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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문학 시선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제1부
책, 갈피
적요의 풍경
마른 논바닥의 지푸라기
마음의 나이테
칡꽃 향기
당신에게
하얀 목소리
할미꽃, 백두옹
눈물을 헹구어 낸 고요
고개를 넘으니 마음도 넘는다
회상의 별
너를 끊고 책을 먹었다
불꽃을 동경하다

제2부
강낭콩 팥죽
쓰러진 나무
비둘기 부부
노란 병아리 떼
토닥토닥 토닥여 주면
사랑이라는 보자기
눈물샘 뚫는다
길이 몸을 가지고 걷는다
소나기 지나가면
어느 택배기사의 죽음
자박자박 돌아앉아
능소화가 필 때
에벤에셀 하나님

제3부
고독이 손바닥에 데구르르
무화과 나무 아래서
마음의 아랫목
절정切釘
손글씨
밥과 법
은사시나무
오늘을 깨운다
외롭다고 쓴다
물끄러미
동진강엔 유년이 살고 있다
밀물과 썰물
잡동사니 주머니

제4부
엄마 꽃 접시꽃
유년기 일기장
동동거리는 백발 머리
차전초
책이 명령한다
거미줄에 걸려 있다
수박빛 여름
선운사 초대장
사랑의 단면
무지개다리
오늘의 풍경 1
오늘의 풍경 2
실 꾸러미
속리산에서
쓰러져 운다
이슬방울
부엉이 눈물

[해설] 김정숙의 시세계

저자 소개 1

전북 정읍 출생이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석사과정 수료했다. 1993년 계간 『시와 사회』 겨울호 등단했다. 시집 『하늘 자물쇠』 『슬픈 자유』 『널 소유하지 않으면서 또한 소유하는』 출간했다. 한국어교육지도사, 사회복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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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30*210*20mm
ISBN13
9791199034099

책 속으로

적요의 풍경

나무 위에 서성이는 봄바람
고개를 숙이면 고독도 고요하다

늦은 봄
목련꽃 꽃등을 켜고
내일의 신호등을 건너는
당신의 그림자

화사한 연인의 속삭임
짙은 눈빛 사이로
알싸한 꽃향기도 고요하다

공원 벤치에
모자 깊게 눌러쓰고
먼 하늘을 보는
노인의 무심한 눈빛도
연분홍 진달래로 피는 봄

자동차 보닛에 앉아
햇빛에 털을 씻는
길고양이의 자태도 고요하다

세상의 채도가
한 단계 낮아지면
봉인이 풀린
추억의 회로가 돌아가고

67층 계단을 오를 때
불안이 달려오더라도
눈물로 끄덕이면
잠시 또 기쁨으로 고요한 삶이 된다


마른 논바닥의 지푸라기

마른 논바닥의
지푸라기 하나

나뭇잎 한 장만 한
밑둥의 기억

떨어지는 소리결만큼
벼 알갱이를 줍던 시간만큼

마른 마음에
새싹 하나

거둬 두기를
빌고 또 비네


길이 몸을 가지고 걷는다

몸이 부지런해지면
마음은 고요해진다
칠월 스무사흘 날 어둑한 새벽
운동을 해야 죽더라도 서서 죽는다고
선뜻 걷기에 나선다

수리부엉이는 셈이 틀렸다고 부엉부엉
소쩍새는 솥이 작다고 소쩍소쩍
뻐꾸기는 덩달아 장단 맞춰 뻐꾹뻐국

이렇게 걷고 있는 가현산 천변 모퉁이
장마를 못 이긴 돌멩이들
쏴~아아, 물소리로 길을 내며 아우성친다

산이 무너지거나 말거나
흙이 쏟아지거나 말거나
태풍에 나무들 쓰러져
숨을 거두고 있는데 건강을 걷는다

칡들은 자신만의 고집과 아집으로
만수산 드렁칡이 되어 쾌지나 칭칭 대고
장맛비는 천둥을 몰고 와 우르르 꽝꽝대고
더러는 번개를 데리고 와 번쩍번쩍 대고
땀이 비 오듯 하는데 희망을 걷는다

별 모양의 호박꽃 노랗게 피어있는데
해바라기꽃도 노랗게 피어있는데
오늘도 길이 몸을 가지고 걷는다


밥과 법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 현장에서 듣는다
배고픈 사람은 밥대로 해라
잘난 너는 법대로 해라하는 소리

법과 밥은 갑과 을이 되어
법질을 하고 밥질을 한다
밥은 물질, 법은 정신
밥은 나를 이해시키고
법은 너를 이해시킨다

법과 밥은 동전의 양 날개
살다 보면 밥이 법을 먹을 때가 있고
법이 독이 되어 밥을 넘을 때도 있다

밥이 법을 먹으면
과태료, 범칙금, 벌금이 산더미다
법이 밥을 삼키면
보편타당한 융통성 법이 된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밥을 법으로 승화해야 하지만
법을 밥으로 오인하면
콩밥을 고봉밥으로 삼켜야 한다

밤에 술 취해 공원에 누워 있으면
소매치기의 밥이 된다
사는 건 넉넉하지 않아도
마음 하나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친구야
밥을 지키며, 법을 섬기자


실 꾸러미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풀어지지 않는 매듭
가슴 한 켠에 고여 있는
인생의 잔잔한 잔해

조금은 힘이 들지만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소망 하나쯤 간직하며
남은 생애를 걸어가리라

진실이 바짝 말라 버린 현실 앞에서
엉킨 실 꾸러미
차분히 풀어 가리라
한 무리 들꽃들 세속에 길들더라도

최소한 나 하나만이라도
그대로 그렇게
흐르는 물처럼 순종하며
푸르른 산처럼 순응하며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그의 시에 고통을 키우는 “눈물의 종자”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이 시집의 앞부분에 실려 있는 시 「마음의 나이테」, 「고장 난 여과장치」, 「칡꽃 향기」, 「당신에게」, 「옛날만 비틀면」 등을 읽어 보자. 이들 시에는 한결같이 넘치는 사랑과, 슬픔을 담고 있다. “그립다 말도 못 하고/몸만 비”(「옛날만 비틀면」)트는 아픔, “눈부시던 사랑이여/개울가의 미나리 싹,/잎사귀마다 눈물 글썽이며/악착같이 견디고 있”(「마음의 나이테」)는 현상 등 말이다. 넘치는 사랑은 언제나 넘치는 열정과 함께하기 마련이다. 넘치는 열정은 언제나 넘치는 수난을 거느리게 마련이다. 이처럼 그의 시는 사랑과 열정, 사랑과 열정이 만드는 과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예의 과정에는 그의 서정적 진실이 들어 있다. 이는 이 시집의 뒷부분에 실려 있는 「은사시나무」, 「밀물과 썰물」, 「수박빛 여름」, 「사랑의 단면」, 「무지개 다리」 등의 시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사랑의 초저녁인가/눈물의 한밤 중인가” 하고 질문하다가도 “때로는 낯설”(「사랑의 단면」)어지고 어색해지는 것이 그의 시에 들어 있는 서정적 진실이다.
- 이은봉(시인, 광주대 명예교수, 전 대전문학관 관장)

■ 시인의 말

눈물의 종자를 종묘種苗해
파종하다가 그것이
시의 원천이 되었다.

근경近景에서 원경遠景으로 가는
시를 붙들고 다시 시집을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니
숙고하다 숙연해진다.

2026년 8월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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