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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와 달리’ 귀신을 볼 수 없는 게 아니라, ‘엄마가 그렇듯이’ 귀신을 볼 수 없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사뭇 다른 사실이지만 그렇다. 엄마는 신내림을 받은 적도 없고 모시는 신도 없다. 귓가에 은밀한 이야기를 속삭여 주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존재도 없다. 교류하는 동료 무당도 없고 신어머니나 신 스승 따위도 없다. 무엇보다 엄마는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건 가장 가까이에서 봐 온 내가 확신하는 사실이다. 엄마는 기도를 하지도 않고, 어떤 금기나 행동 양식을 따르지도 않는다.
--- p.14 나는 죽을 고비를 넘겨 본 적이 없고, 그러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의 심정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지 않기로 하고 손을 뻗어 한겸의 손등을 감쌌다. 어차피 듣길 원하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응. 엄마 말이 맞았네, 너 생명선 존나 길다, 나보다 오래 살아, 그러니까 걱정 그만하고 장수 라이프를 즐겨, 불안과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말해 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어떤 장면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 p.29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좋아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때로는 미움받고 싶었다. 바라건대 그 미움은 질투와 경외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면 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사람. 속내를 읽히지 않는 사람. 뒤집어 말하자면, 결코 무엇도 들키지 않는 사람. --- p.48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킥킥 웃었다. 그러더니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있는 나에게 강권했다. “안 웃겨?” “웃을 일이 많다는 건 좋은 거지……(너나 웃어).” 젓가락으로 밥을 집다가 멈칫하고 내려놓았다. 숟가락을 들어밥을 퍼먹었다. 그러자 한겸이 또 쪼갰다. 사람이 잘 웃는 걸 미워할 생각은 없다. --- p.64 “친구가 죽어 가요!” “도와주세요!” 울음 섞인 절규.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한겸을 해변으로 끌고 간다. 한겸의 팔다리에 황금빛 모래가 다닥다닥 달라붙는다. 누군가 심폐소생술을 시작한다. 한겸의 얼굴은 창백하다. 해파리에게 쏘인 곳에서부터 금이 간 다리가 경련한다. --- p.86 몇 번이나 죽을 위기에 처하고서도, 어째서 두려워하지 않는지. 몸을 사리기는커녕 왜 더 적극적으로 위험을 향해 달려드는지. 누구보다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살아온 주제에 어떻게 아직까지도. --- p.98 내가 그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돌아가야 하는 대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 p.145 “이거 봐. 섬세하잖아. 나는 그 두 개가 어떻게 다른지도 몰라.” 한겸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섬세하다는 사실은 너를 특별하게 만들어. 너를 특별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사과하지 마.” --- p.154 “내가 뭘 알고 하는 소리라면, 그러면 어떻게 할 거야? 솔직히 인정해, 내가 하는 말은 대부분이 헛소리야. 그런데 이번만큼은 헛소리가 아닐 수도 있어. 너랑 만난 뒤 처음으로 뭘 진짜로 알고서 말하는 중이라면. 내가 정말…… 너의 죽음을 봤다면. 그래서 너를 바다에 가지 못하게 막고 싶다면.”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래도 갈 거야?” 한겸은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 pp.165-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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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결국 어디로든 움직일 것이다” 열아홉 우리들이 통과하는 가장 뜨겁고 애틋한 여름 담담한 문장으로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 온 이로아 작가가 신작 『너를 미워했던 여름』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연제와 한겸의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를 끌고 간다. 세상은 연제의 엄마를 ‘무당’이라고 부르지만, 연제는 엄마가 진짜 무당이라고 믿지 않는다. 빠른 눈치와 그럴듯한 말, 스스로 만들어 낸 세계관으로 사람들의 불안을 다뤄 온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가 혼수상태에 빠진 뒤, 연제 앞에 천사가 나타나 ‘엄마의 재주’를 빌려주겠다고 말한다. 이후 연제는 친구 한겸의 과거와 미래에 놓인 죽음의 순간들을 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한겸은 스무 살이 되면 비로소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어 온 인물이다. 한겸의 엄마는 아들이 지금까지 무사했던 것이 부적 덕분이라고 믿고, 연제는 그 간절함을 외면하지 못해 문양만 흉내 낸 가짜 부적을 건넨다. 하지만 한겸에게 닥칠 죽음이 선명해질수록 연제가 믿어 온 세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엄마의 ‘일’이 사실은 진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가짜 부적으로는 한겸이 스무 살을 맞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한겸을 죽음에서 구하고 싶은 마음과 그 죽음에 얽혀 있는 엄마를 향한 마음이 서로 엇갈리면서 연제는 끝내 답을 찾지 못하고, 미안함은 차츰 미움의 얼굴을 띠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본다는 설정은 한 사람을 살리고 싶으면서도 원망할 수밖에 없는 마음, 외면하려 해도 다시 돌아보게 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연제의 여름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로 채워지고, 연제는 가장 피하고 싶었던 선택 앞에서 오래 머뭇거린다. 『너를 미워했던 여름』는 독특한 소재와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소설은 지금의 선택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거라는 믿음 속에서 소중한 사람과 자신의 고통, 불안까지 외면하려는 연제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 낸다.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선택 앞에서 자신을 몰아세우기보다 때로는 일어날 일을 받아들이며 오늘을 견뎌 내도 괜찮다는 용기를 청소년 독자에게 전한다. “흉내를 내는 일에 언제나 이해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아 외면했던 시간, 뒤늦게 도착한 이해 소설 속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림 속 성모의 오른팔은 정면에서 보면 부자연스럽게 길어 보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관람객의 위치와 시선을 고려한 의도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연제는 그 설명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사람들은 왜 성모의 한쪽 팔이 그저 길다고 생각하지 못할까. 왜 낯설고 이상한 것을 볼 때마다 반드시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려 할까. 그 질문은 엄마를 향한 연제의 마음으로 이어진다. 연제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엄마를 보아 왔고, 그래서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고 믿었다. 귀신도 믿지 않으면서 무당 행세를 하고, 불안한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 엄마의 일이 연제에게는 오래도록 부끄럽고 불편했다. 그러나 엄마의 ‘재주’를 빌려 가짜 무당 활동을 하게 되면서 연제는 자신이 알고 있던 엄마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엄마가 숨겨 온 힘, 그 힘으로 감당해 온 선택, 그리고 그 선택 안에 담긴 마음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너를 미워했던 여름』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일이 그 사람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연제는 엄마를 미워하고 부끄러워했던 시간을 지나 끝까지 보려 하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을 뒤늦게 마주한다. 이 작품은 그 늦은 이해의 순간을 통해 쉽게 단정했던 사람을 다시 바라봄으로써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스무 살이 된 한겸을 보고 싶었다” 우리는 무사히 스무 살이 될 수 있을까? 연제와 한겸에게 스무 살은 단순한 나이가 아니다. 한겸에게 스무 살은 엄마의 불안과 부적에 묶여 있던 시간을 지나 비로소 제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작점이다. 연제는 그런 한겸을 보며 처음으로 그의 무사한 내일을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특히 여름 방학의 끝에서 두 사람이 함께 바다로 향하는 장면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겸과 누군가의 내일을 지키고 싶어진 연제의 마음이 만나는 순간이다. 미워하고 후회하고 외면하고 싶었던 시간을 지나, 연제와 한겸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음 순간을 향해 나아간다. 마지막까지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감을 놓지 않는 『너를 미워했던 여름』은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서 흔들리던 아이들이 끝내 자신의 선택으로 한 걸음 내딛는 이야기다. 과연 두 사람은 무사히 스무 살이 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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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자신이 한 뼘 자랐다는 사실을 징그러워하는 소년이 있다. 거짓과 아이러니로 가득한 소년 연제의 삶. 복잡한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사건과 관계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연재의 소년기는 어른의 기준에서도 녹록지 않은 난제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제는 끝끝내 성장한다. 설령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라도 후회와 자책을 감수하고 선택하는 길로 나아간다. 이런 주인공을 응원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잔인한 생의 모순을 견뎌 내며 지난한 시기를 헤치는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을 울리는 법이니까. 마지막 페이지에서 전해지는 생생한 맥동은 무사히 스무 살이 된 연제가 독자에게 보내는 애틋한 인사일 것이다. 그 인사에 새겨진 귀하고도 어려운 선물과도 같은 메시지는 오래도록 곱씹어볼 만하다. - 허진희 (『독고솜에게 반하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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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비로소 감각되는 삶의 순간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우리가 함께 살아 있는 지금 이 찰나의 경이를 가장 잘 이해하는 무엇이다. 이야기는 삶과 죽음이 필연적으로 교차하는 순간의 경이를 놀랍도록 다정하고 섬세하게 그려 내고 있다. 나조차 나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자주 혼란스러웠을 모든 이에게, 조용히 이 이야기를 권하고 싶다. - 강동희 (어린이청소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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