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일일업무 보고서
오이 곁가지 경순의 잘못 기도 모기 고래의 방 해설 | 전기화 |
황시운의 다른 상품
|
내가 맡은 일의 총체이자 직장에 매여 있는 반나절에 대한 증거인 업무 보고서는 검토조차 거쳐보지 못한 채 버려지고 있었다.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마치 나의 매일매일이 버려지는 것 같아서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일일업무 보고서」(9면) 뱃속이 뜨끈해지고 입안에 침이 고이자 비로소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 무가치한 일로 번 밥이었지만, 그래도 먹고 나면 살 것 같아졌다. ---「일일업무 보고서」(14면) 내 기대 수명은 62.6세였다. 그날까지 이제 이십년쯤 남아 있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더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보다 일찍 사라지고 싶지도 않았다. 나에게 닥친 사고가 악몽 같으면서도 하필이면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친 걸 억울하게 여기진 않았다. 내게 닥친 불행을 이해하고 수긍해서가 아니었다. 남은 삶에 대해 어떤 마음도 갖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꼬박 석달을 버티며 정신이 들 때마다 했던 다짐을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 ---「일일업무 보고서」(15면) 그가 작성한 보고서는 누구에게 보내질까. 그도 나처럼 게시물의 조회 수와 보고 메일의 수신 여부를 확인하며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힐까.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내일의 나 역시 오늘의 나처럼 아무 쓰임이 없을 거라는 사실에 절망할까. 어떤 마음도 갖지 않겠다는 다짐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오늘만 생각하며 꾸역꾸역 살아가다가 정해진 때에 홀가분하게 통증에서 벗어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언제고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일일업무 보고서」(43면) 말끔하게 씻긴 엄마에게선 오이비누 냄새가 났다. 엄마는 오이 냄새가 싫다며 오이를 먹지 않았지만, 가장 싸다는 이유로 오이비누만 샀다. 어째서인지 오이 냄새가 나는 건 비누고 화장품이고 간에 값이 쌌다. 그래서 나도 오이 냄새가 싫었다. 남들은 싱그럽다는 그 냄새가 내게는 가난의 상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이」(52면) 너무 어린 나머지 눈앞의 현실을 감당하기 벅찼을 땐 어른이 되면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릴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더욱더 깊은 늪으로 걸어들어가는 일이었다. ---「오이」(58면) “아들, 엄마가 지갑을 놓고 나와서 그러는데 택시비 좀 계좌이체 해줄래?” 아무도 속지 않을 장난 같은 전화였다. 하지만 그냥 끊을 수가 없었다. 너무 장난 같아서 오히려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할까. 어머니의 인생과 그 인생에 곁가지처럼 드리워졌다 줄기가 채 영글기도 전에 꺾여나간 내 인생이 그랬다. 온통 농담 같고, 장난 같고, 심지어 사기 같았다. ---「곁가지」(78면) 늦은 오후, 내내 어두컴컴하던 내 방에 햇살이 쏟아져들어오면 오래 묵은 먼지가 부유하며 반짝이기 시작한다. 햇살 속에서는 먼지마저도 제 존재를 발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한번은 오지 않을까. 나에게도 딱 한번은 오지 않을까. ---「기도」(148면) 길고 지루한 『모비 딕』을 읽으며 아버지의 죽음을 들여다보던 눈으로, 아직 살아 있는 형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우선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었다. ---「고래의 방」(250면) |
|
삶의 사각지대를 응시하는
황시운의 고요하고 끈기 있는 시선 소설집의 문을 여는 표제작 「일일업무 보고서」의 화자 ‘세진’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뒤 장애인 의무고용제 아래 재택근무자로 일하고 있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기사를 스크랩하고,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업무 보고서를 제출하며 “매일매일이 버려지는 것 같”(9면)은 기분으로 살아가는 세진의 곁에는 그가 받은 보상금으로 카페를 차리려는 언니와 그런 언니의 편을 드는 엄마가 있을 뿐이다. 화장실조차 혼자 갈 수 없는 몸으로 존엄의 한 조각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하루는 핍진하다 못해 처절하게 다가오지만, “그래도 먹고 나면 살 것 같아졌다”(14면) 말하며 삶을 이어가는 세진의 모습은 읽는 이에게 묘한 희망을 남긴다. 이어지는 작품들에도 고단한 하루를 끝끝내 버텨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활동지원사를 제외하면 이들 곁에는 환자와 보호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엮인 가족뿐이다. 그러나 황시운의 소설에서는 이런 관계에서 으레 짐작할 법한 “자기연민이나 헌신적 돌봄 같은 상투성”(추천사)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이」와 「경순의 잘못」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개인에게 돌봄의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구조와 제도의 허점을 날카롭게 짚어 보이는 작품이다. 조기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는 딸의 이야기 「오이」에서 ‘나’는 지난한 현실 앞에서 매 순간 도망치고 싶어하지만, 정작 ‘나’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은 어머니나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삶이 아니라 “가장 저렴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가능케 하”(해설)던 오이가 “어렵게 사시는 주민분들 생활환경 개선”(59면)을 한다며 ‘나’의 대문에 그려지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부양 의무를 짊어지기에 충분한 근로 가능 인력으로 분류”(58면)되어 정부의 지원 없이 근근이 버텨내는 이에게 이와 같은 예산의 투입이 얼마나 무용하고 공허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경순의 잘못」에서 예순다섯살의 화자 ‘경순’은 한 시각장애인의 활동지원사로 일하는 동시에 전신마비 장애인인 아들 ‘주호’를 돌보며 살아간다. 두가지 돌봄을 병행하는 삶은 터무니 없이 고단하지만 ‘주호’를 돌봐줄 활동지원사는 일년이 넘도록 구해지지 않고, 가사 지원만 해주는 지원사를 구하려 해도 적지 않은 본인부담금이 부과되는 상황에서 생계를 위한 노동과 아들의 돌봄을 홀로 떠안지 않을 방법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활동지원사를 거짓으로 등록하면 지원급여를 나눠 받으며 돌봄에 전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순’은 부정수급의 기로에 놓인다. 한편 「곁가지」는 어린 ‘나’를 버리고 떠났던 어머니가 삼십여년 만에 갑작스레 돌아오며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그사이 모계 가족력으로 인해 시각장애인이 된 ‘나’는 의문들을 애써 삼키며 그녀를 말없이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누군가 방을 헤집고 다닌 흔적을 알아차리고서도 모르는 체한다. 그 마음 깊은 곳에는 “농담 같고, 장난 같으며, 사기 같기도 한”(110면) 자신의 곁가지 인생을 이해받고 싶은 바람이 포개어져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머니가 왔던 것처럼 홀연히 떠나버리고, ‘나’는 그녀가 남기고 간 말과 흔적 들을 돌아보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모기」의 ‘나’는 하반신이 마비된 ‘지숙’을 살뜰히 돌보는 장애인활동지원사다. 타인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가정이 무너지는 줄 몰랐던 ‘나’는 마치 피부를 사납게 긁고 나서야 모기에 물린 줄 아는 것처럼 아들 ‘보람’에게 한번도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알아차림이 너무 늦지는 않았으리라는 작은 가능성을 남겨둔 채. 반면 「기도」는 그런 가능성의 여지마저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 쓰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쌍둥이 오빠에게 오랫동안 학대를 당해온 ‘나’는 그로 인해 사지가 마비되기까지 하지만, 이를 외면하던 엄마는 그저 ‘나’를 데리고 안수로 병을 고친다는 기도원에 찾아갈 뿐이다. 가족에게조차 가닿지 못하는 ‘나’의 목소리는 다시 한번 ‘가족’이라는 허상과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사회를 꼬집어 보여주며 가장 깊은 차원의 고통을 증언한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모두를 위한 헌사 소설집의 마지막에 위치한 작품 「고래의 방」에서 고독사한 아버지의 집을 찾아간 ‘나’는 낡고 해진 책 『모비 딕』을 발견해 읽기 시작하고, 아버지와 형과 함께 보냈던 날들을 돌이켜본다. 중증장애인이 된 ‘나’를 간병한다는 이유로 허송세월을 한 형과 그런 형을 한심하게 여겼던 아버지, 그 “무능하거나 무책임하기로 작정한 부양 의무자들에게 둘러싸인 사각지대에서 천천히 침몰”(235~36면)한다고 느꼈던 ‘나’. 그러나 ‘나’는 어느 밤 자신을 돌려 뉘어주는 형의 손길을 통해 “아버지는 형이 나에게 얹혀산다며 형을 나무랐지만, 사실은 내가 여전히 형에게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셈”(244면)이라는 상호의존의 진실을 묵묵히 깨닫는다. 그리고 가장 가까우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형의 방문을 두드린다. 길고 지루한 『모비 딕』을 읽으며 아버지의 죽음을 들여다보던 눈으로, 아직 살아 있는 형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우선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었다.(250면) 돌봄과 생존을 위해 매일 반복하는 노동과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에도 포기하지 않고 또 하루를 살아내는 인물들에 대한 기록은 그 자체로 ‘일일업무 보고서’와 다름없다. 그러므로 황시운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기꺼이 그 보고서를 읽어내려갈 한명의 독자가 되어주는 일이며, 그렇게 비로소 펼쳐진 보고서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고단한 하루하루를 쉼 없이 이어나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헌사가 될 것이다. 작가의 말(부분) 통증 때문에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고민 끝에 몇년 전부터는 모로 누워서 벽에 태블릿 피시를 기대놓고 스마트 펜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침대에서 교정지를 보다가 원고지에 연필로 썼던 첫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정확히는 첫번째 소설을 완성하고 느꼈던 탈고의 기쁨, 그 폭발적인 감정을 떠올린 것이었습니다. 첫 소설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을까. 조심스럽게 돌아보았습니다. 이십칠년이나 흘렀지만, 부끄럽게도 여전히 시작점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제게 소설은 여전히 멀고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소설 쓰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이십칠년 전처럼 폭발적인 감정이 휘몰아치는 ‘지금’ 같은 순간 때문입니다. 이 꽉 찬 행복을 차마 놓을 수가 없어서, 통증 속에서도 한 글자 한 글자 느리게 소설을 써나갑니다. 2026년 가을 침대에 모로 누워서 황시운 |
|
황시운은 몸을 가진 존재인 인간의 복잡한 마음에 대해 쓴다. 통증을 느끼는 몸에 대해 쓰고, 몸을 나눈 가족들과의 단순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 쓰고, 그것들을 견디는 마음에 대해 쓴다. 이런 문제를 황시운만큼 사실적으로, 절박하게, 제대로 쓸 수 있는 작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몸이 부자유하다고 해서 두려움이나 모멸감마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통증을 견디는 일이 삶이라고 해도 생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소설의 인물들은, 활동지원사를 제외하면 가족이 전부인데, 이들에게 새로 부여된 이름은 환자와 보호자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에서 으레 짐작할 수 있는 자기연민이나 헌신적 돌봄 같은 상투성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 점이 반가운 것은 자신의 ‘일일생활 보고서’와도 같은 이번 소설집에서 황시운이 ‘세상이 그를 보는 눈’을 극복하고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을 획득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스물한살 이후 자기 방에 누워 글을 쓴 작가 조에 부스케가 그랬듯, 좁은 방과 몸의 부자유로부터 그가 쟁취해낼 깊고 고유한 통찰을 나는 황시운의 독자들과 함께 기대한다. - 이승우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