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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강 영원한 생명의 말씀 ‘로고스’ 제2강 코이노니아 제3강 빛과 어둠 제4강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제5강 사랑하는 자 vs. 미워하는 자 제6강 그리스도의 전사들 제7강 죽음의 정욕 vs. 생명의 말씀 제8강 적그리스도(Antichrist) 제9강 영지주의자들의 황제 숭배와 신사참배 제10강 여덟 가지로 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제11강 하나님의 자녀들 vs. 마귀의 자녀들 제12강 하라 vs. 하지 말라 제13강 그리스도의 죽음과 참사랑 제14강 사랑하는 법(How to Love) 제15강 사랑으로 누리는 구원의 확신 제16강 복음에 순종하는 사랑 제17강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제18강 하나님의 사랑(Caritas Dei) 제19강 쾌락의 로마인 vs. 사랑의 그리스도인 제20강 바른 교리, 바른 윤리, 바른 관계 제21강 하나님 사랑 & 형제 사랑 제22강 세상을 이기는 사랑과 믿음 제23강 “성령은 진리니라” 제24강 영생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 제25강 ‘파레시아’ & ‘오이다’ 제26강 생명에 이를 자 vs. 사망에 이를 자 제27강 참된 연합을 이루는 확신 제28강 당신은 우상 숭배자인가요? 〈부록〉 요한일서 본문(1~5장) 《개역개정》 색인(주제, 키워드, 인물 등) 참고도서 및 자료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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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교회가 죄와 회개를 말하기 꺼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1926~2015)는 설교에서 죄를 말하는 대신 ‘낮은 자존감’이 문제라고 했고, 그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주입하는 설교를 한 자였습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자가 조엘 오스틴(Joel Ostin)인데 『긍정의 힘』이나 『당신의 최고를 끌어내라』 등과 같은 저급한 책을 내놓음으로써 복음을 “솜사탕”(Cotton Candy)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슐러와 오스틴 같은 교회 지도자들, 그리고 그런 자들을 따르는 신자들에게 본문의 말씀은 꼭 필요합니다. 빛을 보고 물러가든지, 빛으로 나오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 p.82 영지주의자들은 유대인들 또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여호와 하나님은 신들의 세계에서 열등한 신으로서 악한 물질 세상을 창조한 ‘데미우르고스’라고 여겼기에 그들의 신념으로 죄는 조물주에 의해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역시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영지주의적 사상에 영향을 받은 신자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정욕과 자랑’의 삶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 p.160 성경은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이 미움이요 미움이 곧 살인임을 교훈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정도는 되어야 위대하고 숭고한 사랑으로 여기고, 형제와 이웃에게 생필품을 나누는 정도의 마음과 행위는 사랑으로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가르침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나 생필품을 나누는 사랑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품고 실천하는 사랑은 다 같은 사랑(아가페)임을 교훈합니다. --- p.305 그렇다면 교회의 힘은 무엇에 있을까요? 인구 15억 명에 가까운 인도처럼 사람 숫자를 앞세워 가장 많은 등록 신자 수를 유지하고 있으면 힘이 있는 교회입니까? 헌금을 많이 모아서 돈이 가장 많으면 힘이 있는 교회입니까? 사회에 기부를 많이 하면 가장 힘이 있는 교회가 될까요?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한 기부라면 힘이 있는 교회일 것입니다. 강하고 힘이 있는 교회는 교인 수 또는 돈과 재산의 많음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과 사랑에 그 힘이 있음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 p.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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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교회의 위기에서 보이는 21세기 한국교회의 현실
요한일서가 전하는 ‘참된 교제’와 ‘영생의 확신’ 사람은 단단하지 않을 때 어둠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물론,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마저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는 거짓 가르침에 흔들립니다. 『21세기 한국교회를 위한 요한일서 강설』은 요한일서를 통해 사도 요한이 1세기 교회에 전했던 메시지가 21세기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당시 교회를 위협했던 영지주의입니다. 저자는 케린투스와 같은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을 요한일서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와 연결해 살펴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벗어난 거짓 가르침이 어떻게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지를 설명합니다. 특히 영지주의가 육체와 영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고, 특별한 지식과 깨달음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러한 사상은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을 흔들 뿐 아니라, 신앙과 삶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우상’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오늘날 교회가 마주한 문제를 돌아봅니다. 신앙을 말하면서도 권력과 물질을 우상화하거나, 세속적 욕망을 좇거나, 자신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태도로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모습은 요한일서가 경계했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요한일서의 말씀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를 돌아보도록 이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