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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 이렇게 살려고 그렇게 애썼던 걸까
01. 마흔, 두 번째 산을 향해 궤도를 수정할 때 02. 마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타이밍과 화해할 때 03. 마흔, 비교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탈출할 때 04. 마흔, 독불장군이 아닌 함께의 신비를 누릴 때 05. 마흔, 지혜자에서 꼰대로 굳어가는 나를 알아차릴 때 06. 마흔, 말을 줄이고 경청의 방을 만들 때 07. 마흔, 재테크 너머, 하늘이 주시는 부요를 추구할 때 08. 마흔, 열심히 즐겼는데도 여전히 허전할 때 09. 마흔, 인내의 끝에서 매듭의 지혜를 배울 때 10. 마흔, 분노를 다스려 품격을 지킬 때 11. 마흔, 형통함과 곤고함이 동시에 찾아올 때 12. 마흔, 지나친 의로움이 나를 해칠 때 13. 마흔, 타인의 비난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14. 마흔,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서 지혜롭게 설 때 15. 마흔, 향기로운 단정함으로 나를 가꿀 때 16. 마흔, 내 실력 너머에 있는 배후의 손길을 인정할 때 17. 마흔, 흔들리는 중심을 바로잡을 때 18. 마흔, 무디어진 칼날을 날카롭게 갈 때 19. 마흔,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20. 마흔, 자기 착취적인 성실함의 굴레를 벗어날 때 21. 마흔, 내가 쌓은 성을 누가 가질지 고민될 때 22. 마흔, 허무가 밀려오기 전 창조주를 기억할 때 에필로그 _ 헛됨의 반대말은 선물이다 |
Yang Hyeong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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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 1:2-3). 여기서 ‘헛되다’는 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된다. 우연이 아니다. 히브리 문학에서 반복은 강조다. 다섯 번의 반복은 이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깊이 새겨야 할 진실임을 의미한다. ‘헛되다’는 히브리어로 ‘헤벨’이다. 이는 문자적으로 수증기, 혹은 안개라는 뜻이다. 가을 아침, 산 중턱에 짙게 깔린 안개를 본 적 있는가? 그 운치 있고 신비로운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해가 떠오르면 어떻게 되는가. 그 아름답고 대단해 보이던 안개가 흔적 없이 사라진다. 헤벨이 바로 그렇다. 지금은 실재하는 것처럼 보여 꼭 손에 잡힐 것 같지만, 결국 손에 잡히지 않고 덧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 그것이 헤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헤벨은 ‘수수께끼(enigma)’라는 뜻이 있다. 인생이 이대로만 가면 잘될 것 같고 성공이 잡힐 것 같은데, 물리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잡히지 않는, 통제할 수 없고 불가해한 수수께끼라는 의미다.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인생의 성공을 부여잡으려고 열심히 달려갔지만, 결국 아무것도 잡지 못한 수익 없는 빈손의 인생임을 발견한다.”
---「마흔, 두 번째 산을 향해 궤도를 수정할 때」중에서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고정 마인드셋’과 ‘성장 마인드셋’을 구분한다.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지식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도전을 회피하며 피드백을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간언이 들어올 때 그것을 배움의 기회로 보지 않고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마흔이 특히 이 함정에 빠지기 쉬운 이유가 있다. 마흔은 어느 정도 자신의 방식이 검증된 나이다. 실제로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 옳았던 경우가 많았다. 그 성공 경험이 축적될수록 사람은 자신의 방식에 대한 확신이 강해진다. 확신은 처음에는 능력이지만 경청을 멈추는 순간 장벽이 된다.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이것은 두려움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지금까지 그 방식으로 쌓아 올린 것들이 흔들릴 것 같은 두려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시인하는 순간 권위가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 꼰대는 많은 경우 교만보다 불안에서 만들어진다.” ---「마흔, 지혜자에서 꼰대로 굳어가는 나를 알아차릴 때」중에서 “마흔은 이상한 나이다. 형통과 곤고가 따로 오지 않는다. 동시에 온다. 직장에서는 드디어 중심에 섰다. 후배들이 생겼고 맡은 일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배우자와의 대화가 줄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서로 할 말이 없어졌다. 경제적으로는 조금씩 안정되어 간다. 그런데 건강검진 결과지에 빨간 글씨가 하나둘 늘어난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자녀는 성장해서 대화가 조금씩 가능해졌다. 그런데 부모님은 반대로 노쇠해져 간다. 요양원을 알아봐야 할지, 모시고 살아야 할지. 마흔은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안고 산다. …마흔의 현실은 형통과 곤고가 번갈아 오는 것이 아니라 뒤섞여 있는 것이다. 직장의 형통과 가정의 곤고, 경제의 형통과 건강의 곤고, 자녀의 성장과 부모의 노쇠가 한꺼번에 펼쳐진다. 그래서 마흔은 단순히 좋다고 기뻐하거나, 단순히 나쁘다고 절망하기 어렵다. 형통한 것에 마음을 다 주면 곤고한 것이 보이지 않고, 곤고한 것에 마음을 다 주면 형통한 것을 누리지 못한다. 코헬렛이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라고 한 것은 이 복잡하게 뒤섞인 마흔의 현실에 가장 정직하게 맞닿아 있는 지혜다.” ---「마흔, 형통함과 곤고함이 동시에 찾아올 때」중에서 “무딘 도끼를 든 사람도 나무 자르는 법은 안다. 팔 힘도 있고 도끼질할 줄도 안다. 그가 모르는 것은 손에 들린 도끼날의 상태다. 날을 갈지 않으면 힘이 더 든다. 여기서 지혜가 필요하다. 여기서 코헬렛이 말하는 지혜는 일을 더 잘되게 하는 성찰과 분별력, 그리고 도끼질을 멈추고 날을 갈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는 실행력을 포함한다. 이 지혜는 경력이 쌓인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나무는 많이 베어 볼수록 잘 베게 되지만 손에 들린 도끼의 날은 쓸수록 도리어 안 보이게 된다. 매일 조금씩 무뎌져도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없다. 여기서 지혜는 날의 상태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부지런함과 예민함을 요구한다. 이런 지혜가 주는 유익은 절제를 통해 온다. 날을 갈려면 먼저 손을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끼질을 멈추려는 순간 마음이 급해진다. 벨 나무는 그대로 있고 해는 기울고 있다. 남들은 계속 찍고 있는데 나만 손을 놓는 것 같다. 지금 멈추면 뒤처진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 마음을 이기지 못하면 사람은 무딘 날로 계속 내리친다. 그러니 날을 가는 사람은 절제해야 한다. 지금 당장 더 하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고 눈앞의 결과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을 절제해야 한다. 그렇게 멈춰야 비로소 날이 보인다. 날이 보여야 어디가 어떻게 무뎌졌는지 알 수 있다. ” ---「마흔, 무디어진 칼날을 날카롭게 갈 때」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