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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유령
그만두겠다면서 그만두지 못하는 시 반양장
윤지양
라우더북스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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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여는 글 4


시 11

처음 13

관찰 18

환상 24

단어 30

꿈 36

사랑 42

한국어 47

실험 54

불안 59

구조 65

기억 72

폭력 76

소외 82

진실 87


사이 89

필명 91

안경 97

영화 102

음악 107

용서 114

차별 119

선생님 126

멜랑콜리 132

웃음 139

질투 144

시선 150

유튜브 156

질병 161

내향인 166


시 아닌 173

문단 175

익명 180

AI 185

거짓 190

자연 193

개발자 202

고양이 208

친구 215

운전 225

수영 231

태권도 237

공백 243

행복 249


추천사 255

저자 소개 1

199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쓰거나 쓰지 않는 삶에 대해 고민한다. 어떤 삶을 살아도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머릿속에서 번갈아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보려고, 처음으로 에세이집을 썼다. 201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스키드』, 『기대 없는 토요일』이 있다. 제4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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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4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30쪽 | 305g | 122*188*15mm
ISBN13
9791199244382

책 속으로

나를 이루는 것이 오로지 나 자신일 수가 있을까? 진정한 나는 온갖 것들의 굉장한 조합이다. ---p.17 「처음」 중에서


EXIT. E와 T 사이 열한 개의 숫자Ⅺ에 대해 생각한다. ---p.20 「관찰」 중에서


타인과 사물에 대한 관찰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성찰로 돌아온다. 문학은 뻔한 것을 뻔하게 보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단 몇 줄로 요약될 사실에 대해 구구절절 썼던, 심지어 수백 쪽짜리의 책을 만들었던, 많은 문학가들에 대해 떠올린다. 문학은 유심히 보는 것이라는 내 신념은 변하지 않는다. 짧은 순간 지나치는 단면만 보고,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세상에서, 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공들이는 시간의 예술이, 다시 말해 문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p.22 「관찰」 중에서


나는 흐를 것이다. 언제나 내 문장, 그 안의 단어와 정념들은 과거에 구애받지 않고, 어둠 속에서, 이것이 어떤 형태인지 다음 날 아침, 밝은 빛 아래에서 구분하지 못하게 될지라도 나는 쓸 것이다. 흐를 것이다. 어둠 속에서 조금 더 밝은 어둠과 더 검은 어둠 사이에서. 밤하늘은 누군가의 글로 가득 메워진 것이다. 문자 위에 겹쳐진 다른 문자 그리고 다른 문자, 그 사이에 틈을 만들어 보일 것이다. 그것을 별이라 부를 것이다. ---p.28 「환상」 중에서


단어는 이미 존재하면서 동시에 새롭게 태어난다. 사람이란 존재가 과거부터 있었고, 지금도 자꾸 태어나듯이. ---p.34 「단어」 중에서


죽음은 단 하나의 장면이자 순간이며 그 순간의 앞뒤로 생명은 치열하게 분투한다. 시체에 붙은 살아 있는 벌레처럼. 땅은 언제나 살아 있으며 죽음은 눈꺼풀이 닫히고 다시 열리는 그 순간에 잠깐 존재한다. 사실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p.45 「사랑」 중에서


언어는 수단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내용이다. 언어는 일종의 육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상한 세계는 이 육신들이 뛰어노는 세계이다. ---p.52 「한국어」 중에서


실험을 하지 않은 시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존재가 둘 이상이라면, 모든 발화는 실험이다. ---p.57 「실험」 중에서


모든 시는 추모다. 시로 만든 무덤의 양식은 다양하다. 언덕 같은 동그란 무덤, 세모난 무덤, 땅속 깊이 숨겨진 무덤, 거대한 무덤, 소박한 무덤, 돌로 만든 무덤, 살아생전 일을 새긴 무덤, 이루지 못한 소망을 새긴 무덤, 아름다운 조각과 어우러진 무덤, 혹은 무섭고 기괴한 것들로 둘러싸인 무덤. 공통점이라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영원히 기린다는 것이다. ---p.62 「불안」 중에서


훼손과 예술은 닮았다. 나는 이것을 종종 조각에 비유한다. 나무 조각은 그 자체로 예술이 아니지만 그것을 가공하는 손과 눈에 의해서 예술이 된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 어떠한 마음이, 개입하고자 하는 욕망이 실은 폭력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p.78 「폭력」 중에서


두 가지의 소외를 경험한다. 하나는 내가 성의 중심에 있지 않기 때문에 경험하는 소외이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내가 가진 몇 가지 특성은 성 가운데에서 밀려나기에 좋은 것들이다. 여성, 동양인, 명확하지 않은 지향, 정신적 불안, 부유하지 않음 등등.

나머지 하나는 성 안에 있기 때문에 느끼는 소외이다. 내가 가진 몇 가지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그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p.83-84 「소외」 중에서


지양이 그리는 세계는 시시각각 변화무쌍하다. 성별도 국적도 나이도 시간도 장소도 제약이 없다. 글을 쓸 때 자유롭다고 느낀다. 매번 여행을 떠나지만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윤은 여기에 있다. 조금 다른 이름의 지양도 마찬가지다. ---p.94~95 「필명」 중에서


어쩌면 인간의 얼굴은 달걀에 불과한데 안경이 너무 자세한 묘사를 덧붙인 것일지도 모른다. ---p.100~101 「안경」 중에서


콘텐츠는 콘텐츠에 영향을 준다. 내 시가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다. 영향과 영향 사이에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글을 썼다. ---p.106 「영화」 중에서


나는 시보다 세계가 궁금합니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그 그림자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입니다. ---p.131 「선생님」 중에서


나는 타인과 타인 사이를 떠돌아 다녔다. 그 사이 어딘가에 내가 있을 것 같았다. ---p.149 「질투」 중에서


아파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기능하는 것은 기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그 작용을 명확히 알게 된다. ---p.164 「질병」 중에서


모쪼록 많은 작가들에게 앞으로도 바라는 점이라면, 내가 사랑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주는, 그런 사람들로 남길 원한다. 나 또한 그런 작가가 되었으면. 글을 쓰는 시간 외에도 충실히, 진실되게 살아가길. ---p.179 「문단」 중에서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만큼 자연도 나를 사랑한다. 비록 자연이 내가 사용하는 언어로 ‘사랑한다’ 속삭인 적은 없지만. 존재를 드러내고 그 존재를 포착하는 순간에 느끼는 희열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내가 존재를 사랑할 때 존재 또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낀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연결을 경험한다. ---p.200 「자연」 중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보며 다짐하듯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p.201 「자연」 중에서


개발 일 자체는 나와 잘 맞았다. 사용하는 언어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좋은 코드는 간결하고 효율적이며 이해하기 수월했다. 마치 좋은 문서와 같았다. ---p.206 「개발자」 중에서


나는 너처럼 꼬리가 없어서 잘 모르겠어.

다른 친구의 고양이를 보고 중얼거리자,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시인 같은 말이네.

도대체 시인 같은 말은 무엇일까. 고양이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p.214 「고양이」 중에서


공백기란 이런 것이지만, 나는 언제나 나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아닌 적이 없었다. 누워서 뜬구름에 생각을 흘려보내는 것도 나였다. 산책을 하며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 좋다고 느끼는 것도 나였다. 우는 것도 나였다.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왜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자책하는 것도 나였다. 그럼에도 나를 살리는 건 나였다. ---p.246 「공백」 중에서

출판사 리뷰

■ 그만두겠다고 말하면서도 기어이 다시 쓰는,
우리는 저마다의 유령을 품고 산다

윤지양 시인의 첫 에세이 『쓰는 유령』. ‘그만두겠다면서 그만두지 못하는 시’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쓰기와 멀어졌다가도 불현듯 다시 쓰고 싶어지는 마음에 관한 기록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도 하고, 쓰고자 하는 마음을 살필 새도 없을 만큼 각박한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다시 쓰고 싶어지는 마음은 갑자기 터지는 울음처럼 찾아왔다. 시인은 어찌할 수 없던 그 마음에 ‘쓰는 유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령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유령 같은 존재를 빌려서라도 이해하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과 삶을 이 책에 담았다.

『쓰는 유령』은 시를 쓰는 법을 알려주는 창작론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보고 듣고 기억하고 사랑한 것들을 언어로 옮겨낸 과정을 천천히 따라 걷는 책이다. ‘시’, ‘사이’, ‘시 아닌’이라는 세 개의 장으로 나뉘어 담긴 이야기들은 저마다 하나의 작은 액자처럼 구성되어 있다. ‘처음’, ‘관찰’, ‘용서’, ‘시선’, ‘문단’처럼 짧고 선명한 키워드로 된 표제 아래로 자신의 시에서 발췌한 시구가 부제처럼 따라온다. 구체적인 표제와 상상을 자극하는 부제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는 각 이야기의 첫 페이지에서는 시인이 섬세하게 엮어낸 삶과 예술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엿볼 수 있다. 본문 곳곳에 자리한 시인의 사진과 낙서, 그리고 히든 트랙처럼 숨겨진 3편의 비밀 원고를 찾아 ‘시’와 ‘시 아닌’의 ‘사이’를 오가는 과정은 독자에게 책 속의 또 다른 책을 발견하는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 쓰거나 쓰지 않는, 두 개의 축으로 지탱해 온 시간의 기록
시인의 삶에는 시가 아닌 순간에도 시가 있다

시인의 삶을 생각하면 으레 책상 앞에 앉아 시 쓰기에 골몰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윤지양의 삶에는 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를 쓸 때는 무한한 꿈과 환상 속을 헤엄치다가도, 일터에서는 누구보다 간결하고 효율적인 코드를 짜는 사람. 『쓰는 유령』은 이처럼 상반되어 보이는 두 세계를 분주히 오가며 자신을 확장해 온 누군가의 투명한 기록이다. 모두가 공백기라고 지칭하는 시기마저도 “언제나 나로 채워져 있었다”고 말하는 시인의 고백은 삶의 모든 순간이 문학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인과 생활인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을 동시에 품은 저자는 필명 ‘윤지양’과 본명 ‘양지윤’ 사이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를 빌려서라도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던 열망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앞에서 느낀 경이와 태권도장에서 배운 용기,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 부를 만큼 열렬한 우정까지…. 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결국 시로 흘러들어가는 과정을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유머를 잊지 않는 문체로 서술하며 예술과 일상, 특별함과 평범함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와 삶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한 사람 안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통과한다. 시를 쓰지 않는 순간에도 세상을 향한 관찰을 멈추지 않는 시인의 시선은 언제나 예상 밖의 지점에서 시로 돌아온다.

■ “모든 시는 추모다.”
안온하다면 쓰지 않았을 삶 속에서 끝내 놓을 수 없었던 시

“나를 이루는 것이 오로지 나 자신일 수” 없으며 “진정한 나는 온갖 것들의 굉장한 조합”임을 인식하고 그 모든 것의 뒤섞임을 시로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윤지양 시인의 글은 결코 자기 자신의 내부로만 침잠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억과 감정, 불안과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바라보는 일로 이어진다.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마주한 일상적 차별, 대상화되는 순간의 폭력적 시선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겪은 소외를 이야기할 때에도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단순한 피해의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왜 어떤 사람은 말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침묵해야 하는지, 누가 중심에 있고 누가 바깥으로 밀려나는지, 우리가 당연하게 수용하는 세계의 질서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시선은 거창한 고발이나 선언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걸려온 수상한 전화 속 성희롱, 청소년기에 즐겼던 온라인 공간 속 여성 혐오와 낙인의 언어들,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 받았던 해괴망측한 협업 제안처럼 아주 개인적인 기억과 감각에서 시작한다. 시인은 이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자신이 어떤 세계를 통과해왔는지 되짚는다. 여성, 유색인종, 명확하지 않은 지향, 부유하지 않음, 정신적 불안처럼 사회가 함부로 비정상이라 재단하고 규정짓는 정체성과, 정상성의 경계 밖으로 떠밀린 존재들을 헤아린다. “소외당한 모든 것들이 만나, 그 안에서 소외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나무처럼 위아래를 모른 채 뻗어나가”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한 채 자신이 겪어온 부당함을 시가 태어나는 자리로 삼는다. 익숙한 말과 질서에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은, 세상에 만연한 균열을 외면할 수 없었던 독자들에게 시인의 안경처럼 믿을 만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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