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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주도 숨비소리 수살귀 [애맥] 옥탑방 그 집 [쨈] 황구렁이의 저주 [최씨] 우리 딸 관 좀 들어줍시다 [바람따라구름따라] 스님이 쥐어준 귤 [메이슨] 자취방 602호 [스트레스] 걸려와서는 안 되는 전화 [안온] 돼지어멈 [남평] 문 밖의 기척: 최전방 GOP의 겨울 [츄마왕] 강남구 빌라에서 [이사도라] 주인 잃은 물건은 없다 [쏭쩡하우스] 후쿠오카 호텔에서 [턱시도] 옹호비 이야기 [레드] 남산의 트렁크 [길PD] 그 비디오 테이프 [콩이맘] 양밥 [보는내가민망하네] 장례식장에서의 영업 [구사장] 개할머니 [아이] 30년 간 죽음을 피해 온 남자 [믹스루시] 초인종이 두 번 울릴 때 [강사니] 엄마를 몸에 실어보려고 [홍연] 그날 밤 저수지에서 [마따리] 에필로그 - 그 밤이 지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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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째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K는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던 저는 결국 스노클링 마스크를 쓰고 배 옆 수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슬슬 햇볕이 잦아드는 바다 밑은 깊고 어두웠습니다. 한참 동안 고개를 돌려대던 제 눈에 배 후미 아래 1미터 지점에서 수류를 따라 흔들거리는 K의 검은 잠수복이 들어왔습니다.
---「제주도 숨비소리 수살귀」중에서 유일하게 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신 분은 신기가 약간 있으셨던 할머니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장롱 위 신줏단지를 꺼내어, 정화수를 떠놓고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떨리는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옥탑방 그집」중에서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골목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자, 지은 지 30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비대하게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5층짜리 낡은 구축 아파트. 먼지가 두껍게 앉은 계단을 오르던 중, 제 시선은 묘한 기형성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취방 602호」중에서 잠시 후 상황실로 복귀한 중대장은 철책선을 바라보며 말없이 커피만 마셨습니다. 공기가 무거웠습니다. 저와 후임은 조용히 눈치만 살폈습니다. 이윽고 중대장이 혼잣말처럼 입을 열었습니다. “잘못 봤어. 확실히 잘못 본 거야.”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예, 맞습니다. 아무래도 잘못 본 것 같습니다.” “그치? 방탄이 많아서 헷갈렸어.” “예, 저도 잘못 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대장님… 분명히…” ---「문 밖의 기척: 최전방 GOP의 겨울」중에서 부모님도 얘 우리랑 계속 같이 있었다, 화장실 근처에도 안 갔다 하시는데… 그때 오빠 눈빛이 묘하게 이상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까만 바둑알 같은? 형광등 불빛이 탁하게 반사되는 그 섬뜩한 눈으로 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너 한 번만 더 장난치면 진짜 가만 안 둬.” ---「강남구 빌라에서」중에서 같은 가게에서 일하던 동창의 말에 따르면, S가 일을 하면서 자꾸 허공을 향해 뜻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린다고 했습니다. 잠을 통 못 자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시꺼멓게 내려앉았고, 전보다 넉넉히 먹고 다니는 것 같은데도 몸은 핏기가 빠진 채 말라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급기야 그가 친구들을 붙잡고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주인 잃은 물건은 없다」중에서 그 늦은 시각, 웬 여자 한 명이 맞은편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블라우스에 발목을 덮는 긴 치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까만 차림이었습니다. 짙은 어둠 속에서 하얀 얼굴만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던 그 여자는 한 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저희를 조심스럽게 불러 세우더니, 간단한 부탁이 하나 있다며 운을 뗐습니다. “저기… 이 가방을 두 시간만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남산의 트렁크」중에서 그 일은 제게 다시금 뼈저리게 일깨워 줬습니다. 우리 집안 핏줄에 무언가 단단히 엉켜 있긴 하구나, 하고요. 물론 그전에도 남들 못 보는 걸 보며 살았으니 짐작은 했지만, 피부가 찢어질 듯 서늘하게 체감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엄마를 몸에 실어보려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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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들은 끝나지 않습니다.
14년 동안 〈공포라디오0.4MHz 쌈무이〉를 운영해온 쌈무이는 밤마다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왔습니다. 누적 조회수 3억 회. 그 숫자 뒤에는 수많은 사연이 있고, 그 사연마다 오랫동안 혼자 품고 있던 기억을 어렵게 꺼내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마주한 검은 그림자, 낡은 여관에서 겪은 설명할 수 없는 밤, 장례식장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의뢰인과 나눈 상담. 『수살귀』는 그동안 쌈무이에게 전해진 수많은 제보 가운데 오래도록 잊히지 않은 이야기들을 골라 한 권에 담은 괴담집입니다. 책에 실린 22편의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일상의 틈을 파고듭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집이 어느 날 낯선 공간으로 변하고, 평범한 여행지에서 보아서는 안 될 존재와 눈을 마주치며, 오래전 누군가가 남긴 원한과 후회가 세월을 건너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별한 흉가나 폐허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취방과 빌라, 호텔과 장례식장, 군부대와 저수지처럼 누구에게나 익숙한 장소에서 시작되기에 그 공포는 당장의 이야기로 머물지 않고 어느새 독자의 일상 가까이로 스며듭니다. 그러나 『수살귀』에 남는 것이 공포뿐인 것은 아닙니다. 갓 새끼를 낳은 어미돼지가 남긴 처절한 한, 한순간 내뱉은 말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간 자매의 이야기, 30년 동안 번번이 죽음의 문턱을 비껴간 한 남자의 삶. 이렇게 기이한 현상을 한 겹 걷어내고 나면 그 아래에는 상실과 죄책감, 미련과 그리움처럼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 남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연은 무섭기보다 먹먹하고, 마지막 문장을 읽은 뒤에도 좀처럼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에서 완전히 끝나지도 않습니다. 책 말미에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연자들이 들려준 후일담을 함께 실었습니다. 어떤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어떤 경험은 여전히 지금의 삶을 따라다닙니다. 어쩌면 그것이 『수살귀』가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이름,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의미일 것입니다. 여름밤, 이 책을 읽고 불을 끈 뒤에는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곳이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열린 방문 너머의 어둠이나 불 꺼진 부엌 한쪽, 익숙한 복도 끝에 무심코 시선이 머물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면 다행입니다. 다만 한밤중, 등을 돌린 낯익은 뒷모습이 다정한 목소리로 당신을 부른다면, 대답하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목소리가 부르는 이름이…… 정말 당신의 이름이 맞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