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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문장은 훔치는 것이다
쓰기 전에 이미 다 써놓는다 - 조정래 본 것과 들은 것, 그 사이의 마음 - 김용택 허구로 진실을 캔다 - 김진명 글이 길이 되고, 길이 글이 되고 - 서명숙 글은 살아낸 사람의 것이다 - 유인경 힘을 뺀 문장이 더 멀리 간다 - 정지아 글은 체력에서 나온다 - 마녀체력(이영미) 망한 인생이라서 글을 만났다 - 김민식 떠날 수밖에 없고, 쓸 수밖에 없다 - 김남희 자음과 모음이 전 재산이다 - 원태연 장편소설은 버티는 자의 영역이다 - 정진영 내가 먼저 놀라야 독자도 반응한다 - 천지혜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 강원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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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통일되기 전까지는 발표할 수 없는 원고를 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미 써놓은 두 권 분량이 있고, 앞으로 세 권을 더해 총 다섯 권이다.
“손주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때도 통일이 되지 않으면 이 작품을 네 자식에게 대를 물려야 한다고. 당대에 남겨놓고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대에 결코 발표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쓰는 일. 그것이야말로 조정래가 평생 붙들어온 문학에 대한 태도의 핵심이 아닐까. 독자의 반응이 아니라, 기록해야 한다는 소명이 먼저라는. --- pp.31-32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쓴 짧은 글을 시인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이거는 신기한 일이다. 엄마가 집에 오다가 큰 배추가 차도에 있었다. 차가 밟을까 봐 우리 집에 갖고 왔다. 아빠가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시인은 이 짧은 글을 두고 감탄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만히 생각해봐요. 글은 그렇게 쓰는 거예요. --- p.53 새를 찍을 때 도감을 찾아보지 않는다. 그저 계속 찍는다. 그는 함부로 어느 쪽으로든 고개 돌리지 않을 것 같은 어린 새들의 텅 빈 자세를 좋아한다. 정보로 아는 것과 오래 들여다봐서 아는 것은 다르다. 검색은 답을 주지만, 관찰은 질문을 남긴다. 글을 살아 있게 만드는 건 언제나 후자 쪽이다. --- p.59 “가슴속에 세상을 향해서 토해내고 싶은 게 잔뜩 쌓여 있어야 글이 됩니다. 제 경우를 보면, 글을 써본 적은 없지만 이 세상에 대해 할 말은 많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게 이제 마구 터져 나오는 거죠.” 나는 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오래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문장은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은 절박함은 배울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삶에서 온다. 세상을 향한 분노, 의문, 사랑, 두려움. 그것이 쌓이고 쌓여 임계점을 넘을 때, 글이 된다. 그의 문장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다. 억눌린 자들의 비명, 왜곡된 역사에 대한 분노 그리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이 꾹꾹 눌려 담겨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내면을 키울 것인가. 그의 답은 명확하다. 읽고, 사색하라. --- p.66 기자의 글쓰기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면, 작가의 글쓰기는 그 시대를 통과하는 자신의 자화상이다. 자신의 일그러진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는 기자 특유의 관찰력을 유지하되, 그 안에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버무려 넣었다. --- p.117 살다 보면 쓰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순간과 마주한다. 그 고통이 글을 쓰게 한다. 쓰는 고통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클 때 우리는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고통이 견딜 만할 때까지 쓰고 다듬는다. 사는 고통보다 쓰는 고통이 더 커질 때까지, 그래서 삶에 관대해질 때까지 글을 쓴다. 그사이 글 쓰는 사람의 문장은 상처가 나 진물이 나고 그 상처가 아물고 생살이 돋아 단단해진다. --- p.121 “모든 글에는 시대가 담겨야 해요. 시대와 동떨어진 글은 오래 가지 못하죠. 자기 얘기를 쓰더라도 시대의 질문 위에 올려놓아야 글이 혼자가 되지 않아요.” --- p.122 “눈을 뜨면 커피를 내리고, 엄마 밥을 챙겨드리고, 고양이 똥을 치우고, 밥을 주고… 그러면서 수시로 밖을 봐요. 아무 생각 없는 것처럼 보여도, 머릿속에서는 몇 개의 소설이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이 장면 뒤에 이걸 붙이면 되겠구나’ ‘저 인물 다음엔 이 말이 나오겠구나’. 그렇게 산자락이 이어지듯 생각을 붙이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어요.” 쓰는 행위와 살아가는 행위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에게 소설은 책상 위의 한정된 행위가 아니라, 살아가는 전체의 리듬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었다. --- p.138 나는 글을 쓸 때 주로 ‘어떻게’를 먼저 생각한다. 어떻게 설명할까, 어떻게 표현할까. 그런데 정지아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왜’를 너무 적게 묻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는 기술의 문제지만, ‘왜’는 이야기의 씨앗이다. 좋은 문장은 ‘어떻게’에서 나오지만, 좋은 이야기는 ‘왜’에서 시작된다. --- p.139 목차를 구성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프롤로그의 완성이다. “편집자들은 무조건 앞의 3분의 1로 승부를 봐요. 앞부분에서 독자를 사로잡지 못하면 그 책은 끝나는 거거든요.” 이영미 작가가 프롤로그에 가장 많이 신경 쓰는 이유다. 책의 앞부분이 독자를 마력적으로 끌어당기는 관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부분만 좋은 내용으로 꽉 채울 수는 없다. 책 전체의 비중을 고르게 배분하되, 앞부분이 후킹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 p.166 편집자의 연필이 지나간 자리에서 내 글은 더 단단해졌다. 자기 글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쓴 사람에게 글은 그냥 글이 아니라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편집자는 단순히 글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작가가 미처 보지 못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 p.169 인공지능 시대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물었다. “인공지능이 훨씬 빠르게, 잘 씁니다. 그래서 잘 쓰는 일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어요. 하지만 내 글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 써요. 인공지능 시대에는 무언가를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우선이에요. 글쓰기를 좋아해야 해요.” 그는 챗GPT를 조연출로 활용한다. 바탕을 깔아주는 역할이다. 그런데 그 조연출이 가져온 원고를 보면 반드시 부족한 것이 보인다. “딱 드는 생각이 있어요. ‘이건 그냥 공자 왈 맹자 왈이야. 여기에 내 얘기를 넣어야겠어.’ 나의 사례들을 넣는 거죠. 챗GPT를 가지고 글쓰기 훈련을 더 해서 글쓰기 근력을 키우는 사람과 챗GPT한테 모든 글쓰기를 시켜서 근력이 줄어드는 사람, 이렇게 점점 양극화되어 갈 거예요. 글쓰기를 즐기는 소수로 남아야 해요. 그래야 글쓰기 근력을 계속 키워갈 수 있으니까요.” --- pp.191-192 글쓰기는 타자에게 가는 여행이다. --- p.205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다. 정보를 나열하는 가이드가 아니라, 사람의 얼굴과 그들의 삶의 무게를 남기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글을 쓸 때, 그가 지키는 원칙이 있다. “고쳐가는 과정에서 집중해야 할 이야기와 버려야 할 이야기들을 나눠요. 그때 정보성 이야기는 다 빼요. 글은 구체적 현실을 써내야 합니다. 삶의 구체성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죠.” --- pp.208-209 실패는 글의 뿌리다. 열매는 보이지 않지만 뿌리는 이미 자라고 있었다. --- p.259 “구조도를 만들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내가 재밌게 봤던 드라마들의 구조도를 만들어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이야기를 쓸 때 막히는 부분이 훨씬 적고, 거시적으로 이야기를 보는 연습이 돼서 글을 쓰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져요.” 그는 줄글 대신 네모, 동그라미, 표를 이용해 이야기를 도식화한다. 이야기를 짤 때 줄글로 쓰면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다음 전개를 이어갈 때 막막한 순간이 온다. 네모, 동그라미, 표로 도식화해 놓으면 이야기가 한눈에 보인다. 어디까지 왔는지, 다음에 뭘 써야 할지 이정표가 생기는 것이다. 도식화 작업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거로울 것 같지만, 오히려 글 쓰는 속도를 더 높여준다. 이것이 그가 13년간 꾸준히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 pp.273-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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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끝내 썼어요, 저는 굴하지 않았어요.”
열 두 개의 인생, 열두 개의 문체, 열두 가지 방법론 소설가 조정래를 만나기 전, 강원국은 자꾸 숫자를 셌다고 고백한다. 32권, 원고지 7만 매, 등장인물 1200명. 그러나 만남 뒤에 남은 것은 숫자가 아니었다. 『태백산맥』으로 11년에 걸친 수사를 받는 동안에도 펜을 놓지 않았고, 수사는 소설의 모든 기술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무혐의로 끝났다. “끝끝내 썼어요, 저는 굴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대문호 앞에서 강원국은 여러 번 옷깃을 여몄다. 검찰 수사와 극단적인 집필 방식으로 인해 죽음과 같은 순간을 맞닥뜨리면서도 써야 하는 작품이란 무엇일까.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3부작을 위해 사회생활을 20년간 포기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수십 권의 취재 노트를 통해 골조를 세우고, 집필 도중 멈출 일 없도록 완벽하게 구성을 짠 뒤에 비로소 펜을 든다. 한국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현대사 3부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조정래가 원고지 7만 매로 파고든 그 역사를, 정지아는 ‘빨치산의 딸’로 몸에 지니고 태어났다. 같은 역사가 두 번 서로 다른 문체로 문학이 되었다. 다만 방식은 다르다. 조정래가 끝도 없이 쌓아간다면, 정지아는 덜어냄을 배우고 다른 방식을 탐색한다. 2011년 엄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고향 구례로 내려간 뒤 시속 200킬로미터 같았던 서울의 삶은 반의반으로 줄어들었고, ‘혁명’ ‘투쟁’과 같은 단어에 꽂혀 있던 문장들에서 독기가 빠져나갔다. 힘을 빼는 데 15년, 『아버지의 해방일지』 이후 작품의 유머와 해학이 거기서 나왔다. 적막한 구례의 한 마을, 창밖을 바라보며 ‘왜 그럴까’를 묻는 정지아의 ‘멍 때림’ 앞에서 강원국은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만 물어왔음을 알아차린다. ‘어떻게’는 기술의 문제지만, ‘왜’는 이야기의 씨앗이 아닌가. 힘 빼기는 그에게도 숙제였다. 젊어서 쓴 글은 설득하려는 의지로 가득했고 그 힘이 오히려 독자를 밀어냈다. 그는 구례를 떠나오면서 새삼 깨닫는다. 글이 숨을 쉬려면, 쓰는 사람이 먼저 숨을 내쉬어야 한다고. 30년 기자 생활과 30년 작가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전 『경향신문』 기자 유인경은 글쓰기가 젊은이들의 특권이 아님을 몸소 증명한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쓸 수 있는 문장이 더 늘어난다며, 머뭇거리는 장년의 예비 작가들을 부추긴다. 나를 드러내는 용기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이 시대의 질문 위에 올린 글이라면, 그 글은 혹은 작가는 혼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원과 함께. 마흔 살에 수영 25미터부터 시작해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을 수차례 완주하고 글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편집자 출신 이영미 작가, 고시 낙방과 11년의 기자 생활을 지나 마흔에 전업작가가 된 정진영 소설가, 서른세 살에 전 재산 3,000만 원을 들고 중국행 배에 오른 뒤 100여 개 나라를 걸어온 김남희 여행작가, 기획 없이는 쓰지 않는다는 ‘공모전의 여왕’ 마케터 출신 천지혜 웹소설 작가, 시사주간지 최초의 여성 편집장이었고 제주에 올레길을 만든 주인공 서명숙 작가, 난독증의 눈으로 밀리언셀러 시집을 내고 백지영의 〈그 여자〉, 지아의 〈술 한잔 해요〉 등 200여 곡의 노랫말을 써온 원태연 시인 겸 작사가까지. 열두 작가의 삶과 글쓰기 태도를 가만히 듣고, 강원국은 말미에 그들만의 글쓰기 원칙을 담아두었다. 좋은 습관은 전염되고, 좋은 태도 역시 전염되기에, 단 한 사람의 작가라도 따르고 싶은 이가 있다면 활용할 수 있도록 가지런히 정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