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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 꿈을 향한 길 위에서 교차하는 불안과 행복
1권 강윤성 : 너무 오래 걸렸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강형철 : 하늘이 열렸다는 마음으로 한다면 김초희 : ‘좋은 이야기’라는 열매를 맺기 위하여 김한민 : 만드는 사람의 계산을 넘어, 보는 사람의 감각으로 민규동 : 끝까지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 민용근 : 정말로 좋아한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변영주 : 목표를 위해서는 버려야 할 욕망이 있다 봉만대 : 제목에 ‘섹스’가 들어간 최초의 영화 봉준호 : 포기하고 말고의 선택지가 없었다 우민호 : ‘데뷔의 순간’은 한 번이 아니다 윤단비 : 다수가 좋아할 만한 안전한 영화보다는 이준익 : 인생 자체가 정리가 안 되는 인간도 여기까지 왔다 임순례 : 만들고 있지 않을 때의 불안을 다스려야 하는 직업 최동훈 : ‘하면 된다’는 말보다 ‘하면 는다’는 말을 믿는다 한준희 : “증명해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허진호 : 세계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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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어느덧 마흔여섯 살이어서 영화를 그만하려고 했다. 〈범죄도시〉를 고쳐 쓰며 3년이나 보낸 뒤라 ‘안 되는 건 안 되는구나’ 생각했다. 더 이상 미련 갖지 말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던 즈음이었다. 그런데 믿음 가는 PD가 마지막이라며 같이 하자고 하니, (…) 이틀 동안 집중적으로 시나리오를 고쳤는데,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이틀이지 않았나 싶다. _16쪽 강윤성 감독
당시 우리 별명 중 하나가 ‘99’였는데, 그건 우리 둘 몸무게를 합친 숫자였다. (…) 촬영 초반 2주 동안 그렇게 작업하다 보니 중간에 쓰러져서 입원까지 했다. 내가 입원하고 있는 동안 김태용 감독이 찾아와 영양주사를 맞으며 옆 침대에 누워 같이 잤는데, 다음 날 아침에 깨보니 김태용 감독 침대가 피로 가득했다. _88쪽 민규동 감독 나의 데뷔작은 이른바 ‘상업영화’가 아니었기에, 아니 시작할 때도 그럴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결단은 중요했다. (…) 내가 꽤 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얘기한다. 나는 내 수입의 90퍼센트를 책과 음반에 쓰고 있다고. 내가 가진 욕망 중에서 채울 수 있는 욕망은 그것밖에 없다고. _125쪽 변영주 감독 나를 선택하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한 분노가 많았다. 정말 나 스스로가 파괴되는 것 같았다. 사람이 10년을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동을 못 하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 어머니에게 만 원만 달라고 하면서 글만 썼다. 하루 만 원이면 생활은 할 수 있으니까. _176쪽 우민호 감독 여전히 불투명하고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한 작품의 성패가 가르는 희비가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영화감독은 현장에서 작품을 만들어나갈 때의 희열보다는 작품을 만들고 있지 않을 때의 초조와 불안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는 직업이다. 지금도 힘들 때면 오래전 치악산의 한 민박집에 틀어박혀 미래를 고민했던 그때를 떠올린다. _236쪽 임순례 감독 ‘드라마를 매주 순서대로가 아니라 한꺼번에 전 회차를 공개한다고?’ 하면서 ‘정말 다 같이 망하려고 미쳤구나’라고 생각했던 게 불과 10여 년 전이다. 그런 무모한 시도를 나도 평소 함께 작업하던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한번 해보자고 시작한 게 바로 〈D.P.〉였다. _274쪽 한준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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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하겠다는 미친 생각
불확실한 재능을, 버티는 재주로 『나의 첫 번째 액션』 1권의 시작은 47세, 청춘이라 하기엔 다소 곤란한 나이에 데뷔한 최고령 신인 강윤성 감독이 연다. 회사에 들어간 친구들은 과장, 부장이 되고 함께 공부하던 영화 쪽 친구들도 하나둘 데뷔하는 사이 그는 이른바 ‘셔터맨’으로 일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아내가 부르면 달려가 청소를 하고 가게 문을 여닫았다. 그렇게 완성한 시나리오가 〈범죄도시〉(2017)였다. 너무 오래 걸렸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으며 결코 헛된 시간이란 없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김태용 감독과 공동 연출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로 데뷔한 민규동 감독은 촬영 당시 별명이 ‘99’였다. 크랭크인 이후 하루 한 시간밖에 못 자고 촬영에 몰두한 두 감독의 몸무게를 합친 숫자였다는 진정한 ‘괴담’을 들려준다. 영화를 너무 찍고 싶어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김초희 감독은 아르바이트로 카메라와 조명기를 샀다. 야심 차게 모든 스태프를 여자로 꾸린 촬영 현장에서 10센티미터 힐을 신고 있었을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을지언정. 역대 한국 영화 관객 수 1위 1,700만 명을 동원한 〈명량〉의 김한민 감독의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 현장은 거의 통제가 불가능했다. 촬영장은 오지에 가까운 섬이었고 자연환경은 매 순간 변수를 만들어냈으며 중간에 못 하겠다고 현장을 탈출한 배우도 있었다. 우리가 아는 화려한 필모그래피에는 기록되지 않은 장면들이다. K-무비의 상징 봉준호 감독은 스태프로 일하던 시절 이런 핀잔을 들었다. “너는 무슨 슬레이트 치는 것도 NG를 내냐.” 첫 슬레이트를 치기 전에 엄청나게 연습했으나 결국 너무 긴장해 새끼손가락이 끼었던 것이다. 최동훈 감독은 ‘하면 된다’보다 ‘하면 는다’를 믿는다 말하고, 이준익 감독은 “인생 자체가 정리가 안 되는 인간도 여기까지 왔다”고 돌아본다. “아르바이트 중에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감독들이 거쳐 갔을 법한 ‘예식장 촬영 알바’도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결혼식 비디오에 인터뷰를 삽입하는 획기적인 시도도 있었다. (…) 나중에는 모 대형 웨딩 스튜디오에서 나를 스카우트하려 했다.” _119쪽 변영주 감독 픽션을 만들기 위한 우연과 집념의 논픽션 처절하고 찬란한, ‘청춘’이라는 장르 ‘첫 번째 액션’ 앞에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2권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이 ‘찌질했던’ 시절을 고백한다. 힘들 때 이미 자리 잡고 성공한 사람들을 험담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고. “저 배우들 데리고 몇십억 퍼부은 게 저따위야?” 어떤 식으로는 그런 에너지가 버티는 힘이 되었다며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 같은 ‘착각’이라도 해야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다고 조언한다. 2026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박찬욱·장항준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세계의 주인〉으로 감독상을 받은 윤가은 감독은 영화를 배울 당시 선생이었던 이창동 감독에게 무서운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너는 이 이야기를 믿니?” 긴 고민 끝에 쓴 시나리오가 결국 가짜였다는 게 ‘뽀록’나는 그 물음에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토로한다. 김성훈 감독은 데뷔작이 ‘흑역사’가 되고 이후 7년의 공백기를 심연 속에서 보냈으며, 이경미 감독은 영화를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화장실도 참으며 출퇴근하던 직장인 시절의 ‘두 시간 광역버스’를 떠올렸다.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의 상영이 끝나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이제 막 치매가 오기 시작한 아버지가 혼자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던 모습을 떠올리는 이해영 감독의 스토리도 마음을 울린다. 〈왕과 사는 남자〉로 천만 감독 대열에 오른 장항준 감독의 ‘의외로 정말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도 흥미롭다. “여러 영화 연출부에 지원했지만 다 떨어졌다. (…)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다. 그래서 내가 직접 장편 시나리오를 쓴 다음 누군가가 시나리오를 좋게 본다면 “이건 나만 연출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내가 연출하는 방법밖에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_248쪽 정주리 감독 대표 저자인 주성철 기자는 이 책의 바탕이 된 『데뷔의 순간』을 펴냈을 때 그토록 초라하고 처량한 청춘의 이야기에 그토록 많은 독자들이 공감한다는 데에 놀랐던 기억을 되새긴다. 자신이 낸 책 중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이었다며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고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목표한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버려야 할 욕망과 싸웠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한다. 현재의 노력이 미래를 보장하지 못할지라도 기어이 다음 장면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의 기록은 저마다 첫 번째 액션에 몰두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전히 뜨겁고도 현실적인 응원을 건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