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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편 팔 위에 올린 쪽지 달의 윤리 사해의 부력, 간간한 공정公正 벽 안온安穩 누이기 서로의 얼굴 대상 차단의 그늘 너인 나 티끌 같은 전부 석화石花 제2부 중화역 춘천에 살고 있다 반딧불 작은도서관에서 오른손 벌루닝Ballooning* 끼룩끼룩의 유전遺傳 복지관 탁구장에는 참 한술 마중 그냥 총총 그릇 가장자리로 척 제3부 원로 시인 베로니카 최의 고무 갑피 운동화 물꼬- 국경 없는 더조이유니언 본연本然 _탁구장에서 시살이 곡우穀雨 첫사랑 시를 줍지 못하는 날 커튼 월세月貰 설거지를 하다가 말고 수면다원검사실에서 제4부 바다는 깊지 않았네 정화된 밤 반 무릎만 끝내 건너지 못한 것 우바이*의 기도 지지면 평형수 살아 있으라 제5부 소원 아해兒孩 하임이 왜, 왜, 왜 난 다 컸어! 전화도 안 했잖아! 할아버지 그냥 자 오빠 인나 잔밥 사랑이 다녀간 자리 나목을 끌어안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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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팔 위에 올린 쪽지
종이 위에 눌러쓴 서약은 잊지 않겠다는 숨결 같은 서명이었다 잉크가 마른 자리마다 핏줄처럼 돋아난 약속 눈물로 개설한 은밀한 계좌 하나 쌀독은 자주 비고 바닥을 굴러온 한 알의 사연이 기도보다 먼저 잊혀 가던 이름을 불러낸다 묻히던 얼굴 위에 숨을 얹듯 우리는 낱알 하나까지 쓸어 모은다 꺼져가는 온기 곁에 작은 불씨 하나라도 남겨 두겠노라고 손길이 닿지 않는 먼 언저리까지 닿을 수만 있다면 오늘도 짧은 팔을 뻗는다 빈 손바닥을 펴고 그 이름이 머물던 자리로 조용히 다가선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새벽바람처럼 그 팔은 가장 멀리서 떨고 있는 한 사람의 등줄기를 지나 꺼져가던 불빛 하나 다시 밝히고 또 한 장의 약속어음을 보이지 않는 그 편 팔 위에 올려놓는다 벽 굽은 등을 펴려 방을 둘러본다 사방이 벽인데 기댈 벽이 없다 책장이 점령한 면 액자가 걸린 면 문이 열리는 면 무너지는 몸을 받아줄 빈 벽 한 칸이 없다 등이 먼저 늙는 동안 짐들만 벽을 차지하고 서 있다 간신히 비워진 틈을 찾는다 등을 대고 머리를 누이고 온몸을 맡기면 짧던 숨이 비로소 평평해진다 벽은 넘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넘기 전 나를 받아내어 버티게 하는 것 빈 벽 하나쯤 남겨 두는 일 무너지는 등을 위해 먼저 빈 벽이 된다 안온安穩 먹물에 붓을 적시는 순간처럼 너에게 젖어들기 나목을 끌어안는 말 한여름 제 몸 가득 푸르렀던 숲도 가을 한 철 지나며 제 잎을 다 떨군다 산다는 건 그렇게 제 몸의 한 부분씩 세상에 내어주는 일 아낌없이 생살 한 점씩 떼어 주면서도 꽃의 영광을 탐하지 않고 열매의 보답을 기다리지 않는 일 빈 둥지를 남기고 떠난 새들 마지막 잎새마저 놓아버린 가지들 적막 속에서도 나무는 서둘러 변명하지 않는다 찬바람이 속살까지 훑고 지나가도 냉가슴 하나 품은 채 묵묵히 계절을 받아들인다 동의할 수 없어도 끝내 동감하게 되는 시간이 있다 계산할 수 없어도 기꺼이 다 내어주는 공간이 있다 다 떨군 맨살로 등 푸른 겨울을 견디는 나목 해마다 빈 둥지에서 가장 먼저 받아 적는 봄 산다는 건 마침내 그 나목을 끌어안는 일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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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단정하게 구두를 벗어놓고 호수로 걸어 들어간 성자를 기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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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 시인의 시들을 훑어 읽자니 마음이 뭉쳤다가 헝클어졌다가 좀 요란합니다. 여러 곳에서 멈춰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가 상상 속으로 들어갔다가 했습니다. "삶이란 한 평짜리 꿈을 세내어 사는 일." 이 문장이 이 시집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 같아 오래 머물렀습니다. 나목을 끌어안는 일이 마침내 하는 삶의 일이라는 마지막 시편도 뭉클합니다. 좋은 시를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승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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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의 시 밑바닥에는 시인 스스로 겪은 오랜 시간 가운데 가장 뿌리 깊은 기억의 층이 녹아 있다. 그러한 구체적 실감 속에서 그의 시는 가장 신성한 질서를 설계해간다. 나아가 시인 자신이 겪어온 삶의 순간을 현재로 끌어오면서 신생과 소멸, 삶과 죽음, 충일함과 비어 있음, 흐릿함과 선명함 등 상반된 속성들이 한 몸으로 결속하는 순간을 찾아내고 있다. 그럼으로써 삶의 불가피한 역설적 함의를 집중적으로 사유하고 삶의 밑바닥에 어김없이 소용돌이치는 심미적 격정을 형상화해간다. - 유성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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