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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상 …… 7
2031년 …… 305 |
Delphine de Vi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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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 보는 사람의 자리에서 보이는 사람의 자리로 넘어갈 수 있게 된 것. 보이고, 인정받고, 선망받고 싶은 욕망. 그것이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 ‘15분의 명성’을 누리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거나 창조하거나 고안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드러내고 프레임 안이나 카메라 앞에 머물기만 하면 됐다.
--- p.19 권태는 기이하고 위장된 형태를 띠었다. 권태는 자신을 숨기고 제 이름으로 불리기를 거부했다. --- p.116 얼마 지나지 않아 멜라니는 아침에 더 이상 울지 않았고, 멍한 눈으로 집에만 있지도 않았고, 공원 산책로를 배회하지도 않았다. 아이의 낮잠 시간마다, 잠깐의 휴식 시간이 날 때마다 계정에 접속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달았으며, 다른 사람들이 올린 사진과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러 달 동안은 이것만으로도 결핍감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조언과 요리법을 주고받았다. 모유 수유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단체와도 가까워졌다.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존재할 수 있는 장소를 찾은 것 같았다. --- p.120 멜라니는 좋아요를 누르고 이모티콘으로 그들을 칭찬하는 것을 좋아했다. 박수 이모티콘, 감사 이모티콘, 꽃, 꽃, 꽃, 하트, 하트, 하트. 멜라니는 그 여성들에게 감동했고, 그들이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루를 버텨낼 용기를 주었다. 알고리즘 덕분에 멜라니는 새로운 채널과 새로운 영상을 발견했다. 멜라니는 자신과 비슷한 삶을 꾸밈없이 들려주며 외로움을 덜어주는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좋아했다. 알고리즘은 그 점을 정확히 알아차렸다. 멜라니는 차츰 페이스북 계정을 멀리하고 유튜브로 옮겨갔다. 유튜브가 더 개방적이고 창의적으로 느껴졌다. 유튜브는 별개의 세상이었다. 너그럽고, 때맞춰 도움을 주며, 모두에게 열려 있는 세상. --- p.125~126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시되던 아이, 조깅복이나 반바지, 원피스, 잠옷 차림으로, 혹은 공주나 인어, 요정으로 분장한 모습으로 누구나 볼 수 있던 아이, 그 이미지가 끝도 없이 복제되던 아이가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다. 브랜드와 상징으로 포화된, 자신이 자라난 세계에서 사라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에서 아이를 빼내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 p.143~144 모든 것을 가진 아이들은 무엇을 욕망할 수 있을까? 욕망할 틈조차 없이 쏟아진 장난감 더미에 파묻혀 사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 이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 --- p.153~154 아들은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에서 어떤 단서나 대답, 기분을 드러내는 신호라도 찾아내려는 듯했다. 사미는 늘 그랬다. 엄마를 바라보고, 엄마의 마음을 짐작하고, 엄마 목소리의 아주 작은 변화까지 알아차렸다. 몇 초면 사미는 엄마의 근심이나 불안을 감지했다. 때로는 멜라니 자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어쩌면 맏이들은 원래 부모의 기분에 이토록 민감한 걸까? 때로는 그 사실이 멜라니에게 당황스럽기도 했다. --- p.165 그러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말이었다. 그녀가 본 것을 다른 사람들이 — 그런 이미지들을 보지 않고 앞으로도 결코 보지 않을 사람들, 그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녀는 그 이미지들을 계속 글로 옮겨야 했다. 글로 분명하게 묘사하기. 그렇다, 이것이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다. 역설적이라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해도. --- p.184 평소 같았으면 그녀는 첫 번째 뉴스에 눈길을 멈추고, 사건·사고에 끌리는 자연스러운 호기심에 이끌려, 막연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관련 내용을 더 찾아보았을 것이다. ‘끔찍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두려움과 슬픔이 뒤섞인 감정이 실제로 온몸에 일었을 것이다. 일종의 연민과 함께,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는 안도감도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재앙을 얼핏 들여다보아야만 자신이 누리는 평온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을. 삶이 한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에 빠질 수 있음을 의식할 때, 평온은 더욱 소중해진다. --- p.208~209 멜라니 클로는 어머니라는 자신의 지위를 깃발처럼 내세웠다.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는 어머니, 그것이 지금 그녀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었다. 그녀가 가장 잘하는 역할. 두 사람의 삶은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클라라는 늘 혼자 살아왔고, 부부 관계가 닳아가는 일도, 어머니가 되면서 겪는 변화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단지 관점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그 여자의 언어 자체가 클라라의 이해를 벗어나 있었다. --- p.237~238 클라라는 조금씩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속내를 털어놓는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지나칠 만큼 자유자재로 변하는 멜라니 클로의 목소리는 클라라를 매혹과 거부감 사이에서 묘한 주문에 걸린 듯한 상태로 몰아갔고, 클라라도 그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 영상들이 가진 중독성은 부인할 수 없었다. --- p.254 이 영상들에 드러난 인정 욕구를 간과할 수 없었다. 멜라니 클로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팔로우하고, 사랑해 주기를 바랐다. 가족은 하나의 작품이자 성취였고, 아이들은 자기 자신의 연장선에 있는 존재와도 같았다. 사진을 올릴 때마다 쏟아지는 이모티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과 화장에 대한 칭찬은 분명 어떤 결핍이나 무료함을 채워주었을 것이다. 이제 하트와 좋아요,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찬사는 그녀를 움직이는 힘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쏟아부은 감정과 애정이 가져다준 일종의 투자 수익이었고, 이제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었다. --- p.260 이 여자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었고, 그저 자기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촬영되는 것이 당연한 시대. 매주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얼마나 많은 초음파 사진이 올라오고 있었던가? 아이 사진과 가족사진, 셀카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어쩌면 사생활이란 이제 낡고 효력을 잃은 개념, 아니 그보다 더 나쁘게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 p.261~262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포착되고, 추적되고, 신원이 확인되고, 분류되고,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 영상 감시, 통신과 이동, 결제 내역을 추적할 수 있다는 사실, 곳곳에 남겨진 무수한 디지털 흔적은 우리가 이미지와 사생활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어놓았다. 우리가 이렇게 훤히 드러나 있는데 숨어봐야 무슨 소용이냐고 모두 말하는 듯했다. 어쩌면 그들의 말이 맞는 건 아닐까? --- p.263 결국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모든 청소년의 꿈을 실현해 주었다. 사랑받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팬을 갖는 꿈.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었다. 멜라니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여자였다. 그뿐이었다. 존재하려면 조회 수와 좋아요, 스토리를 쌓아가야 했다. --- p.263 모두가 자기 노출의 관리자가 되었고, 자기 노출은 자아실현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되어 있었다. --- p.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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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일상이 돈이 되는 시대
킴미의 새 운동화를 사러 간 날, 멜라니는 아이가 고른 세 켤레의 신발을 SNS에 올려 투표에 부친다. 어떤 신발을 신을지는 화면 너머의 사람들이 결정한다. 가족에게 도착한 선물을 뜯는 일도 영상이 되고, 아이들의 기쁨과 놀라움은 광고와 소비로 이어진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누리는 듯한 이 세계에서, 정작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족의 수입이 아이들의 출연에 달려 있다면, 아이는 카메라 앞에 서기를 거절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왕』은 익숙하게 소비해 온 가족 영상 속에서 아이들의 동의와 사생활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묻는다. 한 아이의 실종을 좇던 독자는 어느새 그 아이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서로 다른 두 여성의 삶을 따라가는 수사 멜라니는 리얼리티 쇼를 보며 유명해지는 삶을 꿈꿨다. 클라라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 익숙하다. 한 사건으로 만난 두 여성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부터 다르다. 드 비강은 두 사람의 어린 시절과 지나온 시간을 따라가며, 각자의 기대와 결핍이 지금의 삶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 준다. 작가는 인물들을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려 한다. 사랑과 관심을 주고 있다고 믿는 부모의 행동이 아이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화면에 드러난 말과 표정으로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단서를 좇는 수사의 속도 속에서도 인물의 감정과 말투를 세밀하게 포착하는 드 비강의 글쓰기가 빛난다. 사건의 다음 장면이 궁금해 책장을 넘기다가도, 인물이 지나온 삶에 오래 머물게 되는 소설이다. 리얼리티 쇼에 대한 오랜 관심에서 출발한 소설 드 비강은 프랑스에서 [로프트 스토리]가 방송을 시작한 2001년 무렵부터 리얼리티 쇼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아이들이 왕』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우연히 본 TV 보도였다. 어린 유튜버들이 한 의류 브랜드를 대표해 쇼핑몰 사인회에 참석하고, 세계적인 스타처럼 환영받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작가는 아동 인플루언서와 그들을 둘러싼 세계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후 유튜브 영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오랜 시간 살펴보며, 끊임없이 소비를 찬양하는 장면과 연출된 즐거움 속에서 때때로 드러나는 아이들의 싫증과 피로에 주목했다. 카메라가 꺼진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매일 촬영되는 일은 아이에게 무엇을 뜻할까. 작가가 영상의 이면을 상상하며 품었던 질문들이 소설의 바탕이 되었다. 드 비강은 당초 『충실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에 이어 ‘야망’을 다루는 짧은 소설로 삼부작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왕』은 여러 문제를 아우르면서 당초 구상한 연작의 틀을 벗어났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려는 어른의 삶과, 그 시선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이 함께 놓인다. 가족과 사회 안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꾸준히 들여다본 작가의 관심은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으로 이어지며 서늘한 충격을 안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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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놓을 수 없는 빼어난 책. 독자를 낚아채고 집어삼켜, 치명적이고도 달콤한 중독에 빠뜨린다.
- RTL 매혹적이고, 꼭 필요한 소설. 델핀 드 비강은 고발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 다만 보여 준다. 그래서 더욱 강렬하다. - 르 피가로 전시되는 아이들만큼이나, 저마다 자기 안에 숨겨 둔 아이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 르 몽드 화면 속 슈퍼스타가 된 아이들. 그 세계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아찔한 소설. 델핀 드 비강 특유의 감수성은 그대로 살아 있다. - 엘르 애거사 크리스티의 빼어난 작품만큼이나 중독적이다 - 렉스프레스 시대를 읽는 예민한 감각, 서스펜스를 빚어내는 탁월한 솜씨. 리얼리티 TV에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까지. 삶이 전시되는 시대의 폐해를 파고든다. - 프랑스 앵테르 완벽한 엄마라는 환상, 낱낱이 노출된 유년기, 그리고 끝없는 소비. 그 서글픈 결합을 예리하게 꿰뚫는 흥미진진한 우리 시대의 소설. - 라 크루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