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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몸놀림 I
말 없는 몸놀림 II 극 조각 I 극 조각 II 라디오 민그림 라디오 밑그림 카스칸도 카타스트로프 무엇 어디 부록 I / 단편극의 출간, 공연과 방송, 번역에 대해 / 이예원 부록 II / 그것: 오랜 질문, 오랜 대답 / 김두리 작가 연보 작품 연표 |
Samuel Beck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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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줄곧 돌이킨다.
(「말 없는 몸놀림 I」, 11면) ‘가’, 셔츠형 내의 차림으로 자루에서 두 손과 두 무릎으로 기어 나오고, 멈추고, 공상하고, 두 손을 맞대고, 기도하고, 공상하고, 일어서고, 공상하고, 내의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고, 공상하고, 약을 한 알 삼키고, 약병을 도로 집어넣고, 공상하고, 옷가지 쪽으로 가고, 공상하고, 옷을 입고, 공상하고, (…) (「말 없는 몸놀림 II」, 17면) 충분히 불행하지가 않아요, 내가. [사이.] 그게 늘 내 불운이었죠, 불행한데, 충분히 불행하지 않아. (「극 조각 I」, 25면) [소심히.] 옆에 앉아도 되겠어요? [‘가’와 ‘나’, 서로를 쳐다본다.] 싫어요? [사이. 슬피.] 그럼 반대편에. [‘나’, ‘가’ 반대편에 앉고, ‘가’를 본다. 사이.] 계속하나요? (「극 조각 II」, 41면) 그게… 그… 혹시나 괜히… 입에 담기조차 조심스럽지만… 다만 내가 보기에는… 거기에서… 어쩌면… 우리가 결국 뭔가 찾은 건지도요. (「라디오 민그림」, 62면) 그녀. [깜짝 놀라] 아니, 그런데 혼자네요! 그. 네. 그녀. 아주 혼자예요? 그. 누구든 혼자일 때는 아주 혼자죠. (「라디오 밑그림」, 68면) — 가자… 모뉘… 양팔 헤벌리고… 여전한 외투… 괸 물에 얼굴 박고… 매달리고… 섬 멀어지고… 뱃머리 먼바다로… 먼바다 어디든… 뭍 더는 없고… 그 머리… 그 머릿속 들여다보면… 모뉘—. (「카스칸도」, 81면) 좋아. 우리 카타스트로프가 나왔어. (「카타스트로프」, 92면) 좋아. 나 혼자다. 현재 시제로, 내가 여전히 있는 듯이. 겨울이다. 나고 듦 없이. 시간이 지난다. 그뿐이다. 이해할 자는 하리. 나는 끈다. (「무엇 어디」, 104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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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한계
베케트의 인물들은 본래 계속 말하는 이들이다. “말하기가 사유의 유일한 형태고, 삶의 필요조건이기 때문”(김두리)에 계속 말할 수밖에 없는 베케트의 인물들이, 그의 무언극에서 언어 없이 등장하면서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 보인다. 대사 없이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으로만 이루어지는 「말 없는 몸놀림 I」과 「말 없는 몸놀림 II」은 각각 배우 1인과 2인을 위한 무언 단막극이다. 사막으로 상정된 무대에서 휘파람 소리와 함께 나무, 가위, 유리병, 밧줄 등이 정육면체들과 더불어 천장에서 내려왔다 다시 끌어올려지는 상황 속에서 남자는 조금씩 반응하다가 점차 움직이지 않는다(「말 없는 몸놀림 I」). 한편 자루에서 기어 나와 여러 행동을 취하다가 자루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는 두 사람이 있다. 이들은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하는 장대에 번갈아 찔리면서 왼쪽으로 이동하다 멈춘다(「말 없는 몸놀림 II」).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상황에 말없이 수동적인 대응으로 귀결하는 인물들은 현실에의 “조용한 절망”(프리츠 마우트너)을 보여 준다. ‘말 없는 몸놀림들’을 뒤잇는 일곱 편의 등장인물들은 다시 대화를 나누며 극을 전개해 간다. 그러나 ‘말 있음’ 역시 ‘말 없음’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데 소용된다. 두 사람의 대화로 진행되는 「극 조각 I」과 「극 조각 II」은 제목이 드러내듯 이들이 처한 상황의 일부를 장면으로 떠내 보여 준다. 바이올린을 긁으며 동냥하고 있는 눈먼 이에게, 휠체어에 탄 이가 장대로 휠체어를 굴리며 다가온다. 이들은 말을 섞으며 잠시 동행을 꿈꿔 보지만, 눈 없는 이와 다리 없는 이의 필요는 애초에 서로 충족되지 못하고, 이들은 소통에 실패한다(「극 조각 I」). 한편 창문 앞에 선 한 사람을 두고 그에 대한 서류를 읽어 나가는 두 사람은 한 사람의 뛰어내림을 전제하고서, 즉 그를 구원할 수 없음을 이미 정해 두고서 문서에서 자신들이 주요하다고 판단하는 부분만을 부분적으로 살핀다(「극 조각 II」). 결말을 미완의 상태로 열어 둔 ‘극 조각’들은 상대적으로 말이 많고 대화로 극을 이끌어 가지만, 이들의 대화는 이들에게 이미 발생해 있거나 발생하리라 예견된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과 거리를 둔다. 베케트의 단편극에서 말의 없음과 있음은 무언가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를 그대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같은 곳을 향하며, 그러하기에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긴 중얼거림 끝에 내린 결론처럼) 다시 계속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계속됨 『단편극집 I』과 『단편극집 II』에 고루 실린,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베케트가 쓴 라디오극들은 음성과 음악을 적극적으로 등장시키며, 나아가 이들을 등장인물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두 번째 단편극집의 「라디오 민그림」·「라디오 밑그림」, 그리고 「카스칸도」가 이에 해당한다. 말을 부르고 그걸 받아쓰는 ‘감옥’ 같은 상황에 갇힌 횡설수설하는 진술자 폭스와 진행자 그리고 타자수와 말 못 하는 딕이 등장하는 「라디오 민그림」과, ‘들으러 온’ 그녀가 들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그 그리고 이들의 조작에 따라 흘러나오는 음악과 음성이 대화와 통화의 흐름을 누빈 끝에 ‘하나인 것’ 같은 상태를 이루는 「라디오 밑그림」을 지나, ‘음악과 음성을 위한 라디오극’이라는 분명한 부제 아래 ‘여는 이’의 안내에 따라 음성과 음악이 동등한 위상으로 펼쳐지는 베케트의 마지막 라디오극 「카스칸도」가 이야기의, 글쓰기의 지난한 여정을 읊어 간다. “— 이야기… 네가 그걸 끝낼 수만 있으면… 편해질 텐데… 잠들 수 있을 텐데… 그 전에는 말고… 아 알아… 내가 끝낸 것만… 수천 일화… 오로지 그 일… 그게 내 삶… 스스로에게 말하며… 이것만 끝내… 이건 쓸 만해… 끝내면 편해져… 잠들 수 있어… 더는 이야기 없이… 더는 말없이… 그렇게 끝냈고… 쓸 만하지 않았어… 편해지지 않았고… 곧장 또 하나… 시작해야 할 하나… 끝내야 할 하나…”(「카스칸도」, 75면) 시작과 끝, 끝과 시작이 맞물리며 이루어 가는 이 ‘계속됨’은 시간의 속성이며, 이는 음악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베케트의 극에서 음악과 음성이 동등한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도 있다. 음성, 즉 이곳에서 이야기를 말하기/글쓰기로 이어 가는 행위의 속성 역시 ‘계속됨’이기 때문이다. 여러 소설을 통해 계속됨을 계속해서 보여 주었던 베케트의 글은 이렇게 극에서도 말과 음악으로 ‘들림’을 통해 계속될 수 있음을 거듭 밝혀 낸다. 언어라는 행위 1989년 숨을 거둔 작가가 1980년대 초에 쓴 극 두 편이 책의 마지막 자리에 놓인다. 먼저 서 있는 극은 공연 마지막 장면의 리허설 무대다. 1980년대 초반 당시 투옥된 체코의 극작가이자 정치가 바츨라프 하벨을 염두에 두고 쓴 희곡 「카타스트로프」에서, 베케트는 극 중에서 극의 마지막 장면을 만들어 가는 상황 속에 한 인물을 세워 둔다. 연출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보조자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고개 숙인 채 움직임 없이 서 있던 검정 가운의 주역은 마지막에 불현듯 고개를 들어 객석을 본다. 『단편극집 I』에 실린 베케트의 영화 각본 「필름」의 마지막 장면에서 화면을 바라보는 이를 응시하던 눈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마지막 극 「무엇 어디」의 인물 넷 역시 모두 가운을 걸친 모습이다. 긴 회색 가운에 긴 반백 머리로 서로 구분되지 않는 밤, 벰, 빔, 봄은, 다섯 번째 인물이면서 등장인물 중 하나인 ‘밤’의 목소리인 ‘음’의 재촉을 받아, 돌아가며 말한다. 비슷한 인물 넷과 그중 한 목소리가 말을 반복해 주고받으며 이어 가는 돌림노래 같은 극이 과거를 계속해서 현재로 불러오며 무언가를 기억해 내 말할 것을 요구한다. 시선에 대응해 보는 이를 바라보고, 말에 대응해 말하는 행위가 작가의 마지막 시간을 채워 가며 움직임을 거듭하게 하는 동력 기관처럼 작동한다. 언어를 만들어 내는 행위가 그 결과 생성된 언어를 스스로 소진시켜 가면서, 소진되어 감을 동력 삼아 다시 언어를 만들어 내는 행위가 된다. 오늘날 베케트의 글쓰기가 시간과 공간과 분야를 넘어 계속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