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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 제기
2. 민주주의와 정치권력의 획득 3.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의 성숙 4. 민주주의의 영향 5. 독재 6. 제헌의회와 소비에트 7. 소비에트 공화국 8. 실물교수 9. 독재의 유산 10. 새로운 이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Karl Johann Kaut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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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표현은 어떤 개인의 독재가 아니라 한 계급의 독재를 표현한 것으로 이것은 마르크스가 여기서 말하는 독재가 표현 그대로의 독재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통치 형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가 정치권력을 잡았을 때 어디서나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p.56 만일 우리가 부르주아 혁명의 예를 따라서 혁명이란 것이 내전이나 독재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마찬가지 맥락에서 혁명이란 것이 필연적으로 크롬웰이나 나폴레옹의 지배로 끝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가 나라 안에서 다수를 이루고 민주적으로 조직되어 있을 경우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결코 이런 결과를 맞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곳에서만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건은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선 프롤레타리아의 지배라고 이해할 수 있다. --- p.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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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10월 볼셰비키는 2월 혁명 이후 임시 정부 치하에 있던 러시아에서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볼셰비키 정부는 차르 체제를 공화정으로 이행하기 위해 제헌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그런데 선거 결과 볼셰비키는 25%밖에 득표하지 못한 반면 볼셰비키의 정적이었던 사회혁명당은 57%를 득표해 다수당이 되었다. 그리하여 볼셰비키는 갈림길에 섰다. 권력을 다수당에게 물려주고 내려오거나 아니면 민주적인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1918년 1월 5일 처음으로 소집된 제헌의회를 강제로 해산함으로써 볼셰비키는 후자의 길을 선택했고 그리하여 독재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볼셰비키는 자신들의 독재가 마르크스의 교의에 따라 사회주의로 향하는 정당한 길이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카우츠키는 볼셰비키가 선택한 길이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고 그것을 거스르는 길이며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카우츠키는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며 볼셰비키들이 강변하고 있듯이 “통치(정부) 형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위에서 말했듯이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해 프롤레타리아가 다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고 바로 이런 상태, 즉 프롤레타리아가 다수를 점한 상태가 곧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의미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재는 민주주의 사용 방식을 말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를 폐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볼셰비키가 실천적 모델로 내세웠던 파리코뮌과 소비에트 체제 사이의 차이점도 역시 민주주의 문제라고 카우츠키는 주장한다. 파리코뮌에서는 사회주의의 모든 정파가 망라되었지만 소비에트에서는 반대로 모든 사회주의 정파가 배제되었고, 파리코뮌에서는 철저한 민주적 보통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사람들에게만 권력이 부여되었던 데 반해 소비에트에서는 차별선거를 통해 권력이 민주주의와 무관한 방식으로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볼셰비키는 마르크스주의를 실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기했으며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원리에 따른다면 역사적 심판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1991년 소비에트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폐기되었고 카우츠키의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존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