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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005
프롤로그 021 1. 30년 전쟁의 시작 안융진의 세 사람 027 | 거란주 035 | 거란군 수뇌부 044 | 제1차 침략 053 | 고려의 고민 061 | 숨은 영웅 067 | 담판 082 2. 국경 개척의 선구자 압록강 097 | 국경 104 | 옹성 110 | 마음의 눈 115 | 긴박한 상황 123 | 서희의 마지막 교훈 139 3. 고향 진주에서 멸단십계명 149 | 특별한 휴가 156 | 산대 연극 160 | 쌍암 돌기 167 4. 운명을 바꾸는 동북면 도령중랑장 181 | 국경 밖으로 188 | 여진족 추장 대실라후 193 | 거란의 성동격서 전략 201 | 화주관 습격 사건 207 5. 권력의 심장부에서 천추태후와 김치양 215 | 목종의 대비책 221 | 무신에서 문신으로 226 | 강조의 쿠데타 232 | 스님 왕순의 책봉 240 6. 꺾인 날개 여진족의 고자질 245 | 바람이 불면 풀은 눕고 249 | 거란 황제 256 | 유배 262 | 남해 끝자락 어촌 마을 267 | 유배지에서 271 | 하공진의 발원 280 7. 바람 앞의 등불 역신과 충신 사이 289 | 고려의 관문 294 | 강조와 소배압 297 | 조원과 강민첨 311 | 서경에서 개경으로 315 | 부끄러운 계책 318 | 진주에서 군사를 모으다 325 8. 현종의 특명 황도의 처참한 모습 335 | 지채문의 오해 340 | 현종의 특명 346 | 하공진의 지혜 353 | 험난한 몽진길 361 | 나주에서 받은 서신 370 9. 고려의 볼모 하공진 서경성의 고려 깃발 381 | 결사대 386 | 허울뿐인 승전 394 | 임황과 백두산 401 | 하공진과 야율융서 409 | 드러나는 진실 420 | 거란 황제의 노림수 426 10. 거란에서 탈출 시도 433 | 연경 생활 439 | 비밀 서신 446 | 김은부의 수모 454 | 하공진과 김은부의 만남 461 | 최후의 결투 470 11. 외로운 선택 고난의 길 477 | 거란 감옥에서 486 | 죽음 496 | 김은부의 생환 515 | 고영기와 송국화 523 | 30년에 걸친 고려-거란전쟁 527 | 현종의 어명 534 | 하공진 산대놀이 538 | 왕이 내린 이름 542 에필로그 549 후기 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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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년(신해년) 1월 1일(음력), 고려 제8대 국왕 현종이 하루 전에 건네준 항복 문서를 품에 넣은 하공진은 거란군 선봉장 야율분노의 부하 장교가 이끄는 60여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고려의 황도 개경에 들어섰다. (…) 품속에서 꺼낸 항복 문서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지만, 충격과 분노 그리고 그가 마주친 절체절명의 역사 앞에 하공진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 p.21~22 "음- 할아버지 하 시랑공의 이름은 참으로 '고려의 정신적 보배'이오. (…) 그의 충절을 만백성이 자손만대에 기억하자는 뜻에서 '보배 진'으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즉, 하진河珍이요, 하진-!" "보배야! 너는 이제 단순히 한 가문의 자손이 아니다. 고려가 가장 아픈 시기에 얻은 가장 귀한 보석이다. 네 이름이 불릴 때마다 고려는 너의 할아버지 하공진을 기억할 것이다." --- p.543~544 고려 역사 475년 중 하공진이 순국한 후, 1012년부터 1392년 고려의 멸망 때까지 380년 동안 그의 충절은 모든 고려인에게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었으며 정신적 지주였다. 어려운 국난을 당할 때마다 역사의 방향을 비추는 등대였었다. 그의 사후 무려 천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역시 그렇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에필로그」중에서 불타버린 고려의 역사를 복구한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사료의 부족으로 고려사를 왜곡했고, 일본은 우리나라 전체의 역사를 축소 왜곡했다. 다만, 고려시대의 중후반기 내내 하공진 놀이가 유행했다는 사실, 그가 최전방 압록강 경비대장으로 근무했다는 사실, 동북면에서 근무 후 영전하여 목종의 말년을 근접 경호했다는 사실, 거란의 2차 침공을 앞두고 섬으로 유배되었다는 사실,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의 패전 이후 그가 사면 복권되었다는 사실, 나주로 몽진길에 나선 현종을 알현하고 거란 황제에게 항복 문서를 전달하면서 철군을 주장하여 성사되자 본인은 인질로 잡혀간 사실, 거란 황제의 회유를 거절하고 마침내 타국에서 순국한 사실 등을 읽고 음미하며 상상하는 과정에서 그분의 삶이 점점 내 마음속에 존경과 감사와 그리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후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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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은 때로 한 사람의 삶을 몇 줄의 문장으로 남긴다. 하공진도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진주 하씨의 시조이면서도 정작 무덤 하나 남기지 못한 이 사람은, 고려 말까지 산대놀이의 주인공으로 불렸을 만큼 당대에는 뜨겁게 기억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낯선 이름이 되었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다. 저자는 『고려사』 『요사』 『동국통감』 등 정사의 짧고 건조한 문장들 - 압록강 경비대장으로 근무했다는 사실, 유배를 떠났다가 사면 복권되었다는 사실, 항복 문서를 들고 거란 황제 앞에 나아가 철군을 성사시킨 사실, 회유를 거절하고 이국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 - 을 뼈대 삼아 그 사이의 여백에만 조심스럽게 상상력을 채워 넣는다. 10년에 걸친 자료 조사의 흔적은 곳곳의 각주와 사료 인용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며, 이는 이 작품을 단순한 팩션이 아니라 사료에 기반한 역사 서사로 만든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그리는 것은 승리의 서사가 아니라 '선택'의 서사다. 하공진은 목숨을 구걸할 수도, 거란 황제의 회유를 받아들여 안락한 여생을 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죽어도 고려인이다"라는 한마디로 그 모든 가능성을 스스로 닫는다. 강대국 사이에 낀 작은 나라의 신하가 감당해야 했던 이 선택은, 국제정세의 격랑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독자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힘의 논리 앞에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잊혀진 고려의 영웅 한 사람을 복원하는 작업인 동시에, 사료의 여백에 숨죽이고 있던 우리 역사 전체를 향한 조용한 호명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