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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제2막 옮긴이주 해설 사뮈엘 베케트 연보 |
Samuel Beck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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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내 말을 많이 듣는다고 착각하진 않아요, 아니요 윌리, 신이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사이) 아마 전혀 듣지 않는 날들도 있겠죠. (사이) 하지만 당신이 대답하는 날들도 있잖아요. (사이) 그래서 내가 언제나 말하는 건지 몰라요, 당신이 대답하지 않고 아마 전혀 듣지 않는 날에도, 이 말에서 뭔가 들리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내가 단순히 혼잣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건 광야에서, 내가 결코 견딜 수 없는 일이에요.
--- p.29 정말 놀랍다고 생각해요, 그냥 흘러가는 법이 없잖아요 단 하루도?(미소 짓는다)?오래된 방식으로 말하자면?(미소 사라진다)?불행이 가져오는?(윌리가 비탈 뒤에서 쓰러져, 그의 머리가 사라지고, 위니가 일이 벌어진 쪽으로 몸을 돌린다)?약간의 축복 없이. --- p.33 한 번이라도 내가 사랑스러웠나요? (사이) 내 질문을 오해하지 마요, 난 당신이 나를 사랑했는지 묻는 게 아니에요, 그건 우리 다 알잖아요, 난 당신이 나를 사랑스럽다고 여긴 적이 있는지 묻는 거예요?어느 시기에. (사이) 없어요? (사이) 말할 수 없어요? (사이) 뭐 그게 어려운 질문이긴 하죠. --- p.42 아 그래요, 할말은 너무 없고, 할일도 너무 없고, 그러다 어떤 날들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움은 너무 크고, 취침종이 울리기 전까지, 시간은 아직 남아 있는데, 할말은 더이상 없고, 할일도 더이상 없고, 그렇게 완전히, 날들이 흘러가고, 어떤 날들이 흘러가고, 종이 울리면, 한 말은 거의 혹은 전혀 없고, 한 일도 거의 혹은 전혀 없죠. --- p.47 그걸 들고 있으면, 난 힘들어요, 근데 그걸 내려놓을 수 없어요. (사이) 그걸 내리고 있는 것보다 그걸 들고 있는 게 더 불행한데, 그걸 내려놓을 수 없어요. (사이) 이성이 말해요, 그걸 내려놔, 위니, 그건 너한테 도움이 안 돼, 그 물건 내려놓고 다른 뭔가를 해봐. (사이) 난 할 수 없어요. (사이) 난 움직일 수 없어요. (사이) 안 돼요, 뭔가 벌어져야 해요, 세상에, 일어나야 해요, 어떤 변화가, 난 할 수 없어요, --- p.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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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내 말 들려요? 제발 대답해줘요……”
실존과 소통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인간의 악착같은 헐떡임 과연 위니가 처한 현실을 ‘행복한 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위니는 기상종이 울리면 눈을 떠야 하고 취침종이 울리면 눈을 감아야 한다. 자기 의지대로 잠을 자거나 노래를 부를 수 없다. 몸의 절반이 언덕에 처박혀 있고 그 아래서는 개미들이 들끓는다. 허락된 것은 쉴새없이 떠들 수 있는 입, 그녀의 존재를 보여주는 물건들(양산, 안경, 돋보기, 칫솔, 치약, 약병, 권총 등), 그리고 그 물건들을 만질 수 있는 양손이다. 위니는 자신의 물건을 집착적으로 만지고 사용하고 들여다보며 일과를 보내는 와중에, 혼잣말이나 기도를 하고 언덕 뒤의 남편 윌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면서 자신의 ‘살아 있음’을 확인받으려 한다. 하지만 윌리는 대답이 없다. 신문을 보거나 원하는 때에 잠들 수 있고 기어다닐 수 있는 윌리에게 위니는 애원한다. 대답하기 싫으면 손가락이라도 들어서 보여달라고. 위니가 줄곧 윌리의 존재를 환기시킴으로써 두 사람이 대화를 할 때도 있다고 보이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윌리의 대사가 신문기사나 위니의 말을 그대로 따라할 뿐이라는 점에서, 위니의 대사조차 물건에 쓰인 글자·문학 구절·상투어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결국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위니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그토록 갈구하는 관계와 소통의 허구성이 날카롭게 드러난다. 오 알아요 두 사람이 모였을 때?(더듬거리며)?이렇게?(보통 목소리로)?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본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사람도 그 한 사람을 보는 건 아니죠, 삶이 내게 가르쳐줬어요… 그것도. (38p) 귀먹었어요, 윌리? (사이) 말 못해요? (사이) 오 알아요 당신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죠, 당신을 사모해 위니 내 아내가 되어줘 그리고 그날 이후로 아무 말 없었죠 레이놀즈 뉴스의 토막 기사 말고는. (84p) 그러나 이 악착같은 몸부림도 결국 육체와 시간의 감옥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낡고 소진해가는 물건들처럼 위니의 육체도 쇠락해가다 제2막에서는 언덕 안으로 목까지 빨려들어가 그 분주하던 손놀림마저 불가능해진다. 위니는 제1막에서 양손을 사용할 수 있을 때 곁에 있는 권총에 입을 맞추기만 하고 스스로를 쏘지 않는다. 제2막에선 결국 양손을 쓸 수 없게 되고, 움직일 수 있는 남편에게 자신을 쏴달라고 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다. 어떤 사건을 예감하며 권총을 주시하는 우리의 시선에 결국 당도하는 건 아무리 최악인 삶이라도 ‘끝나기 전에는 끝낼 수 없다’는 메시지다. 그럼에도 “행복한 날이 될 거예요”라고 거듭 외치는 위니의 모습은, 한정된 공간에 얽매여 막연히 구원을 기다리는 인간의 무지와 삶의 잔혹성이라는 베케트의 주제를 소름 끼치도록 실감하게 한다. 눈으로 의미를 좇다 서서히 소리에 귀가 기우는, 무대를 위한 시 삶과 실존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가닿는 베케트의 언어 장치 『해피 데이스』에서 더불어 주목할 점은, 베케트가 설계한 대사·지문·호흡이다. 반복되는 표현들로 만들어내는 안정감과 절묘한 유희, 텍스트에 주저와 방황의 감정을 입히는 쉼표·말줄임표·연결부호, 침묵(사이)으로 파편화된 대사가 자아내는 아이러니한 리듬이 위니의 입을 통해 빈틈없이 쏟아져나온다. 베케트는 텍스트로 쓴 희곡이 무대에서 구현되는 결과와 대사의 형식·소리·리듬에도 완벽을 기하고자 했다. 따라서 베케트의 희곡은 의미를 좇는 눈에서 시작해 서서히 소리에 귀기울이며 읽어나갈 때,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한 편의 시로서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 『해피 데이스』는 연극 안으로 시를 가져오기를 바랐던 베케트의 언어적 의도가 극한 속 유일한 발화자를 통해 폭발적인 시너지를 발산하는 작품이다. 이로 인해 연극 [해피 데이스]의 위니 역은 배우들의 에베레스트로 여겨진다. 오스카상과 에미상을 두 차례씩 수상한 다이앤 위스트는 이를 [햄릿]에 비견할 버거운 도전이라 언급했고, 영국 배우 빌리 화이틀로는 그 난해함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가 쓰는 글이 전부 내 삶에 관한 것 같은지. 『해피 데이스』를 읽었을 때, 대체 이 남자가 나에 대해 쓴 건가 생각했다”라고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추천사 베케트는 인간의 삶이 덫이 될 수 있다는 그의 가장 강력한 상징을 그려냈다. 현대의 리스트에서 가장 불안하고 잊지 못할 작품이다. -[뉴욕 타임스] 침묵과 고립의 공포를 물리치고자 몸부림치는 인류에 대한 베케트의 예지력의 정수를 완벽히 뽑아냈다. -[가디언] 삶의 잔혹한 측면에 깃든 순수한 낙관주의라는 베케트의 주제를 우리는 좀더 파헤치고 갖고 놀아야 한다. -[데일리 뉴스] 몸의 절반이 파묻힌 주인공 역할은 [햄릿]에 비견할 버거운 도전이다. 아무런 설명 없는 그들의 포스트아포칼립스는 [워킹 데드]나 오늘날의 디스토피아 드라마보다 더욱 황폐한 인간의 삶과 이성을 보여준다. 위니를 연기하는 게 배우들의 에베레스트로 여겨지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월스트리트 저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