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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 …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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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이다. 안에 뭐든 넣을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수백, 수천 가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도넛을 사랑했다.
--- p.7 사탕, 젤리, 초콜릿은 죄악이었다. 먹지 말라고 하니 더 먹고 싶었다. --- p.54 다 나를 싫어했다. 이상하다고, 무섭다고, 소름 끼친다고. --- p.76 이제 나는 화장실에 쥐새끼같이 숨어서 단걸 먹는 예전의 도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놀라고, 놀라고, 또 놀랐다. 내 이상형을 얘기했던가? 나는 놀라지 않는 사람이 좋았다. 침착하고 차분하고 무심한 사람. --- p.66 먹지 않기엔 그것들은 너무…… 달았다. 두들겨맞는 걸 감수할 만큼. --- p.107 나는 평소에 거울을 잘 안 봤다. 거울 속 내가 다르게 움직일까봐 무서워서였다. 가장 두려운 건 눈을 마주치는 거였다. 사진도 가급적이면 안 찍었다. --- p.113 달고 맛있는 건 사실이었다. 설탕에 벌레가 꼬이는 건 자연의 이치였다. --- p.122 아주 어렸을 때 최나리가 이름을 알려주려고 “넌 누구야?” 하고 물었던 게 기억났다. 그럼 나는 대답하곤 했다. “나, 도림.” 매일 아침 하는 모녀간의 정다운 인사였다. --- p.171 여자의 나이는 남자와 다르게 셈해야 했다. 딸은 자기 나이에 엄마의 나이까지 더해야 했다. 엄마의 역사까지가 딸의 역사였다. 그렇지 않은가? --- p.175 달콤함은 죄악이었다. 그걸 탐하는 바람에 모든 게 망가지지 않았는가. --- p.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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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해,
다음 도넛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지 모르니까.” 탐하지 않기엔 너무 달콤한 그것 유독한 레시피로 태어난 광기의 동심원 안에 뭐든 넣을 수 있어서 나는 도넛을 사랑했다. 앞으로 이야기할,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_11~12쪽 아침부터 오픈런을 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여의도의 핫 플레이스 ‘도림도넛’. 서울 삼대 도넛으로 일컬어지며 유명 크리에이터의 ‘대동빵지도’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곳은 문을 연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도넛 가게다. 시그니처는 생크림을 두둑이 채운 도림도넛. 워낙 중독성이 강해 ‘마약도넛’이라고도 불린다. 초보 사장 ‘도림’은 일주일에 하루 빼고는 매일 출근해 분주하게 일하고, 신메뉴 개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도림은 도넛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안에 넣는 재료에 따라 무한히 다양한 종류를 만들어낼 수 있어서다. 유행에 발맞춰 야심 차게 선보인 두바이도넛 역시 반응이 뜨겁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활기차게 돌아가는 가게에서 한 손님이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듯 새된 비명을 지른다. 놀라서 얼어붙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다가가 손님이 먹던 두바이도넛의 맛을 본 도림은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코끝이 아려오는 얼얼한 감각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몸서리친다. 어째서 도넛에 절대 들어가선 안 될 이상한 필링이 들어 있는 걸까? 가게에 지대한 타격을 입힐지도 모를 이 중차대한 사안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법. 도림은 반드시 도넛 테러의 범인을 잡아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뾰족하게 짚이는 구석도 사람도 없어 오리무중이던 도림은 유일한 소꿉친구 ‘조지희’에게 이 사건에 대해 털어놓는다. 친구도 없고 배움도 짧은 도림보다는 언제나 조지희가 더 많이 알고 웬만한 것에 더 능하기 때문이다. 무고해 보이는 직원들을 차례로 의심하는 조지희에게 도림은 결코 그럴 리가 없다고,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겠느냐고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조지희가 의아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되묻는다. “다 너를 싫어해, 도림. 잊었어?” 조지희 말이 맞았다. 다 나를 싫어했다. 이상하다고, 무섭다고, 소름 끼친다고. (……) “괜찮아. 나는 싫어해도 도림도넛은 좋아하니까.” _76쪽 “상상력이란 말은 얼마나 허황된가. 당신은 당신이 아는 만큼만 상상할 수 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다시 열리는 첫 장 한 직원의 노련한 임기응변 덕에 큰 탈 없이 넘어가긴 했으나, 이 사건은 특별할 것 없이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던 도림의 일상에 균열을 남긴다. 도림은 누가, 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골몰하고, CCTV에 담기지 않은 사건 전후의 상황을 거듭 상상해본다. 평온한 일상을 불안하고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늘 이처럼 말끔히 해결되지 않아 찝찝함을 남기는 일들이지 않던가? 어떤 사건이든 파헤쳐보면 모름지기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맥락이 주렁주렁 얽혀 있지 않던가? 『도넛』은 범인을 추리하는 일에 자연스레 독자를 끌어들인다. 지금껏 무연히 보아온 풍경과 아무 의심 없이 믿어온 말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도록 이끈다. 직원들과 별것 아닌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도, 조지희와 부산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오는 장면도, 잘생긴 남자 손님과 가슴 설레는 데이트를 하는 장면도 별안간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들 속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화감.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순간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함의를 품은 채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막연했던 불안은 한순간에 불길한 실감으로 반전된다. 겉으로 보아서는 끝내 그 속을 알 수 없는 것. 도넛은 어쩌면 인간이라는 수수께끼를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지만, 누구도 그 속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없다.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도. 『도넛』은 삶의 비밀스러운 기억과 역사가 이어지고 겹쳐지며 발생하는 웃음과 분노, 그리고 슬픔의 동심원을 그려 보인다. 평화로워 보이는 하루하루는 알고 보면 파국적인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전, 폭풍 전야의 고요 같기도 하다. 긴장하시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일상을 죄어오는 서스펜스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리게 될 테니.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분좋은 고양감이 느껴졌다. 그걸 뭐라고 하더라, 도파민 말고, 네 글자, 아, 엔도르핀. _28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