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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셋작가의 말추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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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의도는 없었다. 목표 함수와 피드백 루프만 있었다”압도적 서사, 첨예한 문제의식, 부조리한 현실 세태의 반영효율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의 수면을 박탈하는 인공지능의 출현 『아르고스』의 주인공 ‘재일’은 강남에서 피부클리닉을 운영하다가 실패 후 빚을 지고 경남 김해로 숨어든다. 대성동 고분군과 나란히 위치한 스마트 물류센터에서 야간 구급대원으로 일한다. 그곳에서 교대 없이 밤새도록 일하는 노동자들을 마주한다. 그들은 스스로 잠들지 않기를 택했으며, 암암리에 불면 상태를 서로에게 감염시키고 있다. 수입을 늘릴 수만 있다면 자신을 착취해도 상관없다는 분위기가 만연한 가운데 인간성을 조금씩 상실하며 기계화되는 노동자들을 가엾게 여기기는커녕 재일은 그들의 피를 연구하여 큰돈을 벌 사업 계획을 세운다. 피로감을 없애주는 궁극의 혈청을 개발하여 강남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고가에 판매하려고 한다. 그러던 중 재일은 물류센터에서 유일하게 잠을 자는 로봇 수리공 ‘수아’와 마주친다. 수아는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잠시나마 그들에게 휴식을 안겨주기도 하는데, 재일은 몇 번의 교류만으로 수아가 자신과 같은 부류임을 알아본다. 수아가 나를 보며 뭔가 판단하는 눈빛이었다. 혐오? 경멸? 아니었다. 계산이었다. 이 사람을 이용할 수 있는가, 하는 계산. 그 순간 수아가 나를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 살아남는 방식이. 도구를 찾는 방식이. 수아는 재일의 계획을 눈치채고 거래를 제안한다. 불면 항체를 지닌 본인의 피를 연구 목적으로 제공할 테니 노동자들의 수면을 앗아가는 AI 관제 시스템 ‘아르고스’를 멈출 계획을 도와달라고 한다. 그즈음 물류센터의 물동량은 목표 대비 초과 달성을 이루지만 노동자들은 불면 상태가 지속되면서 맥박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고 신진대사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다. 아르고스의 관점에서 이것은 성공이었다. 목표 함수가 달성되고 있었다. 비용은, 비용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수기안토의 반향어, 감정 소실, 분당 110회의 맥박. 이것들은 아르고스의 데이터에 없었다. 아르고스가 보는 것은 상자의 수뿐이었다. 한편 노동자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에도 재일은 좀처럼 사업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 빚을 갚고 강남으로 돌아가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끝끝내 놓지 못하는 탓이다. 그렇지만 자신 역시 다른 노동자들처럼 불면 상태에 빠졌음을 깨닫고, 결국 아르고스를 멈추기로 마음먹는다. 그즈음 고분군 사면이 폭우로 무너지면서 물류센터의 벽이 부서지고 가야의 유골과 유물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로 휩쓸려 들어오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과연 재일과 수아는 잠을 앗아간 아르고스를 멈추고 불면에 빠진 노동자들을 구할 수 있을까. “노동자가 아프지 않고 더 일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축복이다”내재화된 자본주의의 괴물성을 묘파하는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 언제부터인가 현대인의 삶에서 수면은 거대한 화두다. 정보 통신의 발달로 24시간 언제든 모두와 연결되고 어디서든 업무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잠들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마저 잃게 된 탓이다. 고도로 발전된 생산의 사이클 속에서 어느덧 인간의 몸과 마음은 과노동에 점령당하기에 이르렀다. 『아르고스』는 물류센터에서 자발적으로 수면을 포기하며 내면의 영혼을 잃어가는 이들을 핍진하게 묘사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내재화된 자본주의의 괴물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스스로 아르고스처럼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를 감시하는 불가해한 괴물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그러므로 『아르고스』를 읽는 일은 우리에게 만성화된 자기 착취적 노동을 돌아보게 하며 아름다운 꿈의 기억을 되찾아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이고 바람직한 삶이란 무엇일까.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일할 수 있을까. 첫 장편소설로 이토록 예리하고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이승형 작가가 앞으로 펼쳐나갈 작품 세계가 더욱 기대된다.· 작가의 말나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해온 사람이다. 낮에는 논문을 썼고, 밤에는 이 소설을 썼다. 논문은 결론을 요구한다. 그런데 무덤과 물류센터가 나란히 있는 것에는 결론을 붙일 수 없었다. 결론 대신 인물이 왔다. 파산한 의사가 오고, 잠을 잃은 사람들이 오고,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로봇 수리공이 왔다. 그들은 내 해석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움직였다. 나는 받아 적고, 지웠다.잘될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이 이야기가 지금 쓰여야 한다는 것만은 알았다. 쓰는 동안 자주 웃었다. 웃고 나면 대체로 부끄러웠다. 슬픈 장면에서 웃음이 나오고 우스운 장면에서 목메는 소설이 되었다면, 그것은 의도라기보다 내가 본 세계가 원래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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