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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문1. 안정의 세계2. 지난 세기의 학교3. 사춘기4. 삶의 대학5. 영원한 청춘의 도시, 파리6. 나 자신에게 가는 길에서의 우회로들7. 유럽을 넘어8. 유럽 위에 드리워진 광채와 그림자9. 1914년 전쟁의 첫 시간들10. 정신적 형제애를 위한 투쟁11. 유럽의 심장부에서12. 오스트리아로의 귀환13. 다시 세상 속으로14. 일몰15. 히틀러의 시작16. 평화의 고통옮긴이 해제 - 『어제의 세계』 다시 읽기‘어제의 세계’를 만든 인물들슈테판 츠바이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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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fan Zwe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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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작품에 담긴 문명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우리의 일상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우리는 새로운 서광을 보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그것은 이미 다가오고 있던 세계대전의 불빛이었다.” 츠바이크가 남긴 이 문장은 낙관이 절정에 달했던 바로 그 순간이 곧 파국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는 위기와 평화가 언제나 공존하고 있으며, 우리는 대개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 그가 증언하는 인간이라는 조건의 취약성은, 국제 정세가 다시 요동치는 오늘의 독자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전쟁은 언제나 먼 곳의 일처럼 여겨진다. 신문과 화면 속에서, 안전한 방 안에서 지켜보는 뉴스처럼 말이다. 그러나 츠바이크는 증언한다. 한순간에 삶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것이 전쟁이며,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든 비이성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온 유럽이 민족주의적 열광에 휩싸여 이성을 잃고 선전에 동원되던 순간에도, 조용한 양심으로 그 광기를 응시했던 몇 안 되는 목격자였다.이성과 과학의 진보가 더 나은 세계를 보장해 줄 것이라 믿었던 20세기 초의 유럽인들처럼, 오늘의 우리 역시 어느 순간 익숙해진 평화와 번영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믿는다. 츠바이크가 겪은 몰락은 결코 먼 나라,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츠바이크는 역사적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책임감으로, 이 모든 것을 후대에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이 책을 썼다.그럼에도 인생을 버텨낼 수 있다는 위로폐허 위에서 다시 쌓아 올리는 삶그러나 이 책은 경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도 결국 일상은 지속되고, 삶을 다시 쌓아 올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생은 우여곡절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설령 세계대전처럼 인간이 감당하기 너무 벅찬 역사적 사건이라 해도, 삶은 결국 살아내진다. 그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시련을 견디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평범한 독자들도 자신의 삶과 그 속의 부침, 어려움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인생의 보편적 진실이다."시련은 사람을 단련시키고, 박해는 사람을 굳세게 만들며, 고독은 그것이 사람을 꺾어버리지 않는 한 더욱 고양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의 모든 본질적인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깨달음은 결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없다. 언제나 오직 자신의 운명을 통해서만 배우는 법이다.“ 어떤 위기 속에서도 인간은 강인하게 버텨낼 수 있고, 때로는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과 자유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렇기에 지금의 평온함을 함부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츠바이크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드러내 보였다."모든 그림자는 결국 빛의 자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밝음과 어둠, 전쟁과 평화, 상승과 추락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만이 진정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탈고한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츠바이크는 이렇게 썼다.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어제의 세계』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건네는 마지막 작별 인사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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