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빵충 사육 준수 사항
작가의 말 프로듀서의 말 |
김혜영의 다른 상품
|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 묻기엔 꽤나 오랫동안 미뤄온 문제긴 했다. 스물넷 동갑내기 커플로 시작해서 6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저 서른이 되었다는 것밖엔 없었다. ---p.7 “내 말이 어려워? 답을 해. 트럼펫 언제까지 할 거냐고!” “죽을 때까지.” 너무 당연해서 목이 메었다. ---p.8 할 수만 있다면 일시 정지를 누르고 싶었다. 왜 인생은 끝없는 재생일까. ---p.8 공허해진 나를 바라보던 담당자는 사지 멀쩡한 청년이 뭐가 걱정이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 귀농 어떠세요?” ---p.30 클래식은 누가 누가 같은 걸 더 잘하나의 싸움이고, 재즈는 누가 누가 다른 걸 어렵게 하나의 싸움이다. 깊이와 그루브. 나는 전자에 더 목매고 싶었지만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 미래는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그때도 난 자아 탐구보다 주제 파악을 먼저 해야 했으니까. ---p.30 제일 맛있는 녀석이 되라는 바람으로 농장 이름을 ‘킹짱베리’라고 붙였다. 로고도 만들고 스티커도 찍었다. (…) 고대하던 출하날. 어렵게 수확한 딸기를 트럭에 싣고 공판장에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나는 딸기를 키웠지, 팔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 작목반에서 딸기를 출하하면 작목반 로고를 달고 판매되기 때문에 킹짱베리 로고는 쓸모없는 종잇조각이 됐다. ---p.42 지원자 김정한. 사업에 선정될 경우 내가 육성할 신개발유용곤충의 이름은 빵충이라고 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p.67 “이게 곤충이라구요?” “예, 그렇습니다.” 다들 제 손에 들린 빵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듣고도 보고도 믿기 힘든 대답이었다. 내 손에 들린 이 비닐 포장지 안의 것은 누가 봐도… 빵이었다. 빵일 수밖에 없다. ---p.69~70 맛있다. 마치 자연의 한 부분을 잘라 빵으로 구워낸 것 같았다. 건강하지만 포근하고 생기 있지만 부드러운 맛. 그런데 이것이 곤충이라니. 애벌레라니. 인지 부조화를 느끼면서도 계속해 빵충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손바닥만 한 빵이 아니, 충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p.71 |
|
· 먹고살기 위해 곤충이라도 붙잡은 사람들
소설은 지극히 익숙한 대한민국의 현실에 블랙코미디를 덧입혀 문을 연다. 정한은 트럼펫을 전공했지만, 음악으로는 도무지 생계가 서지 않는다. 예체능을 전공한 청년이 전공으로 먹고살기 어려워 결국 다른 데를 기웃거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다 대뜸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귀농해 국가 지원 사업인 식용 곤충 재배라도 붙잡으려는 선택은 씁쓸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눈앞에 보이는 동아줄, 그게 무엇이든 잡아보려 발버둥 치는 웃픈 현실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청년 사회의 현실을 닮았다. 무엇보다 빵 맛이 나는 벌레, ‘빵충’이라는 황당한 소재가 현실의 논리 속에서도 착실히 굴러가는 건, 작가가 인디 밴드부터 딸기 농가, 청년 농부, 식용 곤충 재배까지 관련 정보를 방대하게 취재해 이야기 아래에 성실하게 깔아둔 덕분이다. 그래서 이 우스꽝스러운 사업은 읽는 내내 실현 가능한 계획처럼 보인다. · 장르를 여러 차례 갈아 끼우며 끝까지 질주하는 소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며 페이지가 넘어갈 무렵, 이야기는 분위기는 서서히 달라진다. 빵충 번데기 몇 마리를 마을 사람들이 감시를 피해 빼돌리고, 며칠 뒤 그곳을 찾아간 정한은 피칠갑이 된 집을 발견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장면을 지나는 순간, 독자는 자신이 지금껏 읽어온 것이 어떤 이야기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소설이 준비한 첫 번째 변속일 뿐이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은 한 장르에 정착하지 않고, 방향을 꺾을 때마다 속도를 올리는 쪽을 택한다. 청년 실패담의 끈적하고 나른한 리듬을 지나, 창업 성공기로 빨라지다가, 어느 순간 서스펜스로 내달린다. 이런 변주는 이야기를 널뛰게 만들기 십상인데, 이 소설에서는 오히려 몰입감 있게 질주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앞부분에서 등장한 인물들과 그들이 짊어진 사정, 무심코 지나쳤던 규칙들이 뒤이어 벌어질 사건의 원인으로 촘촘히 꿰어져 있기 때문이다. 웃자고 읽은 대목들은 나중에 전혀 다른 의미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때 읽는 이는 뒤돌아볼 여력 없이 소설과 함께 앞으로 떠밀려 가게 될 것이다. · 은총 따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도 구원은 가능할까 빠르게 몰아치던 이야기는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호흡을 고른다. 서둘러 봉합하는 대신, 함께 걸어온 인물들 하나하나를 마지막까지 붙든다. 이 소설의 결말이 오래 남는 건, 300여 쪽을 지나며 보아온 인물들을 끝내 소모품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평생 현실에서 도망치기만 했던 정한이 마지막에 내리는 선택은, 쉽게 잊히지 않을 여운이다. 은총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도 구원은 가능할까. 작가는 그 물음에 자기 방식의 응답을 내놓는다. · “봉준호로 열고, 나홍진으로 달리고, 박찬욱으로 닫는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의 추천사는 북칼럼니스트 남궁민이 2026서울국제도서전 현장에서 직접 책을 구입해 읽은 뒤, 자신의 SNS에 남긴 긴 후기에서 비롯됐다. “야심 차다 느낀 건 ‘감히’ 이 소설은 한 권에서 봉준호로 열고, 나홍진으로 달리고 그 끝을 박찬욱으로 닫는다는 점이다. 세계의 붕괴를 그려내는데, 그 속도감이 가히 끝내준다고 할 만하다. 공포의 형태 또한 초자연적이거나 공포영화 같은 게 아니다. 눈에 보이는데 미지인 그런, 장르적으로도 도파민을 쏟아내게 만드는 공포. 봉준호의 장에서 블랙코미디란 이름으로 대충 가려뒀던 ‘죄’의 무게를 직시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소파에서 그대로 기립해 박수를 쳤다.” 출판사가 한 일은 진짜 언어들로 눌러 쓴 정성스런 후기를 발견하고 옮겨 실을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한 것이 전부다. 세 거장의 이름을 겹쳐 부르는 일은 한국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야심이지만, 그 야심이 실제 문장으로 완주되는 경우는 드물다. 영화 각본을 써온 작가는 사건의 속도나 쾌감에만 기대지 않고, 그 안에서 흔들리는 인물들의 마음까지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제 남은 건 하나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고, 그 규칙들이 왜 필요했는지를 확인하는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