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x E. Ha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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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금 피곤할 때도 가끔 있다. 정신을 차려 보면 여기가 어디인지, 어느 시대인지 알 수 없게 되어서 모든 이야기가 찔린 손가락과 저주받은 여자들이 끝없이 빙빙 도는 반복 속으로 뭉개져버린다. 가끔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벼랑 끝에서 망설일 때도 있는데, 몸속 원자들이 물리 법칙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다가 다 닳아버린 것처럼 완전히 영혼까지 기진맥진하다. 그럴 때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말든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외면하고 싶어진다.
나는 스물한 해 동안 ‘죽어가는 여자 지니아 그레이’로 살면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시간만 죽였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죽어가고 있지만(안 죽는 사람도 있나), 고향에서의 내 삶은 신문 일면을 장식하지 않았다(모험을 떠나는 사이사이에 임시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지난 두 해는 여름마다 브리스톨 르네상스 축제에서 세상에서 가장 그럴싸한 중세 의상과 소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나는 ‘차원을 넘나들며 여자들을 구하는 왈가닥 지니아 그레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그걸 그만둘 수는 없다.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은 내 몫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죽기 전에 가능한 많은 것들을 나누려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뒤풀이만 생략하고 있다. 결혼식이나 피로연, 무도회 등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마지막 축하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한때는 즐거웠지만 요즘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다 같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지. ‘행복하게’는 그 후로 오래오래 계속될 수 없다는 걸 모두 알면서도 그러니까. 진실은 문장 안에 숨겨져 있다. 원래 문장은 “그 후 영원의 세상에서 행복했다”였다. 말하자면 이런 뜻이다. “이보세요, 어차피 누구나 죽어 천국에 가는데 불행과 재앙이 이 필멸의 행성에 사는 우리들에게 들이닥친들 뭐가 그리 큰일인가요?” 그런데 여기서 말 하나를 잘라내면 짜잔, 죽음의 필연성은 영원한 장밋빛 인생의 약속으로 바뀐다. --- p.10~12 그 입술이 조용히 움직인다. “제발.” 거울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창문처럼 보이고 여자가 한쪽 손을 들어 반대편 유리에 가져다 댄다. 그의 손끝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다. 주저하기에는 그동안 공주 구하기 게임을 너무 오랫동안 해왔다. 나도 같이 유리를 향해 손가락을 올리지만, 거기에 뭐가 있기나 할지 모르겠다. 그의 손에서 나오는 온기와 피부의 미세한 탄성만은 느껴진다. 그의 손가락이 갈고리발톱처럼 내 손목을 와락 잡아채더니 그대로 나를 홱 끌어당긴다. --- p.18~19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법칙이 깨졌다. 내 시선이 그 여자가 손에 들고 있는 거울로 휙 날아간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등허리를 따라 전율이 흐르고 뒷덜미가 저릿하다. “당신.” 나는 말한다. 목소리가 떨리지만 두려움 때문은 아니다. “공주가 아니군요.” 완벽하고 깔끔한 그 눈썹이 약간 더 치켜 올라간다. 이 세상 사람들도 눈썹 정리를 하는지 궁금해진다. “아니지, 지금은.” 여자가 왼쪽 관자놀이의 옴폭한 분홍빛 자국을 매만진다. 그제야 나는 그 자국이 왕관의 무게 때문에 남은 흔적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여기가 어디죠?”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방정식이다(사과+거울+왕족). 답은 정해져 있다. 여기에는 물레도 요정도 없지만, 내 왼쪽 폐를 걸고 장담하는데 저 숲속 어딘가에는 일곱 난쟁이가 있을 거다. “당신 누구예요?” 여자의 의기양양한 기세에 아주 잠깐 금이 간다. 질문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폐하라고 불러도 좋고, 네가 자비를 구할 때라면 여왕님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이제껏 악랄한 위협은 적지 않게 들어봤지만 이처럼 심드렁하면서 진지한 말투의 협박은 처음이다. 조금 김이 샌다. “네. 그러죠. 음, 영광이에요.” 내 시선이 하나뿐인 문 쪽으로 미끄러진다. 내가 그보다 몇 걸음 더 문에 가깝다. “제가 어떻게 여기 오게 됐는지 궁금하시겠네요….” --- p.25~26 고백하건대 나는 그 여자가 못생겼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상당히 엿같은 편견이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럴 만도 한 것이, 서양의 민담은 인물의 외모와 내면의 도덕성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꾸준히 범해왔다. 그러니까 그 사악한 식인 여왕이 〈마녀와 루크〉에서 가면을 벗은 안젤리카 휴스턴과 비슷할 거라고 본 나의 추정은 아주 신빙성이 높았다. 하지만 식인 여왕의 부하들에 의해 팔을 뒤로 꺾인 채 그를 마주해보니 여왕은 전혀 못생기지 않았다. 못생기긴 커녕 이제껏 보아온 사람들 중에서(그래,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내가 지금 태양과 이야기를 하고 있나 착각하는 프림도 포함해서) 가장 못생기지 않은 축에 든다. 이 여왕은 젊은 데다 크고 아름다운 갈색 눈에 길고 보드라운 속눈썹과 통통한 뺨을 가진 여자다. 피부는 르네상스 시대 그림 속 천사들처럼 환한 흰빛이고 입술은 방금 신선한 체리를 한 그릇 먹은 것처럼, 어쩌면 훔쳐온 아이들의 날 심장이라도 삼킨 것처럼 선홍빛이다. --- p.126~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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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구하기에 숙달된 차원 여행자, 사악한 여왕에게 납치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면, 당신의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마음이 그 이상을, 더 많은 것을 원한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다. 도망쳐. 계속 도망쳐. (본문 14쪽) 스물한 살을 넘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희귀병을 앓아온 지니아 그레이는 한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뒤에도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 그로부터 5년. 지니아는 부서진 물레 조각을 이용해 수많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세상을 넘나들며 자신처럼 이미 결말이 정해진 여자들을 구하는 일을 계속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바꾸는 동안 정작 자신의 병과 앞으로의 삶을 마주하는 일은 계속 뒤로 미룬 채.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낯선 여자를 발견한다. 지니아는 당연히 또 한 명의 공주를 구하게 되리라 생각하지만 거울 너머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백설 공주》의 사악한 여왕이다. 여왕은 지니아를 거울 속으로 끌어들이고 자신의 이야기가 쓰여있는 그림 형제의 동화책을 보여준다. 이름도 없이 악역으로 살아가다가 마지막에는 벌겋게 달군 쇠 구두를 신고 죽어야 한다는 결말을 알아버린 그는 이야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니아를 납치한 것이다. 지니아는 ‘이블 퀸(Evil Queen)’이라고만 여겨지던 여자에게 이바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살아온 지니아와 자신의 죽음을 동화책에서 읽어버린 이바. 두 사람은 각자에게 이미 쓰여있는 결말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울을 통해 또 다른 ‘백설 공주’의 세상으로 향한다. 하지만 지니아가 알고 있는 ‘백설 공주’와 그 이야기 속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여자들의 삶은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알고 있는 이야기보다 더 끔찍한 ‘백설 공주’ 속에 떨어진 이후로는 공주가 언제나 선하고 여왕은 언제나 악하다는 익숙한 동화의 규칙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아닌 사람’의 자리에서 동화를 다시 읽는다는 것 동화는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 처음 만나는 이야기다.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누가 사랑받으며 어떤 삶을 행복이라 부르는지를 단순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그만큼 인물에게 주어진 역할도 분명하다. 공주는 구원받고 왕자는 공주를 구하며 마녀와 계모는 주인공을 위협하다가 벌을 받는다. 앨릭스 E. 해로우는 동화를 주인공의 행복을 중심으로 읽을 때면 다른 인물의 삶은 이야기의 진행을 돕는 기능으로 남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동화에서 그들이 어떤 시간을 살아왔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결말에 필요하지 않아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백설 공주》 역시 아름답고 선량한 공주와 질투 많고 사악한 여왕을 뚜렷하게 대비한다. 백설 공주는 여왕의 위협에서 살아남아 행복에 도착하고, 여왕은 잔혹한 형벌을 받으며 이야기에서 퇴장한다. 악역의 죽음은 공주의 해피 엔딩을 완성하고 권선징악이라는 동화의 질서를 확인해준다. 그러나 해로우는 우리가 ‘사악한 여왕’이라고 기억하는 인물에게는 이름조차 없다는 사실을 짚는다. 이야기의 악역을 맡은 여왕은 백설 공주를 질투하고 죽이려는 기능만 수행하면 되기 때문에 그 역할 바깥의 삶은 이야기에서 지워진다. 이 오래된 동화의 비합리는 해로우를 만나 수면 위로 떠오른다. 《비극을 비추는 거울을 부수고》는 이미 완성된 동화를 ‘주인공이 아닌 사람’의 자리에서 다시 읽는다. 백설 공주의 시선에서는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결말이 여왕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자신의 패배와 죽음이 예정된 비극이다. 시선이 이동하는 순간 익숙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해로우가 《백설 공주》를 다시 쓰는 이유는 악역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교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름 없는 주변 인물에게도 이야기의 중심과는 별개로 이어져온 삶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익숙한 동화를 바라보는 시야 자체를 넓히는 데 있다. 사악한 여왕이라는 역할이 한 사람의 전부일까? “그건 이미 말했잖아. 이제까지 내가 한 모든 행동은 살아남기 위한 거였어.” (본문 133쪽) 지니아가 거울 너머에서 만난 이바는 처음부터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던 사악한 여왕이 아니었다. 그는 못생긴 공주였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왕비였으며, 타국에서 온 군주였다. 아름다움과 혈통, 후계자를 낳는 능력이 여성의 가치를 결정하는 세상에서 이바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지키기 위해 힘을 원했다. 그러나 동화 속에서 이바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백설 공주를 위협하고 패배한 뒤, 공주의 행복을 완성하고 사라져야 하는 역할일 뿐이다. 자신의 역할과 결말이 적힌 동화책을 읽은 이바는 이야기 속 배역과 자신의 삶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악한 여왕’은 이야기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지만 그 역할이 이바라는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자신에게도 배역 바깥의 욕망과 삶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바가 원하는 것은 이미 쓰인 결말을 따르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힘이다. 이바와 지니아가 거울을 통과할 때마다 또 다른 《백설 공주》가 시작된다. 각 세계에서는 공주와 여왕, 사냥꾼과 난쟁이의 모습과 관계가 달라진다. 백설 공주를 보살피는 일곱 난쟁이는 열일곱 명의 산적으로 나타나고, 백설 공주를 추격하는 사냥꾼이 “머리색이 달빛을 닮았고 눈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기도 한다(본문 74쪽). 인물의 사정과 선택은 제각기 다르지만, 이야기는 공주의 행복한 결말을 완성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반복해서 악역을 맡긴다. 해로우는 서로 다른 《백설 공주》의 세상을 한자리에 펼쳐놓으며 선량한 공주와 사악한 여왕이라는 구분을 흔든다. 아름다운 백설 공주가 계모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사악한 식인 여왕이 되는 세상은 공주와 악역이 인물에게 타고난 본질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배정된 역할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는지에 따라 인물을 설명하는 이름과 그의 선택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바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다는 이유로 그가 저지른 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과 그 행동이 앞으로의 삶까지 모두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바에게 행위주체성이란 과거를 지우거나 모든 조건을 뜻대로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과 결말에서 벗어나 앞으로 무엇을 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이것이 앨릭스 E. 해로우가 이름 없는 ‘사악한 여왕’에게 돌려주는 행위주체성이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예쁘니? 《백설 공주》의 마법 거울은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순위를 매기고 늙어가는 여왕과 젊은 공주를 경쟁시킨다. 거울이 백설 공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지목할 때마다 여왕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고 두 여자의 관계는 한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적대로 굳어진다. 그러나 해로우의 이야기에서 거울은 여자들을 비교하는 도구에서 서로 다른 세계와 두 여자를 연결하는 통로로 바뀐다. 지니아는 거울을 통해 이바를 발견하고 함께 세계를 건너는 동안 자신과 너무도 닮은 갈망을 품은 상대를 알아본다. 순간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친다. 부드럽고 조용한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흐른다. 무언의 이해. 우리의 공감이 너무도 깊어서 마치 대칭이 된 듯 느껴진다. 내가 오해했던 것 같다. 그때 호텔 욕실의 거울이 내게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내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본문 140쪽) 지니아가 거울에서 발견한 것은 구해야 할 공주도 물리쳐야 할 악역도 아니다. 자신처럼 끝이 정해진 이야기에서 달아나며 더 많은 삶을 원했던 여자다. 자신과 같은 갈망을 품은 상대를 향한 지니아의 감정은 연대나 동일시에 머무르지 않고 성애적인 끌림으로 이어진다. 공주와 악역이라는 동화의 배역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지니아와 이바는 한 사람을 사랑하고 욕망하는 사람이 된다. 이들의 사랑은 동화에 덧붙인 장식이나 모험 끝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다. 결말을 피하는 일만 생각하던 두 사람에게 살아남은 뒤에도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역할이 끝난 자리에서 다음 페이지를 욕망하는 여자들 앨릭스 E. 해로우가 《백설 공주》를 다시 쓰는 일은 공주와 악역의 자리를 단순히 뒤바꾸기만 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백설 공주》의 세상을 한자리에 펼쳐놓음으로써 선량한 공주와 사악한 여왕이 인물의 본질이 아니라 이야기에서 배정된 역할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주인공의 행복을 위해 주변 인물의 삶과 목소리를 지워온 동화의 규칙을 흔든다.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비교하고 경쟁시키던 거울이 서로 다른 세계와 두 여자를 연결하는 통로로 바뀌면서 지니아와 이바 역시 상대를 구해야 할 공주나 물리쳐야 할 악역이 아닌 자신과 닮은 욕망을 지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지니아와 이바는 정해진 결말에서 달아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후의 삶을 욕망하기 시작한다. 지니아의 병이 사라지거나 이바의 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바꿀 수 없는 조건이 앞으로 살아갈 방식까지 결정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과거와 역할이 그의 미래까지 대신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해피 엔딩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직 쓰이지 않은 다음 페이지를 직접 써나가는 것. 《비극을 비추는 거울을 부수고》는 바로 그 선택에서 자신의 삶을 되찾는 일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내 미래는 바로 나의 것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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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읽어치우기에 완벽한, 생기 넘치고 매력적인 동화 다시 쓰기.” - 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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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팬과 비틀린 동화를 사랑하는 독자 모두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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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를 매듭처럼 비틀어놓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해로우의 뒤틀린 동화에 빠질 것이다. - 라이브러리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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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아는 ‘책 속 판타지’의 오랜 전통에서도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의 힘은 물레나 거울이 아니라 자신이 들어가 있는 이야기 자체를 능숙하게 해체하는 데서 나온다. - 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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