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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당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조선시대 정치사의 흐름과 당쟁 1장 사림정치기 1 1. 동서분당 2. 계미삼찬 3.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4. 남북분당 5. 임진왜란과 당쟁 6. 북인과 광해군정권 7. 5현의 문묘종사와 회퇴변척 8. 임해군과 영창대군의 죽음 9. 인목대비의 폐비 2장 사림정치기 2 1. 인조반정 2. 이괄의 난 3. 공서와 청서 4. 원종추숭 5. 척화파와 주화파 6. 강빈옥사 7. 산당과 한당 8. 북벌운동 9. 기해예송 10. 갑인예송 11. 서남당쟁 12. 노소분당 13. 숙종의 환국정치 14. 정유독대와 신임옥사 3장 탕평정치기 1. 영조의 탕평 2. 임오화변 3. 정조의 탕평 4. 오회연교 4장 외척세도기 1. 외척세도정치 2. 신유박해와 기해박해 3. 대원군의 개혁 4. 고종과 민씨 세력 5. 당쟁의 어제와 오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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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서와 청서의 첨예한 대립은 인사 문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인사는 정치적 기반의 확보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인조는 서인, 특히 공서의 독주를 견제할 목적으로 남인과 북인을 널리 기용했다. 폐모론에 가담했던 인물까지도 포함된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조의 인사 기용에 당시 이조판서로서 독점적인 인사권을 행사하던 김류가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공서인 그가 남인과 북인의 기용에 찬성한 이유는 청서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_112쪽
예송 논쟁은 중앙 정계에 그치지 않고 성균관과 지방 유생들에게도 확산되었다. 특히 1666년(현종 7) 2월에 영남 유생 유세철(柳世哲) 등 1천여 명은 송시열의 기년설(朞年說)을 비판하고 허목의 3년설을 지지하는 상소를 올려 정국을 또 한 번 긴장시켰다. 유세철 등은 물론 처벌되었다. 반대로 홍득우(洪得雨) 등 성균관 유생들과 기호 유생들은 송시열을 옹호하고 유세철을 공격했다. 전국이 당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있었다. _156쪽 기사환국과 갑술환국은 서남 간 정권 교체를 가져온 대표적인 정변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왕비의 교체였다. 또한 이들 사건에는 숙종의 차기 승계자인 경종의 운명도 늘 함께했다. 갑술환국으로 세자의 절대적 후원 세력이던 남인과 희빈 장씨가 몰락했다. 이들의 몰락으로 세자의 지위마저 불안해졌다. 이때 남구만을 비롯한 일군의 소론 세력은 장씨 남매와 세자의 보호를 자임하고 나섰다. 이제 정국은 장씨 남매의 처벌과 세자 보호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이 정면 대결하는 구도로 바뀌었다._206쪽 탕평이란, 군왕은 탕탕평평한 마음으로, 그리고 신하들은 무편무당한 자세로 정치에 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탕평을 외쳤던 영조 대에서도 정파는 존재했다. 영조 역시 현실적으로 이들 정파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무편무당의 경지 대신 현실로 존재하는 이들 정파의 이해관계를 쌍거호대, 양치양해라는 조제보합책으로 조절해 나가고자 했다. 근본적으로 영조는 노론의 기반에서 성장했다. 그 때문에 즉위 후 한결같이 탕평을 외쳤지만, 결국은 노론에 비중을 더 둘 수밖에 없었다. 영조는 노론을 중심으로 정치적 안정을 기한 다음 그 바탕에서 노론과 소론의 탕평을 꾀했다. _239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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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당쟁사는 어제는 역사이자 오늘의 정치사이다
역사학계의 거두인 이성무 선생이 교양 역사서인 [단숨에 읽는 당쟁사 이야기]를 내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시대 당쟁사에 관심을 갖는다. 조선시대의 당쟁사를 아는 것은 조선의 역사 전반을 꿰뚫는 것일 뿐 아니라 지금 우리 정치의 심연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조선이 당쟁 때문에 망했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당쟁으로 인해 조선의 정치는 군신 간의 균형을 이루며 발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것이 옳은 판단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당쟁의 발단과 전개 그리고 그 결과가 정치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왕조 수백년 동안 이합집산을 거듭해온 당쟁의 흐름과 역사를 한눈에 파악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따라서 당쟁사의 굵은 줄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이 책은 역사와 정치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요긴한 필독서가 될 것이다. 오늘날의 정치는 조선의 당쟁과 어떻게 같고 무엇이 다른가 2012년 대선에 패배하고 칩거할 당시 문재인 의원은 이성무 선생의 [조선시대 당쟁사]를 인상 깊게 읽었다며 “당쟁의 지연성을 오늘의 지역주의 정치와 연결시킨 대목과 당쟁과 비교한 요즘의 정치행태에 대한 비판이 흥미로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다소 전문적이고 광범위해서 일반 독자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조선시대 당쟁사] 1, 2를 보다 쉽고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권에 집약해 놓은 것이다. 정치는 시대 상황과 주변 정세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어떠한 체제이건 좋고 나쁜 양면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조선 왕조 500년 간의 정치를 단 하나의 고정된 틀로 파악하고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당쟁과 같은 현상이 왜 그 시점에서 일어났는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당파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끌어들이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은 배격하는 정파를 의미한다. 이는 전근대적인 당쟁의 속성이다. 상대 당을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당쟁의 또 다른 속성이다. 사건을 조작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속속들이 파헤치기도 하고, 감찰 기관을 통해 사찰을 해 위협하기도 하고, 이해관계로 꾀이기도 한다. 요즈음 정국은 이와 무관한가? 당쟁의 폐단, 비판에 머물지 말고 오늘의 지혜를 얻으라 조선시대에는 유덕자(有德者)의 세상이라 덕이 없으면 정치에 나설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말, 일제강점기에는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기 위해 유지자(有志者)가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력자(有力者)의 세상이라 돈 있고 배경 있는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덕이고 뜻이고 하는 것은 정치와 무관하다. 정치에 돈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힘 있는 사람 뒤에 줄 서는 철새 정치가 고작이다. 우리의 정치 실상이 이렇다면 조선의 당쟁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오늘의 정치 행태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정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