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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4p
습습 하 · 6p 우리 안에 · 42p 엔조이 시티전(傳) · 104p 편의점의 운영 원칙 · 166p 김민수(학부재학생) · 206p 작가 후기 · 254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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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나만이 이곳에서 썩지 않고 살아 있는 중입니다. 쓰레기들 사이에 있으니 나 또한 거대한 쓰레기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쓰레기 같은 년. 그 사람이 내게 말한 대로입니다. 볼품없는 이 생은 통장 잔고가 0이 되는 순간 끝이 나고 말 것입니다.
--- p.25 「습습 하」 중에서 내가 저번에 공원에서 보았던 것을 이야기한다면, 상자를 갉아 먹고 초콜릿을 빼먹은 것이 쥐의 형태를 한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내는 분명 다시 불안정해지고 예민해질 것이다. 출산까지 아직 3개월이 남았다. 아직은 아내가 아무것도 몰랐으면, 불안할 일이 없었으면 한다. --- p.64 「우리 안에」 중에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랑 똑같은 경험을 한 유저는 아무도 없었어요. 제가 정체 모를 퀘스트를 수락해 버린 뒤로, 귀신이 나온다는 퀘스트의 모든 문제가 사라져 버린 거죠. 종료되기 직전의 게임을 살리기 위해 제가 자작극을 벌였다는 의견이 들끓었어요. --- p.123 「엔조이 시티전(傳)」 중에서 “이미 알고 왔겠지만 우리 점포는 전국에 있는 심령 스폿 중에서도 제일 흉악스러운 곳으로 유명해요. 해병대 출신이니, 유령의 집 알바 출신이니 하는 사람들 다 시켜 봤는데 하루 만에 줄행랑쳤어요. … 아무튼 본인이 겁 많다고 느끼면 다시 생각해 봐요.” --- p.170 「편의점의 운영 원칙」 중에서 “그럼 이 김민수는 누구지? 출석부에는 김민수가 한 명밖에 없는데? 사회학과 아니에요?” “사회학과 맞는데요, 계정 하나로만 접속하고 있어요. 저는 저 김민수라는 분이 동명이인 학우분인 줄 알았는데요….” 온라인 강의실 내에 정적이 흘렀다. 교수도 입을 닫았고 진짜 김민수도 입을 닫았다. --- p.212 「김민수(학부재학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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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습 하」
수희와 룸메는 1년 동안 옆집 사람을 속였다. 함께 내는 전기 요금 액수를 실제보다 부풀려 매달 5000원씩을 챙겨 왔던 것이다. 어느 날 고지서가 옆집 사람에게 먼저 넘어가자 수희와 룸메는 옆집에 몰래 들어가 고지서를 빼 오기로 한다. 가까스로 무단 침입을 하고 보니 멀끔한 옆집 사람은 쓰레기장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고지서를 찾기는커녕 옆집에 갇히게 되고, 옆집 사람이 청소에 손을 놓은 이유와 집 안을 돌아다니는 벌레들의 용도를 알게 되면서 충격에 휩싸인다. 그 사이 옆집 사람의 퇴근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온다. 「우리 안에」 경찰인 나는 도보 순찰 중에 성인 발보다 큰 쥐가 고양이를 뜯어먹는 모습을 목격한다. 얼마 뒤 아이들이 쥐들에게 얼굴과 목을 뜯겼다는 신고, 성인 남성이 머리와 목을 공격당했다는 신고가 연이어 들어온다. 날로 커져 가는 ‘괴물 쥐’는 인간의 먹거리와 인간 자체를 노리며 활동 반경을 넓히는 데 반해 사람들은 바깥 활동을 줄이는 것 이외의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 사태가 전국적인 규모로 커지면서 임신 중인 아내와 함께 집 안에 고립된 나는 가족과 가족의 보금자리여야 할 집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엔조이 시티전(傳)」 가상현실 RPG 〈엔조이 시티〉의 플레이어인 게임 스트리머 춘향은 어느 날 게임 속 ‘남원 마을’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는다. 문제의 퀘스트에 진입한 춘향은 갑자기 어두워진 건물 안에서 수상한 기척과 소름 끼치는 소리를 듣는다. 해당 플레이 영상 조회 수가 치솟고 엔조이 시티의 플레이어가 늘어났음에도 춘향은 그 섬뜩한 퀘스트를 마저 수행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춘향을 부르기라도 하듯 전원을 꺼 둔 게임 컨트롤러가 계속 진동하고, 다시 남원 마을로 돌아간 춘향은 수상한 기척의 주인공과 그의 진짜 목적을 향해 다가가게 된다. 「편의점의 운영 원칙」 전국에서 가장 흉악한 심령 스폿으로 유명한 편의점의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된 정희는 점장에게서 운영 원칙이 적힌 수첩을 받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원칙들의 내용은 악명을 떨치는 편의점답게 대체로 불길하다. 정체가 수상한 샌드위치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연이어 상대한 정희는 함께 일하게 된 동료 아르바이트생을 만나 한숨을 돌리지만, 숨겨진 운영 원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목숨을 건 싸움은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김민수(학부재학생)」 제인이 다니는 대학교의 최근 화젯거리는 ‘김민수(학부재학생)’다. 출석부에 존재하지 않는 그는 온라인 강의실 링크를 바꾸고 계정을 차단해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늘 꺼져 있던 김민수 계정의 화면이 켜진 것을 봤다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김민수는 기괴할 정도로 목을 꺾은 채 카메라를 빤히 응시했다고 한다. 이윽고 제인이 듣는 강의에도 김민수가 나타나자 제인의 남자친구 현준은 흥미 본위로 접근하려 하고 제인은 그러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철없고 의존적인 현준과 헤어지려는 제인의 마음을, 정체가 불분명한 존재인 김민수가 부추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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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익숙한 장르, 호러에 바치는 헌사
호러라는 장르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우리는 무서운 이야기에 익숙하다. 괴담을 다루는 아동 도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사랑받는다. 여름만 되면 극장 개봉작부터 TV 예능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호러 요소가 강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주목을 받았다. 일부는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기도 했다. 《호러》는 안전가옥 앤솔로지 가운데 장르명을 제목으로 내건 첫 번째 책이다. 이 제목은 두려움으로 쾌감을 이끌어 내는 매력적인 장르에 대한 헌사이자, 공포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독자들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표지는 마치 호러라는 장르 그 자체 같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가오는 위협을 닮은 검은색과 붉은색은 안전한 경계란 없다는 듯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 예측하지 못했던 위기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다가오는 섬뜩한 순간. 《호러》에 수록된 다섯 작품을 관통하는 장면이다. 무심한 침입자 뒤로 드리워진 세계의 그림자 〈습습 하〉는 “자신의 깊은 곳에 무언가가 들어오고 나갈 수 있음을” 모르는 자가 여성에게 함부로 입힌 피해를 이야기한다. 〈우리 안에〉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사는 작은 동물이어야 할 쥐가 인간의 집 안을 노리는 커다란 맹수로 돌변한다. 〈엔조이 시티전(傳)〉 속 게임에 나타난 귀신은 게임 내 세계뿐 아니라 현실에도 영향을 미친다. 〈편의점의 운영 원칙〉의 무대인 편의점은 이승과 저승 사이의 존재가 수시로 출몰하는 곳이다. 〈김민수(학부재학생)〉에 등장하는 김민수는 어느 과에도 존재하지 않는 학생인데 여러 강의실에 나타남으로써 소문을 몰고 다닌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작품들 속 위기는 이 세상을 비춘다. 우리는 남녀 간의 성적 문제가 일어날 때 여성이 더 큰 타격을 입는다는 사실을 이제 막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부족한 사회의 청년들은 업무 환경이 매우 나쁜 일터에 자원해서 들어간다. 온라인 게임이나 온라인 강의 등을 통해 직접 만나지 않고도 관계를 맺게 되는 사람이 늘어 가는데 그들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또한 비대면 연결을 가능케 하는 통신망은 물리적 손상으로 순식간에 마비될 수 있다. 뒤틀린 거울에 비치는 통렬한 진실 《호러》 수록작들이 다루는 공포는 이처럼 이중으로 작용한다. 장르 특유의 짜릿함을 안기는 한편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다. 반영된 이미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호러는 거울이다. 기괴함을 통해 보여 준다는 점에서는 뒤틀리거나 금이 가 있는 거울이다. 우리는 때로 왜곡된 상이 맺히는 거울을 굳이 응시해 그 안에만 비치는 무언가를 들여다본다. 누군가의 기쁨이 무엇인지가 그 사람의 일부를 드러내듯이 누군가의 두려움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두려움을 통해 상대방이 속한 세상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사람들의 생존과 안녕을 방해하는 것, 그리하여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 그것 주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처지, 그러한 처지를 방치하는 사회 구조. 일그러지고 부서져 버린 반사경 너머에 그토록 날카로운 진실이 있다. 고통스러운 광경에 눈 돌리지 않은 독자들이 자연스레 받아 안는 통렬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