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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 1 부 사회주의의 기초
1. 경제
2. 역사
3. 산업
4. 도덕

제 2 부 사회의 조직
5. 사회주의 하에서의 소유
6. 사회주의 하에서의 산업

제 3 부 사회민주주의로의 이행
7. 이행
8. 전망

저자 소개 2

조지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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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Bernard Shaw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소설가, 비평가, 웅변가. 더블린 중산층 가정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초등학교 교육밖에 마치지 못했다. 모친의 영향으로 음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어릴 때부터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베르디 등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나 휘파람으로 부를 수 있었다고 한다. 정규 교육을 받은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개인적으로 음악 외에도 문학, 미술에 관심을 보이며 배움을 이어나갔다. 1876년 런던으로 이주하여 작가이자 소설가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1880년대 중반에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소설가, 비평가, 웅변가. 더블린 중산층 가정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초등학교 교육밖에 마치지 못했다. 모친의 영향으로 음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어릴 때부터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베르디 등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나 휘파람으로 부를 수 있었다고 한다. 정규 교육을 받은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개인적으로 음악 외에도 문학, 미술에 관심을 보이며 배움을 이어나갔다. 1876년 런던으로 이주하여 작가이자 소설가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18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연극과 음악 비평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894년 희곡 『무기와 인간Arms and the Man』으로 첫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약 13년간 신문과 잡지의 비평란을 담당하며 주로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분야의 평론 활동을 이어갔고, 1880년대 후반에서 1890년대 초반에 걸쳐 약 6년간 [스타The Star]와 [월드The World]지를 통해 선보인 음악 평론은 그의 수많은 글 가운데서도 정수로 꼽힌다. 음악 평론은 엘리트 계층보다는 모든 사람이 즐겁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평소 소신대로, 전문 용어를 피해가며 비전문가를 위한 글을 썼다. 대표 극작품으로 『인간과 초인Man and Superman』(1903), 『피그말리온Pygmalion』(1913), 『성녀 조앤Saint Joan』(1923) 등이 있으며 19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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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世薰

연세대학교 경제학과(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석사)를 거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영국 노동당 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자신의 주된 직분이라고 생각한다. 윤리적 의무의 관점에서 교수의 역할을 바라보는 드문 유형이다. 스스로 의식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학생들을 일컬을 때면 꼭 "우리 아이들"이라 말한다. 그 아이들이 지방 캠퍼스에 다닌다는 이유로 재능과 노력에 비해 차별받고 상처 입는 현실을 말할 때면, 평소 조용한 그의 목소리에 변화가 생기곤 한다.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연세대학교 경제학과(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석사)를 거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영국 노동당 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자신의 주된 직분이라고 생각한다. 윤리적 의무의 관점에서 교수의 역할을 바라보는 드문 유형이다. 스스로 의식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학생들을 일컬을 때면 꼭 "우리 아이들"이라 말한다. 그 아이들이 지방 캠퍼스에 다닌다는 이유로 재능과 노력에 비해 차별받고 상처 입는 현실을 말할 때면, 평소 조용한 그의 목소리에 변화가 생기곤 한다.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고, 인간의 심성과 공동체의 윤리적 기반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물신성에 비판적이며, 사회주의의 가치와 이상이 현실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정신적 원천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점에서 분명 그는 진보적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몇 가지 특별함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스스로 성찰적이지 못한 진보 지식인들의, 진보 이전의 '지식인 됨'에 대해 자주 의심한다. "한국처럼 지식에 대한 보상 체계가 각별한 사회에서 지식인은 자칫 권력자, 가해자의 위치에 서기 쉽기" 때문이란다. 인간과 사회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을 과장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다.

인간의 한계와 사회적 불확실성을 전제한 위에서 진보의 기획과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고 믿는다.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인맥과 학력, 지식, 권세를 거래하고 과도한 음주 문화가 그 분위기를 만드는 관행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우애와 협동의 지식인 문화가 성장하기를 기대하지만,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복지국가와 노동문제, 사회민주주의는 그의 글 곳곳에서 늘 마주치는 주제다. 그러나 그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추상적인 주제가 아니라, 그러한 주제를 구현하려 했던 "역사적 인물의 삶과 실천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과 평론을 좋아하며, 오웰의 말을 따라 "어떤 글도 정치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간주한다.

이따금 자신이 "케인스주의 정치학자"일지 모른다고 말하는 그는 2009년, 케인스의 삶과 경제학 사상에 대해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교수가 쓴 대작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번역했다. 영국 노동당원이며 저명한 경제사학자이자 교육가였던 토니(Richard Henry Tawney)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왔는데, 궁극적으로 인물 중심의 영국 노동당사를 쓰고 싶다고 한다. 저서로 『영국 노동당사』(1999), 『복지국가의 이해』(2000), 『국가와 복지』(2003), 『복지 한국, 미래는 있는가』(2007)를 펴냈고, 역서로는 『페이비언 사회주의』(200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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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4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26쪽 | 778g | 158*232*30mm
ISBN13
9788957330807

출판사 리뷰

1884년 결성되어 2004년 창립 120주년을 맞이한 페이비언협회는 가장 오래된 사회주의 싱크탱크다. 당시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단체였던 사회민주연맹(Social Democratic Federation)이 대중을 상대로 한 선동과 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에 역점을 두었다면, 페이비언협회는 중산층 지식인들의 모임으로서, 주로 지식인들과 정치엘리트들을 상대로 한 연구와 토론 그리고 조사와 설득을 위해 결성되었다. 페이비언협회는 노동당 창당(1900년) 이후 100여 년 넘게 독자적으로 출판, 세미나, 대규모 대회 등을 통해 사회주의 이론과 정책에 관한 공개포럼을 줄기차게 시도해 오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도 노동당 지도부를 포함한 노농당위원, 좌파지식인, 정치지망생 등 6천5백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즉 페이비언협회는 정책 개발과 인정 네트워크를 통해 영국사민주의와 노동당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의 표방하는 페이비언주의는 그 이념적 목표로서 ‘점진성의 불가피성’을 내세운다. 또한 페이비언 사회주의는 각종 국가개입, 국가 활동의 확대(사회입법, 누진세, 인허가 등 각종 규제, 지방정부화 등)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빅토리아 영국의 다양한 개혁입법과 절차적 민주주의 진전과 함께 이들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이미 착실히 진전되어 온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국가의 중립성과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낙관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영국사회주의와 무관하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결국 페이비언주의는 민주화의 확대로 뒷받침된 국가의 역할증대를 사회주의의 현실적 진전 혹은 가능성과 등치시키고 그로 인한 자본주의 자체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주목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페이비언주의는 종종 마르크스 사상의 영국식 변형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페이비언들은 벤담(J. Bentham)과 밀(J. S. Mill) 등으로 이어진 영국의 사상적 전통과 실증주의적 사고가 마르크스식 정신에 접목된 것으로도 파악된다. 예를 들어 쇼는 당시 토지에 대한 단일세를 주창하여 유명해진 헨리 조지(H. George)의 강연을 듣고 경제학에 눈을 뜨지만, 곧 영국 박물관에서 『자본론』을 독파한 후 사회주의자로 전향했다가, 다시 비국교도 목사이며 수리경제학자인 위크스티드(P. Wicksteed)와의 논쟁을 통해서 마침내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과 결별하고 제본스식의 한계효용이론을 최종적으로 수용하였다. 실제로 19세기 말 이래 영국에서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이나 가치론 등에 대한 가장 혹독한 비판은 보수당이나 자본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페이비언들로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형이상학적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이들에게 원형의 마르크스주의는 지독히 낯선 관념의 유희일 뿐이다.”라는 쇼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대륙의 마르크스주의와 영국 사회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보다 페이비언주의가 오히려 대륙의 사회주의에 영향을 미친 바가 컸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수정주의자’베른슈타인(E. Berstein)은 페이비언에 대한 찬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는데, 독일 사민당 내부의 이른바 수정주의 논쟁을 촉발시켰던 그의 ‘점진적 사회주의’(evolutionary Socialism)의 중요 논점들이 그의 런던 체류 가운데 구상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페이비언주의는 노동당의 정신과 이념 그리고 영국 사회주의의 전통에 독보적인 영향을 미친다. 페이비언이 정의한 사회주의는 노동당 창당 이후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노동당 사회주의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2차 대전 종전 이후의 이른바 수정주의(revisionism)에서 본격적으로 실험을 겪게 된다. 특히 ‘점진성의 불가피성’에 대한 신념, 계급 이해는 화해될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국가의 중립성에 대한 자신감은 차후 노동당 지도자들의 통치철학과 노동당의 정책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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