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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임창순 한문 강좌 2
한국과 중국의 고사
임창순 저
북튜브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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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임창순 한문 강좌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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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 _ 청명 선생님의 ‘한문 강좌’ 시리즈를 펴내며(성태용, 청명문화재단 이사장)

1부 _ 한국 고사

1. 백결선생의 방아소리
2. 계백의 최후
3. 손순이 어린아이를 묻다
4. 양산가
5. 설씨가 약속을 지키다
6. 물계자는 자기의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
7. 신충이 갓을 걸다
8. 소지왕이 거문고 상자를 쏘다
9. 세속오계
10. 원효는 얽매이지 않았다.
11. 마의태자
12. 고려 태조 왕후 유씨
13. 서희는 외교를 잘했다
14. 최충의 구재(九齋)
15. 이자현이 청평산에 은거하다
16. 현덕수는 청렴하고 정직하였다
17. 윤언이가 불법을 좋아하였다
18. 김황원은 문장이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19. 정서의 과정곡
20. 의천이 불경을 간행하였다
21. 김부식과 정지상
22. 김의원이 훔친 물건을 돌려주었다.
23. 손변이 재판을 잘 판결하였다.
24. 안전은 바른 길을 지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25. 유승단이 수도를 강화로 옮기는 것을 반대하였다
26. 주열은 까다롭거나 잘지 않았다
27. 이규보는 칠현에 끼이려 하지 않았다
28. 우탁이 바른 말로 간하였다
29. 이영은 그림을 잘 그렸다
30. 최누백이 범을 잡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31. 이보림은 행정에 있어 엄정하고 명쾌하였다
32. 최영의 민둥무덤
33. 정몽주의 단심가
34. 이성계 운봉 싸움에서의 큰 승리
35. 길재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았다
36. 조운흘이 거짓 청맹과니 노릇을 하다
37. 양녕대군과 효령대군
38. 왕씨의 수난
39. 유관은 청렴하고 정직하였다
40. 황희는 관후하였다
41. 윤회의 넓은 아량
42. 맹사성의 “공·당” 문답
43. 문종은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렸다
44. 세조가 왕위를 빼앗다
45. 사육신
46. 단종이 접동새에 대하여 지은 시
47. 이용은 글씨를 뛰어나게 잘 썼다
48. 김시습이 종적을 불문에 숨기다
49. 김수온은 문장이 뛰어났다
50. 최지는 임금이 사복차림으로 나온 곳에서 만났다
51. 이석정이 속임을 당하여 장원을 빼앗겼다
52. 홍일동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53. 한계희는 청렴한 절조로 자신을 지켰다
54. 윤효손의 풍자시
55. 연산군은 방탕하고 음란하였다
56. 유자광은 간교한 지혜로 미리 죽은 뒤의 일까지 마련하였다
57. 조광조가 야인을 다루는 것을 논의함
58. 정붕은 가난한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59. 김안국은 계산을 정확히 하였다
60. 개성의 세 가지 명물
61. 이달은 시를 잘하였다
62. 신용개, 국화 여덟 포기와 함께 술을 마셨다
63. 상진은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아니하였다
64. 박영은 기를 죽이고 학문을 하였다
65. 임형수의 호방함
66. 이주경은 단소를 불어서 화를 면하였다
67. 조식은 학문을 철저히 하고 강력히 실천하였다
68. 난설헌은 시를 잘 지었다
69. 옥봉 이씨는 시로 구속된 사람을 석방시켰다
70. 백광훈을 조룡대에 견주었다
71. 유조인은 인자하여 짐승이나 미물을 사랑하였다
72. 이지함이 백성들에게 생활방도를 가르치다
73. 이후백은 청탁을 받지 않았다
74. 유정은 적 앞에서 보물을 이야기하였다
75. 김성일이 대신의 잘못을 규탄하다.
76. 유성룡은 문서를 다루는 재주까지 겸비하였다
77. 홍난상은 닭 소리를 갈매기 소리라고
78. 권필의 궁류시
79. 유몽인의 과부 시
80. 김신국이 지혜로 범인을 살렸다
81. 덕원령이 내기바둑을 두어 속임을 당하였다
82. 홍서봉이 연꽃을 꺾고 지으라는 대로 시를 지었다
83. 김득신은 글을 많이 읽었다
84. 김창흡이 우연히 시를 잘 짓는 중을 만났다
85. 남용익이 지은 시가 자기의 운명을 미리 맞히었다
86. 우복룡이 가난한 백성이 짊어진 나라의 빚을 갚아 주었다
87. 정충신은 거만한 것이 장점이다
88. 이정이 그림을 잘 그렸다
89. 한호는 글씨가 조화(자연)의 힘을 빼앗았다
90. 김현성은 행정사무에 서툴렀다
91. 박노의 종 논학은 지혜와 용맹을 모두 갖추었다
92. 강효원이 재신을 매도하였다
93. 김명국은 취했을 때의 그림이 더욱 좋다
94. 오달제는 시를 지어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였다
95. 황순승은 세상에서 ‘황고집’이라 한다
96. 박엽은 어릴 적부터 시를 잘 지었다
97. 이시백이 꽃나무를 짓밟아 없애 버렸다
98. 정순왕후는 머리가 좋았다.
99. 전백록은 기걸하였다
100. 전종영은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부지런히 하였다
101. 정홍순은 일을 신중히 처리하였다
102. 오효성의 충성
103. 한원이 은혜를 베풀고 보답을 받았다
104. 김만중은 어머니를 섬기는 데 효성이 지극하였다
105. 채제공은 어릴 적부터 큰 뜻을 가졌다
106. 최북의 익살
107. 오도일은 술을 좋아하여 고질병이 되었다
108. 이언진은 글씨를 빨리 쓴다
109. 김홍도가 해상군선도를 그렸다
110. 조광일은 가난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였다
111. 조수삼의 열 가지 뛰어난 것
112. 정약용은 역사상 위대한 학자이다
113. 김정희는 학문과 예술이 모두 높은 경지에 달하였다
114. 이상적과 「세한도」

2부_중국 고사

1. 영첩은 창을 거꾸로 잡았다
2. 맹자의 어머니가 베틀을 잘랐다
3. 안숙자는 촛불을 들고 있게 하였다
4. 구천은 강물에 술을 쏟았다
5. 범여는 호수(동정호)에 배를 띄웠다
6. 사어는 죽어서 간하였다
7. 변화가 옥을 위하여 울었다
8. 칠실에 사는 여인이 아욱이 다칠 것을 걱정한다
9. 오릉자종은 임금이 초빙하는 것을 사양하였다
10. 제나라의 왕후가 옥고리를 깨뜨렸다
11. 연소왕이 대를 축조하였다
12. 조승이 곱추에게 사과하였다
13. 풍훤은 빚을 탕감하였다(1)
14. 풍훤은 빚을 탕감하였다(2)
15. 초장왕이 갓끈을 끊었다
16. 전단이 소에 불을 질렀다
17. 단간목은 많은 의(義)를 가졌다
18. 중련이 바다에 빠져 죽겠다고 하였다
19. 전횡을 위하여 애도하는 노래
20. 빨래하는 부인이 음식을 제공하였다
21. 숙손통이 예법(禮法)을 만들었다
22. 옹치를 먼저 제후로 봉하다
23. 정장(정당시)은 역마를 상설하였다
24. 문옹이 학교를 일으켰다
25. 회남왕은 학문을 좋아하였다
26. 이광이 돌을 쏘았다
27. 이릉이 처음으로 다섯 자의 시를 지었다
28. 소무는 절(節)을 갖고 있었다
29. 종군은 출입증(出入證)을 버렸다
30. 문군이 술집을 차렸다
31. 주매신의 아내는 땔나무 채취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32. 동봉이 사람을 살렸다
33. 반씨 여인이 임금과 함께 연을 타는 것을 사양하였다
34. 왕상은 헛소문을 가라앉혔다
35. 엄릉은 돌아가서 낚시를 즐겼다
36. 송홍과의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7. 양홍의 오희가(五噫歌)
38. 종리의는 진주를 버렸다
39. 조일은 절하지 아니하였다
40. 취직 통지를 받은 모의
41. 장강은 수레바퀴를 묻었다
42. 닭 잡고 쌀밥 지어 놓고 범식을 기다리는 장소
43. 진번은 의자를 내려놓는다
44. 왕돈과 비단 이불
45. 진식은 도둑에게 물건을 주었다
46. 임종의 겹친 모자
47. 유관의 버들 회초리
48. 총명한 공융
49. 가종은 포장을 걷어 올렸다
50. 화타는 환자의 배를 해부하였다
51. 재주가 뛰어난 양수
52. 돈 냄새 나는 최열
53. 혼자서 웃는 초주
54. 허소의 인물 평론
55. 진복의 하늘 문답
56. 감녕의 사치한 생활
57. 수저를 떨어뜨린 유비
58. 적이 보낸 약을 먹은 육항

저자 소개 1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 선생은 충북 옥천 출신의 한학자이자 금석학자, 역사학자, 서예가로,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문을 펼쳤고, 1963년 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해 한문 교육과 한국 고전 연구에 힘썼다. 특히 1976년부터는 매년 장학생을 선발해 학비와 생활을 지원하며 학문 후속세대를 길러냈다. 4·19 혁명 당시 교수 시위를 주도하는 등 사회적 실천에도 앞장섰으며, 『당시정해』, 『한국 금석 집성』, 『한국의 서예』 등 다수의 저술을 남겼다. 문화재위원장, 한국서지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술·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8년 청명문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 선생은 충북 옥천 출신의 한학자이자 금석학자, 역사학자, 서예가로,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문을 펼쳤고, 1963년 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해 한문 교육과 한국 고전 연구에 힘썼다. 특히 1976년부터는 매년 장학생을 선발해 학비와 생활을 지원하며 학문 후속세대를 길러냈다. 4·19 혁명 당시 교수 시위를 주도하는 등 사회적 실천에도 앞장섰으며, 『당시정해』, 『한국 금석 집성』, 『한국의 서예』 등 다수의 저술을 남겼다. 문화재위원장, 한국서지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술·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8년 청명문화재단을 세워 학문과 정신을 이어갔으며, 1999년 타계할 때까지 교육과 연구, 문화운동에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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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640쪽 | 138*204*35mm
ISBN13
9791192628677

책 속으로

신라 소지왕이 천천정(天泉亭)에 갔는데 이때에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다. 쥐가 사람말을 하기를 “까마귀 간 곳을 찾아라” 하니 왕이 기사에게 명령하여 쫓아가게 하였다.
길에서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보다가 까마귀 있는 곳을 놓쳐 버렸다. 이때에 늙은이가 못 가운데서 나와 봉한 편지 한 통을 바쳤다. 겉면에 쓰여 있기를 “뜯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뜯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되어 있었다.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기보다는 뜯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하였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두 사람은 서민이고 한 사람은 왕이다” 하니 왕이 그렇게 여기고 뜯어 보았다. 편지의 내용에는 “거문고 상자를 쏘아라”라고 되어 있었다.
왕이 궁에 들어가서 거문고 상자를 보고 쏘았다. 내전(内殿)의 분수승(焚修僧)이 왕비와 몰래 정을 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잡혀서 죽었다. 그리하여 그 못을 명명하기를 서출지(書出池)라 하였다.
(新羅炤智王, 幸天泉亭, 時有烏與鼠來鳴, 鼠作人語云: “烏去處尋之.” 王命騎士追之. 路見兩猪相闘,忽失烏所在, 時有老翁, 自池中出, 奉一封書, 外面題云: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 王曰: “與其二人死, 莫若不開.” 日官奏云: “二人者庶民也, 一人者王也.” 王然之, 開見, 書云: “射琴匣.” 王入宮, 見琴匣射之, 乃内殿焚修僧與宮主潜通也, 二人伏誅, 因命其池曰書岀池.)
--- pp.39-41

신혜왕후 유씨는 정주(貞州) 사람 천궁(天弓)의 딸이다. 궁예(弓裔)의 말기에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謙)이 태조의 집에 가서 폐립(廢立)을 논의하려 하였는데 태조는 왕후가 그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왕후에게 이르기를 “채소밭에 아마 새로 익은 참외가 있을지 모르니 가서 따 오시오” 하였다. 왕후는 그 뜻을 알고 나갔다. 그리고 북쪽 문에서 몰래 장막 안으로 들어왔다. 이때에 여러 장군이 드디어 (왕으로) 추대할 뜻을 말하였다. 태조는 화를 내고 매우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왕후가 갑자기 막 안에서 나와 태조에게 말하기를 “의로운 사람을 천거해서 나쁜 사람을 대신하는 것은 예부터 그러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 장군의 의논을 들으니 나도 의기가 솟아나는데 더구나 장부임에 있어서야?” 하고서 손수 갑옷 깃을 들어서 입혀 주었다. 여러 장군이 붙잡고 옹위해서 나갔다.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神惠王后柳氏, 貞州人, 天弓之女也. 弓裔末, 洪儒·裵玄慶·申崇謙·卜智謙, 詣太祖第, 將議廢立, 不欲令后知之, 謂后曰: “園中豈有新瓜乎? 可摘來.” 后知其意, 出, 從北戶潛入帳中, 於是, 諸將遂言推戴之意, 太祖作色, 拒之甚堅, 后遽從帳中出, 謂太祖曰: “擧義代虐, 自古而然, 今聞諸將議, 妾猶奮發, 况丈夫乎?” 手提甲領以被之, 諸將扶擁而出, 遂卽位.)
--- pp.51-53

양녕대군(讓寧大君) 제(禔)는 태종(太宗)의 맏아들이요, 효령대군(孝寧大君) 보(補)는 태종의 둘째 아들이다. 처음에 양녕대군을 세자(世子)로 봉했는데 공부는 힘쓰지 않고 놀이와 여자만을 좋아하였다. 태종은 마침내 이를 쫓아내고 셋째아들인 충녕대군(忠寧大君) 도(祹)를 세워 세자로 삼았으니 이가 곧 (뒤의) 세종(世宗)이다. 어떤 이는 “양녕은 태종이 세종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곧 거짓 미친 척하여 자리를 양보했다”고 한다. 평소에 자기 생활이 매우 호화스러웠고 술, 여자, 사냥하는 이외에는 하나도 손대는 일이 없었다.
효령대군은 부처를 섬기는 일에 깊이 빠져 있었다. 한번은 불사(佛事)를 거행하면서 양녕을 초청하였다. 양녕은 사냥꾼과 활잡이를 데리고 사냥개를 몰고 사냥하는 장비를 싣고 몰래 토끼와 여우를 잡아가지고 가서 불사에 참여하였다. 얼마 후에 사냥꾼은 잡은 짐승을 들여오고 주방에서도 불고기를 들여오고 시중드는 사람은 술을 들여왔다. 보(補)가 마침내 부처 앞에 절하며 머리를 조아릴 때에 양녕은 불고기를 들고 예사롭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보는 정색을 하며 “형님! 오늘은 술과 고기는 좀 그만하시오” 하였다. 양녕은 웃으며 “나는 평생에 하늘에서 너무 큰 복을 타고나서 살아서는 왕의 형이고 죽어서는 부처의 형이 될 터인데 무엇 때문에 고생을 해야 하느냐?” 하였다. 부처는 보를 가리킨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를 통쾌하게 여겼다.(讓寧大君禔, 太宗長子, 孝寧大君補, 太宗第二子也. 初封讓寧爲世子, 不務學業, 淫於聲色, 太宗乃廢之, 而立第三子忠寧大君祹爲世子, 是爲世宗. 或云: “讓寧知太宗意在世宗, 卽陽狂, 以讓之.” 云, 平生自奉甚厚, 酒色游獵之外, 一不着手. 孝寧佞佛, 嘗作佛事, 請讓寧, 讓寧率田人射士, 牽黃犬, 載獵具, 陰使擊兎伐狐, 往預佛事, 俄而, 田人進獸, 庖人進炙, 御人進酒, 補乃拜佛叩頭, 讓寧撮炙飮酒自若, 補正色曰: “大兄今日姑止酒肉.” 讓寧笑曰: “僕平生天授福甚厚, 生爲王兄, 死爲佛兄, 不可作苦.” 佛指補也, 士論快之.)
=== pp.142-144

단종이 협박에 의하여 왕위를 양보하고 금성대군(錦城大君) 유(瑜)의 집에 나가 있었다. 6월에 명(明)의 사절이 왔는데 세조(世祖)는 날을 받아서 창덕궁(昌德宮)에서 연회를 차리기로 하였다. 박팽년(朴彭年)과 성삼문(成三問)은 그날에 성승(成勝)과 유응부(兪應孚)를 시종무관(侍從武官)에 임명하고 연회가 벌어질 시기에 큰일을 일으키어 문을 닫게 하고 세조의 측근자를 죽이고 단종을 왕위에 다시 앉히기로 모의하였다. 삼문이 김질(金礩)에게 “일이 성공되면 너의 장인인 정창손(鄭昌孫)이 영의정(領議政)이 될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계획이 정해졌는데 당일에 이르러 세자(世子)를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고 시종무신(侍從武臣)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성승이 칼을 차고 들어가려 하니 한명회(韓明澮)가 막아서 들어가지 못하였다. 승(勝)은 물러나와 명회를 죽이려 하였고 응부도 들어가서 습격하여 일을 해치우려 하는데 팽년, 삼문 등이 굳이 말려서 마침내 중지하였다. 김질은 일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정창손과 함께 대궐에 나아가서 반란을 계획한 사실을 고발하였다. 팽년, 삼문 등은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죽었다. 이 사람들을 세상에서 ‘사육신’(死六臣)이라 한다. 곧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이다.(端宗被逼讓位, 出居于錦城大君瑜家, 六月明使來, 世祖將擇日, 爲設宴于昌德宮, 朴彭年·成三問, 謀以其日使成勝·兪應孚爲雲劒, 方當宴時擧大事, 令閉門, 誅世祖羽翼, 使端宗復王位, 三問謂金礩曰: “事成則汝妻父鄭昌孫當爲首相.” 謀已定, 而當日命世子勿入侍, 雲劒亦勿入. 勝佩劍欲入, 韓明澮沮之不得入, 勝退欲殺明澮, 應孚亦欲入擊擧事, 彭年·三問等固止乃已, 金礩見事不成, 與鄭昌孫詣闕上變, 彭年·三問等酷被拷掠而死. 世稱六臣, 卽朴彭年·成三問·李塏·河緯地·柳誠源·兪應孚是也.)
--- pp.171-173

상진(尙震)은 목천(木川) 출신이다. 자는 기부(起夫), 호는 범허정(泛虛亭). 문과(文科)에 올라서 검열(檢閱, 벼슬이름)이 되어 고향에 돌아오는데 농부가 소 두 마리를 먹이고 있는 것을 보고 “어느 소가 더 좋으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하지 않고 몰래 귓속말로 말하기를 “짐승이나 사람이나 마음은 마찬가지여서 평가하는 말을 듣는다면 좋은 소는 기뻐하겠지만 못한 소는 화를 낼 것이오. 사실은 나이가 적은 것이 낫습니다” 하였다. 진(震)은 사과하면서 “공은 숨어서 사는 군자입니다. 삼가 가르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이때부터 남에게 거슬리는 짓을 하지 않았다. 다리가 한 쪽이 짧아서 저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를 가리켜 ‘절름발이’라고 하니 공은 “짧은 다리는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인데 한쪽 다리가 길 뿐이라” 하였다. 평생에 남의 단점을 말하지 않았다는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판서 오상(吳祥)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상고시대의 즐거운 풍속이 쓸어 버린 듯 없어졌는데 다만 봄 바람이 부는 듯한 술잔 속에서 볼 수 있다.” 공은 그것을 보고 “어쩌면 그렇게 박한 말로 표현하는가?” 하며 “상고시대의 즐거운 풍속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 봄바람 부는 듯한 술잔 속에 볼 수 있다”라고 고쳐 주었다.(尙震木川人, 字起夫, 號泛虚亭. 登文科, 以檢閱歸鄕, 見田夫牧二牛, 問其優劣, 不答, 密語曰: “畜心與人心同, 若聞評言, 其稱優者喜而劣者怒矣, 其實少者較勝.” 震謝曰: “公隱君子也, 謹奉敎.” 自是, 未嘗忤人. 人有短脚而蹇者, 或指曰蹇脚. 公曰: “短脚與人同, 但一脚長而已.” 平生不言人之短處類如此. 吳判書祥有詩曰: “羲皇樂俗今如掃, 只在春風盃酒間.” 公見之曰: “何言之薄耶.” 改以 “羲皇樂俗今猶在, 看取春風盃酒間.”)
--- pp.240-241

초나라 왕은 오릉(於陵)에 사는 자종(子終)이 훌륭하다는 것을 듣고 그를 대신을 삼고자 하여 사절을 시켜서 금 100일(鎰)을 가지고 가서 초빙하였다. 자종은 들어가서 아내에게 이르기를 “왕이 나를 대신으로 맞이하려 한다. 오늘 대신이 되면 말 네 마리가 앞에서 수레를 몰고 말탄 호위가 뒤에 따를 것이며 음식은 사방 열 자가 되도록 앞에다 거창하게 차려 놓게 될 것인데 당신은 좋다고 생각하는가?” 하니, 아내는 “당신이 짚신을 삼아서 생활하였으니 아무런 직업이 없는 것이 아니었고 왼편에는 거문고, 오른편에는 책을 놓고 있었으니 즐거움이 그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저 네 마리 말이 수레를 몰고 말탄 호위병이 따른다 할지라도 앉는 좌석은 무릎 하나 용납할 장소밖에는 필요한 것이 없고, 음식을 앞에다 사방 열 자가 되도록 차려 놓는다 할지라도 맛있게 먹는 것은 고기 한 가지에 불과할 것입니다. 지금 무릎을 용납할 좌석이 편하고 맛있는 고기 한 가지를 위하여 초나라의 걱정을 떠안게 되었으니 어지러운 세상에는 해를 당할 일이 많은데, 나는 당신이 명을 보전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자종은 나가서 왕의 사자에게 사양하는 뜻을 밝히고 마침내 아내와 함께 도망가서 남의 집에 들어가서 농장에 물대는 일을 돕고 지냈다.(楚王聞於陵子終賢. 欲以爲相, 使使者持金百鎰, 往聘之, 子終入謂妻曰: “王欲以伐爲相, 今日爲相, 明日結駟連騎, 食方丈於前, 可乎?” 妻曰: “夫子織屨以爲食, 非與物無治也; 左琴右書, 樂在其中矣. 夫結駟連騎, 所安不過容膝, 食方丈於前, 所甘不過一肉, 今以容膝之安, 一肉之味, 而懷楚國之憂, 亂世多害, 妾恐先生之不保命也.” 於是, 子終出謝使者, 遂相與逃, 而爲人灌園.)
--- pp.465-467

후한의 공융(孔融)은 자는 문거(文擧), 노나라 사람이다. 공자의 20대 손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다. 열 살 때에 아버지를 따라 수도에 갔다. 이때 하남윤(河南尹) 이응(李膺)은 명망이 높고 번거로움을 싫어하여 아무렇게나 사람을 접견하지 않고 당시의 유명인사라든가 집안 간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알리지 말게 하였다. 융은 그의 문 앞에 가서 “나는 이 선생과 관계 있는 집안사람이다” 하였다. 문을 지키는 사람이 보고하니 이응은 융을 들어오게 하였다. “너의 할아버지가 옛적에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었느냐?” 하고 물으니 융은 “그렇습니다. 저의 선조인 공자가 노자와 인격적으로 도의적으로 함께 스승과 제자처럼 지냈으니 나와 선생은 여러 세대 전부터 관계가 깊은 집안입니다” 하여,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감탄하였다. 태중대부(太中大夫) 진위(陳煒)가 늦게 와서 “대체로 어려서 총명한 자라고 해도 성장해서는 반드시 똑똑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느니라” 하였다. 융은 “당신 말하는 것을 보니 아마 어려서 상당히 총명했을 듯합니다” 하였다. 응은 크게 웃으며 “너는 반드시 훌륭한 인재가 될 것이다” 하였다.(後漢孔融字文擧. 魯國人, 孔子二十世孫. 幼有異才,
十歲隨父詣京師. 時河南尹李膺, 簡重, 不妄接士, 自非當世名人及與通家, 皆不得白, 融造門,
曰: “我是李君通家子弟.” 門者言之, 膺請融, 問曰: “高明祖父嘗與僕有舊恩乎?” 融曰: “然. 先君孔子與李老君同德比義, 而相師友, 則融與君累世通家.” 衆坐歎息. 太中大夫陳煒, 後至, 曰: “夫人小而聰了, 大未必奇.” 融曰: “觀君所言, 將不早慧乎?” 膺大笑曰: “高明必爲偉器.”
--- pp.602-604

출판사 리뷰

한국과 중국의 옛이야기,
임창순 선생의 붓글씨로 만나다

『청명 임창순 한문 강좌 2 : 한국과 중국의 고사』는 청명 임창순 선생(1914~1999)이 1981년부터 1990년까지 KBS 3TV(현 EBS)에서 진행한 한문 강좌를 책으로 엮은 '청명 임창순 한문 강좌'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지은이 임창순 선생은 금석학에서 탁월한 성과를 남긴 한문학의 대가이자 서예가이며,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를 세워 수많은 한문 후속세대를 길러낸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시리즈에는 오랜 시간 한문 연구와 고전 해석에 힘써 온 선생의 학문적 통찰과 함께, 한문을 지금 여기의 언어로 옮기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 교육철학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선생의 TV 강의 중 '한국 고사'와 '중국 고사'에 관한 내용을 기반으로 1993년에 일지사에서 출간한 『한문강좌 : 한중고사』의 개정판이다. 초판은 지은이가 직접 붓으로 쓴 한문 문장으로 각각의 고사를 소개했는데, 이번 개정판에도 그 붓글씨를 빠짐없이 싣고, 오늘날의 독자들을 위해 활자로 옮겨 독음을 달았다.

이 책에 수록된 고사는 신라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한국 고사 114편과 춘추전국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중국 고사 58편이다. '고사'라고 하면 흔히 중국의 옛이야기를 떠올리지만, 이 책의 중심에는 오히려 우리 고사가 있다. 백결 선생의 방아 소리, 계백의 최후, 서희의 담판, 정지상과 김부식의 다툼, 정몽주의 단심, 황희의 너그러움, 사육신의 절개, 단종의 애달픔, 허난설헌의 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얽힌 우정 이야기까지, 교과서에서 이름만 스치듯 지나쳤던 인물들의 생생한 일화가 한문 문장과 쉬운 우리말 풀이로 펼쳐진다. 이름은 익숙해도 그 사람이 어떤 말과 행동으로 기억되어 왔는지는 몰랐던 우리 옛사람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중국 고사와 나란히 읽으면 두 나라의 옛이야기가 어떻게 닮고 다른지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문장 중에 설명이 필요하거나 해석이 어려운 부분에는 꼼꼼하게 주석을 달았고, 옛 글을 지금 우리말로 맛깔나게 옮기는 데 평생을 바친 지은이의 한글 번역문 덕분에 한문 초보자도 쉽게 옛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다. 초판은 출간 당시부터 한문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참고서로 각광받았지만, 한동안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웠다. 이번 개정판은 초학자에게는 길잡이가 되고, 한문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새로운 발견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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