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민주화’를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제1부. 기억, 시대, 세대 : 1980~1990년대 문화정치 01. 시대 인식과 문학.문화 1980년대와 1990년대 잇기 1990년대와 문학.문화 ‘운동’ 02. 1980~1990년대의 기억정치와 86세대 1980년대 ‘세대’와 ‘민주화’의 기억정치 기억의 역사학과 도덕 감정 03. 1980년대 문학사 다시 쓰기 - 민족문학론, 리얼리즘론, 문예운동론 리얼리즘론과 매개 그리고 민중.민족문학론 문학주의와 운동성,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 너머 제2부. 혁명가들의 자리에 남은 서사 04. ‘거리의 혁명가’ 백기완의 민족.민중 서사 - 민족적 민중혁명사상의 계보와 의의 사상가로서의 백기완, 민중과 민족의 변증법 민중혁명사상의 맥락과 의미 05. 상처, 화양연화, 호접지몽 - 사노맹 참여자들의 기억과 ‘이후’의 삶 상처에 대한 기억과 ‘상처’ 화양연화 : ‘좋았던’ 시절과의 단절과 연속 호접지몽 : 단절과 전향을 스스로 납득하고 말하기 06. 혁명가가 구루가 됐을 때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출판.수용을 통해 본 ‘민주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문화사적 맥락 ‘감옥 에세이즘’과 그 독서 제3부. 이행기의 한국 지성과 세계화.자유화 07. ‘민주화’ 이후 탈근대 담론과 한국 지식문화 탈근대론의 전개 과정 : 지식문화와 탈근대 탈근대론의 내용과 계기들 : 마르크스주의에서 생태주의까지 탈근대론의 문화정치적 효과와 아포리아를 어떻게 볼까? 08. 1987년 이후 한국 출판문화.지식문화의 전환 - ‘세계화’로서의 ‘민주화’ ‘해적 국가’에서 제1세계로? ‘가석방’된 출판의 자유와 세계화.신자유주의화 제4부. 서발턴은 쓸 수 있는가 : 이행기의 노동과 문학 09. 서발턴은 쓸 수 있는가 - 민중의 자기재현과 ‘민중문학’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지적 격차의 문화(사)와 민중의 글쓰기 돼지와 별 : 서발턴은 쓰지 못한다 10. 세기를 건넌 한국의 노동소설 - 주체와 노동과정에 대한 서사론 30년을 건너온 역사적 노동소설 1980~1990년대 노동소설의 메타서사 21세기 노동소설의 서사와 주체 11. 노동소설의 노동소설 - 『노동자의 이름으로』에 나타난 열사, 진정성 그리고 1990년대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와 ‘진정성 체제’ 감각의 재배분, 노동과정의 재구조화 |
천정환의 다른 상품
|
이 문제를 논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와 주체의 위기가 그 맥락이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은 그 ‘민주화’의 시간과 함께 대학을 다니고 성인이 된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품어온 의문을 풀기 위한 시도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 나도 그 끝자락에 속한 (그러나 크게 동일시해본 적은 없는) 86세대의 정치적.문화적 헤게모니는 왜 다른 주체들에 의해 교체.해체될 수 없었는가? 86세대 주요 대학의 운동권 외에도 1990년대에 수많은 노동조합과 작은 대학, 지방에서도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누구였으며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은 그들과 그 시대를 위한 애도 작업이고 싶다.
--- pp.9-10 1980년대는 ‘친구’의 시간이며 공간이다. (…) 그들 ‘혁명가’들은 겨우 스물 몇 살이었다. 하지만 복수(複數)로서의 그들은 완벽한 인간과 이념에 충실한 ‘동지’나 ‘전사’로서 서로를 상상했다. 그 ‘친구’는 광주나 혹은 어딘가에서 희생된 존재이기도 하여, 그들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죄의식, 부채의식)’을 지배적인 공통의 정서로 느꼈다. 그런데 ‘친구’ 중에는 계속 살아남아 ‘민주화’ 전선에서 훌륭하게 출세(?)하고 분투하는 이들도 있다. (…) 그런데 그 ‘상상된’ 공동체 내부에 실재했던 세대.젠더.계급 차이의 문제에 대해서는, 적어도 지배적인 서사 내에서는 무시되고 작은 토의라도 있었던 적이 별로 없다. (…) 그들은 ‘연극이 끝난 뒤’에는 서로 다른 주체들로 흩어졌다. ‘민주화’의 참으로 치명적인 한계인데, ‘평등’과 사회주의적 가치를 지향했다는 86도 젠더 차별과 학벌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 같은 조직 내에서 투쟁했지만 1990년대 이후 그들은, 대체로 ‘명문대생’은 ‘명문대생’의 삶을, ‘삼류대생’은 ‘삼류대생’의 삶을, 여성은 여성의 삶을, 노동자는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기억의 공동체’는 대략 유지되는 듯하다. 따라서 문제는 기억의 내용뿐 아니라, 기억‘함’의 구조이기도 하다. --- pp.48-40 어느 좌담에서 대담자가 백기완이 독학자라는 점을 상기하며 “학교를 못 다니게 된 청년들에게 힘이 되는 말씀”을 부탁하자, 백기완은 다음과 같이 청년 시절에 레닌, 카우츠키, 슈바이처 등에 대해 어떤 엘리트 지식 청년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말한다. “경기고 다니던 애들하고 댓거리를 하는데, 칼 카우츠키니 슈바이처니 슈펭글러니 하는 이름을 막 대. 난 이름도 모르는데. 주워듣는 것도 한계가 있을 거 아냐. ‘아바이(Guys), 카우츠키 아나’ 물었더니, ‘레닌과 싸우던 새끼 아냐’ 그래. 어떻게 아냐니까 주워들었대. 그 고등학생들 이야기를 했더니 (또 다른 어느 청년이) 별것 아니라는 거야. 살다 보면 슈바이처, 카우츠키가 받았던 문제의식을 나도 받는다는 거야. 네가 부대끼면서 살아봐라, 앞에 제기된 문제의식을 올바르게 끌어안고 무시하지 말라는 거야. 요새 학교 못 가는 애들한테 그런 얘기를 해. 역사의 현장이 큰 대학이고 큰 고등학교니까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받아라.” --- pp.105-106 그러나 사노맹은 다른 모든 조직처럼 ‘무오류’의 조직도 아니고, 그 시대의 다른 운동권과 유사한 급진성을 가졌다. 그런데 정작 그 당사자들은 어떨까? 사노맹과 같은 무시무시한 ‘반국가단체’에 가입 후 활동, 투옥, 고문 등으로 이어진 그 엄청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말할까? (…)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노동운동가이자 사노맹 중앙위원이었던 B씨가 인터뷰 중에 한 말이었다. 뇌질환으로 투병하고 있어서 말과 행동이 부자유스러운 그는 인터뷰 말미의 “선생님에게 사노맹은 어떤 과거라고 말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화양연화지요”라고 답했다. (…) 이 말은 어떤 역설을 품고 있다. 힘들고 어렵던 그 시절이 바로 인생의 꽃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처음에 이 말이 신선한 충격처럼 느껴지면서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는 마치 뭐든 과거를 ‘좋게’ 기억하는 의지적, 심리적 작용을 말하는 이른바 무드셀라증후군(Methuselah Syndrome) 같은 것일까? 어떤 시간적 거리가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할까? (…) B씨와 비슷한 기억을 말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을 우선 말하고 넘어가려 한다. 그들은 자기 인생에서 사노맹에 참여할 때만큼 열정을 기울여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헌신한 적이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 pp.144-145 1988~1994년의 이행기에 제5공화국 때보다 두 배쯤 많은 88명의 출판인이 감옥에 갔다. (…) 검열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시대마다 어떤 책이 금서였는지는 실로 흥미롭고 중요한데, 이 1989년판 대검찰청 금서 목록은 1987년 6월항쟁 이후의 변화를 반영하면서도 ‘결정판’의 모습을 갖고 있다. 이 목록은 (…) 오히려 2017년 ‘노동자의 책’ 사건에서 검찰이 만든 목록과 비슷한데, 1989년판 목록이 그 ‘조상’ 격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그즈음 금기의 사상과 지식 또 그 주체들은 비유컨대 ‘가석방’됐을 뿐이었다. ‘자유’의 1990년대에도 냉전은 지속됐고, 공안 세력도 건재했다. 그래서 1990년 1월과 7월엔 북한 관련 서적을 출판한 출판사의 대표가, 6월엔 실천문학사 송기원 대표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1991년 3~4월에는 녹두.노동문학사 등의 출판인 다섯 명과 전북대학교 앞 새날서점 주인이 구속됐다. 1994년 4월에도 일터.일빛 등의 출판사 대표가 구속됐는데, 부산지검 공안부는 굳이 부산대학교.동아대학교 등 대학가 서점들을 털어 사회과학 서적 300여 권을 압수했다. 안기부와 검찰은 1995~1997년에도 공안정국 조성이나 학생운동 탄압을 위해 비슷한 일을 벌여 출판사와 서점 대표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잡아넣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이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 pp.272-273 왜, 그리고 어떻게 국졸의 가난한 노동자 전태일은, 또는 열한 살짜리 ‘앵벌이’ 소년 이원복은 그러한 문체로 된 일기를 열심히 쓸 수 있었을까?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행해진 일기 쓰(게 하)기와 민중적 리터러시의 문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한 주제가 아닌가. (…) 무엇인가를 말하고 쓰고자 하는 열망이 ‘운동’의 지평 위에 펼쳐진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일 것이다. 민중은 자신들이 쓴 것을 읽고, 또 자신들이 직접 쓰고(쓰기를 권장받고), 또한 쓰고 싶은 열망에 들린다. (…) 그러나 1980년대가 되면 이 ‘민중의 글쓰기’는 과거의 그것과 다른 의미와 위상을 갖게 된다. 앎의 위상학과 분배 체계를 위협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이어진 이 ‘쓰기’는 한국 민중주의의 중핵이다. (…) 1970년대 이후 한국 민중이 일기든 수기든 또는 ‘문학’이든 본격적으로 자기 재현을 하기 시작했을 때 민중주의는 다른 단계에 올라선 것이다. --- pp.300-301 |
|
‘민주화’를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1987-1997 ‘민주화 이행기’의 문화정치,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우리가 기억하는 ‘민주화’는 정말 그 시대의 전부였는가 1980~1990년대의 문학과 혁명을 다시 읽다 1980~1990년대의 문학/문화사를 통해, ‘민주화’라는 승리의 서사 뒤에 숨은 혁명·민중의 문화정치사를 다시 써본다. 특히 저자는 1987년 6월항쟁에서 1997년 IMF경제위기까지 ‘민주화 이행기’라는 문제적 시간대에 주목한다. 이 ‘이행기’ 동안 한국의 문화정치는 어떻게 작동했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지워졌는가. 들끓던 ‘혁명의 시대’는 어떻게 ‘민주화 시대’로 번역되고 순치되었는가. 그리고 ‘민주화 이후’ 한국의 지식 담론과 민중의 ‘삶’, ‘문학’, ‘노동’은 어떻게 재조직되었는가. 나아가 ‘문학’과 ‘혁명’을 한몸처럼 생각하던 시대가 저물어버린 오늘날, 글쓰기와 문학이 앞으로도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다. 승리의 서사 뒤에 숨은 혁명·민중의 역사를 복원하는 문화정치사 이 책은 총 4부 11장으로 구성된다. 제1부(1~3장)는 〈기억, 시대, 세대 : 1980~1990년대 문화정치〉, 제2부(4~6장)는 〈혁명가들의 자리에 남은 서사〉, 제3부(7~8장)는 〈이행기의 한국 지성과 세계화·자유화〉, 제4부(9~11장)는 〈서발턴은 쓸 수 있는가 : 이행기의 노동과 문학〉이다. 〈1장. 시대 인식과 문학·문화〉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단절’이 아닌 ‘연속과 이행’의 시대로 읽으며, 특히 1987년 6월항쟁부터 1997년 IMF경제위기까지를 ‘민주화 이행기’라 명명한다. 이 시기 동안 민중문화·대항문화는 대중문화와 서로 경합하고 침투하면서 한국 사회의 감각과 문화적 주체를 바꾸었으며, 따라서 1990년대의 개인주의와 문화적 다채로움 역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적·정치적 변화에서 이어진 결과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2장. 1980~1990년대의 기억정치와 86세대〉에서는 누가 ‘민주화’의 기억을 만들고 독점해왔는가를 살펴본다.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1980년대와 ‘민주화운동’의 이미지는 학생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정치·문화 권력의 중심으로 진입한 86세대 남성 엘리트들의 자기 서사, ‘민주정부’ 수립 이후 국가의 공식 기억, 영화와 대중문화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영화 〈변호인〉 〈1987〉 등이 민주주의 가치를 대중화한 긍정적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노동자대투쟁, 지역의 항쟁, 급진적 변혁운동 등 훨씬 복잡했던 1980년대가 ‘순수한 대학생들과 시민의 승리’라는 서사로 축소됐다고 지적한다. 즉 ‘독재 대 민주화’만으로는 1980년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3장. 1980년대 문학사 다시 쓰기〉에서는 1980년대 문학을 설명해온 문예이론인 ‘민족문학론’, ‘리얼리즘론’, ‘문예운동론’을 오늘의 시각에서 재검토한다. 저자는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 같은 오래된 이분법으로 그 시대를 평가해서는 안 되며, 1980년대 문예운동의 중요한 유산은 특정 미학적 형식보다 지성과 노동, 글쓰기와 민중의 삶 사이의 분리를 극복하고 문화적 소외에서 벗어나려 했던 인간해방의 지향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당시 리얼리즘론은 단순한 창작 기법이 아니라 인식론과 혁명론을 아우르는 문학운동의 원리였고, 민족문학론·민중문학론과 결합해 하나의 강력한 문학적·정치적 체계를 형성했다. 〈4장. ‘거리의 혁명가’ 백기완의 민족·민중 서사〉에서는 단순한 ‘민주화’ 운동가나 통일운동가가 아니라,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수립한 ‘민중혁명 사상가’로서 백기완을 다시 읽는다. 특히 그가 제도권 학문이나 엘리트 지식인의 이론이 아니라, 민중의 가난한 삶과 투쟁 현장에서 자신의 사상을 길어 올려 궁극적으로 인간해방을 꿈꾸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1987년과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그가 제시한 노동자 자주 관리, 재벌 해체, 사회보장, 민중 주도 정치 등의 비전은 당시 변혁운동이 꿈꾸었던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민주화’라는 말로 포섭되어 사라진 1980~1990년대 급진적 사회변혁의 상상력을 복원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5장. 상처, 화양연화, 호접지몽〉에서는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실패한 혁명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다룬다. 사노맹은 1980~1990년대 급진적 변혁운동의 극단을 상징했으며, 공안기관과 언론에 의해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으로 각인됐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단순한 시대착오적 사회주의 조직으로 평가하는 대신, 그 시대의 사회적 모순 속에서 나타난 인간해방운동의 한 형태로 바라본다. 참여자들의 기억은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 그것은 고문과 투옥, 사회적 낙인 때문에 평생 숨겨야 했던 ‘상처’이고, 어떤 이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가장 뜨거웠던 ‘화양연화’다. 이런 개인들의 복잡한 기억을 통해 저자는 혁명운동의 쇠퇴와 ‘민주화 이후’의 개인화 과정 역시 오늘의 한국 사회를 만든 중요한 역사였음을 보여준다. 〈6장. 혁명가가 구루가 됐을 때〉는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1988년 출간된 뒤 수십 년 동안 스테디셀러가 된 과정을 다룬다. 이 책의 출발점에는 통일혁명당 사건과 20년의 수감이라는 매우 정치적인 역사가 있었지만, 독자들은 점차 그 책을 혁명의 언어보다는 인간, 관계, 삶, 성찰, 마음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책으로 읽게 됐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비정치성의 정치성’이다. 1980년대 말에는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부채의식 속에서 읽혔다면, 이후 독자들은 자기계발과 내면적 성찰, 인간관계의 지혜까지 책에서 발견했다. 혁명가가 대중적 ‘스승’ 또는 ‘구루’가 되는 과정은 급진적 정치의 언어가 ‘민주화 이후’ 어떻게 변형되고 순치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7장. ‘민주화’ 이후 탈근대 담론과 한국 지식문화〉에서는 1987년 이후 한국 지식계에서 폭발적으로 등장한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문화주의, 생태주의 등 이른바 ‘탈근대’ 담론의 형성과 변화를 추적한다. 현실사회주의 붕괴와 ‘민주화’, 대학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기존 마르크스주의 중심의 지식체계가 흔들리고 새로운 잡지와 담론장이 빠르게 생겨났다. 저자는 탈근대론을 단순히 ‘좌파의 퇴각’으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계급 외에도 젠더, 생태, 욕망, 신체, 문화, 소수자 등의 문제를 사유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지적 전환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제3세계와 변혁론의 시야가 약화되고, 서구 지식에 대한 의존이 커지는 문제도 있었다. 따라서 이제는 과거의 탈근대론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식민성, 분단, 자본주의, 평화 등과 변혁을 새롭게 결합하는 갱신된 비판적 인문학의 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8장. 1987년 이후 한국 출판문화·지식문화의 전환〉에서는 1987년 이후 출판의 자유가 확대되는 과정을 한국 사회의 ‘민주화’만으로 해석하지 않고, 세계화·자유화가 동시에 진행된 변화로 분석한다. 금서와 납·월북 작가가 해금되고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었지만, 출판에 대한 검열과 공안 탄압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한편으로 출판산업이 해외 저작권 체계와 국제시장에 편입되면서 한국 지식문화는 제3세계적 자의식에서 벗어나 더욱 강한 서구화·미국화로 이동한다. 오늘날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K-문학의 성취로 이어지는 역사적 기반도 이때 형성됐다. 즉 한국의 출판 자유화는 글로벌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편입 과정이기도 했다. 〈9장. 서발턴은 쓸 수 있는가〉에서는 노동자·여성·빈민 등 이른바 ‘민중’이 직접 자신의 삶을 글로 쓰기 시작한 역사에 주목한다. 특히 1970~1990년대 노동자의 수기, 르포, 생활글과 여성 노동자들의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지배계급/민중, 앎/무지를 갈라놓던 문화적 분할에 맞선 ‘해방의 글쓰기’였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민중문학’을 지식인이 ‘민중을 대신해’ 그려낸 문학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누가 말하고 누가 쓸 수 있는가, 글쓰기의 권리를 누가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10장. 세기를 건넌 한국의 노동소설〉은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약 30년간의 노동소설의 흐름을, 노동 과정과 주체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다시 읽는다. 기존의 문학사는 1980~1990년대 노동소설에 대해, 투쟁하는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도식적 인물 구도, 선악의 이분법에 갇혀 쇠퇴했다고 평가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노동소설이 실제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주류 문학계 시야에서 배제됐을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정규직/비정규직, 서비스노동, 불안정노동 등 노동의 모습과 주체가 복잡해지면서 ‘투쟁하고 연대하는 20세기 노동자’와 ‘고립된 21세기 노동자’를 단순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덧붙여 오늘의 문학이 청년과 불평등 문제에는 민감하면서도 노동의 권리와 노동운동 자체에는 상대적으로 무감하지 않은지 다시 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11장. 노동소설의 노동소설〉에서는 이인휘의 장편소설 『노동자의 이름으로』를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와 ‘민주화 이후’를 다시 읽는다. 소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2016~2017년 촛불항쟁까지 30년간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역사를 가로지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노동자가 다시 만날 가능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작품을 ‘노동소설의 노동소설’로 명명하면서, 1980~1990년대 노동소설의 세계관과 윤리, 서사 문법을 집성하고 갱신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제 86세대 엘리트 중심의 ‘민주화’ 서사와 다른, 노동자의 시선으로 민주주의 서사를 다시 써보자고 제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