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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2. 송석중 - 함석헌, 그는 누구인가 3. 유동식 - 풍류도인 함석헌 4. 안병무 - 씨알과 평화 사상 5. 김하풍 - 생명과 믿음 : 함석헌 선생의 사상 6. 박재순 - 씨알 사상의 핵심 : '스스로 함', '맞섬', '서로 울림' 7. 김경재 - 함석헌 역사 이해 8. 노명식 - 토인비와 함석헌의 비교는 가능한가 9. 지명관 - 함석헌의 조선사관에 대한 고찰 10. 김영호 - 함석헌과 인도 사상 11. 김진 - 함석헌의 동양 고전 해석학 : 옛글 고쳐 씹기 12. 김조년 - 함석헌의 씨알 교육(사상) 연구 13. 이치석 - 전쟁 시대와 싸우는 씨알 교육 |
咸錫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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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함석헌과 토인비의 걸어간 삶의 길과 모양은 전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양인은 사상적으로 서로 아무 교섭이 없다. 피차 영향을 주고받은 일이 전혀 없다. 그들이 각자 그 대표작들을 쓰고 있었던 시기는 신기하게도 1930년대의 거의 같은 시기이다. 그때 토인비가 함석헌의 글을 알았을리도 없고, 함석헌도 토인비를 알았을 까닭이 없다. 토인비의 『연구』1~3권이 출판되는 것은 1934년이고, 또 토인비의 이름이 우리 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하는 것은 해방 후의 일인데, 『한국역사』와 『세계역사』가 『성서조선』에 연재되는 것은 1932년부터이다. 해방 후 토인비의 이름이 일약 세계에 알려진 뒤에도 함석헌은 토인비의 영향을 별로 받은 것 같지 않다. 그를 잘 알고 있는 안병무에 의하면, "그는 사상적으로 웰스에게서 문화적 · 역사적 낙관주의, 톨스토이에게서 휴머니즘, 내촌에게서 성서, 타고르, 카알라일, 르스키, 노자, 장자, 『바가바드기카』에서 최근의 떼이야르 드 샤르댕에 이르기까지 사상의 편력을 계속했는가 하면, 삶과 행동의 면에서는 인도의 간디에 심취해 왔다."고는 말하나, 토인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안병무가 보기에 토인비의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필자도 함석헌의 글에서 토인비의 이름을 꼭 한 번 밖에 본 기억이 없다.(물론 필자가 읽은 그의 글은 그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것도 자기가 웰스에게서 받은 영향에 대해 언급하면서 웰스의 책이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토인비의 책보다 더 많이 읽혔다는 것을 말하는 대목에서이다. 토인비의 사상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다. 그 이유는 필자가 짐작건대 아마 함석헌은 해방 후 해를 거듭할수록 종교 사상, 특히 인도와 중국의 종교 사상 연구에 몰두하여 종교가 내지 종교 사상가로서의 길을 걷는 데 비해, 토인비는 그 종교적 관심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계속 역사가로서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에 있지 않나 추측해 본다. ---pp.146~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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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함석헌기념사업회'가 그 동안 주로 <씨알의 소리>에 게재되었던 글들을 중심으로 하고 거기에 새로 쓴 3편의 글을 붙여서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다양하게 조명해 보고자 한 책이다. 이 책을 엮은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는 이러한 동기 아래서, 첫째 함석헌 선생의 인간으로서의 모습, 스승으로서의 모습, 그리고 나라의 주인인 씨알의 자리에서 행동하신 모습 등을 살피고, 둘째 함석헌 선생에 대한 연구를 그를 존경하는 모든 연구자들에게 넓히는 계기를 마련하며, 셋째 함석헌 선생을 좀더 넓은 시공의 영역에서 사유하는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이 책을 간행하였다. 이러한 취지에 맞추어 이 책은 모두 11편의 논문에서 함 선생의 인물됨과 평화 및 생명의 사상, 역사와 종교 및 동양 고전에 대한 이해, 그리고 교육 사상 등에 이르는 폭넓은 영역에서 주요한 논문을 선정하여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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