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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04
1장 야만이 온다 겨울이 온다! 13 극우냐 야만이냐 16 야만에 대한 기억 18 마르크스의 퇴장과 야만의 등장 21 야만을 막을 방벽 24 마르크스 방벽에 대한 의심 26 2장 야만을 막을 방벽 마르크스의 「모건 개관」 33 야만의 기원 35 야만과 문명 구별법 38 야만의 시간 인식 39 방벽은 무엇으로 세워지는가 43 방벽이 붕괴된 이유 47 3장 새로운 문명, 자본주의 문명에서 야만으로 53 교환이 가져온 문명의 불씨 55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문명 57 새로운 문명의 함정 62 수수께끼를 푸는 노력 66 4장 자본주의의 묵시록: 마르크스의 『자본』 수수께끼의 구조 73 자본주의의 이중 구조와 야만 76 야만이 가져올 미래: 자본주의의 묵시록 79 야만을 제거하는 방법: 변증법적 지양 83 자본주의의 변증법적 역사적 소명 86 5장 마르크스의 방벽 설계도 프랑스 혁명 모델 91 혁명의 이해 93 혁명의 과학적 구조 97 혁명은 누가 수행하나 98 혁명의 목표 102 혁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106 혁명은 정말로 실현될 수 있을까 109 혁명은 오래 걸린다 113 6장 마르크스 이후 마르크스의 실천 실천의 첫걸음, 제2인터내셔널 119 배신의 혁명: 독일 사회민주당 124 실패한 혁명: 볼셰비키 정부 128 전후 제3세계의 마르크스주의 133 냉전 시기 서방의 마르크스주의 138 7장 실천의 유산과 잔재 마르크스는 정말 ‘죽은 개’인가 145 실패한 실천은 무엇을 남겼을까 148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케인스주의 153 케인스주의의 몰락과 야만의 부활 156 신자유주의와 2008년 공황 160 좀비 신자유주의와 마르크스의 소환 163 8장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 마르크스가 금지된 대한민국 169 1987년 이전 한국사회와 마르크스 172 1987년 민주화와 마르크스의 귀환 175 북한, 중국, 일본의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 출판 179 9장 벽에 갇힌 한국사회 마르크스 없이 발전한 한국 자본주의 185 한국적 야만의 전통 189 정치: 좌파도 노동자 정당도 없는 나라 193 사회: 노동자와 노동조합 없는 노동관계 198 야만에 갇힌 사회의 미래 204 10장 문명으로 가는 비상구: 한국사회의 과제 마르크스 없는 사회에서 있는 사회로 211 마르크스 문헌의 출판 212 마르크스 실천의 주체: 노동자 정당과 노동조합 215 마르크스의 유산을 담은 강령 218 장기 실천의 조건: 시민정치교육 220 에필로그: 야만에서 문명으로 222 참고문헌 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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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하게 주어져 있긴 하지만 막상 실천이 쉽지 않다는 것은 해답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하지만 해답의 작성자가 『자본』 제1권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이미 탄식을 섞어 고백했듯이 가파른 험한 길을 힘들여 기어 올라가는 노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가망이 있습니다.
---p.5 얼핏 보면 이 두 사건은 트럼프와 윤석열이라는 기이한 두 사람 때문에 일어난 우연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적파급을 일으키는 모든 사건에는 시대의 징후가 담겨 있답니다. 사회 곳곳에서 이미 발생한 변화들이 모이고 쌓인 다음 드디어 넘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시대의 징후가 기이한 개인을 통해서 터져 나오는 것이지요. 트럼프와 윤석열이 불러온 겨울은 시대 전환을 알리는 징후였습니다. 실제로 이들과 비슷한 정치인이 미국과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더욱 확실해집니다. --- pp.15-16 1933년 5월 10일 어둠이 짙게 내린 베를린의 오페라광장(나중에 독일 사회민주당 대표였던 아우구스트 베벨의 이름을 따서 베벨광장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이 주도하는 기이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책들을 쌓아놓고 불을 지른 이 행사는 나중에 ‘베를린 분서 사건’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독일인들은 이날 히틀러가 저지른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 기념물(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경구를 새긴 청동판)을 설치했습니다. “이것은 서막일 뿐이다. 책을 불태운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불태울 것이다.” --- p.24 이 책에는 마르크스 평생의 작업이 포괄적으로 녹아 있습니다. 책의 핵심은 인류의 역사 발전을 세 단계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동물의 세계로부터 탈출하여 인간이라는 집단, 즉 하나의 종으로 독립합니다. 야만으로부터 출발하여 미개로 발전한 것이죠. 두 번째는 집단이 개인으로 분화하기 시작하고 개인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단계로서, 야만과 구별되는 문명의 단계입니다. 이 관계가 계속 발전하여 이윽고 자본주의라는 마지막 단계에 이릅니다. 자본주의가 마지막 단계인 까닭은 야만적 속성을 제어하지 못하면 인류는 처음 출발한 야만의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 p.34 프랑스 혁명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정치적 변혁은 많았으나 권력을 잡은 소수 지배층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은 인민의 절대다수가 참여한, 다수에 의한 변혁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다수가 원하는 제도로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초반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수에 의한 혁명적 봉기가 자꾸만 반복된 것입니다. 다수가 원해서 바꾼 제도에 다시 다수가 반기를 든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pp.62-63 절대적 가난은 물리적으로 먹고살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인간은 동물의 세계에서 탈출할 때 여기에서 벗어났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사냥을 여럿이 힘을 합쳐 성공했고 그 결과 잉여가 생겼으며, 그로 인해 여가시간을 얻었습니다. 여가시간의 등장은 곧 절대적 가난과는 결별했다는 징표입니다. 이후 인간은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입하여 고대와 중세를 거친 뒤 문명의 새 단계인 자본주의에 도달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생산력 발전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계속 가난으로부터 멀어진 것이지요. 이 말은 자본주의에서 나타난 가난은 절대적 가난이 아니라 상대적 가난이라는 뜻입니다. --- p.73 이는 혁명의 목표가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바꾸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르크스가 생각한 혁명의 대상은 자본주의적 관계이지, 자본가가 아닙니다. …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하지 않는 사람의 관계가 제거되면 전자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후자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부가 곧 노동인데, 노동을 얻던 곳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적 관계는 한 사람이 노동한 것을 두 사람이 나누어 갖는 구조입니다. 관계의 제거는 노동이 이전되는 구조가 사라진다는 뜻이고요. 노동하지 않던 사람은 이제 직접 노동을 해야만 합니다. 즉, 모든 사람은 똑같이 일해야 합니다. --- p.104 실패한 마르크스와 구별되는 새로운 마르크스의 정립이 절실합니다. 서방이든 우리나라든 전 세계가 좀비 신자유주의의 도전을 받고 있으니까요. 실패한 마르크스의 핵심 유산은 노동시간 단축과 공동소유 확대입니다. 이 두 가지가 새로운 마르크스 정립의 첫 발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대적 징후는 과연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이것이 바로 시대 전환기의 궁금증입니다. --- pp.165-166 남한 정부가 마르크스 저술의 금지를 민주화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까닭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입니다. 식민지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해방운동과 함께 탄압의 대상이었고, 거기에는 ‘불온’이 덧칠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제에 빌붙었던 친일 세력이 해방 이후 독재정권과 야합했습니다. …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입니다. 남한 독재정권은 이 전쟁을 마르크스주의 탓으로 돌리고 거기에도 ‘불온’을 덧칠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민주화 세력의 탄압에 이용한 것입니다. … 그 결과 남한 사회에 마르크스를 불온시하는 이데올로기가 정착됐고, 결국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마르크스 없는 사회’가 탄생했습니다. --- pp.174-175 사회제도의 성격은 구성원인 인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사회제도는 개인이 사망한 다음에도 이어집니다. 그 사람의 후손들이 거기에서 계속 살아갑니다. 그래서 제도를 변혁하려면 그 제도를 변혁할 사람이 계속 필요합니다. 야만에 갇힌 한국사회가 문명으로 탈출할 방법은 하나입니다. 마르크스의 유산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 p.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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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로 성공한 나라의 이상한 지표들
한국은 20세기 자본주의의 최우등생이었다. 식민 지배를 받던 나라가 독립 후 반세기 만에 OECD에 가입했고, 그 사이 6·25전쟁으로 산산이 부서졌던 국토에는 공장과 도시가 세워지고 도로가 깔렸다. 이 성공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고, 그 성취감이 시민의 삶에 짙게 드리운 어두운 그늘을 모두 덮어버렸다. 고통은 사라진 게 아니라 성장의 성적표 뒤로 숨어버렸다. 이제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로봇, 우주항공 같은 최첨단 산업을 기반으로 아예 자본주의 세계의 맨 앞줄에 설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성적표 뒤에 감춰놓은 숫자들이 어딘가 이상하다. 2025년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1833시간으로 OECD 평균 1736시간을 훌쩍 넘는다. 공동체 유지의 근간인 사회복지 지출은 GDP 대비 14.4퍼센트로 OECD 평균 23퍼센트에 한참 못 미친다. 임시직 노동자 비율은 26.9퍼센트로 OECD 평균 11.2퍼센트의 2.4배에 달하고, 산업재해 사망사고의 70퍼센트 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발생한다. 성장은 계속되는데 그 성장이 보통의 삶으로 흘러가지 않는 구간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서 『자본』의 독일어판 정본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강신준은 새 책에서 이 숫자들을 ‘야만’이라는 단어로 묶는다. 야만과 그 대척인 문명에 대한 그의 정의는 무척 간단하다. 야만은 오늘만 살고 문명은 내일까지 계산한다는 것이다. 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갈 사람을 셈에 넣는 순간 양보와 타협의 자리가 생긴다. 반면 그것을 넣지 않았을 때 남는 것은 각자도생과 적대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 한국사회는 야만인지 문명인지, 나 아닌 타인의 존재를 어떻게 계산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서울 강북의 아파트 소유자가 잠 못 드는 이유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의 복잡한 개념을 우리가 매일 말하고 듣는 일상의 언어로 옮겨놓았다. 지은이는 은퇴 후 시골에 내려가 장을 담갔다가 구더기가 생겨 된장 한 단지를 통째로 버린 이야기, 결혼식에서 흘러나오는 바그너의 음악과 송년 음악회에서 들리는 베토벤의 음악 이야기, 영화 〈박하사탕〉의 영호가 철길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장면 등을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설명에 대입한다. 뚜껑을 열어보니 구더기가 생겼더군요. 이렇게 한 번 실패했으니 이제 장 담그기를 그만두고 장독을 없애버려야 할까요? 아뇨, 그럴 수 없습니다. 내일도 음식을 해 먹기 위해 장을 새로 담그고 이번에는 뚜껑을 더욱 철저히 밀봉해야지요. … 마르크스는 문제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걸 고쳐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자고 얘기합니다. 더구나 자본주의의 야만적 속성은 그것의 문명적 요소에 결합해 있습니다. 구더기(야만) 때문에 장(문명)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_「4장. 자본주의의 묵시록: 마르크스의 『자본』」, 83~84쪽 가난도 마찬가지다. 지방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보다 서울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부자지만, 강북의 아파트 소유자는 강남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만큼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낀다는 예로 가난의 상대성을 부각시킨다. 자본주의에서 부는 곧 노동시간이고, 그래서 가난도 노동시간의 격차로 환원된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인데 어째서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노동시간을, 즉 부를 소유하게 될까? 2025년 말 보도된 이재용 회장의 1년간 주식 가치 증가액 11조 3260억 원을 2026년 최저임금으로 환산하면 약 11억 3000만 시간어치에 달한다. 다시 말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12만 년 넘게 일해야 저만큼을 벌 수 있다. ‘이재용만큼 벌게 해줄 테니 최저임금을 받으며 영생을 살겠느냐’고 한다면, 아마 신도 거절할 것이다. 이 무자비한 부의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답은 하나뿐이다. 마르크스가 이미 설명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노동시간이다. 우리는 수수께끼의 정체가 노동하는 사람의 노동력이 다른 사람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수께끼의 해답은 두 사람의 관계였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교환이라는 구조에서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방적입니다.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않은 사람,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하지 않는 사람, 판매만 하는 사람과 구매만 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대립적이고 배타적이며 적대적입니다. 노동빈곤은 이 구조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_「4장. 자본주의의 묵시록: 마르크스의 『자본』」, 77~78쪽 자본주의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의 출발점으로 삼은 상품은 나에게 필요한 것(1)이면서 동시에 남과 교환할 수 있는 것(1+1)이었다. 이 겹침이 자본주의를 봉건제와 갈라놓은 문명의 표식이었고, 동시에 이 겹침에서 소유를 독점하려는 야만이 자라기 시작했다. 연주에 실패했어도 악보를 버리지 않는 이유 한국의 시민들이, 다수의 노동자들이 마르크스라는 이름 앞에서 멈칫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의 이론과 실천은 한국전쟁의 역사와 연결되고, 그의 실패를 증명한 1990년대 소련 및 동구권의 대붕괴가 우리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강신준은 이 의심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다. 이 대목에서 그는 마르크스의 이론과 실천을 고전음악에 비유한다.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해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음색과 감정이 악보 바깥으로 표출된다. 이처럼 매번의 연주가 새로운 곡으로 태어나지만, 그 바탕에는 애초에 작곡가가 직접 만들어놓은 단 하나의 악보가 있다. 이것이 교본과 실천의 관계이며, 마르크스를 폐기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소련의 실패는 실천의 실패지 교본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 실패를 이유로 교본 자체를 폐기해서는 안 됩니다. 연주에 실패했다고 악보를 찢어버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오히려 실패를 딛고 새로운 실천을 구성하는 것이 우리의 시대 과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_「1장. 야만이 온다」, 28쪽 이 구분 위에서 저자는 제2인터내셔널부터 독일 사회민주당, 볼셰비키, 제3세계, 냉전기 서방까지 한 세기 동안 이루어진 마르크스의 교본 실천 사례를 검토한다. 무엇이 어디에서 어긋났는지 되짚되 변호하지는 않는다. 볼셰비키가 마르크스의 교본에서 벗어난 것은 설계도를 몰라서가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이며, 의지로만 구성된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소련이 실천했던 마르크스의 방법이 아니라 마르크스 자신이 직접 쓴 교본을 바탕으로 우리의 상황에 맞추어 설계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주5일제와 하루 8시간 노동, 오늘의 기본을 누가 만들었을까 실패한 실천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마르크스의 유산들을, 그러나 그 기원을 잊어버린 것들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대표적인 예가, 1919년 창설된 국제노동기구가 헌장 제1호로 결의한 ‘8시간 노동일’이다. 1900년 이전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하루 12~13시간 노동이 당연했다. 지금 우리가 13시간이 아니라 8시간만 일하는 것이 마르크스의 방법을 실천한 결과이다. 무엇보다 타인을 위한 노동을 멈추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노동시간의 감소는 여가시간의 증대로 이어지고, 그 여가시간을 통해 시민의 자유와 부가 증가한다. 그 사회가 바로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보여준 자유의 나라이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은 한국의 시민과 노동자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달한다. 마르크스는 이념의 문제이기 전에 이미 우리의 노동과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단지 그것을 꺼내어 쓰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은이는 “마르크스는 우리의 현재”라고 말한다. 4·19에서 응원봉 집회까지, 우리는 문명의 문을 계속 찾았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비상구는 왼쪽에 있었다 한국사회는 야만의 벽을 허무는 시도를 멈춘 적이 없다. 4·19 혁명, 6월 항쟁,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와 윤석열 탄핵 응원봉 집회까지. 그런데 그 시도의 끝에는 늘 폭력이 되돌아왔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저자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렛대가 없었다고 답한다. 19세기 유럽의 실패한 혁명들을 분석해 마르크스가 찾아낸 방법, ‘혁명의 과학’이 부재했다는 뜻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 저작은 1910년 식민지 편입 이래 1987년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 금서였다. 해방 직후와 4·19 직후에 잠깐 숨 쉴 틈이 주어졌을 뿐이다. 어렵사리 해금된 1987년으로부터 불과 2년 만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되었다. 이로 인해 마르크스는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빛 한번 보지 못한 채 역사 속에 묻혔다. 1997년 IMF 경제위기도, 2008년 세계 금융위기도 한국에서는 마르크스를 불러내지 못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는 좌파도 노동자 정당도 구축하지 못했고, 노동조합 조직률은 10퍼센트에 그치며, 그나마도 기업별로 쪼개져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반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은 아주 당연하지만 현실에는 부재하는 일들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과제는 체제의 전복이 아니라 다음의 네 가지다. 마르크스의 문헌을 제대로 갖추는 일(MEGA 한국어판 출판), 실천의 주체를 바로 세우는 일(초기업 단위의 산업별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 구축), 주체들이 공유할 강령을 작성하는 일, 그리고 이 모두를 오래 지탱할 시민정치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혁명은 단번에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과정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를 필요로 한다”는 프리드리히 에버트의 유언처럼, 제도를 바꾸려면 그 제도를 바꿀 사람이 계속 필요하다. 또한 2026년 현재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사업장에 도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상황이 잘 보여주듯이,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낼 여유시간을 누가 가질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마르크스가 150년 전에 만든 교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노동시간의 소유만이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논의는 이 책의 제목으로 도착한다. 다시 광장이 불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야만의 벽에 가로막힌 채로 광장에 갇혀 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마르크스가 남긴 설계도를 펼쳐 밖으로 나갈 문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비상구는 왼쪽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