 목소리에 기대어 교실 바깥에서 일과 삶을 이야기하다 “자세한 건 편지에서 얘기하자!” 편지의 효능을 믿고, 문학을 실어 보내겠다는 계획 밤새 전화를 붙들고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다가도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고 얘기해야 끊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동갑내기 국어교사 최지혜, 하고운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그렇게 자주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하고, 교사로서의 고민을 나누면서도 여전히 서로에게 가닿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편지로 실어 보내기로 한 것이다. 『좋아하는 것은 나누고 싶은 법』으로 아이들과 함께 시 쓰기의 즐거움을 나눴던 국어교사 최지혜, 『우리들의 문학시간』으로 과학고 아이들에게 문학의 재미와 감동을 나눴던 국어교사 하고운. 이 두 사람은 전국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 분과 물꼬방에서 만난 동갑내기 교사로, 여러 활동을 함께 하며 오랜 우정을 키워왔다. 각자의 자리에서 문학의 언어를 오래 다듬어온 두 사람은 같은 시절을 통과하며 교사가 되었고, 아이들을 만났다. 단순히 ‘강의하는 교사’가 아니라 책과 문학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들은 교사로서 겪은 경험, 문학을 가르치며 품게 된 질문들을 주고받으며 어느덧 중견 국어교사가 되었다. 시간이 쌓이고 경험이 쌓이면 가르치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질 줄 알았는데, 교사라는 일은 하면 할수록 고민이 쌓여가는 일이었다. 두 저자는 바로 그런 시간을 편지에 담아내기로 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피로와 자책, 여성으로 살아가며 마주하는 고민들, 말로는 다 하지 못했던 마음들,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그 너머의 복잡한 심경들,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들에 관한 끝없는 성찰들… 편지는 말로 다 하지 못했던 마음을 꺼내고 서로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공간이 되었다. “글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나 봐.” 너의 선량한 질문으로, 따뜻한 관심으로, 조용한 격려로 발견하는 나의 이야기 『교실 바깥의 마음』은 두 선생님이 교실 바깥에서 나눈 위로와 연대, 사색의 흔적이다. 교실에서 시작된 마음이 어떻게 삶 전체로 번져가는지, 아이들과 나눈 시간이 한 사람의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문학을 가르치는 일이 어떻게 자신을 다시 읽는 일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편지라는 매체에 담긴 말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두 선생님의 편지는 언제나 다정하고, 따뜻하고, 애틋하며, 솔직하다.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오래 묵혀둔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좋은 교사이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못했던 날들의 자책을 함께 들여다본다. 그렇게 이 책은 개인적인 차원의 안부를 넘어 함께 견디고 성장해온 두 교사의 연대의 기록이 되었다. 현직 국어교사로서 문학과 시, 독서 교육에 꾸준히 힘써온 만큼 편지는 문학적 감수성으로 가득하다. 두 선생님이 함께 읽고 나눈 책들은, 혹은 작가의 말들은 아이들과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고, 지친 마음을 건너게 하는 문장이 되며, 친구에게 보내는 가장 조심스러운 안부가 된다. 문학은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에 닿기 위해 빌려 쓰는 언어다. 시는 아이들과 세상을 다시 읽게 만든다. 책은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나침반이다. 책 속에는 윤동주, 나희덕, 은유, 타라 웨스트오버, 비비언 고닉, 프리모 레비, 고명재, 진은영 등 다양한 작가와 작품의 이름이 등장한다. 시, 에세이, 소설, 르포, 영화 등에서 만난 문장들이 편지로 흘러 들어온다. 책 속의 문장들은 아이들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어 지나온 삶을 되짚게 하고, 말하기 어려운 마음을 대신 건네주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무엇을 사랑할 거야?” 산책하듯 흔들리고 춤추듯 버티며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 되기 이 책의 시선은 교실 안에 갇히지 않는다. 두 사람은 교사이면서 동시에 일하는 사람이고 친구이자 독자이며 또한 여성이다.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직업적 책임과 개인적 삶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은 이들의 중요한 화두이다. 일터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의 어려움, 좋아하는 일을 오래 지속하고 싶은 마음, 여성으로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편지에 스며든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는 교사라는 직업을 넘어, 나답게 일하고 살아가는 일에 대한 성찰로 넓어진다. 『교실 바깥의 마음』은 같은 고민을 가진 동료 교사들에게는 영감과 위로의 언어가 되고, 교실 밖 독자들에게는 누군가와 깊이 대화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이 책은 ‘혼자 감당하지 않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저자는 서로의 편지를 읽으며 자신의 경험을 다시 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마음들을 발견하면서 자랑스럽지 않은 마음마저 다음 삶으로 나아가는 자각으로 바꾸어나간다. 이토록 진중하고 깊은 사유의 시간을 나누는 두 사람은 성급한 결론 대신 책과 문장, 수업과 일상, 친구의 편지를 곁에 두고 천천히 생각하기를 택한다. 그래서 이 책은 따뜻하지만 가볍지 않고, 다정하지만 무르지 않다. 두 저자가 나누는 위로는 막연한 응원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과 세계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연대는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끼리의 공감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고통과 기쁨을 읽어내려는 노력으로 확장된다. 『교실 바깥의 마음』은 교사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읽고 나누는 일의 기쁨을, 일과 삶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는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