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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묵돌
사유와공감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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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도넛맨
르코르뷔지에 할머니가 와도
그때 롯데리아에서 우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폭렬! 여고생
아무리 레서판다라고 해도 안 돼
엄마특
생전 고인의 개쩌는 프리킥
그물, 덫, 발사대기, 포획
반응장갑소녀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李墨乭, 김리뷰

1994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나 부산과 대구에서 자랐다. 현재는 서울 관악구에서 십이 년째 살고 있다. 수필집 『역마』, 소설집 『시간과 장의사』, 『모두가 회전목마를 탄다』, 시집 『적색편이』와 장편소설 『초월』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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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116*182*13mm
ISBN13
9791194531432

책 속으로

“뭐라고?” 민섭 군은 고막에 패티 기름이 낀 듯 굼뜨게 대꾸했다. 그는 내가 단지 넋이 빠져서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
“결혼하자고. 여기서.”
“뭐라고?”
“롯데리아에서 결혼하자고.”
“……뭐라고?” 민섭은 그제야 고개를 쳐들고 나를 응시했다. 엎드린 채로 있던 나의 정수리가 그의 시선으로 뜨거워졌던 그때 그 기억.
--- p.70

그녀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금방 뽑아낸 신선한 척추를 갈아버렸다. 그러고 나서 즉사한 남자의 사체를 레이저로 소각해 버리는 데까지 십 초 남짓이 걸렸다. 문득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대여섯 명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뿔싸, 이런 실수를! 이래서야 킬러 실격이군.
그녀는 등뼈에서 날개가 솟아나기 무섭게 하늘로 날아가 사라졌다. 새벽에 가까운 시간 홍대에서 술에 취한 채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민진이 사라진 궤적을 좇아 오랫동안 하늘을 응시했다.
--- p.116~117

“진짜, 진짜 귀여워…… 사육사 선생님은 저런 거 매일 보시나요?” 레서판다의 귀여움에 뇌가 절여진 젊은 여자가 묻는다.
“네. 원치 않아도 매일 보지요.” 내가 대답한다.
“아. 너무 부럽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의 목소리.
“사육사 선생님도 좋아하세요?”
“네?”
“레서판다, 좋아하세요?”
“아,” 나는 뒤늦게 질문을 이해하고 나서 대답한다. “정말 좋아합니다.”
--- p.142

살다 보면 지구온난화로 섬이 잠길 수도 있고, AI의 발전으로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유튜브로 잘 나가던 친구가 자살을 할 수도 있고, 몇 년을 만났던 여자 친구가 더 나은 신랑감을 찾아 이별을 통보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 그 프리킥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다른 게 다 변하고, 깎여나가고, 이내 사라지더라도 그 프리킥만큼은 잊힐 수 없다. 그것만큼은 잊혀선 안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 p.195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버릇하는 효진은, 이날 수업 시간에도 별생각 없이 창밖 운동장이 있는 쪽을 바라보다가 돌연 기함할 듯이 놀랐다.
“으아악.”
덩달아 놀란 주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효진은 교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후 고개를 쭉 내밀어 보고서는 말했다.
“탱크야.”
“탱크라고?” 옆에 있던 아이가 물었다.
“민주가 탱크를 몰고 왔어.” 효진이 대답했다.
--- p.253

출판사 리뷰

“나는 내 생애 단 한 번 찰 수 있었던 그 프리킥을 생각한다.”

냉소적 유머 뒤에 감춰진 인간적 애정
복잡다단한 모든 삶의 궤적에 부치는 연민과 응원의 메시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간상에 따르면 우리는 매일 성실하게 노동하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성실함의 대가는 어디에서도 보장되지 않으며, 때로는 성실하게 살아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불확실한 하루하루를 기계처럼 살아가는 동안 인간은 점차 ‘나’라는 존재의 고유성을 잃어간다.
이 소설집에는 바로 그런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수의 취향을 좇다가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과거의 작은 영광을 놓지 못한 채 까마득한 시간 속에 머물기도 한다. 시대의 변화와 노동의 의미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잃고 방황하며, 사람 사이의 만남과 이별마저 사회적 조건에 좌우되는 현실 앞에서 좌절한다. 〈르코르뷔지에 할머니가 와도〉의 한 대사처럼 인간은 ‘살아가기 위한 기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기계, 즉 AI가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한 시대에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다움이 희미해져 가는 이 시대,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을까.
작가는 거대한 부조리 아래 놓인 개인의 삶 한가운데로 시원한 프리킥을 날린다. 때로는 모두를 환호하게 만든 축구 경기의 ‘개쩌는’ 골로, 때로는 중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군용 탱크차로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뒤흔든다.
농담 같은 소재와 냉소적인 유머로 가득한 이 소설들이 끝내 건네는 메시지는 생의 복잡미묘함에서 비롯된 뜻밖의 낙관일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그 인물들은 어딘가에서 이 냉혹한 사회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특별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하루가 반복되더라도 그 안에는 분명 단순하지 않은 순간이 있다. 그 복잡다단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자기 삶에 남아 있는 작은 희망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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