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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대화 (모리스 블랑쇼 선집 5)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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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모리스 블랑쇼 선집』을 간행하며 4
메모 13

1부 | 다층적인 말-문자언어 41
I·사유와 불연속성의 요구 43
II·가장 근원적인 질문 58
III·말하기, 그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88
IV·위대한 거부 104
V·미지인에 대한 앎 138
VI·말을 붙잡기 158
VII·세 번째 장르의 관계-지평 없는 인간 172
VIII·단절-리만의 표면 법칙에서처럼 189
IX·다층적인 말 198

2부 | 경험-한계 203
I·헤라클레이토스 205
II·척도, 탄원자 225
III·비극적인 사유 233
IV·단언 (욕망, 불행) 256
V·파괴할 수 없는 것 297
Ⅵ·니힐리즘에 관한 고찰 325
Ⅶ·지옥에 관한 사색 404
Ⅷ·망각, 비-이성 450
Ⅸ·한계 - 경험 466
Ⅹ·분석하는 말 526
ⅩII·무신론과 글쓰기 휴머니즘과 위기 559
ⅩIII·시대의 변화에 대하여: 회귀의 요구 595

3부 | 책의 부재-중성적인 것 파편적인 것 631
Ⅰ·최종 작품 633
Ⅱ·잔혹한 시적 이성 (맹렬한 비상에의 욕구) 647
Ⅲ·르네 샤르와 중성의 사유 657
Ⅳ·조각난 말 672
Ⅴ·망각하는 기억 682
Ⅵ·밤처럼 광막한 690
Ⅶ·말은 오랫동안 길을 가야 한다 707
Ⅷ·비트겐슈타인 문제 719
Ⅸ·A rose is a rose… 734
Ⅹ·아르스 노바 744
ⅩI·아테네움 755
ⅩII·낯섦 효과 772
ⅩIII·영웅의 최후 787
ⅩIV·서술의 목소리 (“그”, 중성) 810
ⅩV·나무다리 (반복, 중성) 827
ⅩVI·다시 한번 문학 845
ⅩVII·놀이하는 내일 862
ⅩVIII·책의 부재 892

옮긴이 해제 | 호명의 글쓰기-바깥으로의 초대 915
『무한한 대화』를 읽는 두 개의 열쇠-‘바깥’과 ‘서술하는 목소리’ 919

저자 소개 4

모리스 블랑쇼

관심작가 알림신청
 

Maurice Blanchot

1907년 프랑스 켕 출생. 2003년 이블린에서 사망. 젊은 시절 몇 년간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것 이외에는 평생 모든 공식 활동으로부터 물러나 글쓰기에 전념하였다.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철학 · 문학비평 · 소설의 영역에서 방대한 양의 글을 남겼다. 문학의 영역에서는 말라르메를 전후로 하는 거의 모든 전위적 문학의 흐름에 대해 깊고 독창적인 성찰을 보여 주었고, 또한 후기에는 철학적 시론과 픽션의 경계를 뛰어넘는 독특한 스타일의 문학작품을 창조했다. 철학의 영역에서 그는 존재의 한계 · 부재에 대한 급진적 사유를 대변하고 있으며, 한 세대 이후의 여러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1907년 프랑스 켕 출생. 2003년 이블린에서 사망. 젊은 시절 몇 년간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것 이외에는 평생 모든 공식 활동으로부터 물러나 글쓰기에 전념하였다.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철학 · 문학비평 · 소설의 영역에서 방대한 양의 글을 남겼다. 문학의 영역에서는 말라르메를 전후로 하는 거의 모든 전위적 문학의 흐름에 대해 깊고 독창적인 성찰을 보여 주었고, 또한 후기에는 철학적 시론과 픽션의 경계를 뛰어넘는 독특한 스타일의 문학작품을 창조했다. 철학의 영역에서 그는 존재의 한계 · 부재에 대한 급진적 사유를 대변하고 있으며, 한 세대 이후의 여러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동시에 그들과 적지 않은 점에서 여러 문제들을 공유했다.

주요 저서로는 『토마 알 수 없는 자』, 『죽음의 선고』, 『원하던 순간에』, 『문학의 공간』, 『도래할 책』, 『무한한 대화』, 『우정』, 『저 너머로의 발걸음』, 『카오스의 글쓰기』, 『나의 죽음의 순간』, 『기다림 망각』『정치평론』 등이 있다.

모리스 블랑쇼의 다른 상품

서울대학교에서 2007년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2018년 「모리스 블랑쇼와 탈주체의 글쓰기」로 박사학위를 마쳤다. 석사과정에서부터 프로이트, 라캉, 멜라니 클라인 등의 정신분석이론 연구를 꾸준히 이어 오고 있으며, 정신분석비평을 적용하여 예술가들의 삶을 분석한 『속마음을 들킨 위대한 예술가들』(2006)과 청소년 글쓰기를 위한 교육도서 『논술의 심장, 생각을 훔쳐라』(2007)를 출판하여 일찍부터 대중과 소통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현재 문학과 정신분석 관련 논문을 다수의 학술지에 실으며 서울대, 성신여대에서 현대 프랑스문학을,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정신분
서울대학교에서 2007년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2018년 「모리스 블랑쇼와 탈주체의 글쓰기」로 박사학위를 마쳤다. 석사과정에서부터 프로이트, 라캉, 멜라니 클라인 등의 정신분석이론 연구를 꾸준히 이어 오고 있으며, 정신분석비평을 적용하여 예술가들의 삶을 분석한 『속마음을 들킨 위대한 예술가들』(2006)과 청소년 글쓰기를 위한 교육도서 『논술의 심장, 생각을 훔쳐라』(2007)를 출판하여 일찍부터 대중과 소통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현재 문학과 정신분석 관련 논문을 다수의 학술지에 실으며 서울대, 성신여대에서 현대 프랑스문학을,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정신분석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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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포스트-파리학파 기호학에 나타난 신체적 세미오시스 연구」로 불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논문으로 「‘가능화된 주체’의 기호학적 위치」, 「‘파상력’ 개념을 통해 본 우엘벡의 소설 『세로토닌』」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상처받지 않는 삶』, 『필립 가렐, 찬란한 절망』(공역) 등이 있다. 현재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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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그르노블대학교에서 롤랑 바르트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 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롤랑 바르트의 문장학 혹은 문장사전」, 「교육자 롤랑 바르트」 등이 있고, 저서로는 『프랑스 철학과 정신분석』(공저)이 있으며, 역서로는 롤랑 바르트의 『미슐레』 외 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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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3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952쪽 | 140*205*52mm
ISBN13
9791194513940

책 속으로

한 사람의 삶 속에는 한 순간이 존재한다-결국은 사람들-거기서는 모든 것이 종결되고, 책이 완성되고, 우주가 침묵하며, 사람들은 휴식에 들어간다. 이제 그 순간을 알리는 일만이 남았다. 그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종말에 덧붙여진 말이 균형을 무너뜨릴 때-그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어디서 힘을 얻어야 할까? 그 말을 위한 공간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우리는 그것을 발음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은 완결되지 못한다. 우리는 단지 방금 우리가 쓴 것을 쓸 뿐이고, 최종적으로는 더 이상 그것조차 쓰지 못한다.
--- p.22

연속성의 언어가 철학의 공식적 언어가 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와서다. 그뿐 아니라 한편으로 이 연속성은 삼일치법칙(三一致 法則)으로 환원되는, 비-모순적이고 제3항이 배제된(결론적으로 단순 결정에 가까운 정합성이지만) 논리적 일관성을 갖춘다. 다른 한편 연속성은 실질적으로 연속적이지 않고, 단순하게 결합되지도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쳐 준 지식의 체계는 잘못 결합된 한 총체이자, 총체적 설명과는 괴리된 총합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의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연속성은 스스로 발생하고, 중심에서 주변부로 이동하며, 추상에서 구체로, 단지 동시적 총체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와 지속의 “매개변수”를 부가하고, 운동 속에 존재하는 유한하면서도 무한한 총체로서 구성된다.
--- pp.51-52

총체성의 문제와 가장 근원적인 문제 사이의 토론은 변증법이 쟁점이 되는 토론이다. 이 토론은 또다시 변증법에 속하게 된다.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총체성에 관해 질문할 때뿐이다. 그것은 궁극적인 질문, 즉 최후의 질문, 신적 질문, 존재와 존재함 사이에 있는 차이에 관한 질문을 생성하는 본성에서 나왔다고 믿는 이 순간이다. 하지만 변증법에는 궁극의 질문이 없다. 우리가 끝맺는 곳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우리가 시작하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정말로 시작할 수밖에 없으며, 시작이 다시 전체의 개념에 속한다면 그것이 바로 전체의 운동이 만들어 낸 결과물(생산물)이다. 이는 강요의 되풀이이다. 존재는 원을 그리며 도는 운동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이 운동은 가장 내밀한 곳에서 가장 표면적인 곳으로, 전혀 발전을 시작하지 않은 내부성으로부터 그것을 소외시키는 외부화의 과정으로 간다. 그리고 완수된, 그리고 다시 내부화된 충만함에 이르기까지 내부성을 외부화하는 것은 바로 이 소외로부터 시작된다. 이 운동은 끝이 없지만 언제나 이미 완료되어 있다. 역사는 이미 완료된 이 운동의 무한한 현실화에 다름 아니다.
--- p.67

- 말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 그렇다. 하지만 자명하지 않다. 나는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고 사물들이 은폐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가려지지도 드러나지도 않는 상태의 사물들 말이다. 사물들의 비-진리가 있는 바로 그곳.
- 사물들이 발설되는 길목이 되는 하나의 말이 발화된다 하더라도 바로는 드러나진 않을 것이란 말인가?
- 현현이 당연한 장소에선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사물의 겉모습으로만 파악되지 않는 장소에선 가능하다. 말은 말하기와 마찬가지로 빛에 의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는 우리가 낮의 부재에 의해 행복이나 공포를 연구하기를 원한다는 뜻이 포함된 게 아니다. 그것과는 정반대로 “드러남”의 양식에 이르는 것인데, 그것은 드러남-은폐의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시선에 내맡겨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비가시성이라는 단순한 논리 속에서 거부되지도 않는 것이다.
- 나는 현현이라는 이 단어가 적절치 못할까 봐 걱정이다. 드러남, 그것은 베일을 벗기고 시선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게 하는 것이다.
--- p.97

시를 통해서, 권능이나 이해, 인식된 사실의 관계가 아닌, 전혀 다른 관계에 지향되도록 이 숙고의 길을 멈춰 보자. 미지의 불투명한 관계, 그것을 증명받기 위해 단어와의 단순한 대면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문학적인 언어든, 진리를 담은 시든 투명성과 단어의 완결성으로 우리를 이끌기 위한 것이 아님을 예감한다. 그것은 관계가 없는 관계 속에서 비정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시는 불가능성을 말하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시는 그저 불가능성에 답하기 위한 것이며, 그것에 화답해 노래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존재하는 모든 근원적인 언어가 비밀스럽게 공유하는 것이다. 가능을 말하면서 불가능에 화답하는 것. 공유는 전적으로 재배열을 야기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 우리의 선택을 명명하기 위한 말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 화답하기 위한 말을 갖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능과 불가능 사이에, 유동적인 경계가 생긴다. 하지만 이는 언제나 둘 중 하나의 “본질”에 따라 결정된다.
--- pp.135-136

내가 다른 이와 맺는 관계라는 것은 존재를 경유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만약 그 존재가 신이나 전체와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그리고 “하이데거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존재, 전체성, 그리고 모든 개념이란 모두 거기에 관련되어 있는데 이러한 관계는 정의 내리기에 부적합할 뿐 아니라 (어쩌면) 관계성 때문에 정의 내리는 것에 실패한다. 여러분들의 관계들이 다시 조우하게 되는 것을 달리 표현해 보자면, 타자와 맺는 나의 관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독 불가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관계는 모든 매개, 혹은 타자들과의 관계를 봉합할 다른 관계의 모든 기준을 배제한다.
- 그렇다. 그게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바이다. 그건 매우 공포스러운 일이다.
- 왜 하필 그 단어인가?
- “타인”과 “나” 사이, 그 사이의 거리는 무한할 뿐 아니라, 동시에 타인은 나에게 현존 그 자체, 즉 무한의 현존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를 우회한 현존, 그러니까 가장 방어적이고 더할 나위 없이 무력한 현존을 말한다.
- 하지만 무한한 이질성을 지닌 현존.
--- pp.158159

- 경험 혹은 대타자, 바깥 그 자체는 모든 긍정과 모든 부정을 넘쳐흐른다. 그것은 바로 “현존”이지만 일자와 단일성이 포함되지 않은 불연속적 관계 속으로 되돌려 보내지지 않는다. 대타자, 바로 그는 삼인칭 단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 중성, 중성, 그 단어는 나에게 매우 이질적으로 울리는 듯하다.
--- p.183

아드메토스, 대화의 창시자는 신의 폭력이 만들어 낸 희생물이다. 자신의 이상에 복종했기 때문에 그는 마치 동일자의 관점 속의 일자가 모든 지식의 진리이자 신과 인간을 관통하는 모든 관계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단일성 외에는 보질 못했다. 그러나 그건 그렇지 않다. 상호 관계적인 공간 속에서는, 대화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대화와 평등성은 대화의 엔트로피를 올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변증법적 소통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반대되는 두 개의 극점을 강요하고 이러한 모순 때문에 공동의 흐름을 부추긴다 해도 그것 역시 헛된 빛을 반짝인 후, 엔트로피의 동일성 속에 사그라질 운명인 것이다. 대화는 평면 기하학과 같다. 그 세계에서 관계들은 곧고 이상적으로 대칭을 이룬다.

--- p.201

출판사 리뷰

주체 바깥의 파편화된 웅얼거림에 시나브로 스며드는 경험!
마침내 우리 앞에 도달한 블랑쇼의 『무한한 대화』

프랑스 현대 문학의 중요한 영감의 근원, 모리스 블랑쇼
그의 『무한한 대화』

20세기 프랑스 문학과 사상사에서 모리스 블랑쇼는 매우 독특하고도 수수께끼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조르주 바타유와 동시대에 활동한 블랑쇼는 전후 프랑스 문학과 철학의 거대한 변화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음에도 실존주의나 구조주의, 탈구조주의 같은 당대의 어느 사상적 흐름에도 자신을 온전히 귀속시키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그 경계에 머물렀다. 비평가면서 소설가였고, 자신의 사유를 하나의 체계로 완결하기를 거부한 사상가였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질 들뢰즈, 장 뤽 낭시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와 비평가가 블랑쇼의 글쓰기에서 결정적 영감을 얻었다. 문학 언어의 비인칭성, 저자의 소멸, 작품의 부재, 중성, 바깥, 타자와의 무한한 관계에 관한 그의 사유는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이 주체와 언어, 문학과 윤리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는 데 있어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블랑쇼 자신은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진과 인터뷰를 극도로 제한했고, 작품 바깥에서 자신의 삶이나 사상을 해명하는 일도 피했다. ‘은둔의 작가’로 불리는 블랑쇼의 침묵은 작품을 저자의 삶이나 의도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그의 문학관과 맞닿아 있었다. 블랑쇼에게 문학은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거나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는 글을 쓰는 순간 작가는 자신이 말의 주인이라는 지위를 잃으며, 작품은 저자의 의도와 인격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운동을 시작한다고 보았다.

1943년 첫 비평 선집 『헛디딤』을 발표한 이래 『문학의 공간』, 『도래할 책』, 『저 너머로의 발걸음』, 『재난의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블랑쇼의 저술은 점차 기존 문학비평의 형식에서 멀어졌다. 그의 글쓰기는 철학적 대화와 단편적 명제, 반복과 중단, 침묵과 공백을 품은 독특한 형식으로 변해 갔다. 이 변화의 중심에 놓인 책이 바로 『무한한 대화』이다.

이 한 권에 블랑쇼 사유의 과거와 미래,
즉 그 전모가 담겨 있다!

『무한한 대화』는 블랑쇼의 저작 가운데 가장 방대한 저작으로, 당연히 그의 문학적·철학적 사유가 가장 폭넓게 펼쳐져 있다. 1959년부터 1969년까지 『누벨 르뷔 프랑세즈』를 비롯한 여러 잡지에 발표된 글을 엮은 『무한한 대화』는 블랑쇼의 사유가 하나의 중요한 전환을 맞이한 1950년대 말과 1960년대의 글들이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의 초기 문학비평과 후기의 파편적 글쓰기를 연결하는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블랑쇼는 문학 언어의 본질, 말하기와 침묵, 죽음, 부재, 공백, 중성, 타자, 무한, 서술하는 목소리,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끈질기게 사유한다. 또한 카프카, 파스칼, 니체, 브레히트, 카뮈, 사드, 횔덜린, 말라르메, 아르토, 베케트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통과하며 문학이 무엇인지, 문학적 경험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묻는다. 철학과 문학, 언어와 윤리, 정치와 역사에 관한 질문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책은 블랑쇼 사유의 전모를 보여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한한 대화』에는 하나의 중심 명제에서 출발해 논리를 단계적으로 전개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체계가 없다. 어떤 개념은 여러 장에 걸쳐 서로 다른 맥락에서 반복되며, 한 번 제시된 생각은 다른 목소리에 의해 반박되거나 유보된다. 질문은 답을 얻는 대신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사유는 종결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바깥으로 밀려난다. 책의 제목인 ‘무한한 대화’는 바로 이러한 글쓰기의 운동을 가리킨다. 이 대화는 서로 다른 두 주체가 자신의 의견을 교환한 뒤 합의나 결론에 도달하는 변증법적 대화가 아니다. 대화에 참여하는 목소리들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하나의 공통된 진리 속에서 통합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발화자와 청자 사이에는 지울 수 없는 간격이 남는다. 블랑쇼에게 대화가 무한하다는 것은 타자를 나와 동일한 존재로 환원하지 않는 관계가 지속된다는 뜻이다.

『문학의 공간』과 『도래할 책』에서 전개된 문학론은 이 책에서 타자와의 관계, 말하기의 윤리, 중성의 사유로 확대된다. 또한 『저 너머로의 발걸음』과 『재난의 글쓰기』에서 나타나는 파편적 형식의 기원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한 권 안에 블랑쇼 사유의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열려 있는 셈이다.

블랑쇼의 사유 진입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책
경계를 가로지르는 글쓰기의 정수!

『무한한 대화』에는 작가와 작품을 다룬 문학비평이 있는가 하면, 존재와 언어, 타자와 죽음을 논하는 철학적 성찰이 있고, 두 목소리가 서로 질문하고 응답하는 대화 형식의 글도 들어 있다. 어떤 글은 논문의 엄밀함까지 다가가지만, 다른 글은 시적 산문이나 허구적 대화처럼 읽힌다. 즉 블랑쇼는 문학과 철학, 비평 사이에 놓인 경계를 자유롭게 가로지를 뿐 아니라, 그 경계가 과연 분명하게 존재하는지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블랑쇼에게 있어 비평은 작품 곁에 머물면서 작품이 끝내 말하지 않은 것이자 언어로 붙잡히지 않는 것이며, 작품의 침묵과 부재에 응답하는 또 하나의 글쓰기이다. 따라서 비평가는 작품의 바깥에 서서 그것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이 열어 놓은 낯선 공간으로 함께 들어가는 독자이자 작가가 된다. 철학 역시 『무한한 대화』에서는 완결된 개념의 체계로 제시되지 않는다. 블랑쇼는 철학적 개념을 정의하고 논증하기보다, 개념이 미처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경험을 향해 나아간다. 앎으로 환원할 수 없는 타자, 소유할 수 없는 죽음, 주체가 지배할 수 없는 언어, 작품으로 완성되지 않는 글쓰기와 같은 문제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이다. 블랑쇼의 사유는 이해할 수 없음과 말할 수 없음을 사유 안에 끝까지 남아 있게 만든다.

이러한 쓰기는 독자에게 새로운 독서 방식을 요구한다. 반복되는 표현, 갑작스러운 중단, 서로 어긋나는 목소리, 의미가 비어 있는 듯한 공백을 따라가야 한다. 『무한한 대화』의 독서는 이미 정해진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이 아니라, 의미가 생성되었다가 다시 흔들리고 사라지는 운동을 경험하는 일이 된다. 블랑쇼에게 한 권의 책은 읽힐 때마다 다른 책으로 증식하며, 독자는 작품의 낯선 운동 속으로 침잠하며 작품 저 너머의 공간을 경험하는 존재이다. 작품은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귀속되지 않는다. 그 소유할 수 없음 때문에 문학은 끊임없이 새롭게 읽힐 수 있으며, 한 시대의 의미와 규범을 넘어 다른 시대의 독자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주체의 목소리가 사라진 글쓰기의 경험
‘바깥(dehors)의 사유’란 무엇인가

블랑쇼의 문학과 사유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는 ‘바깥’이다. 미셸 푸코가 블랑쇼의 글쓰기를 설명하며 사용한 ‘바깥의 사유’라는 표현은 이후 블랑쇼를 대표하게 되었다. 여기서 바깥은 주체가 언어와 세계의 중심이라는 믿음이 흔들리는 경험이며, ‘나’의 인식과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낯선 영역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단어는 사물과 정합하지 않으며 사물과 문자의 만남은 일시적 결탁 상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는 사물의 생생한 실재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나 글을 쓰자마자 시작되는 시간의 운동 속 사물의 변화를 포착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저자의 의도 역시 잘못 파종된 씨앗처럼 독자에게 흩뿌려지고 작가의 손을 완전히 떠난다. 이와 같은 블랑쇼의 사유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주체로서 인식하는 근대적 사유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간다. 그의 사유는 구조주의 이후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

바깥은 이처럼 주체가 자신의 중심적 지위를 상실하는 자리이다. 이곳에서 말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분명한 ‘나’의 목소리가 아니다. 블랑쇼가 말하는 중성의 글쓰기는 남성과 여성, 긍정과 부정 사이의 중간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말하는지를 확정할 수 없는 비인칭적 상태를 가리킨다. 글 속에서 말은 계속 이어지나 그 말의 주인을 찾을 수 없고, 사건은 서술되나 그것을 책임지는 단일한 주체는 사라진다.

블랑쇼는 이를 문법적 삼인칭인 ‘그(il)’의 문제와 연결한다. 그러나 이 ‘그’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평범한 삼인칭이 아니고, ‘나’를 대신하는 또 하나의 주체도 아니며, 단순히 익명의 화자를 뜻하지도 않는다. 중성의 ‘그’는 모든 주체가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되는 사건이다. ‘내가 말한다’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정작 말하고 있는 것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언어이며, 작가와 등장인물과 독자는 모두 그 언어의 움직임 속에 놓인다.

이러한 바깥의 경험은 해방과 개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을 보호하던 동일성과 익숙한 질서가 무너지는 일이기에 바깥은 불안과 고통, 위태로움을 동반한다. 그러나 블랑쇼는 바로 그 위태로운 한계에서 문학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문학은 세계를 더욱 안정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지식이 아니라, 세계가 완전하게 이해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관습과 규범이 배제해 온 광기, 죽음, 침묵, 부재와 마주하게 하고, 인간과 언어의 경계가 흔들리는 자리로 독자를 이끈다.

블랑쇼의 문학은 현실을 모사하는 거울이기를 거부한다. 작품은 세계의 완결된 이미지를 보여 주는 대신 이미지에 균열을 낸다. 의미가 확정되는 순간 다시 의미를 흔들고, 말이 완성되려는 순간 침묵과 공백을 불러들인다. 글쓰기는 작품의 완성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행위가 된다. 블랑쇼가 말하는 ‘무위’ 또는 ‘작품의 부재’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작품이 완결된 사물로 굳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끝없는 운동이다.

서술하는 목소리, 그 근원적인 타자성에 대하여

『무한한 대화』에서 바깥의 사유와 함께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핵심 개념은 ‘서술하는 목소리’이다. 일반적으로 이야기의 목소리는 작가나 화자, 등장인물 가운데 누군가에게 속한다고 생각된다. 독자는 누가 말하는지를 확인하고 그 목소리의 관점과 의도를 파악함으로써 이야기를 이해한다. 그러나 블랑쇼가 말하는 서술하는 목소리는 그 누구에게도 완전한 귀속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목소리는 실제로 들리는 음성도,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심리적 목소리도 아니다. 그것은 쓰인 단어들의 뒤편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소리이며, 의미로 완전하게 환원되지 않는 웅얼거림이나 메아리에 가깝다. 글을 쓴 작가도 글을 읽는 독자도 이 목소리의 주인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와 독자는 모두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동등한 위치에 놓인다.

블랑쇼에게 읽는다는 것은 쓰인 말 뒤에서 말하지 않은 채 울리는 목소리를 ‘듣는’ 경험이다. 이 목소리는 특정한 진리를 전달하거나 하나의 해석을 보증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이 미처 의미가 되지 못한 채 남긴 잔향이며, 문장의 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잔여이다. 그래서 서술하는 목소리는 때로 여러 인물의 목소리를 빌리지만, 어느 한 인물과도 동일시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다가 다른 목소리로 이동하고, 때로는 모두의 목소리이면서도 그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웅성거림으로 남는다.

이 비인칭적 목소리에는 블랑쇼가 사유한 근원적인 타자성이 드러난다. 타자는 나와 비슷한 또 하나의 자아가 아니다. 내가 이해하고 분류하고 소유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타자는 나의 인식과 능력을 넘어서는 존재이며, 나와의 사이에 지울 수 없는 거리를 간직한다. 블랑쇼에게 진정한 관계는 이 거리를 없애고 타자를 나와 동일한 기준으로 이해하는 데서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자가 끝내 알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음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무한한 대화’는 타자와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는 대화가 아니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는 서로에게 다가가지만 하나로 합쳐지지 않으며, 질문과 응답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그 어긋남과 간격을 제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타자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블랑쇼의 대화는 합의와 통일을 목표로 하지 않고, 서로 다른 존재 사이의 무한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윤리적 말하기를 모색한다.

서술하는 목소리 역시 이러한 타자의 목소리이다. 그것은 자아가 억압하거나 배제했던 낯선 목소리이며, 언어와 사회의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웅얼거림이다. 이 목소리는 말의 주체가 자신의 동일성을 확신하지 못하게 하고, 작품이 하나의 의미로 닫히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텍스트는 여러 독서와 해석을 향해 열릴 수 있다. 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난 울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 심지어 오독과 실패의 가능성까지 받아들이며 작품은 계속해서 다른 독자에게 도달한다.

『무한한 대화』는 독자에게 확고한 진리나 완성된 체계를 건네는 대신, 사유가 멈추는 지점에서 다시 질문을 시작하도록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주체, 언어, 작품, 독서, 타자와의 관계가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섣불리 이해한 것으로 만들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것의 침묵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요청한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빠르게 설명하고 분류하며, 타인의 말과 경험을 익숙한 의미로 환원하려는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시대에 『무한한 대화』가 제기하는 질문은 더욱 중요하다. 타자를 나의 언어로 소유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 하나의 정답으로 봉합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대화를 지속할 것인가. 자신의 목소리를 주장하는 대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낯선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무한한 대화』를 읽는 일은 문학을 읽고 철학을 사유하며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우리의 방식 자체를 다시 돌아보는 경험이다. 이 책은 독자를 익숙한 앎의 안쪽에서 끌어내어, 말과 침묵, 나와 타자, 작품과 부재가 끝없이 교차하는 바깥으로 초대한다. 그곳에서 대화는 결론에 이르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결론으로 타자를 지워 버리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무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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