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숲의 경계를 넘어, 동학과 아류(亞流)
들어가며 제1장 두 개의 세계 1. 멸망해 가는 세계와 태어나는 세계 히스토리 1 : 돌의 마음을 찍다 2. 민주주의의 미래 : 다수결과 합의 형성 하지만 정말 그래야만 할까요? 히스토리 2 : 길거리에서 커피를 팔다 3. ‘TWO LOOPS’의 다리를 거꾸로 건너다 용의 모델 히스토리 3 : 한국을 한 바퀴 걷다 제2장 숲이 인류를 구한다 1. 숲과의 만남 히스토리 4 : 시의회 의원에 출마하다 2. 자본주의에서 ‘숲본주의(森本主義)’로 3. 민주주의에서 ‘숲주주의(森主主義)’로 다양성 지속가능성 자연성 주체성 4. 하류 의식에서 상류 의식으로 5. 숲의 사상이 인류를 구한다 제3장 1000년 뒤의 세계를 위해 1. 태어나기 전에도 나는 있었다 2. 1000년 후의 세계를 위한 배움 3. 1000년 후의 세계를 위한 로컬 커뮤니티와 네트워크 제4장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사례 1 : NPO법인 이토나미 사례 2 : 이토시마 푸드 포레스트 사례 3 : 커먼즈 빌리지 사례 4 : 일반사단법인 커먼 포레스트 재팬 사례 5 : 지역화폐 이토모 부록 :1. 한일 합동회사 〈아류(亞流)〉의 설립과 활동 2. 이토시마 신화 순례 3. 질문으로 다시 읽기 맺으며 역자 후기 발문 |
|
지금까지 우리가 훼손해 온 세계 속에서, 그 훼손된 세계와 함께 걸으며, 세계와 더불어 우리 자신도 조금씩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저는 그 과정의 끝자락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생의 과정 속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으며, 바로 그 재생의 과정 속에 다음 세계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눈앞에는 두 개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멸망해 가는 세계와 새롭게 태어나려는 세계, 다수결의 세계와 합의의 세계, 환경 파괴의 세계와 환경 재생의 세계가 그것입니다.
--- p.53 이 책의 제목인 ‘우리는 다시 숲이 된다’는, 제가 숲에 들어가 온몸으로 체감했던 느낌에서 나온 말이며, 지금도 숲과 함께하는 활동 속에서 가장 소중하게 붙들고 있는 생각입니다. 처음 저는 숲이 황폐해졌으니 다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숲 안에서 마주한 것은 전혀 다른 진실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생명의 질서가 살아 있었고,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힘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숲 앞에서 ‘인간이 숲을 재생시킨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오만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만들어 낸 쪽은 숲이 아니라 인간이며, 진정으로 재생되어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 p.85 숲본주의는 ‘경제와 사회의 풍요’, ‘인간의 행복’, ‘자연과 생명의 풍요’를 모두 충족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시작점이 바로 ‘자연과 생명의 풍요’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숲과 같은 마음이 되면 자연의 풍요로움이 곧 인간의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면 자연과 생명을 살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찾게 되고, 결과적으로 경제와 행복, 자연의 풍요가 모두 채워지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 p.137 저에게 한국 도보 순례는 ‘사죄(참회)’가 가장 큰 주제였습니다. 과거 식민 지배를 자행한 국가에서 태어난 이로서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한국 이웃들에게 안긴 상처와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며, 이에 대해 반성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미래 사회의 주춧돌로 삼는 것이 제 순례의 목적이었습니다. --- p.183 이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는 어느 특정한 한 사람이 영험한 샤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영적인 샤먼이며, 거대한 하늘이자, 푸른 숲이며, 맑은 샘물입니다. 우리가 딛고 선 모든 자리가 거룩한 성지이며,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바위문입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대자연을 공경하는 마음을 품고, 숲과 대지를 소중히 여기며 간절히 기도한다면, 바로 그곳에서부터 굳게 닫힌 바위문이 열리고 온 우주가 깨어나며 생명의 통합과 위대한 재생이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마음의 바위문을 활짝 열어젖힙시다! --- p.194 |
|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 불평등과 공동체의 해체, 민주주의의 양극화는 오늘날 서로 다른 분야의 문제처럼 논의된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숲이 된다』는 과연 이 위기들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지 되묻는다. 이 책은 위기의 원인을 “환경정책 부족”이나 “제도 개혁 지연”보다 더 근본적으로, 인간과 자연, 경제와 생명, 개인과 공동체를 분리해 생각하게 만든 문명의 사고방식 자체가 복합위기의 밑바닥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숲의 바깥에서 숲을 보호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오인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숲을 대상으로 두고 이용하고 관리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숲의 일부로 살아가는 방식-다시 말해 순환과 관계를 닮아 가는 방식-을 회복해야 한다. 이때 “우리가 숲이 된다”는 표현은 인간이 자연으로 되돌아가거나 문명 이전으로 회귀하자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사회, 경제의 작동 방식이 숲의 관계망과 순환 논리를 닮도록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요청에 가깝다. 숲이 훼손되면 인간에게 필요한 생존 조건이 무너지고, 그 무너짐은 다시 인간의 소외와 불안, 공동체의 붕괴로 되돌아온다. 이 책은 바로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자연을 외부의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의식”과 그 의식을 증폭시키는 “경제·정치의 구조”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이 책은 이론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방식이 아니라, 저자의 삶과 실천에서 출발하는 질문의 확장을 통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원서의 ‘들어가며’에서 소개되는 유기농 카페 바닥 이야기에는 책 전체의 사고방식이 압축되어 있다. 숲에서 베어 온 간벌재라도 규격에 맞지 않으면 버리는 것이 효율적인 현대 산업사회의 기준이라면, 저자는 그 재료를 최대한 살려 쓰는 방식을 선택한다. 판재의 폭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은 흠이 아니라 숲의 다양성과 시간의 흔적이 된다. 숲은 표준화와 상품성의 언어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존재들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책이 제안하는 문명전환의 출발점 역시 “표준에 맞지 않는 것을 폐기하지 않는 태도” 같은 감각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책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환경위기란 단지 자연을 복구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연은 스스로 환경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는 인간이 자연을 분리된 대상으로 바라보고, 이용 가능한 자원으로 취급해 온 결과다. 그렇다면 훼손된 자연을 ‘조금’ 되살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의 욕망과 의식이 형성되는 방식, 그 욕망을 확대 재생산하는 경제와 정치의 구조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단순한 상호의존으로만 설명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숲과 물, 흙과 공기, 미생물의 순환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생태계의 일부다.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은 외부 환경을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기반을 허무는 일이다. 이 관점에서 환경보호는 선의나 희생이 아니라 확장된 자기 자신을 돌보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인식은 커먼즈(공유지) 이해에서도 드러난다. 저자에게 커먼즈는 단지 “모두의 것이니 모두가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윤리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도 숲이고 물이고 흙이라는 감각-즉 공동의 생존 기반을 분리하지 않는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숲과 산, 물과 흙을 돌보는 행위는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제스처가 아니라 더 큰 자기 자신을 보살피는 행동이 된다. 문화와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환경담론을 “착한 행동”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공동의 삶의 구조를 재구성하려는 문제로 확장한다. 그 중심에 저자의 독창적 제안인 ‘숲본주의(森本主義)’와 ‘숲주주의(森主主義)’가 있다. 숲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자본과 금융의 증식을 경제의 중심에 두는 것과 대비하여, 생명을 낳고 유지하는 숲과 생태계를 경제의 근본으로 삼자는 발상이다. 돈은 물과 공기, 흙과 미생물 같은 생존 조건을 ‘배분’하기 위한 수단일 뿐 생명 자체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따라서 경제의 성과는 돈의 증가가 아니라 생명의 증가로 판단되어야 한다. 다만 이 제안은 현재의 경제를 단숨에 폐기하고 완전히 다른 체제로 옮기자는 선언만은 아니다. 기존 경제 안에서 생명을 늘리는 흐름을 만들고, 그 밀도를 조금씩 높이는 전환 전략을 강조한다. 지역화폐 ‘이토모’ 같은 실험은 “어떤 화폐를 쓰느냐”보다 “경제활동이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방향으로 흐르느냐”를 더 본질적 기준으로 둔다. 숲주주의는 현대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논의와 연결된다. 다수결 중심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지만, 다수의 욕망을 표준으로 만들고 소수와 새로운 가능성을 배제하기 쉽다. 정치가 갈등을 조율하기보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경쟁으로 굳어질 때 민주주의는 오히려 재생산의 장치가 된다. 저자는 이를 합의형 민주주의로 보완하고, 더 나아가 그 원리를 생태계의 관점에서 확장한다. 숲주주의란 인간이 자신을 숲과 생태계의 일부로 인식하고 생존 기반 전체를 고려하며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 아닌 존재가 직접 투표할 수는 없더라도, 인간이 자신을 생태계의 일부로 자각하는 순간 정치의 시야가 자연스럽게 단기적 이해관계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다양성은 관용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창조성과 생존력을 좌우하는 조건이 되고, 지속가능성은 ‘유지’에 머물지 않고 생명의 ‘재생’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책이 지속가능성을 비판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지속가능성은 소비를 줄이고 체제를 덜 파괴적으로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의 재생 능력이 약화된 상태에서는 절약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저자는 원금과 이자의 비유를 든다. 자연이 한 해 동안 새로 만들어 내는 자원의 범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지속가능이라면, 현재의 문명은 이자를 넘어 원금까지 소진하고 있다. 그러니 미래를 보장하려면 절약의 윤리만이 아니라 숲과 생물다양성이라는 원금을 회복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재생의 사회’를 제안한다. 인간의 활동이 생명을 줄이는 방향이 아니라 생태계의 회복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논의의 바닥에는 시간의 문제, 즉 우리가 무엇을 미래라고 부르는지, 어떤 시간 단위로 선택을 판단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놓여 있다. 경제는 분기별 실적에, 정치는 다음 선거에, 개인은 즉각적인 성과에 매달리기 쉽다. 그러나 숲은 인간에게 다른 시간의 척도를 요구한다. 오늘 심은 나무와 회복한 토양은 백 년, 천 년 뒤 다른 생명의 삶을 지탱할 수 있다. 숲을 가꾸는 행위는 완성된 결과를 당장 눈앞에서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애를 넘어서는 시간 속에 참여하는 기쁨이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천 년의 시야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자는 논리가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생명을 지키는 방향을 선택하자는 역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숲이 된다』는 한국어판에서 동학과의 대화를 확장한다. 동학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고, 모든 존재를 존중하며, 삶의 현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려는 생명사상의 자원을 제공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숲이 된다”는 제목은 인간이 숲을 관리하거나 구하는 주체라는 위치에서 내려와, 자신도 숲과 분리될 수 없는 생명임을 자각하는 과정을 뜻한다는 점에서 동학의 정신과 맞닿는다. 이 책은 일본의 숲 재생과 지역경제 실험이 한국 동학의 생명사상과 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즉 숲본주의와 숲주주의가 특정 지역의 실천에서 출발해 동아시아의 역사적 화해와 평화의 문제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저자는 자신을 연구자가 아니라 실천가로 밝힌다. 따라서 이 책은 “완성된 설계도”라기보다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에 가깝고, 이미 시작된 현장을 보여 주는 입문서에 가깝다. 숲의 원리를 사회의 언어로 번역하고, 다른 실천들과 연결하는 능력,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강점이다. 생태와 경제, 민주주의와 커먼즈, 개인의 행복과 지역 공동체, 장기적 시간과 미래세대, 한일 관계와 동학을 하나의 생명문명이라는 지평에서 다시 연결한다. 그 결과 이 책은 단순한 환경서가 아니라, 경제와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사상서이며, 개인의 삶을 천 년의 미래와 연결하는 실천철학서가 된다. 결론은 선명하다. 숲은 하나의 중심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질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면서 다른 존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망이다. 죽은 나무는 흙이 되고, 흙은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 어느 한 존재의 끝은 다른 존재의 시작이 된다. 저자가 숲에서 발견한 문명의 원리도 바로 이 순환과 상생에 있다. 그리고 그 순환과 상생을 우리 사회의 방식으로 번역할 때, 우리는 생명을 덜어내는 문명이 아니라 함께 되살아나는 문명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다시 숲이 된다』는 바로 그 전환의 가능성을,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실천들’과 ‘나침반 같은 방향’으로 독자에게 건넨다. |
|
이 책의 저자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동학의 성지들을 여행했습니다. 여행을 마친 후 저자는 나무와 만나고(接林) 한국과 만나고(接韓国) 동학을 만나는 것(接東學)을 삶의 중요한 가치와 실천 전략으로 두고 살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정신 세계는 재해석 과정을 거치면서 시대와 소통하고 시대 정신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동학의 중요한 가치인 경물(敬物)이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에게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공경하고 모셔야 할 한울님입니다. 그는 숲을 통해 그 안에서 미래를 읽는 새로운 길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그것을 숲이 중심이 된 사회, ‘숲본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자본주의가 아닌 숲본주의 사회는 세상 만물이 서로 공경하고 모시며 생명을 주고받습니다. 그는 동학을 우리 시대의 시대 정신으로 살려낸 실천가입니다. - 김재형 (인문 공동체 〈이화서원〉 대표)
|
|
갑자기 목구멍으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오며 눈앞이 흐려졌다. 숲과 한국이 삶의 화두라는 이 조용한 젊은 일본 남자.
그는 내게 숲과 우정과 “살아라!”라는 동터올 새로운 문명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제 후지몽의 꿈은 내 꿈도 되었다. 한국의 살림이스트가 일본의 생명 평화 생태운동가에게서 받은 가장 큰 삶의 선물이었다. 후지몽이 준 선물을 이 불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살아갈까를 고민하는 한국의 모든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내가 후지몽의 비전과 그의 공동체에서 느꼈던 진정성, 감동, 셀렘을 한국의 독자들도 그의 책을 통해 깊이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 책을 온 마음으로 추천한다. - 현경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 명예교수,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