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 1 부 사회주의의 기초
1. 경제 2. 역사 3. 산업 4. 도덕 제 2 부 사회의 조직 5. 사회주의 하에서의 소유 6. 사회주의 하에서의 산업 제 3 부 사회민주주의로의 이행 7. 이행 8. 전망 |
George Bernard Shaw
조지 버나드 쇼의 다른 상품
高世薰
고세훈의 다른 상품
|
1884년 결성되어 2004년 창립 120주년을 맞이한 페이비언협회는 가장 오래된 사회주의 싱크탱크다. 당시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단체였던 사회민주연맹(Social Democratic Federation)이 대중을 상대로 한 선동과 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에 역점을 두었다면, 페이비언협회는 중산층 지식인들의 모임으로서, 주로 지식인들과 정치엘리트들을 상대로 한 연구와 토론 그리고 조사와 설득을 위해 결성되었다. 페이비언협회는 노동당 창당(1900년) 이후 100여 년 넘게 독자적으로 출판, 세미나, 대규모 대회 등을 통해 사회주의 이론과 정책에 관한 공개포럼을 줄기차게 시도해 오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도 노동당 지도부를 포함한 노농당위원, 좌파지식인, 정치지망생 등 6천5백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즉 페이비언협회는 정책 개발과 인정 네트워크를 통해 영국사민주의와 노동당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의 표방하는 페이비언주의는 그 이념적 목표로서 ‘점진성의 불가피성’을 내세운다. 또한 페이비언 사회주의는 각종 국가개입, 국가 활동의 확대(사회입법, 누진세, 인허가 등 각종 규제, 지방정부화 등)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빅토리아 영국의 다양한 개혁입법과 절차적 민주주의 진전과 함께 이들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이미 착실히 진전되어 온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국가의 중립성과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낙관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영국사회주의와 무관하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결국 페이비언주의는 민주화의 확대로 뒷받침된 국가의 역할증대를 사회주의의 현실적 진전 혹은 가능성과 등치시키고 그로 인한 자본주의 자체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주목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페이비언주의는 종종 마르크스 사상의 영국식 변형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페이비언들은 벤담(J. Bentham)과 밀(J. S. Mill) 등으로 이어진 영국의 사상적 전통과 실증주의적 사고가 마르크스식 정신에 접목된 것으로도 파악된다. 예를 들어 쇼는 당시 토지에 대한 단일세를 주창하여 유명해진 헨리 조지(H. George)의 강연을 듣고 경제학에 눈을 뜨지만, 곧 영국 박물관에서 『자본론』을 독파한 후 사회주의자로 전향했다가, 다시 비국교도 목사이며 수리경제학자인 위크스티드(P. Wicksteed)와의 논쟁을 통해서 마침내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과 결별하고 제본스식의 한계효용이론을 최종적으로 수용하였다. 실제로 19세기 말 이래 영국에서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이나 가치론 등에 대한 가장 혹독한 비판은 보수당이나 자본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페이비언들로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형이상학적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이들에게 원형의 마르크스주의는 지독히 낯선 관념의 유희일 뿐이다.”라는 쇼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대륙의 마르크스주의와 영국 사회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보다 페이비언주의가 오히려 대륙의 사회주의에 영향을 미친 바가 컸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수정주의자’베른슈타인(E. Berstein)은 페이비언에 대한 찬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는데, 독일 사민당 내부의 이른바 수정주의 논쟁을 촉발시켰던 그의 ‘점진적 사회주의’(evolutionary Socialism)의 중요 논점들이 그의 런던 체류 가운데 구상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페이비언주의는 노동당의 정신과 이념 그리고 영국 사회주의의 전통에 독보적인 영향을 미친다. 페이비언이 정의한 사회주의는 노동당 창당 이후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노동당 사회주의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2차 대전 종전 이후의 이른바 수정주의(revisionism)에서 본격적으로 실험을 겪게 된다. 특히 ‘점진성의 불가피성’에 대한 신념, 계급 이해는 화해될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국가의 중립성에 대한 자신감은 차후 노동당 지도자들의 통치철학과 노동당의 정책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