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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김성훈 : 언젠가 헤어질 게 두려워서 사랑을 포기할 수 있나 김한결 : 끝이라고 생각했던 데뷔작과의 힘겨운 화해 박찬욱 : 남 욕하고 나 잘났다고 위로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방은진 : 영화감독의 길에는 ‘숙련’ 같은 게 없다 양익준 : 같은 속병을 앓는 친구들이 나보다는 빨리 치유될 수 있도록 윤가은 :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윤제균 :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흘러가는 대로 최선을 이경미 : 취미와 일이 같다는 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이철하 : 아이돌 되는 것보다 더 힘들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이해영 : 시행착오가 ‘낭만’이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기 임선애 : 당신을 알아봐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장철수 : 뿌린 대로 거두는 건 아니지만 뿌려야만 거둘 수 있다 장항준 : 아열대와 혹한을 다 견뎌내는 내구성으로 정주리 : 어디 살건, 누구건, 무슨 언어를 쓰건 전해지는 감정 한지승 : ‘나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확신은 때로는 함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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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에 들어가려고 면접을 봤을 때도, 가장 재밌게 본 영화가 뭐냐고 물어보셔서 그저 진실한 마음으로 “〈쥬라기 공원〉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교수님들이 모두 빵 터지셨다. 하지만 나는 ‘왜 웃으시지?’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_28~29쪽 김한결 감독
방황을 거듭하던 그때 큰 힘이 됐던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2004)이다. (…) 이 영화를 만나고 영화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나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전까지는 세상 모든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영화감독을 꿈꾸던 사람이었다면 〈아무도 모른다〉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라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게 한 영화였다. _106쪽 윤가은 감독 사람을 진실되게 대하면 사람들이 도와준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사람이 나에게 진실되게 대하는지, 가식적으로 대하는지 안다. 나는 막내를 포함해 100명이 넘는 스태프 이름을 모두 외운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고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_133쪽 윤제균 감독 〈미쓰 홍당무〉를 만들면서 내가 목표했던 건 하나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성 캐릭터를 표현해보자. 남성 캐릭터의 시선에 갇힌 캐릭터가 아니라, 직접 보고 말할 수 있는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다. 그 당시 로맨틱 코미디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이 정형화되어 있다고 느꼈고, 그걸 깨고 싶었다. _152쪽 이경미 감독 아버지는 “돈이나 벌어, 네가 무슨 글 쓰는 재능이 있냐”라며 무시하셨다. 그럴 때마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 스스로 내 재능을 믿는 것 말고는 없다. 당시 언제나 혼자 되새겼던 말은 ‘내 재능에 내가 열광하자’라는 단 한 줄이었다. _187쪽 이해영 감독 ‘영화보다 예능을 좋아해서 감독을 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진짜 예능을 딱 끊었던 적도 있다. 방송을 한 건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내적인 반감도 있었다. 가령 내가 어렸을 때 언제나 들은 얘기가 ‘남자는 묵직해야 한다, 진중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항상 ‘입만 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_239쪽 장항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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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하겠다는 미친 생각
불확실한 재능을, 버티는 재주로 『나의 첫 번째 액션』 1권의 시작은 47세, 청춘이라 하기엔 다소 곤란한 나이에 데뷔한 최고령 신인 강윤성 감독이 연다. 회사에 들어간 친구들은 과장, 부장이 되고 함께 공부하던 영화 쪽 친구들도 하나둘 데뷔하는 사이 그는 이른바 ‘셔터맨’으로 일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아내가 부르면 달려가 청소를 하고 가게 문을 여닫았다. 그렇게 완성한 시나리오가 〈범죄도시〉(2017)였다. 너무 오래 걸렸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으며 결코 헛된 시간이란 없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김태용 감독과 공동 연출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로 데뷔한 민규동 감독은 촬영 당시 별명이 ‘99’였다. 크랭크인 이후 하루 한 시간밖에 못 자고 촬영에 몰두한 두 감독의 몸무게를 합친 숫자였다는 진정한 ‘괴담’을 들려준다. 영화를 너무 찍고 싶어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김초희 감독은 아르바이트로 카메라와 조명기를 샀다. 야심 차게 모든 스태프를 여자로 꾸린 촬영 현장에서 10센티미터 힐을 신고 있었을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을지언정. 역대 한국 영화 관객 수 1위 1,700만 명을 동원한 〈명량〉의 김한민 감독의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 현장은 거의 통제가 불가능했다. 촬영장은 오지에 가까운 섬이었고 자연환경은 매 순간 변수를 만들어냈으며 중간에 못 하겠다고 현장을 탈출한 배우도 있었다. 우리가 아는 화려한 필모그래피에는 기록되지 않은 장면들이다. K-무비의 상징 봉준호 감독은 스태프로 일하던 시절 이런 핀잔을 들었다. “너는 무슨 슬레이트 치는 것도 NG를 내냐.” 첫 슬레이트를 치기 전에 엄청나게 연습했으나 결국 너무 긴장해 새끼손가락이 끼었던 것이다. 최동훈 감독은 ‘하면 된다’보다 ‘하면 는다’를 믿는다 말하고, 이준익 감독은 “인생 자체가 정리가 안 되는 인간도 여기까지 왔다”고 돌아본다. “아르바이트 중에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감독들이 거쳐 갔을 법한 ‘예식장 촬영 알바’도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결혼식 비디오에 인터뷰를 삽입하는 획기적인 시도도 있었다. (…) 나중에는 모 대형 웨딩 스튜디오에서 나를 스카우트하려 했다.” _119쪽 변영주 감독 픽션을 만들기 위한 우연과 집념의 논픽션 처절하고 찬란한, ‘청춘’이라는 장르 ‘첫 번째 액션’ 앞에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2권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이 ‘찌질했던’ 시절을 고백한다. 힘들 때 이미 자리 잡고 성공한 사람들을 험담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고. “저 배우들 데리고 몇십억 퍼부은 게 저따위야?” 어떤 식으로는 그런 에너지가 버티는 힘이 되었다며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 같은 ‘착각’이라도 해야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다고 조언한다. 2026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박찬욱·장항준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세계의 주인〉으로 감독상을 받은 윤가은 감독은 영화를 배울 당시 선생이었던 이창동 감독에게 무서운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너는 이 이야기를 믿니?” 긴 고민 끝에 쓴 시나리오가 결국 가짜였다는 게 ‘뽀록’나는 그 물음에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토로한다. 김성훈 감독은 데뷔작이 ‘흑역사’가 되고 이후 7년의 공백기를 심연 속에서 보냈으며, 이경미 감독은 영화를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화장실도 참으며 출퇴근하던 직장인 시절의 ‘두 시간 광역버스’를 떠올렸다.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의 상영이 끝나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이제 막 치매가 오기 시작한 아버지가 혼자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던 모습을 떠올리는 이해영 감독의 스토리도 마음을 울린다. 〈왕과 사는 남자〉로 천만 감독 대열에 오른 장항준 감독의 ‘의외로 정말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도 흥미롭다. “여러 영화 연출부에 지원했지만 다 떨어졌다. (…)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다. 그래서 내가 직접 장편 시나리오를 쓴 다음 누군가가 시나리오를 좋게 본다면 “이건 나만 연출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내가 연출하는 방법밖에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_248쪽 정주리 감독 대표 저자인 주성철 기자는 이 책의 바탕이 된 『데뷔의 순간』을 펴냈을 때 그토록 초라하고 처량한 청춘의 이야기에 그토록 많은 독자들이 공감한다는 데에 놀랐던 기억을 되새긴다. 자신이 낸 책 중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이었다며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고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목표한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버려야 할 욕망과 싸웠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한다. 현재의 노력이 미래를 보장하지 못할지라도 기어이 다음 장면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의 기록은 저마다 첫 번째 액션에 몰두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전히 뜨겁고도 현실적인 응원을 건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