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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거꾸로 선 성자가 바라본 세상의 찬란함 - 최대환 신부(의정부교구) 004
제1장 프란치스코 성인의 문제 009 제2장 프란치스코 성인이 발견한 세상 023 제3장 투사 프란치스코 047 제4장 건설자 프란치스코 065 제5장 하느님의 방랑시인 081 제6장 작고 초라한 남자 101 제7장 세 개의 수도회 121 제8장 그리스도의 거울 141 제9장 기적과 죽음 161 제10장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언 185 옮긴이의 글 201 |
Gilbert Keith Cheste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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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은 해독제이기 때문에 약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성인이 때로 순교자가 되기도 한다. 해독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독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성인은 세상이 소홀히 여기는 것을 과장함으로써, 세상을 다시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세상이 소홀히 하는 요소는 시대마다 똑같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각 세대는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시대에 맞는 성인을 찾지만,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이가 아니라, 필요로 하는 이로 드러난다.
---「제1장_ 두 탁발 수도사에 관하여」중에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불가로 달려가, 벌겋게 달아오른 장작 하나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불타는 칼처럼 치켜들고 서 있었다. 여인은 기겁하여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토마스가 바라던 것은 거기까지였다. 다만, 불꽃을 휘두르며 지금 당장이라도 집을 통째로 태워버릴 듯한, 거구의 광인에 대해 그녀가 무엇을 떠올렸을지 상상해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실제로 그가 한 일은 그녀를 문까지 몰아붙이며 소리를 지르고, 문간까지 쫓아간 것이 전부였다. ---「제2장_ 달아난 수도원장」중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전히, 더 영리하고 장래가 촉망되어 보이는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어딘가 모호하고 고집스럽게 반응이 없는 학생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었다. 그때 대 알베르투스가 침묵을 깨고 이렇게 외치며 예언하듯 말하였다. “너희는 그를 ‘과묵한 황소’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언젠가 이 과묵한 황소가 우렁차게 울부짖으면, 그 울음소리는 온 세상을 가득 메우게 될 것이다.” ---「제3장_ 아리스토텔레스적 혁명」중에서 그는 스티븐슨이 말한, 삶이 ‘살 만하다’는 그 위대한 이론, 혹은 법칙을 믿었다. 그 숨결은 존재가 실재함을 다루는 그의 첫 문장들 속에서부터 이미 느껴진다. 만약 르네상스의 병적인 지성인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말한다면, 중세의 건장한 박사(doctor)는 우렁찬 천둥 같은 목소리로 분명히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사는 게 맞지요. 그게 답입니다.” ---「제4장_ 마니교도들에 대한 명상」중에서 이제 주목할 만한 사실은, 토마스주의가 실제로 작동하는 유일한 철학이라는 점이다. (...) 회의주의자는 회의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운명론자는 운명론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은 이론적으로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실제 행동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 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정신이 진흙과 피와 유전의 산물일 뿐이라고 믿는 유물론자도, 막상 자신의 결심을 할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진리가 주관적이라고 믿는 회의주의자도, 실제로는 진리를 객관적인 것처럼 다루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 ---「제8장_ 성 토마스 이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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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의 시대에 다시 읽는 상식의 철학자
20세기 초 영국 문단을 대표하는 문필가인 체스터턴은 그때까지의 세 세기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8세기는 이성의 시대를, 19세기는 상식의 시대를 자처했다. 그러나 20세기는 스스로를 보기 드문 몰상식의 시대라고밖에 여길 수 없게 되었다.” 거의 백 년 전의 이 진단은 지금, 모든 것들이 철저히 취향과 의견의 문제가 된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더 통렬하게 다가온다. 이 시대를 목도하며, 체스터턴이 불러낸 사람은 13세기의 학자 수도사, 토마스 아퀴나스다. 흔히 중세의 낡은 종교적 권위의 상징으로도 여겨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체스터턴은 그를 정반대로 읽는다. 토마스는 이성을 신뢰한 사람이었고, 감각을 영혼의 창이라 여긴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 이 세상과 삶이 선하다고 믿은 사람이었다. 그에 더해, 그가 남긴 철학은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 위에 서 있다. 이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장 커다란 개성이라고 할 만하다. 가령 철저한 회의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맞닥뜨리는 사물들의 실존을 매 순간 의심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체스터턴은 토마스의 철학을 “실제로 작동하는 유일한 철학”이라 부른다. 학자들이 감탄한 작가의 책 이 책은 출간 당시부터 전문 연구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20세기 토마스 연구를 대표하는 에티엔 질송은 이 책을 성 토마스에 관해 쓰인 가장 좋은 책으로 꼽으며, 수십 년을 토마스 연구에 바친 학자라면 체스터턴의 이른바 ‘재치’가 자기들의 학식을 부끄럽게 했음을 알아볼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체스터턴의 전기를 쓴 메이지 워드는 이 책이 쓰인 과정에 관한 일화를 전한다. 체스터턴은 비서에게 책의 절반가량을 받아쓰게 한 뒤에야 참고 문헌을 구해 오라고 했고, 가져온 책들을 빠르게 훑어본 뒤 다시는 들춰 보지 않고 나머지를 구술했다고 한다. 철학적 논변으로 중무장한 연구서가 아니라, 어느 인간의 이미지를 오래 품어 온 작가가 세밀하게, 하지만 단숨에, 그럼에도 작지만은 않은 사이즈로 그려 낸 중세 거인의 초상화다. ‘과묵한 황소’의 생애와 사상 책은 여덟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장은 토마스를 그보다 한 세대 앞선 프란치스코와 나란히 세운다. 마른 사람과 뚱뚱한 사람, 방랑자와 학생, 책을 싫어한 사람과 책을 사랑한 사람. 이토록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이 체스터턴의 출발점이다. 둘째 장은 젊은 토마스의 결단을 그린다. 명문가의 아들로 수도원장 자리가 예정되어 있던 그는 그 길을 버리고 거리에서 빌어먹는 탁발 수도회에 들어갔다. 형들이 그를 성에 가두고 여인을 보내 유혹하려 들자, 그는 벽난로에서 불붙은 장작을 집어들고는 침입자를 몰아냈다. 평생 단 한 번 그가 크게 화를 낸 순간이었다. 셋째 장과 넷째 장은 이 책의 사상적 심장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슬람 세계를 거쳐 들어온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배척하지 않고 그리스도교 안으로 받아들였다. 체스터턴은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세례를 준 일’로 묘사한다. 당시 유행했던 이분법적 사고, 즉 물질과 육체를 악으로 간주하는 영지주의에 맞서,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다는 믿음을 지켜 냈다. 체스터턴은 이처럼 현실에서 관념으로 도피하는 경향을 저지한 것이 유럽의 중세가 이룩한 거대한 업적, 혁명적 업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렇게 풍자적으로 요약한다. “병약한 르네상스의 지식인(햄릿)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묻는다면, 육중한 중세의 박사(doctor)는 천둥 같은 목소리로 ‘사는 것, 그것이 답이다’라고 대답한다.” 다섯째 장은 인간 토마스의 일상을 비춘다. 프랑스 왕 성 루이의 연회에서 혼자 사색에 빠져 있다가 ‘마니교 반박’의 실마리를 찾고 탁자를 내리친 일, 그리고 생애 마지막 무렵 십자가 앞에서 무엇을 상으로 받겠느냐는 물음에 “당신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는 전승. 여섯째와 일곱째 장은 토미즘의 핵심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고, 마지막 장은 토마스 이후 종교개혁과 근대에 이르는 사상의 흐름을 짚는다. 철학을 이야기처럼 이 책에서 체스터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 인용 대신, 달걀과 순무와 고양이를 예로 드는 편을 택한다. 형상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는 성당의 조각상에 던져진 돌멩이가, 존재와 생성을 말할 때는 속담과 동요가 등장한다. 덕분에 철학적 개념들을 멀리해 온 독자도 이 책에서는 비교적 편안하게 토마스에게 다가갈 수 있다. 한국어판에서의 철학 용어는 학계의 표준 역어를 존중하되, 체스터턴이 일상어로 쓴 대목은 최대한 일상어로 옮겨 원문의 결을 살렸다. 함께 펴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체스터턴이 10년 앞서 쓴 책이다. 체스터턴은 이 책 첫 장에서 두 성인을 쌍둥이처럼 나란히 놓고, 두 사람이 하느님을 다시 땅으로 모셔 옴으로써 강생의 신비를 새로 증언했다고 썼다. 거리의 성인과 서재의 성인, 두 권을 함께 읽을 때 체스터턴이 그린 전체 그림이 완성된다. 의정부교구 최대환 신부가 두 책의 추천의 글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