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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아! 북간도 나의 사랑, 나의 희망이여!
헌사 편집인의 창 / 북간도 독립운동사 시리즈 출간에 부쳐 제1부 북간도에 핀 하얀 꽃 풍운의 은진중학교 역사의 의미 프롤로그: 용정기독교 1번지 ‘뒤십자거리’ 캐나다장로회 용정 선교부와 은진중학교 설립 3대 교장 스코트 선교사 4개 교장 프레이저 선교사 5대 교장 브루스 선교사 민족주의 선각자 명의조 선생님 브루스 선교사 강제추방과 무너지는 교육권 에필로그: 기장교회와 민중신학 시인 윤동주의 명동촌 시대 프롤로그 윤동주 출생 이전의 명동촌 시대(1899~1916년) 명동촌을 이룬 사람들 명동 학교와 명동교회 명동학교 명동교회 1910년대 초중반의 명동촌 윤동주 출생과 항일투쟁의 명동촌(1917~1920년) 시인 윤동주의 명동(1917년) 명동 사람들과 용정 3.13운동 명동촌의 무장 단체들과 간도 대학살 사회주의자들의 표적이 된 명동촌(1920~1931년) 사회주의자들의 활동과 명동중학교 폐쇄(1920~1025년) 명동소학교 시절에 윤동주에게 준 것들(1925~1931년) 제4차 간도 공산당 사건과 졸업 그리고 용정 이주(1930~1931년) 에필로그 트라우마와 진주조개 용정시교회 이름이 용정중앙교회로 바뀐 까닭 제2부 영국더기, 캐나다장로회의 꿈 용정에 제창병원과 마틴 선교사가 있었다 시작하며 조선인들의 북간도 이주와 캐나다장로회 선교 조선인들의 북간도 이주(1860년대~1920년) 캐나다장로회 선교부의 조선 선교 시작과 함경도 지역 선교 캐나다장로회 선교부의 북간도 선교와 용정 선교부 설립 캐나다장로회 선교부의 북간도 선교 용정과 캐나다장로회 용정 선교부 제창병원과 마틴 선교사 캐나다장로회 용정 선교부의 제창병원 제창병원 제1대 원장 마틴 선교사는 누구인가? 용정 3.13운동과 마틴 선교사 화산처럼 폭발한 용정 3.13운동 마틴 선교사의 용정 3.13운동 참여와 그에 관한 기록들 조선인 제노사이드 간도 대학살과 마틴 선교사 1920년 10월 일제의 조선인 간도 대학살의 시작과 끝 간도 대학살에 대한 마틴 선교사의 보고 에필로그 서울 세브란스에서 마틴 선교사와 그의 사후, 선교사가 된 자녀들 레닌에게 금화 60만 루블을 받아 온 한형권은 누구인가? 참고문헌 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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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용정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뒤십자거리’에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여 용정시교회를 이루고 김계안 조사의 발길을 따라 간도 여기저기에 교회가 세워졌다. 1913년 영국더기에 캐나다 선교부가 자리를 잡고 병원과 학교가 세워지는 데 7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속에 1920년 2월에 세워진 은진중학교가 있다.
--- p.31 그는 혼탁한 시대에 무구하였고 증오의 시대에 자비에 몸을 던졌고 폭력의 시대에 시로 응답하였으며 불신의 시대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저항하였다. 그는 자신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시와 정신세계와 삶이 온전히 일치되어 순교자의 제단에 도착하였다. 1945년 2월 16일 비명을 지르며 세상을 떠난 그는 부활하여 별이 바람에 스치는 세상, 지금 우리 곁에 와있다. 그에게 붙여진 민족시인, 저항시인 등의 호칭은 삼차원에 머물 뿐이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과 이념을 떠나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자 하였던 그의 시는 우주에 공명하고 있다. 아무도 그를 가둘 수 없다. --- p.140 캐나다장로회의 선교는 이렇듯 선교사들의 과로, 고난과 고통의 감수, 열정과 사랑으로 진행되었다. 참으로 캐나다장로회 선교는 세상이 말하는 ‘제국주의 선교’와 거리가 멀었다. 특별히 용정 제창병원을 세운 마틴 선교사의 편지를 읽으며, 머레이의 『내가 사랑한 조선』, 헬렌 맥레의 『팔룡산 호랑이』를 읽으며 그들의 선교가 고난을 겪는 조선 간민과 함께하는 존재론적인 선교, ‘십자가 선교’라는 사실에 눈을 다시 뜨게 되었다. 마틴 선교사는 제창병원에서 조선 간민을 만나 그들과 함께 조선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3.13운동의 사상자들과 간도국민회를 함께 섬겼다. 마틴 선교사는 수난자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죽음이 난무하는 현장으로 내려갔다. 금번에 북간도의 조선인들과 제창병원과 마틴 선교사의 관계를 함께 새롭게 조명하면서 선교를 무조건 제국주의 앞잡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선입관이 달라지길 빌었다. --- p.157 마틴 선교사는 캐나다 출신의 영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임에도 북간도독립운동사에서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의사로서 진료뿐만 아니라 절박한 시대적 상황에서 일어난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며 지지하고 도운 사실은 어떤 이유로도 왜곡되거나 희석될 수 없다. 참으로 우연하게도 마틴이 선교사로서 용정 선교부에서 봉사했던 기간에 한국의 독립운동사와 일제 식민지 통치 기간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바로 3.13운동과 15만 원 탈취 사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 그리고 간도 대학살이다. 그는 용정 선교부에 거주하는 외국인 선교사로서 외롭고 의롭게 저항하며 분투하는 조선인들에게 장소 제공과 안전 보호, 치료와 위로, 고발과 서구 세계에 소식을 널리 전파함으로써 그들과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함께하였다. --- p.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