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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너무 지나치지 말라
윤동희
북노마드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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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마케도니아 출신의 이방인, 세계를 관찰하다 · 6
2. 생명을 해부해 목적을 탐구하다 · 16
3. 이방인이 세운 학교, 리케이온 · 28
4. 논리학, 생각의 연장을 벼리다 · 40
5. 형이상학, 존재를 묻는 첫째 학문 · 54
6. 이데아를 땅으로 끌어내리다 · 64
7. 가능태와 현실태, 존재는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 74
8. 에우다이모니아, 행복은 갖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 · 82
9. 필리아, 자아를 확장하다 · 96
10. 수사학, 설득은 민주 시민의 기술이다 · 108
11.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들에게 삶의 지도를 건네다 · 116
12. 카타르시스, 슬픔을 통해 영혼을 씻어내다 · 128
작가의 말 · 140

저자 소개 1

북노마드 대표. 책을 만들고, 글을 쓰며, 대학과 도서관과 서점에서 미술과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네 영혼을 돌보라』『멈춰서, 혼자서』 『좋아서, 혼자서』 『편집자의 일』(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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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00*150*20mm
ISBN13
9791124871010

책 속으로

이데아는 ‘본 것’이라는 그리스어 동사 이데인(idein)에서 나왔다. ‘영혼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결코 변화하는 일 없는 사물의 참된 모습이다. 플라톤에게 눈앞에 있는 것은 이데아의 모상(模像), 즉 모방하여 만든 상이었다. 인간이 감지하는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이데아계를 닮은 형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달랐다. 그는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박동과 내장의 구조와 식물의 생장을 관찰했다. 보이지 않는 관념을 멀리했다.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졌다.

세계는 변화무쌍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의 혼돈을 방치하지 않았다. 이럴까 저럴까, 막연한 추측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랬다저랬다, 변덕스러운 감각을 신뢰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열 가지 범주(카테고리아, katēoria)로 나누었다. ‘자체로서 있는 것’ ‘본질적으로 속해 있는 것’이 범주의 형태들에 따라 속해 있다고 여겼다.

소크라테스라는 실체는 에이도스라는 ‘보편’을 품으면서도 지금, 여기 ‘개별자’로 존재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저 너머’에서 ‘보편’만을 담당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는 ‘보편과 개별’을 하나의 사물 안에서 ‘통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실재하는 사물을 분류하여 ‘범주’로 만들었을까. ‘세상은 이렇게 생겼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세계. 아리스토텔레스는 결정적 질문을 던진다.
⑴ 세계의 변화를 이끄는 맨 처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⑵ 모든 운동은 다른 운동을 통해 발생한다.
⑶ 그렇다면 최초의 운동을 일으킨 것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부동의 동력자(토 키노운 아키네톤, to kinoun akinēon)’에 도달한다. 종교적 신이 아니었다. 모든 존재가 지향하는 완전한 목적, 세계를 나아가게 만드는 궁극적인 원리였다.

행복은 밖에서 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내 안의 탁월함을 현실로 바꿀 때 만들어진다. 에네르게이아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고유한 기능이 밖으로 분출되어 일하는 상태다. 목적을 안에 품은 완성된 상태, 엔텔레케이아(entelecheia)에 이를 때 인간은 에우다이모니아에 도달한다. 씨앗이 참나무를 향해 자라나듯이 인간은 내면의 가능성을 현실의 행동으로 완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행동!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은 인간은 윤리적 실천으로 도약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들에게 “지식의 양을 자랑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영혼에 깊이 새겨진 제2의 천성인 에토스, 즉 습관이 반복되어 탁월함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정수인 중용이 탄생한다. 중용은 기계적인 중간이나 비겁한 타협이 아니다. 전쟁터에서는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의 ‘용기’가 중용이고, 돈을 쓸 때는 인색함과 낭비 사이의 ‘관대함(후덕함)’이 중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위와 감정에서 초과와 부족이라는 양극단 중간에 덕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도약. 에우다이모니아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매일 활을 들고 팽팽한 긴장을 견디며 활시위
를 당기는 반복된 습관이 탁월함에 이르게 한다. 매 순간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 phronēis)로 최선을 다해 목표를 맞히려 나아가는 삶의 궤적에서 행복은 완성된다. 중용은 상황에 따른 최적의 적중(的中)이다. 그 쌓임이 에우다이모니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땅히’라는 단어를 통해 중용의 덕을 서술한다.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마땅히 그래야 할 일,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중간이자 최선의 감정을 탁월성이라고 여겼다. 중용은 기계적으로 정중앙을 지칭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적절한 것을 취하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소크라테스는 질문으로 아테네를 흔들었다. 안다고 믿었던 것이 몰랐던 것임을 깨닫는 무지(無知)의 지(知)였다. 그에게 철학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영혼 돌봄’이었다.

그러나 아테네는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플라톤은 스승의 죽음 앞에서 철학을 ‘체계화’했다. 영원한 원형인 이데아는 저 너머에 있고, 현실은 그림자라고 말했다. 그의 시선은 늘 위를 향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선을 낮추었다. 지금, 여기를 보라! 이데아는 저 너머가 아니라 현실에 깃들어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의 ‘이방인’이었다. 시민권을 얻지 못한 메토이코스(함께 거주하는 이방인)였다. 그러나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감각은 결함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관조’하는 관찰자의 자리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를 ‘관찰’하고 ‘분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의 혼돈을 방치하지 않았다. 전제가 참인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필연적인가를 따졌다. 알고리즘과 소셜미디어가 쏟아내는 단정적인 주장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그 전제는 참인가, 그 결론은 필연적인가, 그저 익숙한 결론은 아닌가?” 우리는 정보가 부족해서 속는 게 아니라 정보가 넘쳐나서 현혹된다. 전제와 추론을 따져 묻는 철학적 습관이 절실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짜 나, 진짜 좋음이 ‘저 너머’에 있다는 플라톤의 믿음을 의심했다. ‘진짜 나’를 찾아 끝없이 탐색하게 만드는 자기 계발 언어와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진짜 나’는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행동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씨앗이 나무로 자라남을 미루지 않듯이 말이다.

삶의 목표는 행복이다. 우리는 ‘소유’로 행복에 도달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은 가진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었다. 행복은 부와 성공이라는 과녁에 존재하지 않는다. 과녁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가는 화살의 궤적 위에 있다.

탁월함을 향한 반복된 실천. 현실을 조망하고 숙고하는 행복의 과정에서 ‘중용’이 생성된다. 중용은 기계적인 중간이나 비겁한 타협이 아니다.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의 ‘용기’이자 인색함과 낭비 사이의 ‘관대함(후덕함)’이다. 너무 지나치지 말라! 인간의 행위와 감정에서 초과와 부족이라는 양극단 중간에 덕이 존재한다는 철학자의 고언이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자각하게 했다. 플라톤은 저 너머를 가리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스승의 물음을 끌어안고 다시 땅에 발을 디뎠다. 관찰하고, 분류하고, 숙고하고, 반복했다.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매일의 습관이 탁월함을 만든다는 그의 가르침은 극적인 변화를 갈망하는 오늘의 우리를 ‘다른’ 곳으로 이끈다. 정보와 자극이 넘쳐나 무엇이 옳은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극단으로 치닫지 말고 ‘마땅한’ 때에 ‘마땅한’ 만큼 행하라고 말을 건넨다. 2,400년 전 리케이온의 산책로에서 나눈 대화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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