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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향한 찬사
들어가며 _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1 백만 년간의 이야기 _모닥불 2 마음의 눈 _그림 3 소리의 묘사 _문자 4 이야기 전쟁 _인쇄술 5 만물을 꿰뚫어 보는 섭리의 눈 _전기 6 원 원 제로 _비트 7 수천 개 이야기가 낳은 죽음 _소셜 미디어 8 초현실 _스마트폰 작가의 말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
Kevin Ash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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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야기꾼으로 태어났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살아남았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이라는 용어를 세상에 처음 제시한 기술 혁신가 케빈 애슈턴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에서 스토리텔링을 문화나 교육의 산물이 아닌 인간 진화의 결과물이라 말한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협동심을 키운 집단의 개인은 그렇지 못한 집단의 개인보다 생존 확률이 높았고, 뛰어난 이야기꾼일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고 짝짓기 기회도 많았으며, 자녀를 낳을 확률도 컸다. 그 결과 인류의 조상은 현생 인류로 진화하기에 앞서 먼저 스토리텔러로 진화했으며, 오늘날 우리 모두는 그 유산을 물려받았다. 저자는 이 통찰을 단순한 흥미 위주의 가설로 남겨두지 않는다. 이야기의 사회적 이점은 가족과 집단으로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는 인간의 사고방식 자체를 빚어냈다. 우리의 정신 자체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는 거의 언제나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사고한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서사로 여기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상상하는 습성은 인간이라는 종의 보편적 특징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25년에 걸친 탐구 끝에 도달한 이 결론은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이야기가 오락이기 이전에 생존을 위한 실용적 장치였다는 점, 사실과 상상 사이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뚜렷한 경계가 없다는 점을 함께 강조한다. 인간에게는 인식보다 감정이 중요하기에 이야기의 옷을 입지 못한 진실은 힘을 얻지 못한다는 저자의 통찰은, 우리가 왜 매일 뉴스와 가십, 드라마와 광고에 그토록 쉽게 이끌리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 준다. 이 책은 인간이 왜 이야기에 매료되는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이야기가 인류사를 어떻게 바꾸어왔는지를 추적하는 장대한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야기로 다시 쓰인 세계 모닥불에서 스마트폰까지, 세상을 뒤바꾼 이야기 도구와 여덟 번의 격변 저자는 인류사를 스토리텔링 수단의 혁신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출발점은 선사시대 모닥불 곁이다. 청중(audience)이라는 단어가 원래 ‘듣는 사람’을 뜻했듯, 모닥불 앞에 모인 이들은 이야기를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고 공통의 가치와 믿음을 나누었다. 운율과 노래 같은 기억 장치는 문자가 없던 시절에도 이야기가 여러 세대에 걸쳐 보존될 수 있게 했다(1장). 이어 구석기 동굴 벽화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최초의 수단이 되었다. “우리가 돼지 그림을 보거나 떠올릴 때 사용하는 뇌 부위는 실제 돼지를 보거나 떠올릴 때 사용하는 뇌 부위와 동일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자극(실제 돼지)을 본 것을 떠올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본 것은 신호(돼지 그림)일 때가 간혹 있다.” 실제로 본 적 없는 돼지의 그림만으로도 그 존재를 생생히 느끼게 되는 인간의 인지 방식을 통해, 저자는 이미지가 현실 인식 자체를 바꾸어놓는다는 점을 보여준다(2장). 문자의 발명은 이야기를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해방시켰다. 수메르의 쐐기문자 점토판이 애초에 신성한 기록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저렴한 소통 수단이었다는 사실은, 문자의 탄생이 거창한 사명이 아닌 사소한 필요에서 비롯되었음을 일깨운다. “대다수 점토판은 새로 지은 건물 바닥을 떠받치기 위해 층층이 쌓아 올린 쓰레기산에서 발견되었다. 귀중하게 여겨지는 이 유물은 폐지나 마찬가지였다.”(3장) 이후 한국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소수만이 접하던 이야기를 대중의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저자는 구텐베르크의 진짜 업적이 인쇄술의 발명이 아니라 대량생산 시스템의 발명이었다고 재해석한다. “100년이 걸리던 일이 이제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 세기 동안 생산된 110만 개의 필사본과 4년 만에 생산된 104만 개의 인쇄본을 비교한 것이다.” “그가 일으킨 혁신은 단순히 속도나 양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혁신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일시에 수천 명의 머릿속에 들어갈 때 무 슨 일이 벌어지는가의 문제이기도 했다.” “구텐베르크는 대중매체의 대량생산을 발명하면서 대중을 설득하는 방법을 발명했다.”(4장) 전신과 방송의 등장은 이야기의 속도와 도달 범위를 극적으로 넓혔고, 국가 간 선전전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5장).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장면을 통해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되묻는 6장(“기계에겐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의미는 오로지 인간만이 이 세계 위에 그리는 지도이다. 이세돌이 37수에서 발견한 의미는 이세돌 본인이 부여한 것이었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정보 편식과 백신 음모론의 확산을 추적하는 7장을 지나(“백신 접종으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0.000003퍼센트인 것이다. 따라서 백신을 맞지 않은 51만 명이 접종을 선택했을 경우 그중 한 명이 백신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은 10분의 1이다.”), 마지막 8장에서는 스마트폰과 사물인터넷, 생성형 AI가 결합하며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단서 자체가 사라진 ‘초현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다. 소수가 소수에게 말하던 세상에서 소수가 다수에게 이야기를 전파하며 권력을 행사했던 시대를 거쳐, 모두가 모두에게 말하는 세상으로. 그것이 이 책이 그리는 100만 년 역사의 궤적이다. AI 시대, 우리를 지켜줄 마지막 무기는 문해력 이 책이 지금 읽혀야 하는 이유는 후반부를 관통하는 문해력 논의에 있다. 저자는 이야기가 인간에게 생존이라는 선물을 준 동시에, 편향과 비이성, 음모론에 쉽게 빠지게 만든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허위정보와 역정보가 확산하며 근거 없는 불신에 따른 접종 거부가 늘어나고, 그 결과 막을 수 있었던 중증 환자와 사망이 증가한 과정은 이야기에 매료되는 인간 본성이 어떻게 현실의 비극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로 제시된다. 저자는 여기서 되묻는다. 진짜 문제는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인간이 여전히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느냐가 아니냐고. 기계는 의도 없이 작동하지만, 인간은 끝없이 현상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는 저자의 통찰은 알파고 이후 인간의 쓸모를 되묻는 이 시대에 위안이자 동시에 경고로 다가온다. 알파고의 승리는 인간의 패배가 아니라, 감정도 의도도 없는 도구가 한 단계 발전했다는 뜻일 뿐이라는 시각은 기술에 대한 막연한 공포 대신 냉정한 균형 감각을 제시한다. 다만 저자가 내놓은 해법은 더 정교한 기술이 아니라 의심하고 검증하는 태도, 즉 비판적 문해력이다. 천동설과 지동설을 모두 의심하며 끝까지 직접 관측을 멈추지 않았던 튀코 브라헤의 태도는, 이 책이 제안하는 문해력의 정점으로 등장한다. 문해력 위기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운 역사 교양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야기를 만들고 취사선택하는 힘이 역사적으로 늘 권력자의 것이었다는 저자의 지적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믿고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독자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든다. 스크린의 압도적 해상도 앞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문해력으로 스스로를 지키자’는 이 책의 메시지는 AI 시대에 진실을 찾아가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