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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 100년 전 식민지 수도, 경성을 거닐다
1장. ‘샐러리맨’, 월급쟁이가 되고 싶다 - 최고의 신랑감과 고달픈 하루 사이 교사, 변호사보다 월급쟁이가 1등 신랑감! · 월급쟁이도 월급쟁이 나름 · 평범한 월급쟁이의 고달픈 출근길 · 출세를 향한 한 길 2장. 경성제국대학의 빛과 그림자 - 식민지 조선의 교육열 선망의 대학생, 심각한 입학난 · 입학난 해결의 묘책, 2부제 수업의 변천사 · 그들만의 리그, 중등교육기관 탐방 · 입학만으로도 영광, 경성제국대학 3장. ‘스위트 홈’, 피아노가 있는 집 - 경성의 문화주택 열풍과 집 투기 바람 보통 사람의 꿈, 문화주택 · 집 장사와 투기 그리고 ‘신당리 토지 매매 사건’ · 치솟는 집값과 주택자금 확보 비법 4장. 백화점, 식민지 백성을 매혹하다 - 소비 공간의 탄생과 상권 다툼 소비 공간의 패자로 등장한 백화점 · 러일전쟁에 버금간 동아와 화신의 상권 전쟁 ·고래 ‘싸움’에 터진 새우등, 고급 상점에 밀려난 소상인들 · 문화주택 한 채가 경품, 백화점의 고객몰이 전략 · 아름답고 친절한 ‘쇼프껄’의 등장 · 백화점, 오락과 문화의 전당으로 거듭나다 5장. 스타일의 새 시대를 열다 - 단발과 모던 그녀가 머리를 자른 까닭은 과연 실연이었을까? · 유행의 진원지는 ‘전차’ 안 · ‘모던걸’, 패션을 선도하다 · 본정의 화려함, 종로 야시의 수수함 6장. 진고개 사탕은 왜 꿀보다 달까? - 조선의 마케팅 전략, 허술하거나 대범하거나 간판과 쇼윈도부터 바꾸시라 · ‘디엠’ 발송부터 경품전까지, 고객 유치를 위한 백태 · ‘백발백중, 상점 대번창’, ‘민족’이라는 상표 7장. 레코드 전쟁, ‘조선의 맛’을 불러라 - 대중가요로 본 일제강점기 시끄러워 못 살겠네, 이웃집 유성기 · 6대 레코드 회사의 레코드 전쟁 · 흥행대박의 비결, ‘조선스러운’ 가요! ·오빠, 누이 부대를 몰고 다닌 가수들과 극성팬들 · 스타가 되고 싶었던 식민지 조선인들 8장. 모두가 자신의 가난과 싸우고 있다 - 토막촌 사람들, 약한 자들의 슬픔 서민 울리는 주택난 · 철거와 이주, 도시 빈민의 서러운 삶 · 소외된 자들의 슬픔, 토막민 정리 방안 9장. 흐뭇한 살림의 저편, ‘장옥’을 아시나요? - 서민 울리는 주택난과 철거 이주민의 참혹한 삶 상류계층의 흐뭇한 살림과 ‘빈민 전용’ 장옥 생활 · 도회생활 5계명과 투빈술 익히기 10장. 경성의 취준생들, “여보시오, 나 좀 써주시오!” - 식민지를 울린 청년 실업 조선 청년들의 ‘취직운동’ · 취직의 왕좌, 실업학교 11장. 떠오르는 남촌, 저무는 북촌 - 둘로 쪼개진 경성의 불편한 풍경 조선의 황성에서 식민도시 경성으로 · 식민지 조선의 자화상, 북촌 · 작은 일본, 남촌과 본정 · 남부 상계는 호황, 북부 상계는 한산 막심 미주 사진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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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람들은 ‘월급쟁이’를 일컬어 “청춘의 로‐맨스”를 즐길 줄 아는 ‘풍류가’라고도 했고, 딱딱한 법률용어를 되뇌면서 공포심을 자아내는 법률가와는 거리가 먼 자상한 인격의 소유자라고도 불렀다. “가정에 월부 피아노 한 대쯤은 있어 아내가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엷은 화장을 하고 피아노 틀에 올라앉아 붕‐붕‐똥‐땅 하고 두어 곡을 칠 때 웃으며 그 옆에 와서 바둑개 컹컹 하고 짖는 시늉이라도 내는 이들”이 바로 식민지 조선의 샐러리맨들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월급쟁이는 ‘사회적 레벨’이 제법 높았다. 시골 노인네들은 월급쟁이 아들을 둔 친구를 두고 으레 “그 사람 가세도 넉넉지 못한 형편에 아들 하나는 잘 가꿨단 말이야”라고 칭찬을 하곤 했다. 아들이 “32원짜리 월급쟁이”라도 되는 날에는 그것을 무슨 큰 행셋거리로 여겼던 것이다. --- p.18~19 문화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구식 주거 양식을 어떻게 하면 조선식 생활양식과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화주택에 일가견이 있다던 논객들은 “생활실이라는 넓은 방을 두고 그 가운데에서 손님을 대하는 것이 구미식이지만 우리는 생활실과 객실을 분리하고 생활실을 식당과 겸하여 쓰는” 한편으로 “목욕실과 지하실과 하인실은 경비를 줄이기 위하여 본실과 따로 건축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직까지는 손님이 ‘이리 오너라’라고 외치면 얼른 달려 나가 그를 맞이할 하인들이 필요했고 그 하인들의 방을 따로 떼어놓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 p.82~83 1933년 조지야백화점이 쇼프껄 몇 명의 결원을 보충하는 광고를 내자 6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지원했는데 그중에는 전문학교 졸업자와 외국 유학생까지 있었다. 은행원, 타이피스트, 비서직 등의 ‘고급’ 일자리를 일본인 여성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쇼프껄은 그나마 중류층의 조선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자리 중 하나였다. 따라서 능력과 미모를 갖춘 여성들이 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또는 사회활동을 열망하면서 지원한 곳이 백화점이었다. 1934년 무렵에 백화점에 근무하는 조선인 쇼프껄은 200명 정도였는데 1937년에는 화신에만 200명이 근무했다. (중략) 당시 잡지들은 백화점별로 쇼프껄을 비교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동아의 쇼프껄은 수수하고, 화신의 쇼프껄은 인물이 평범해 결혼하는 비율이 낮고, 인물로는 최고 부유층을 상대하는 미쓰코시가 가장 낫다는 식이었다. --- p.126~127 조선 사람들은 딱히 젊은이들이 아니더라도 “‘갑’이나 ‘을’을 물론하고 평생 소원이 ‘진고개 가서 그 좋은 물건이나 맛좋은 것을 사보았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꿀보다 단 것은 진고개 사탕이다’”라며 본정의 풍경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과장 섞인 한탄에는 조선인 상권이 밀려나고 있다는 위기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와 함께 1926년 광화문에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건립을 앞두자 남촌의 일본 상인이 북쪽으로 발을 넓히기 시작했고, 종로 거리에도 일본 상점 간판이 하나둘 내걸렸다. --- p.168~169 식민지 시대 경성에서 일본인들이 오글오글 모여 살았던 곳이 바로 지금의 충무로, 명동 이남 지역인 남촌이다. 일본인의 주거지이자 생활공간인 남촌과 조선인의 북촌은 너무나 달라 마치 양쪽을 칼로 베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북촌의 조선인이야 ‘문명’의 세계인 남촌을 동경하여 종종 그곳을 방문했지만 일본인들은 남촌을 벗어나지 않았다. (중략) 일확천금에 들떠 조선에 몰려온 일본인은 패망 때까지 전 인구의 2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 그리고 경성에는 일본인들이 ‘굉장히’ 많이 살았다. (중략) 서울 인구의 5분의 1이 외국인, 특히 일본인이었다고 생각하면 느낌이 확실히 올 것이다. --- p.285~287 본정 거리에는 1910년 이전부터 가로등이 있었다. 종로의 도로가 모래와 석탄기름으로 포장된 데 반해 본정 거리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수시로 물을 뿌려 청결한 환경을 만들었다. 아스팔트 포장과 도로 청결 유지는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본정의 화려하고 고고한 매력은 일본인의 선진성과 청결에서 나오기보다는 도시계획을 입안하고 실천하는 권력과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 p.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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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경성, 잔혹한 ‘식민’과 매혹의 ‘근대’가 공존하다
1922년, 잘나가던 기생 강향란이 머리를 싹둑 자르자 조선 전체가 들썩였다. 같은 시각 종로의 어느 월급쟁이는 월급날 갚아야 할 외상값을 헤아리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경성 모던, 모던 경성』은 바로 이 장면들, 거시사에 가려져 있던 식민지 경성 사람들의 진짜 일상을 생생하게 복원한 역사서다. ‘샐러리맨’이라 불리던 은행원과 신문기자, 전차라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신문물, ‘문화주택’이라는 이름의 서양식 주택 개량, 여성의 치마 길이를 놓고 벌어진 ‘상하운동’, 백화점과 레코드의 탄생……. 경성의 ‘모던’은 이처럼 구체적인 사건들로 찾아왔다. 100년 전의 1등 신랑감은 매달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오는 ‘샐러리맨’이었으며, 여성들은 손목에 찬 빛나는 금시계를 자랑하기 위해 전차에서 자리에 앉지 않고 손잡이를 잡아 손목을 드러낸 채로 꿋꿋하게 서 있었고, 어느 백화점은 문화주택 한 채를 경품으로 내걸어 대박이 났다. 이렇게 식민 수도 경성은 점점 ‘모던’해져 갔다. 전차가 도심을 가로지르고, 백화점 쇼윈도에는 새로운 상품이 넘쳐났다. 사람들은 자식이 대학생이 되기를 열망했으며 문화주택을 짓고 싶어 했고, 유행과 스타를 동경하고 따라 했다. 그러나 그 근대의 풍경은 모두에게 같은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백화점에서 소비했지만 누군가는 백화점의 등장으로 가게를 잃었다. 누군가는 문화주택을 꿈꾸었지만 누군가는 토막촌에서 쫓겨났다. 누군가는 안정된 직장을 얻었지만 누군가는 논밭 팔아 대학 보낸 자식이 끝끝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11개의 키워드로 완성한 경성의 초상 『경성 모던, 모던 경성』은 1920~1930년대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 교과서가 다루지 않는 ‘식민지 조선 보통 사람들의 생활사’를 생생하게 복원한 책이다. 본문은 11개 장, 11개의 키워드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샐러리맨(월급쟁이)’에서 시작해 2장 ‘교육열’, 3장 ‘문화주택’, 4장 ‘백화점’, 5장 ‘단발과 모던’, 6장 ‘마케팅’, 7장 ‘대중가요’, 8~9장 ‘가난과 주거’, 10장 ‘청년 실업’을 거쳐 마지막 11장 ‘북촌과 남촌’으로 마무리되는 구성은, 얼핏 보면 흩어진 조각들 같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그 시절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갖고 싶어 했고, 무엇 때문에 울었는가’. 월급쟁이가 되고 싶어 안달 났던 청년들은 경성제국대학이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고, 어렵게 자리를 잡은 이들은 피아노가 놓인 문화주택 한 채를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 욕망은 고스란히 백화점이라는 새로운 소비 공간으로 흘러들었고, 단발과 하이힐, 손목시계로 대표되는 ‘모던’은 전차 안에서, 진고개 상점가에서 매일 새롭게 갱신되었다. 유행가 가수의 사생활에 열광하던 극성팬들의 존재는 이 모든 풍경이 결코 먼 옛날의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그러나 이 책은 근대화된 도회의 화려함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도시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하루아침에 집에서 내쫓긴 토막민의 눈물, ‘흐뭇한 살림’을 사는 상류층과 ‘빈민 전용’ 장옥에서 가난과 싸우던 사람들의 극명한 대비, 논밭 팔아 대학까지 보낸 자식이 끝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낙향하는 청년 실업의 풍경은 화려함의 그늘 밑에 존재했던 또 다른 경성의 얼굴이다. 마지막 11장 ‘떠오르는 남촌, 저무는 북촌’은 앞선 10개의 장에서 다룬 모든 욕망과 좌절이 사실은 하나의 지도 위에서, ‘조선인의 북촌’과 ‘일본인의 남촌’이라는 뚜렷한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또 하나의 ‘처절한 전쟁’이었음을 보여주며 근대도시 경성의 풍경을 완성한다. ‘타임슬립’ 경성, 평범한 이들의 역사를 읽다 저자들은 당대 신문과 잡지의 기사는 물론, 독자 투고란, 인터뷰, 광고 문구, 만평까지 뒤져 ‘그 시절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오롯이 복원하여 우리에게 들려준다. 치밀한 자료 조사 덕분에 딱딱한 연대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SNS에서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은 생활 밀착형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고 나면 뛰는 경성의 집값에 잠 못 이루는 서민들, 취업 길이 막혀 우는 경성의 취준생들, 그리고 월급날 여기저기 외상값 갚고 나면 통장이 텅 비던 경성의 월급쟁이들까지, 책에 등장하는 경성 사람들의 일상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오히려 소름 끼치도록 익숙하다. 『경성 모던, 모던 경성』은 화려한 근대의 풍경과 그 이면의 빈곤, 새로운 욕망과 생존의 현실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일제강점기를 ‘정치와 사건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간 역사’로도 읽어보는 새로운 창을 제시한다. 월급날을 기다리고, 내 집 한 채를 꿈꾸고, 취업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책을 덮을 즈음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의 현재는 경성의 미래였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